한미정상회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에 연루되다

[한반도] 문재인 정부에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인가

[출처: 청와대]

4년 전 트럼프 미 대통령의 등장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교란시켰지만, 철저한 시장주의자였기 때문에 커다란 지장은 없었다. 다만 그의 도발적이고 예측불허의 행태가 자유주의적 질서를 어지럽혀 잠시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멈춰버렸다. 시장경제는 원활하게 작동할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과 상품의 교류와 협력의 이동이 멈춰버려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 불리는 지구적 자본주의에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회복하는 첩경은 방역과 백신이었다.

따라서 미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과거의 동맹관계를 회복하겠다는 바이든의 입장에서는 코로나19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가 됐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교란한 다자주의도 서둘러 회복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취임 첫날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번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범위가 무척 방대해서 내용도 많고, 그 어느 때 보다 분량이 매우 늘었다. 가장 큰 특징은 동맹의 공간과 역할이 확장됐다는 것이다. 한미관계가 양자동맹을 넘어서 동북아지역과 아시아태평양지역 그리고 인도 태평양 지역까지 확장하더니 이제는 세계적 수준으로 나아갔다. 그 내용을 보면 전통적 과제인 한반도 문제뿐 아니라 남중국해와 대만 등 인도·태평양 지역 주요 현안, 코로나19 백신·기후·녹색 등 인류의 보편적 과제, 6세대 통신(6G)·원자력·우주탐사·반도체 등 첨단산업 협력, 여성·가정폭력 등 인권과 민주적 가치 증진 등에서도 힘을 합칠 것이라고 밝혔다. 거의 모든 부문을 망라하면서 이른바 글로벌 동맹을 맺은 것이다. 왜 공동성명의 시작이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며”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글로벌 동맹으로 확대된 한미정상회담

또 하나의 특징은 미-중 관계의 관점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한미정상회담은 미국이 중국을 간접적으로 견제하려는 세계 전략의 차원에서 진행됐으며, 이 부분이 가장 우려스러운 점이기도 하다.

먼저, 정부여당이 정상회담의 성과 중 하나로 내세운 미사일 주권 회복은 크게 자랑할 일이 아니다. 미사일 지침 해제는 42년 만에 최대 사거리 및 탄도 중량 제한이 해제된다는 뜻이다. 1979년 10월 한·미 합의로 제정된 미사일 지침은 한국의 대미 의존도를 공고히 하려는 미국의 의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진즉 되찾아야 했다. 물론 미국이 자신들의 뒷배라고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한국의 지배세력에게 그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한미 간 미사일 지침은 2001년부터 4차례 개정됐는데, 2020년 4차 개정 땐 ‘한국이 개발한 탄도미사일의 최대 사거리를 800㎞로 제한한다’는 규정만 남았다가 이번에 완전히 사라졌다. 그 동안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 문제는 정상회담에서 다룰 성격이 아님에도 의도적으로 배치됐다.

이제 한국은 이론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사거리 1000~3000㎞ 중거리 미사일 그리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미국의 중국 견제가 한층 수월해졌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 때문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지 못한 미국으로서는 저비용으로 커다란 효과를 기대하게 됐다. 미국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해 중국을 자극하는 것보다 낫다는 입장도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미사일 배치를 어느 국가가 해도 중국은 매우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며, 오히려 반발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정치권력을 현재의 야당인 국민의힘이 장악하면 사정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지만 말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한국이 자주국방을 강조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의 군비경쟁을 가속화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다. 불안정한 동아시아의 불안정성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주권 회복의 관점에서는 미사일보다 전작권, 방위비분담금, 유엔사, 정전협정 등에 대해 한국 측의 입장을 강력히 주장했어야 했다. 이를 방위비분담특별협정과 맞바꾼 것은 아니냐는 의심이 들만큼 한미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이와 함께 공동성명에는 쿼드(Quad)의 중요성 인식, 남중국해 항해의 자유,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등 중국을 자극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그동안 미-중 패권 경쟁 사이에서 중국을 의식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온 한국이 미국 쪽으로 한층 기울었음을 시사한다. 회담 직후 문재인 정부는 중국을 적시하지 않았고 일반론 수준에서 내용을 서술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런 전망은 바로 어긋났다.

중국 외교부는 24일 “대만 문제는 순수한 중국 내정이며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라며 “중국은 공동성명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 보도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는 ‘중국’이라는 단어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도했다고 한다. 중국에도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미·일정상회담 당시 중국이 비판한 수위보다는 낮아 한중관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중 양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도 중국 반발이 단발성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1)

물론 중국의 예민함이 의례적인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국제정세에 대한 순진한 인식도 의례적인 것인가. 의례적인 예민함의 축적과 의례적인 순진함의 축적은 상호 충돌로 이어져 자칫 커다란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지난 5월 11일부터 17일까지 일본, 미국, 프랑스, 호주 네 나라가 동중국해에서 연합군사연습을 거행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들의 군사연습은 쿼드와 인도-태평양 전략이 유럽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프랑스가 처음으로 전쟁연습에 참여했다. 이는 중국과 일본 사이 영토분쟁과 대만해협 위기에 군사개입의 위험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군사대결로 치달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2)

현재의 미-중 패권 경쟁은 냉전시대의 미-소 경쟁과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중국은 옛 소련보다 더 강하다. 소련은 핵이나 군사적으로 강했지만, 그에 비해서 경제는 소박했다. 중국은 군사보다 경제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압박이 거세지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3각 대립 구도가 부각되고 있다. 한·미·일이라는 친미 3각 동맹에 인도와 같은 나라를 넣어 강화하려는 게 쿼드 구상이다. 공동성명에는 사실상 쿼드 참여를 시사하는 대목이 많다. 미국의 이러한 대중 포위 전략은 바이든이 지향하는 평화주의적 가치와 맞지 않다.

미-중 패권 경쟁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외교정책은 등거리 정책이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컫는 문재인 정부의 등거리 정책이 미국으로 기울어져 동아시아 지역의 긴장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질 수 있어 우려스럽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는 원론적인 수준으로만 다뤄졌다. 공동성명에 2018년 4월 남북 판문점선언과 6월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언급했다고 해서 대단한 성과라고 자찬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공식화되었고, 바이든 행정부에는 우선 순위도 아니어서 굳이 당장 폐기할 필요가 없다.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도 대단한 일이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대담한 약속을 이미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북한에 공을 넘겼다고 했으니 이제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공동성명에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들어있지 않다면 그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트럼프나 오바마 행정부 때와는 다르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런데 북도 미국이 변했다고 생각할지는 다른 문제이다.

북한이 대화에 응할지는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해법은 간단하다. 첫째, 현재 남북 관계가 파행된 것은 문재인 정부가 9.19 평양선언 등 여러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하면서 남북이 함께 비핵화를 하고, 평화를 지향하자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문재인 정부가 순진한 건지 이해력이 부족한 건지 이런 점을 정책적으로 명확히 드러낸 적이 없었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에 공허한 수사를 삼가야 한다. 대신 먼저 사과하고 해명하는 조치를 선행하여 대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둘째, 북한이 요구한 근본적인 문제에 답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월 ‘노동당 8차 대회’ 연설에서 “방역협력, 인도주의협력, 개별관광”을 “비본질적 문제”라고 규정하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려는 입장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 중지”를 제기했다. 북한을 대화로 이끌기 위해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 훈련을 어떻게 할지 양국이 방침을 조속히 정할 필요가 있다.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될 대북제재에 대해서도 한마디의 언급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눈치에 구애받지 않는 자주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공동성명의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해서 지지를 표명하였다”가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넓혀야 한다. 자율적으로 인도적 지원도 하고 방역 지원도 하고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도 선제적으로 선언하면, 문재인 정부는 또 다른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각주]
(1) <매일경제> 2021.5.24.
(2) 강정구 번역, “네 나라 전쟁연습과 “인도태평양구상의 나토(NATO)화””, <통일뉴스> 202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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