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 평생 욕먹을 것인가, 노동자로 당당하게 살 것인가?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32) 대구 일원 도시가스 검침·점검·AS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이야기⑥

이제는 오기로 가는 거죠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후 너 더욱 찬란해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 올 때
하늘에 밝은 해는 비치인다
나의 몸에는 사랑스런 나의 햇님만 비치인다
오 나의 나의 햇님 찬란하게 비치인다

5월 25일 저녁 대구 달서구 코오롱 야외음악당에 경주시립합창단의 <오 나의 태양>이 울려 퍼진다. 대구도시가스 검침·점검 노동자와 AS기사 노동자들로 구성된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공공운수노조 대구경북본부 대구지부 소속) ‘조합원 단결의 밤’ 문화제가 진행되고 있다. 해질 무렵, 공연장 밖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하던 시민들도 시원한 바람결에 묻어오는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즐긴다.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조합원 단결의 밤 문화제에서 공연하고 있는 경주시립합창단 [출처: 연정]

5월 초 3차 총파업까지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집회를 했다. 오늘은 모처럼 경찰의 방해도 받지 않고, 플라스틱 의자지만 허리를 쭉 펴고 앉아 공연을 관람한다. 넓은 무대와 조명, 음향 시설을 갖춘 공연장이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구미시립무용단의 무용 공연과 경주시립합창단의 노래, 대구시립국악단의 사물놀이 공연 등 평소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고급진’ 공연을 보는 노동자들의 감회가 새롭다. 공연에 참여한 예술노동자 모두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와 같은 공공운수노조에 소속된 예술단 노동조합 조합원들이다. 화려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예술인들이지만,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으로 생계를 위협받는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조합원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아이구 좋아요~”

“앵콜 앵콜~”

하루 근무를 마치고 저녁밥도 못 먹고 부랴부랴 달려왔을 대성에너지 도시가스 검침·점검 노동자들과 AS기사 노동자들이 큰 박수와 함성으로 호응하며 문화제를 즐긴다. 3백 명 조합원이 거의 다 참석했다.

사실 즐겁기만 한 날은 아니다. 월급날이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 시간에 동료나 가족과 저녁을 먹으며 한 달 동안 수고했다고 맥주잔을 부딪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차량 유류비 빼면 최저임금도 안 되고, 입금되기 무섭게 여기저기 빠져나가기 바빠 제대로 구경 한번 해보기 힘든 월급. 그래도 마음만은 넉넉하고 흐뭇한 늘 기다려지는 월급날이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사람으로 대우해달라고 선언을 한 지난 3월부터 25일 월급날은 예전처럼 흐뭇한 날이 아니다. 3월에 30~50만원, 4월에 70~80만원 삭감에 이어 5월에도 50~60만 원 이상 삭감이 되었다.

“임금삭감 폭이 좀 크죠? 회사가 우리가 연차 낸 걸 다 반려했기 때문에 연말에 연차수당 다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삭감된 부분이 크긴 하겠지만, 나중이 되면 지금 우리가 수치상으로 느끼는 삭감 분보다는 충격이 안화될 거예요.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6월 검침기간 파업도 힘차게 준비해주셨으면 합니다. 회사도 분명히 힘듭니다.”

공연 전 인사말 시간에 최규태 지회장이 조합원들을 위로한다. 최규태 지회장은 파업 참가자들 중에 가장 많은 임금 삭감 피해를 본 당사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노조 설립부터 3차 파업까지 오는 동안 간부들의 헌신과 노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조합원들이 큰 박수로 마음을 전한다. 열흘 전 노동조합은 간부들을 중심으로 대성에너지의 지분 71%를 보유하고 있는 대성홀딩스 서울지사와 서울 성북구에 있는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 집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째잖아요. 그러려니 해요. 저는 맞벌이 하니까 그나마 나은데, 그렇지 않은 분들은 많이 힘들 거예요. 이제는 오기로 가는 거죠.”

문화제에 참석한 한 검침·점검 노동자가 허탈하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매번 월급이 얼마 깎였냐고 물어보는 게 민망하고 미안하다. 그래서 모처럼 여유롭게 좋은 공연을 즐기는 노동자들에게 인터뷰를 하지 말자 다짐하며 왔는데, 그 다짐은 깨지고 만다.

  코오롱 야외음악당에서 공연을 보고 있는 대구도시가스 검침점검 노동자들과 AS기사 노동자들 [출처: 연정]

신발 벗고 들어가면 신발 신고 나오기 바쁜 현장

“연차를 냈는데, 강제로 반려를 시키고 임금 삭감을 했어요. 상당히 기분 안 좋죠. 삭감된 건 방법을 찾아봐야죠. 괘씸한 생각에 더 열심히 노조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돈도 돈이지만, 저는 먼저 회사 운영 시스템이 잘못되어 있다고 봐요. 한 시간 대에 가야될 집이 많을 때는 열일곱 집까지도 있어요. 말로는 대구시민 안전을 걱정한다면서 실제 기사들이 일하는 현장은 신발 벗고 들어가면 바로 신발 신고 나오기 바쁘게 만들어놓았어요. 이런 사소한 것부터 기사들도 검침원 분들도 많이 힘들어하는 겁니다.” (배종호, AS기사 노동자)

5월 파업에 처음 참여한 AS기사 노동자들도 40~50만원의 임금을 삭감 당했다. 대성에너지 AS기사로 근무하고 있는 배종호 씨는 업무에 관한 정확한 매뉴얼이 없고, 내부 규정이나 시스템이 엉망이라 많이 힘들다고 했다.

  5월 14일 서울 성북구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 자택 인근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출처: 연정]

대구도시가스 AS기사 노동자들은 도시가스 사용 계약·해지, 가스레인지 개통·철거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사를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한다. 그 외 고장과 노후로 인한 계량기 교체 업무와 가스냄새 등 안전문제 발생 시 방문 점검·수리, 미납세대 채권 회수 업무도 한다. 매뉴얼 상 하루에 할 수 있는 업무량은 25~30건 정도이지만, 이사철이나 학교 개학 시기에는 한 사람 당 70~80개씩 배정이 될 때도 있다. 매뉴얼은 이름에 불과할 뿐 실제로 지킬 수가 없다.

“직원 한 분이 고객이 이사 들어 올 때 가스레인지 연결 업무를 하다가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어요. 매뉴얼대로라면 옥상에 가서 잠겨있는 걸 확인하고 다시 내려와서 사용계약을 하고 가스레인지를 연결한 후에 다시 옥상에 올라가서 가스를 열고 다시 내려와서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여 확인을 해야 해요. 근데 동시간대 일이 10개 이상 되니까 동선을 줄이기 위해 올라가서 가스를 열어놓고 그냥 작업을 하는 거죠. 그렇게 하다가 스파크 때문에 화재가 나는 거고요. 회사에 얘기해봐야 소용없으니까 보통 같은 센터 기사들이 돈을 모아서 수리비용을 지불해요. 근데 이 세입자분이 수리비에다가 정신적인 피해보상 금액을 몇 백 만원 요구를 하셨어요. 회사에 보고하고 보험처리 해 달라고 하니까 회사에서는 매뉴얼대로 하지 않은 기사 과실이라고 기사가 돈으로 해결해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최규태 지회장)

그 당시 담당 직원은 머리가 타고 얼굴에도 화상을 입는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회사는 산재처리는커녕 직원이 괜찮은지 묻지도 않고 담당 직원에게 본인 돈으로 해결하라는 요구를 했다. 인력 부족에 따른 과도한 업무량은 화재 발생 등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폭언과 욕설, 폭력, 부당한 민원제기 등 고객의 갑질도 AS기사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다. AS기사 노동자는 호봉 없는 기본급 200만 원에 월 20시간의 연장근로수당과 차량 유지비 5만 원을 받으며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업무용 차량 지급과 현실적인 차량유지비 지급,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며 투쟁에 함께 하고 있다.

대성에너지 측은 AS기사의 업무 처리 건수가 2020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22.4건이라며, 노동조합에서 주장하는 하루 업무양은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사가 많은 방학이나 ‘손 없는 날’ 외에는 업무에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일 년 전체 노동자 업무량 평균치를 갖고 이사철 등 바쁜 시즌에 하루 70~80건의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며 반박한다. 또, 센터가 속한 지역에 따라 일 년 내내 적은 인력으로 과다한 업무량에 시달리는 센터들도 있다는 주장이다.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조합원 단결의 밤 문화제에서 공연하고 있는 구미시립무용단 [출처: 연정]

현장으로 복귀하면 판가름 납니다

소리 높여 외쳐라 하늘이 떠나가게
손에 손을 맞잡고서 다 함께 노래 부르세

경주시립합창단이 대성에너지 투쟁이 승리하고 축배를 드는 그 날을 기원한다며 마지막 앵콜곡 <우정의 노래>를 부른다.

이 날 문화제에는 블랙스톤 외국 투기자본의 일방적인 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1년 가까이 투쟁하고 있는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조합원들도 참석했다. 채붕석 지회장은 “지난해 해고되기 전에 가족들과 야구장 관람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다”며, 많은 조합원들이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한국게이츠지회는 최근 대성그룹 계열사의 한국게이츠 공장부지 인수 움직임과 관련해 대성에너지 투쟁에도 관심을 갖고 함께 하고 있다.

요즘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조합원들을 많이 힘들게 하는 일이 있다. 비조합원들의 모습이다. 노동조합이 검침기간 파업과 준법투쟁에 들어가자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배정된 업무를 비조합원들에게 하게 했다. 많게는 한 달에 80만 원 이상 받아가는 비조합원도 있다. 임금 삭감을 감수하며 힘겹게 하고 있는 파업투쟁의 효과를 감소시키는 비조합원들의 행동만으로도 속상하고 화가 나는데, 이들은 미안해하기는커녕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언행을 했다. 비조합원들은 ‘왜 그렇게 어리석게 사냐. 느그가 그렇게 해도 어차피 우린 나중에 똑같이 혜택을 본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했다. 조합원이 소수인 센터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회사는 이러한 갈등을 부추기며 이를 핑계로 노사 합의를 지연시켰다. 그리고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회사 입장문을 내고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 안봉환 대표이사 명의로 노동자들의 집에 우편물 발송까지 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는 회사 측의 부당노동행위(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행사에 대한 사용자의 방해) 의도 아니겠냐고 했다. 이를 잘 알면서도 현장에서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난다. 승리의 고지가 보이기 시작할 때, 다급한 사측이 히든카드처럼 내놓은 ‘노노갈등’. 어느 노동조합인들 쿨 하고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었을까. 민주노조를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자존심과 인간적인 고뇌, 그리고 고통이 느껴진다. 고용노동부 대구서부지청은 노동조합이 제기한 회사 측의 각종 근로기준법 위반 고발 진정 건들을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판정을 미루고 있다.

“여러분을 보니 저희 가톨릭병원 파업이 생각납니다. 저희도 파업 중에 월급날을 맞이했지요. 당시 제 통장에 돈 40원 찍혔더라고요. 참 암담하죠. 파업 중에 비조합원은 월급을 받는데 파업을 한 우리는 왜 월급을 못 받는가? 저희도 그 부분을 늘 고민하고 토론했었습니다. 근데 그 비조합원들 지금도 욕 얻어먹고 있어요. 우리 파업할 때 연장수당 챙겨갔다고. 우리 파업할 때 임금 챙겨 갖다고. 평생 욕 얻어먹을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로 당당하게 살아갈 것인지 현장으로 복귀하면 분명히 판가름 납니다.”

2018년 여름. 실질임금 인상과 주5일제 시행, 직장 내 갑질문화 근절, 비정규직 정규직화 전환 등을 요구하며 39일간 파업 투쟁을 했던 대구가톨릭대의료원분회 하유숙 분회장이 너무 상심하지 말라며 대성에너지 조합원들을 위로한다.

  문화제에 참석한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조합원과 연대한 노동자들 [출처: 연정]

우리가 포기할 거라는 건 회사의 착각

“나는 우리 국악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오늘 문화제 참 좋았어요. 위로가 돼요.”

문화제가 끝나고 귀가하는 검침·점검 노동자 홍진영 씨(가명)에게 삭감된 임금액을 물었다. 진영 씨는 4월에 65만원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96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진영 씨보다 점검율 3%를 더 한 노동자가 3만원을 더 받은 걸 보니 회사가 점검율 1%당 만원 씩 임금 차등을 두는 것 같다고 했다.

“이것도 세 번 받아보니까 무뎌지네요. 임금삭감하면 우리가 포기할 거라는 건 회사의 착각이에요. 노조가 처음 생겼을 때, 오히려 가족들이 먼저 들라고 했어요.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일해 왔는지를 아니까. 회사도 우리도 각자의 입장이 있잖아요. 그걸 서로 인정하고 얘기를 하면 좋은데, 회사는 전혀 안 물러나려고 하고 있어요. 회사가 비조합원들을 많이 생각해주는 척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지금 제일 안 좋은 게 비조합원들인 거 같아요. 회사에서 일을 시키면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양쪽 눈치를 다 봐야 되잖아요. 차라리 저는 속은 편해요. 우리는 손해를 감수하고 하는 건데, 차라리 손해보고 우리가 할 말을 당당하게 하는 게 더 나은 거 같아요. 끝까지 한번 해보려고요. 저는 끝까지 마지막 한 명 남을 때까지 그 마지막 한 명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존버는 승리한다(끝까지 버티면 승리한다).” (홍진영(가명), 검침·점검노동자)


  5월 14일 서울 성북구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 자택 인근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조합원들 [출처: 연정]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야기처럼 대성에너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승리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끝까지 투쟁할 마지막 한 명이 있기 때문이다.

잔을 가득 채워서 축배를 높이 드세
여기 다시 모인 친구 정다운 나의 친구여
우정을 위하여 우리 다 함께 이 잔을 드세나
사랑을 위하여 우리다함께 이 잔을 드세나
미래를 위하여 우리 다함께 이 잔을 드세나
운명의 여신은 우리 웃으며 반기리라
- <우정의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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