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와 돌봄 ‘백신’은 ‘국가책임일자리’

[연속기고⑤] 시장 아니라 공공, 공적 돌봄체계·국가책임일자리·노동권 보장해야

[출처: 공공운수노조]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가치, 이제 아셨어요?

감염병으로 사회가 멈추어도 멈출 수 없는 노동이 있었다. 감염 위험에도 재난위기의 최전선을 묵묵히 지킨 이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보건의료노동자, 노인과 환자를 돌보는 요양서비스노동자, 긴급돌봄교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노동자들이었다. 또 감염병 확산으로 어린이집과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 집에서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조리, 세탁, 청소노동을 담당하며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전투를 치른 이들이 여성이었다는 점도 확인됐다.

전대미문의 감염병은 삶의 유지에 필수적이면서도 ‘그림자 노동’으로 여겨졌던 가사·돌봄노동의 가치를 드러냈다. 이 사회가 그간 가사·돌봄노동에 얼마나 의존해왔는지, 그 중요한 노동이 얼마나 하찮게 여겨왔는지, 누가 담당해 왔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사·돌봄노동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호명되었고, 언론은 연일 그들의 노고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에게 ‘필수노동자’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주었을 뿐, 가사·돌봄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재난 때만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이 필수적이라는 정부

4월 29일 ‘필수노동자 보호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필수노동과 필수노동이 아닌 노동을 재난 때마다 선별한다는 문제의식은 위기관리대책에 불과했다. 필수노동자들의 노력으로 조명을 받은 위생·안전시설 조성 및 방역용품지원, 고용보험료와 산재보험료 지원, 적정 노동시간 확보 등 노동환경 개선방안 역시 재난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도 논의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재난은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가사·돌봄노동의 가치를 알게 했다. 그러나 아동·노인·환자를 보살피는 노동, 일상생활을 가능케 하는 노동은 재난 때만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와 의회의 구상에 가사·돌봄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저임금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구상은 전무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필수노동자의 희생 없이도 유지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지, 재난 때마다 필수노동을 선별해 단기간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가사·돌봄노동자들은 한편에서는 무급휴직과 실직 속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늘어난 노동강도와 동반감염의 위험 속에서 위태롭게 일하고 하고 있다.

여성의 저임금ㆍ불안정노동을 구조화하는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

2000년대 이후 가사·돌봄노동은 ‘시장화’ 방식으로 확대돼 왔다. 특히 이는 돌봄영역에서 두드러졌다. 사회적 돌봄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국가는 공적자원투입은 최소화하고 책임은 민간에 전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국가는 이용자에게 바우처나 이용료만을 지원하고, 민간·시장중심 공급체계를 구축했다.

결국 단기간에 서비스 제공기관과 일자리의 양적 확대만을 목표로 제출된 가사·돌봄노동 시장 활성화방안은 개인영리사업자가 난립하고 질 낮은 일자리만 대거 육성하는 사회서비스 시장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민간어린이집과 민간요양기관은 빠르게 증가했다. 2020년 보건복지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사회복지시설 6만여 개소 가운데 민간이 설치·운영하는 기관이 88%에 달하며, 민간어린이집은 88%, 민간노인요양기관은 90%에 달한다. 게다가 국공립어린이집도 이름만 국공립일 뿐 태반이 민간위탁이어서 직영비율은 1.1%에 불과하다. 노인요양기관 직영비율 역시 마찬가지로 1.2%에 그쳐 국공립시설 역시 대부분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서비스가 확대됐어도 대부분 ‘시장화’ 방식이었고, 그 결과 돌봄의 질은 하락하고 노동조건은 열악해졌다. 일자리정책도 사회서비스 시장 확대에 종속돼 보육교사·요양보호사·초등돌봄전담사·방과후교사·장애인활동지원사 등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등장한 돌봄 주체들 대부분도 기간제,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고용됐다. 아직도 민간·가정어린이집 보육노동자 90%는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장기요양기관 노동자들은 보험수가에 맞추어, 장애인활동지원사들은 바우처 수가에 맞춰 급여를 받는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놓여있다.

한편, 가사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 채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서 호출노동 형태로 일해 왔다. 최근 가사노동자단체들의 요구와 함께 가사노동자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지만, 그 무게는 가사노동자 전반에 대한 노동법 적용이 아니라 플랫폼 가사산업 활성화에 실려 있다. 가사노동자 대부분은 정부인증기관에 고용되지도 노동법으로 보호받지도 못한다.

사회서비스원, 공적돌봄체계 구축과 노동권 보장으로 돌봄의 가치인정을 실현해야

문재인정부가 돌봄공공성을 실현하겠다며 야심차게 내놓았던 ‘사회서비스공단 설치’ 공약은 지자체 사회서비스원 시범사업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시법사업 시행 후 2년 이상이 흘렀지만, 국가나 지자체가 세운 기관을 사회서비스원이 운영하고, 사회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겠다는 사회서비스원의 목표를 실현하기에 현실은 턱없이 부족하다. 근거법안인 사회서비스원법 제정과 예산확보도, 의미 있는 운영권 확보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지역별 편차도 크고 전국적으로 통일된 운영체계나 표준 노동조건조차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전국 4천여 개 국공립어린이집을 사회서비스원이 운영하겠다는 사업은 거의 시도조차 되지 않은 채 민간위탁 운영 상태로 방치돼 있다. 심지어 신규 국공립어린이집 위탁사업 경우에는 공모 건마다 사회서비스원이 민간기관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종합재가센터 중 노동자를 정규직 월급제로 고용하고 있는 곳은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이 유일하며, 서울시 제외 지역 요양보호사들은 전원 시급제로 고용되어 있는 등 고용의 질 역시 열악하다. 사회서비스원 독립채산제는 공공적 운영에 필수적인 국가와 지자체 보조금 회피수단으로 기능하며, 이윤창출을 위한 운영을 강제하고 있다.

5월 21일 「사회서비스 지원 및 사회서비스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은 사회서비스원 근거법안을 마련하라는 요구 속에서 여야 합의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회서비스원의 우선위탁범위는 대폭 축소됐고, 돌봄 공공성 확보의 취지는 크게 훼손됐다. 사회서비스원 우선 위탁의 범위는 ‘민간이 참여하기 어렵거나 공급이 부족한 분야’에 ‘신규로 설립하는 사회서비스기관’으로 한정됐다. 사회서비스원 우선위탁 범위에 대해 민간사업자와 이와 연계된 보수정치권이 ‘민간중심 사회서비스시장을 교란한다’며 적극적으로 막아섰고, 민주당이 이를 수용한 결과다. 그러나 기존 민간위탁 사회서비스시설을 국가-지방정부책임 사회서비스원으로 이관하지 않으면 돌봄 공공성 강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국가와 자자체의 직접운영·직접책임을 통한 공적 돌봄 체계구축과 노동권 보장은 돌봄노동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실현의 필수요소다.

가사·돌봄노동 사회화, 국가책임 일자리와 노동권 보장으로부터

감염병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뼈아프게 확인했다. 돌봄과 재생산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코로나19 이후 만들어가야 할 사회의 방향이지만, 현 민간·시장중심 사회서비스 공급체계에서는 이 목표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가사·돌봄노동 사회화를 위해 국가책임 돌봄을 분명히 선언하고, 민간업자·시장중심 사회서비스 공급체계를 공적 공급체계로 전변시킬 계획을 세워내야 한다. 어린이집과 요양시설을 대폭 확충하라는 요구는, 국가와 지자체가 사회서비스 시설을 직접 운영하라는 요구, 국가와 지자체 책임으로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는 요구로 나아가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가 운영주체가 되어 공적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돌봄 노동자를 국가책임으로 고용하고 노동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가사·돌봄노동 사회화는 자본과 이윤의 논리를 연대와 공존의 논리로 바꾸어내는 투쟁이고, 국가책임일자리는 국가가 이 공적책임을 온전히 수행하라는 시대의 준엄한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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