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범에게 되레 위협 받는 공무원

[이슈②]

  경북 고령시 한 공장 안에 폐기물이 가득 쌓여 있다. [출처: 박중엽 뉴스민 기자]

경상북도 한 기초단체 폐기물 단속 담당 공무원 김경북(가명) 씨는 폐기물 행정대집행 현장에 나갔다가 투기범 일당으로부터 비아냥을 들었다. 그들은 김 씨를 향해 “대집행 열심히 한번 해 봐라”라고 하며 외제차를 몰고 유유히 떠났다. 앞으로 대집행 비용을 이들에게 청구해봤자 돌려받지 못할 것은 뻔하다. 저 외제차 또한 명의는 다른 사람으로 돼 있을 것이다.

김 씨는 속을 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 이날은 비아냥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투기범들과 상대할 때면 투기범들이 감사실에 제기하는 민원에 시달려야 할 때도 있고, 단속 현장에서는 위협을 당하게 되는 상황도 생기곤 한다.

폐기물 투기가 주로 새벽 시간대에 이뤄지기 때문에,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면 사위가 어둡다. 때로 밀폐된 공장에 들어가서 확인해야 할 일이 생기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폐기물 단속은 경찰의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경찰에 협조 요청을 해도 금방 복귀해버리곤 했고, 결국 담당 공무원끼리 해결해야 한다.

현장에서 투기범들의 신원을 파악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을 조사해야 하는데, 수사권이 없는 행정기관으로서 조사 대상에게 진술 협조를 부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조사가 될 리 없다.

폐기물 업무도 과중하다. 경북의 경우, 특성상 담당 지역 면적이 넓고 감시 대상 업체도 많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은 단속 업무뿐만 아니라 올바로시스템 관리, 폐기물 관련 사업 인허가, 불법 폐기물 발생 시 행정대집행 처리 등 업무도 맡게 된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23개 기초지자체 담당자는 23명이다. 각 단체에 1명 배정된 셈이다.

현장에서는 인원과 지원 부족으로 아우성치는데,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경상북도 관계자는 “환경부나 행정안전부에 지도점검 인력 증원을 건의했지만, 총액인건비라 자체적으로 하라는 게 결론이었다. 시스템 없이 업무만 내려오고 있다”며 “시군에서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배정해달라는 요구가 있다. 담당자가 신변 위협이나 감사 청구 등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폐기물 불법 투기 피해자 이 씨(오른쪽) [출처: 박중엽 뉴스민 기자]

투기 주범 최대 2년 실형 선고
폐기물 투기의 경제학… 처벌 손해 < 투기 이익


인근 지역 주민, 공장·토지주, 담당 공무원. 사람 여럿 괴롭힌 불법 투기로 범인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폐기물관리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들은 안동시 외에도 경기도 화성시, 경북 포항 등으로 옮겨가 공장 투기를 이어갔는데, 이들이 받은 처벌은 최대 징역 2년 실형에 불과했다. 운반책 등 주범보다 범행 가담 정도가 비교적 가벼운 이들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영천 사건의 경우 최대 양형은 징역 1년6개월이다.

앞서 안동시에 버려진 8,500톤을 톤당 15만 원을 받고 처리했다고 가정했을 때 이들이 본 수입은 12억7500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여기에 더해 다른 현장에서도 수익을 봤다고 하면, 주범들은 인당 수억 원에서 수십 억 원까지도 범죄로 수익을 올렸을 수 있다. 실형 2년에 수익 수십억 원. 투기범 입장에서 처벌로 인한 손해보다 투기로 인한 이익이 많다는 결론이 나온다. 범죄는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환경부도 폐기물관리법 강화에 나서긴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5월부터 시행되는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에는 불법 폐기물을 유발하는 행위에 대한 벌칙을 강화하고, 징벌적 과징금 도입, 행정대집행 착수 조건을 완화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환경부는 “종전 불법폐기물 유발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아 범죄 억제력이 부족”했다며 “대집행은 재산 압류를 위한 사전절차에 과도한 시간이 소요되고 이로 인해 책임자를 통한 비용환수 어려움이 존재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아직도 법이 약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한, 법 강화와 함께 환경 범죄 수사 조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서봉태 환경운동가는 “일선 시군 공무원이 현장에 단속 나가는데, 신변 위협도 문제지만 수사권이 없어서 현장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며 “불법 폐기물 단속의 핵심은 압수 수색 권한이 있는 기관이 현장에서 증거 자료를 입수해야 하는 점이다.

현장에서 통장 내역이나 통화 내역을 확인해서 투기 조직 자금 흐름이나 핵심 인물을 잡아내야 하는데, 이걸 못하면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불법 폐기물이 가득 쌓인 경북 영천시 이 씨의 공장에서 서봉태 환경운동가가 박중엽 기자에게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박중엽 뉴스민 기자]

폐기물 행정대집행, 투기 유형별 매뉴얼 없어
식수원 오염 우려 적치장 대집행 착수에 1년 9개월 걸린 이유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국 투기·방치폐기물 43만3000톤 중 17만2000톤(39.8%)이 경상북도에서 적발됐다. 경북 지역에서 투기·방치폐기물 투기장 34곳에 나뉘어 적치됐는데, 이 중 폐기물이 아직 남아 있는 적치 현장을 답사한 결과 대부분 공장 내에 버려진 경우였으며, 안동시 사례처럼 들판에 투기된 경우도 드물게 있었다.

불법 투기 현장에 대한 최종적인 조치는 행정대집행인데, 불법 투기 피해자 사이에서도 행정대집행에 대한 반응은 사뭇 다르다. 환경오염으로 피해를 보는 주민 입장에서는 어떤 방법을 쓰든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폐기물을 조치하는 것이 좋다. 반면 투기로 피해를 받은 공장주 입장에서는 무턱대고 행정대집행에 돌입한다면 또 다른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행정대집행 비용을 피해 공장주가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부는 행정대집행에 앞서 유형별 매뉴얼이나 원칙을 정해두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 지방자치단체에 전적으로 맡겨둔 것이다.

안동 사례의 경우, 안동시는 환경오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폐기물 행정대집행 착수에 늦어진 이유가 책임 소재 때문이라고 했다. 이행 명령이나 계고 등에서 절차상 하자가 생긴다면 투기범에게 행정대집행 비용을 징수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안동시가 해당 지역 토지 소유자 2명과 투기 행위자 12명을 상대로 행정대집행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던 시점에 투기범 주범들이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절차 이행에 더 많은 시간이 들기도 했다.

투기범들이 감옥에 갔고, 늦게나마 행정대집행에 들어갔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해당 투기범들에 대한 수사기관의 진술조서를 입수해 확인해 봤다. 이들은 수사 과정에서 입을 모아 현재 가진 재산이 없다고 했다. 안동시가 추후 이들에게 행정대집행에 든 세금을 징수한다고 해도 이들에게서 받아내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결국 세금으로 폐기물을 치우는 것은 똑같은데, 받지 못할 비용 징수를 위한 절차를 이행하느라 시간만 더 들인 셈이다.

이재갑 안동시의원(무소속)은 “투기범 입장에서 수십억 벌고 감옥 한 번 갔다 오면 되는 거라서 막을 수가 없다. 폐기물을 민간에 맡기면 처리되는 걸 마지막까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허가 없는 업자한테도 폐기물을 팔아넘긴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며 “결국 국가와 지자체가 민간에 맡기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영천 피해 공장주 이 씨는 행정대집행을 통해 폐기물을 치우게 되는 경우가 최악의 상황이라고 강조한다. 대집행 비용 부과라는 추가적 피해가 생기기 때문이다. 공장 건물 내에 버려지는 경우, 외부 환경과 일차적으로 차단돼 있고 침출수는 발생하지 않고, 악취 문제 등에서도 비교적 나은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조속한 행정대집행보다는 원인 제공자에 대한 충분한 조치가 먼저 필요하다고 한다.

서봉태 환경운동가는 영천에 거주하면서 피해 공장주 이 씨를 돕고 있는데, 서 씨는 이 씨 공장에 투기한 주범과 이들에게 폐기물을 불법적으로 건네준 중간처리업자 등 폐기물 배출 사업주에게 투기한 폐기물을 도로 가져가라고 압박하고 있다. 현재 사법 조치로는 폐기물 투기의 또 다른 원인 제공자인 폐기물 배출 사업주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처벌 강화도 필수적이라고 한다.

특히, 서 씨는 폐기물 처분이 민간 영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언제든 불법으로 버려질 위험이 있으며, 실제로 행정대집행을 통해 수거한 폐기물 처리를 민간 업체가 위탁받은 뒤, 도로 투기해버리는 사태마저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이 씨 공장에 버려진 폐기물을 조사해보니까, 여기에 2018년도 필리핀에 불법 수출됐다가 평택항으로 반송된 폐기물도 있어요. 경남에 한 유명 민간업체가 있는데 행정대집행에 참여해서 수거한 폐기물을 다른 곳에 투기한 정황도 확인한 상태입니다. 조만간 고발할 거예요. 그리고 지금 투기범에 대한 처벌 강화도 필요하지만, 폐기물 원 배출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합니다. 운송한 사람, 배출한 사람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면 앞으로 투기는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 서봉태 씨

서 씨가 언급한 원 배출자란 폐기물 중간·종합 재활용업체를 말한다. 2018년 환경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방치폐기물 발생 업체 중 69.7%가 중간·종합 재활용업체다.

한편 이 씨와 같은 피해자에 대한 행정대집행 청구를 막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다. 투기범에 대한 처벌 강화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건물이나 토지소유자의 책임을 완전 면제할 경우 다른 부작용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5월 4일 환경부가 주최한 ‘불법 투기 폐기물 발생 예방을 위한 열린 토론회’에서 진실 변호사(진앤리 법률사무소)는 “투기한 사람은 돈이 없다고 하면서 책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토지소유자가 처리하게 되고 투기자는 징역형만 지게 된다”며 “토지소유자의 책임이 없는 경우 면책하자는 취지의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토지소유자에 대한 면책조항은 원칙적으로 옳지만, 악용될 소지도 있다. 토지소유자와 투기자가 공모하면 수익은 공유하면서 면책을 받아, 투기를 더 막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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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부작용을 최소화 하면서 불법투기를 막으려면....결국 정부기관(지자체,경찰)의 협조체제가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후손들이 살아야 할 금수강산을 깨끗하게 물려주는 마음이 필요한 때입니다....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