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인권은 소중하다

[질문들]

스승의 날 즈음 교권 관련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교권 침해가 늘고 심각하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들이 다룬 ‘교권’은 교사로서 교육할 권리가 간섭받거나 노동자로서 상관에게 부당한 명령(갑질)을 받거나, 학부모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거나 성적 주체로서 성범죄를 겪는 등 다양한 권리를 포함한다. 즉 ‘교권’이라는 한 단어로 말하지만, 사실은 한 인간이 품고 있는 여러 정체성이 교사라는 지위와 일터에 연결돼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교권’의 문제는 다각적인 면에서 검토가 돼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교권 침해 원인으로 소환되는 단골손님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학생인권조례’다. 2010년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처음 만들어지고 11년 내내 같은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14일 국민의힘 국회의원들과 국민희망교육연대가 교사인권보호 포럼을 개최해 사실상 학생인권조례가 문제니,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런 부류의 주장에서 ‘교권’은 주로 학생을 통제할 힘과 권위를 말한다. 교권의 추락으로 ‘학생다움’이 사라지고 심지어 학력 저하의 결과를 낳게 돼 학생에게도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눈에는 통제돼야 할 존재가 통제되지 못해, ‘제 사명’(학업에 매진하는 학생다움)을 다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권을 주장하고 나서니 교사에 대한 존경은 고사하고 위험한 존재로 보인다. 이들은 동시에 학생 인권도 보장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학생은 통제받으면서 허락된 만큼의 권리만 보장받으라는 의미다. 이들 주장의 전제는 ‘학생은 미성숙한 존재’라는 것이다.

  지난 3월 22일 인천노동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촉구했다. [출처: 인천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전국 최초라는 ‘인천 학교 구성원 인권증진 조례’

지난 3월 인천시는 ‘학교 구성원 인권증진 조례’를 제정했다. 전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 이 조례는 학생인권조례와 달리 그 대상을 교직원과 학부모까지 확대했다. 이에 도성훈 인천광역시 교육감은 “인천 학교 구성원 인권증진 조례는 다른 시도의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의 인권만이 강조돼 발생한 교권침해 등을 예방하기 위한 차별화된 내용이 담겨있다”1)고 설명했다. 또 “학교 구성원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학교폭력, 아동학대, 교권침해 등 다양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2)고 밝혔다. 기존의 학생인권조례의 문제 또는 한계를 넘어 학교 구성원 모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발전한 듯한 이 설명은 그럴싸하게 들린다. 하지만 조례는 모두의 인권이라는 말로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했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요구하면서 던졌던 질문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도 사람이다’라는 외침과 투쟁으로 탄생했다. 학생은 사람으로 존중받기 이전에 ‘학생다움’을 강요받았고, ‘미성숙’해서 사람이 되지 못했다. ‘미성숙’한 존재는 ‘성숙’한 존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학생다움’을 벗어나면 처벌받았다. 학교생활 시스템은 통제와 체벌로 유지되고 이 규율은 학생에게만 적용되었다. 왜냐면 이 모든 것은 학생을 위한 것이라며 ‘성숙’한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 의문을 품는 것조차 불온하게 여겨지는 가운데 반란의 목소리가 등장했다. “학생도 사람이다!”

두발과 복장 규제에 저항하자 교사와 학부모는 학생답지 않게 멋을 부려 면학 분위기를 망친다고 했다. 이것은 학교에서의 통제가 신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율을 만들어 학교에 맞는 몸을 갖출 것을 요구하면 몸은 이제 나의 몸이 아니기 때문에 폭력에 노출되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것이 가능한 공간은 학교와 가정, 군대 정도일 것이다. 예외적인 것은 그 나름의 핑계를 갖기 마련이다. 통제가 필요하다는 이유, 훈육이라는 이유 등은 모두 복종해야 하는 대상에게 폭력을 당해도 되는 이유를 붙인다. 학생에게 문제가 있으니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 교육이 된다. 통제는 몸에서 확장되어 나의 물품도 아무 때나 조사의 대상이 되고 의사 표현도 검열의 대상이 된다. 행동 하나하나가 규율에 맞춰지게 되고 무권리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두발과 복장의 문제는 멋과 개성을 넘어 통제의 권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의 통제가 인권침해임을 고발하고 체벌을 폭력이라 지목했다.

청소년들의 인권운동으로 국제인권기구의 각종 권고, 국가인권위의 결정 등을 끌어내며 학생 인권을 공론화해온 결과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 학생이기 때문에 권리가 유보되고 예외가 용인되어 온 현실에 질문하고, 인권은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보장돼야 하고 보장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하면서 자율적인 존재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여전히 학생 인권이 취약한 사회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인권의 구체적 내용과 최소한의 기준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확산시키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이런 공식적인 제도는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확인하게 돼 학교 안에서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고 싸울 때 큰 힘이 돼줄 수 있다. 또한 학생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에게도 학생에게 보장해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확인하도록 해 더는 인권침해의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그 자체로 인권교육의 효과를 만들 수 있어야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인권을 존중하는 관계로 변화할 수 있다. 학생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학생의 권리를 지키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권은 파이 싸움이 아니다

학생 인권과 교권이 서로 대립한다는 주장을 인천시교육청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오랫동안 논의를 거쳐 다수의 동의를 끌어냈다는 조례는 결국 반대 주장을 누그러뜨리려 조절한 것과 다름없다. ‘모두의 인권’이라는 포장은 결국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의 본질을 가려버리고 말았다. 너무 당연해 표적이 없는 말은 때론 아무런 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문제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폭력에 사망한 뒤에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전 세계로 번졌다. 이때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All Lives Matter)’라는 슬로건이 등장했다. 분명 맞는 말이고 더 많은 사람을 포괄해 더 인권적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슬로건은 인종차별 문제를 희석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생명에 포함되지 않았던 흑인 생명의 현실을 보라는 사람들을 오히려 조롱하는 말이다.

“여성 인권을 보장하라”고 하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발생한다”고 한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니, “아직 사회적 합의가 안 됐으니 나중에”라고 대답한다. 누군가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왜 다른 이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왜 모든 사회구성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가? 인간으로서 존엄함을 잃지 않기 위해 무엇이 인권침해인지 드러내고 인권보장의 책임을 묻는 과정은 자신을 지키고 타인도 지킨다. 이것은 단순히 사람 사이의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에 묻는 책임이다. 그러니 그 책임을 져야 할 국가와 공동체가 다른 구성원을 핑계 삼아 인권보장의 문제를 타협이나 이해의 문제로 바꾸어서는 의무를 다한다고 할 수 없다. 인천시교육청은 전국 최초의 조례를 자랑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한다.

<각주>

1) 인천광역시교육청 보도자료, 2021.3.9,
http://www.ice.go.kr/boardCnts/view.do?boardID=495&boardSeq=2427903&lev=0&searchType=S&statusYN=N&page=5&s=ice&m=060903&opType=N
2) 인천광역시교육청 보도자료, 2021.3.11.,
http://www.ice.go.kr/boardCnts/view.do?boardID=495&boardSeq=2428097&lev=0&searchType=S&statusYN=N&page=5&s=ice&m=060903&opTy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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