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는 농부되기!

[유하네 농담農談] 자연과 더불어, 사람과 더불어

여름이 왔습니다!

뻐꾹! 뻐꾹! “엄마~ 뻐꾸기가 뭐라고 하는 거야?” 등굣길에 세하가 묻습니다. “뻐꾸기가 우리 세하 학교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나보다” 하고 답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유하는 “뻐꾸기가 무슨 인사를 해. 그냥 우는 거지”하고 코웃음을 칩니다. “아니야! 엄마 말이 맞아” 세하가 언니를 삐죽 쳐다봅니다. 아침이면 뻐꾸기가 우는 걸 보니 여름이 성큼 다가 왔나봅니다.

밤 온도가 10도를 넘어가면 고추를 심어야 합니다. 옥수수, 토마토, 가지, 호박 등등 심어야 할 작물이 가득합니다. 너무 일찍 심으면 냉해를 입어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날씨 앱으로 매일 온도를 확인하며 심을 날짜를 정합니다. 정해진 시기를 넘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유하네는 요즘 하루도 쉴 수 없는 극 농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노동인권 강사

유하 엄마는 작년부터 강원도 곳곳의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노동인권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초 강원도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후배들이 찾아와 노동인권 수업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의미도 좋고 돈도 벌 수 있으니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나 노동과 노동자의 의미를 얘기하는 것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미래에 노동자가 될 학생들이지만 노동자 하면 ‘멍청이’가 떠오른다는 학생들 앞에서 생각을 나누는 건 쉽지 않습니다.

  노동인권수업 중에 [출처: 이꽃맘]

“모든 노동은 가치 있고, 서로의 삶을 연결하고 있고, 누구나 노동자이며 우리도 노동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이며 모든 노동자는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날도 수업 내용을 되새기며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강원도 끝에 있는 특성화고등학교였고, 우연히 원예과에 들어갔습니다. 3명의 학생이 앉아 있었는데 학생 한 명은 엎드려서 자고 있었습니다.

농부가 되겠다는 고등학생을 만나다!

두 명과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 10분을 보내니 3명의 학생이 모두 잠에 들었습니다. ‘내 수업이 재미없어 그런가?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하지?’ 모든 학생이 불러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 “그럼 재미있는 영상을 쭉 틀어 줄 테니 귀에 꽂히는 내용이 있으면 일어나자”하고 왜 노동자인가, 산업재해는 무엇인가 등 준비해간 영상을 틀었습니다. 30분쯤 지났을까 한 학생이 부스스 일어났습니다. 이때를 놓칠 수 없다며 학생에게 다가갔습니다.

“잘 잤니? 얘기 좀 나눌까?” 고개를 끄덕합니다. “너는 뭘 하고 싶니”라고 묻자 “종자 연구원이나 농부가 되려고요” 합니다. 아니 농부가 되겠다는 고등학생이라니! 너무 반가워서 “나도 농부야. 강사는 ‘부캐(부캐릭터)’고 농부가 ‘본캐(본캐릭터)’지” 하며 얘기를 이어갑니다.

“왜 농부가 되고 싶니? 농부가 되고 싶다는 학생은 처음이야!”

“처음에 원예과 왔을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농사를 짓고 계시거든요. 도와드리다 보니 적성에 맞더라고요.”

“농부가 미래 유망 직종인 거 알지? 탁월한 선택이야.”

“지난주에는 할머니 집에서 고추를 심고 왔고요. 이번 주에는 고구마를 심었어요.”

“나도 집에 가서 고추 심어야 하는데. 나는 기계도 안 쓰고 비닐도 최대한 안 쓰려고 하거든. 그러다 보니 너무 힘들다.”

“비닐을 왜 안 써요? 비닐 안 치는 농부는 본 적이 없는데.”

“비닐은 만드는 과정도 그렇고, 다 쓰고 처리할 때도 그렇고 자연에 좋을 게 없잖아.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지키며 사는 농부가 되려고."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수업 종이 칩니다.

“너도 꼭 좋은 농부가 되길 바랄게. 내년에 또 보자” 하고 나옵니다. 일 년에 한 번, 그것도 담당 선생님이 신청을 해야 만날 수 있는 아쉬운 만남입니다.

원칙을 지키는 농부되기

  기계를 쓰지 않고 밭 만들기 [출처: 이꽃맘]

집에 돌아와 다시 밭에 앉습니다. 오늘도 ‘기계는 최소한으로 쓰겠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두 손에 레이크를 들고 한 삽 한 삽 흙을 퍼 올리며 밭두둑을 만듭니다. 땡볕에 서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흙질을 하다 “이거 기계로 하면 얼마나 걸려?” 유하 아빠에게 묻습니다. “두세 시간이면 끝나겠지. 기계로 할까?” 밭 한 켠에 놓인 유일한 농기계 관리기를 쳐다봅니다. “그래도 원칙을 지켜야지” 하고 다시 레이크를 잡습니다.

유하네는 농부가 되기로 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이 원칙이 유하네가 농부가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첫째, 최대한 자연스러운 농사짓기. 유하네가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농사란 제초제나 비닐, 화학비료 등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억지스러운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관행농에 비하면 30%의 생산량 밖에 안 나오지만 이것에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돈을 위한 농사를 짓지 않겠다는 겁니다. 단, 열대식물이라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고추의 경우에는 비닐을 칩니다. 몇 년간 비닐을 치지 않고 고추를 심었더니 아예 자라지 않더라고요. 대신 자연스럽게 썩어 버리는 전분 비닐을 사용합니다. 가격이 일반 농사비닐의 3배지만 원칙을 지키기 위한 노력입니다.

두 번째는 유하·세하와 최대한 함께 하기. 유하가 태어나고 유하 엄마와 아빠는 유하와 하루종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한 결정이 농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써서라도 유하·세하의 시간에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집 주변 밭에서 하루종일 일하니 유하·세하가 부르면 언제나 달려갈 수 있습니다. 유하·세하가 언제든 엄마, 아빠와 놀 수 있습니다. 오늘도 밭에서 일하며 유하·세하가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아빠~” 부르는 소리를 기다립니다.

자기만의 원칙 세우기, 지키기

“다 자기만의 원칙이 있지 않을까?” 제초제를 치지 않아 풀이 가득 올라온 밭에 고구마순을 꽂으며 유하 엄마가 말을 건넵니다. 유하 파파는 “그렇지. 꼭 우리처럼 해야 옳은 건 아니지. 어떻게 하든 자기가 세운 원칙을 지켜가며 사는 게 중요하지. 화학비료를 쓰기로 했으면 최대한 적게 쓰는 거. 비닐을 쳐야한다면 잘 정리해 재활용이 가능하게 하는 것. 이런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꼭 지키는 게 중요하겠지” 합니다.

오늘도 유하네는 원칙을 지키며 살기 위해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섭니다. 몇 차례 비로 감자밭에 풀이 가득합니다. 뭐가 감자고 뭐가 풀인지 모를 정도로 말입니다. 비가 와 포슬포슬해진 오늘 같은 날이 풀 뽑기에 제격인 날입니다. 한바탕 풀을 뽑고 나면 뽑힌 풀은 두엄 장에 모여 다음 식물을 위한 양분이 되고, 감자는 더욱 쑥쑥 자라겠죠. 풍성한 여름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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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문경락

    자연농법이 어렵고 힘들지만 대신 우리에게 건강을 준다는 사실을 알지만 인기가 없는건 힘들인 만큼의 결과가 없다는 사실등의 여러 이유로 말미암아 그마둔 사람들이 많습니다.........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