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만능 논리를 경계하라

[요즘 경제]

5차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여당은 전 국민 지급을 요청하고 있지만 정부 측, 특히 기획재정부는 70% 지급을 고수하고 있다. 몇 주 뒤 이 논란이 어떻게 귀결될지 지켜볼 일이지만, 여기서 몇 가지 짚어볼 대목이 있다. 대선이 다가오는 만큼, 세금과 재정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금과 재정의 잘못된 고리

일단 이번 재난지원금의 시작은 30조 원 규모의 추가 세수에 있다. 지난해 부동산 주식 등 자산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걷혔는데, 이것을 재난지원금 재원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에게 걷은 것을 다시 되돌려준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즉, 정부가 적자국채를 발행해 빚내서 지원하는 것이 아님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국가재정이 세금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국가도 가정경제처럼 수입에 맞게 지출해야 한다는 균형적(?) 시각이 투영된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세금을 현물과 노동력으로 납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그럴 수 있다.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을 지출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 이상이 필요하다면 빌려야 할 것이다. 금이 화폐로 통용되던 시기까지는 그런 생각이 지배적일 수 있다. 어쨌든 금이라는 것도 땅에서 노동력을 동원해 캐내야 하는 현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대화 된 국가에서는 세금을 법정화폐로 지불한다. 현물이나 노동력으로 납부하겠다고 하면 절대 받지 않는다. 그런데 종이 또는 디지털 숫자로 존재하는 법정화폐는 국가의 보증을 통해 화폐로서 역할을 한다. 그래서 현물의 무엇과 반드시 일대일 대응이 되지 않는다. 다만 화폐 남발에 따른 인플레이션 같은 혼란을 막기 위해 화폐의 총량에 대한 적절한 제약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제약을 중앙은행이라는 국기 기구가 맡도록 제도화했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화폐량을 조절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것도 그 방편 중 하나이다.

우리는 여기서 재정이 어떻게 출발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확대될 수 있는지에 관한 중요한 포인트를 발견하게 된다. 세금을 받아야만 재정을 지출할 수 있다면, 애초 돈을 만들지 않았던 초기 상태에선 절대 재정을 거둬들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금도 돈이 있어야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먼저 만드는 게 첫 순서이다. 그리고 그 돈은 공적인 일을 수행하기 위한 자금으로 사용된다. 국가기관이 일하려면 노동력과 물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그 대가로 국가가 보증하는 화폐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화폐 발행의 독점권을 가져야 한다. 다른 화폐가 존재하면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화폐로 사용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권력의 핵심축인 화폐 발행의 독점권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것은 화폐공동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여러 가지 통화가 동시에 거래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매우 불편한 세상에 사는 것과 같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어떤 지역에선 통용되지 않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매우 난처할 것이다. 마치 외국에서 원화를 가지고 물건을 산다고 했을 때 벌어지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래서 널리 통용될 수 있는 강한 화폐를 얻기 위해 모든 사람이 경쟁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그게 달러이다. 세계 각국이 일정한 외환보유고를 쌓으려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정을 제약하는 것은 세금이 아니라 실물자원이다

이처럼 화폐 발행의 독점적 지위를 갖는 국가권력을 생각해보면, 과연 국가가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이라는 족쇄에 얽매일 필요가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우리는 세금이 국가 재정에 보탬이 돼 사회에 환원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연결고리는 매우 느슨하다. 세금으로 충당할 수 없다고 해서 국가가 재정지출을 포기하진 않는다. 국채를 발행하든, 돈을 더 찍든, 돈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국가는 언제든 재정을 확보해 사업을 집행한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십여 년간 전 세계 주요국들이 쏟아 부은 돈을 생각해보라.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에서 전 세계 국가들이 위기 대응을 위해 뿌린 돈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것을 모두 세금을 거둬들여서 지출했던가? 아니다.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기업을 살리기 위해, 생계비를 지원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국가가 아낌없이 돈을 찍어서 뿌렸다. 지금 바이든 정부가 벌이고 있는 4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도 마찬가지다. 법인세를 올려서 충당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거둬들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경기부양책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일단 돈을 만들어 쓰고, 나중에 경기가 좋아져 세금이 충분히 걷힐 상황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실제 그렇게 경기 부양이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국가재정의 제약은 세금이 아닌 실물자원이다. 돈을 찍어도 일할 사람이 없거나 물자를 확보할 수 없으면 그 돈은 휴지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위 돈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국가행정이 붕괴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 또는 경제공동체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전부 활용하고 있는 경우 등이다. 완전고용처럼 유휴자원이 없는 상태인데, 이때는 추가로 발생하는 돈이 불필요하기 때문에 소위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현재 세계가 완전고용 상태의 균형적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소득 감소와 실업 문제가 해소되지 못한 채, 양극화된 경제가 굳어지는 불균형의 상황이다. 확장적 재정정책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데는 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금과 재정의 고리에 대한 관념은 매우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것처럼 재정지출의 원천이 분명 어딘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없다는 것이 의문이다. 하지만 대상과 순서가 바뀌었다. 우리가 점심을 먹기 위해서는 돈을 먼저 구해야 하지만, 국가는 돈을 만드는 주체이니 미리 구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누군가가 충분한 점심을 만들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자원, 노동, 기술력이 부족해 점심(경제활동)을 제대로 만들 수 없으면 돈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에게도 공짜 점심은 없는 셈이다. 하지만 그것의 제약은 돈이 아닌 바로 실물 자원이다.

한국처럼 천연자원을 무역에 의존하는 나라들은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조달하는데 많은 제약이 따른다. 한국은행이 돈을 아무리 찍어도 석유 한 방울 사기 힘들기 때문이다. 97년 경제위기를 외환위기(달러부족)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국가 재정의 과다지출을 외환위기로 오해하면 안 된다. 가령 국가부채 비율이 200%가 넘는 일본이 갑자기 엔화가 폭락해 경제가 망할 것처럼 이야기는 것이 대표적인 오해다. 일본은 엄청난 규모의 순채권국이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국가부채의 절반 이상을 중앙은행인 일본 은행이 가지고 있다. 나머지 대부분도 국내 연기금 등이 가지고 있어 채권자들에게 상환 압박을 당할 리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의 원인을 국가재정의 파탄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97년 외환위기는 당시 한국 정부가 재정을 과다지출해서 발생한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알 것이다.

세금 만능 논리를 경계하라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국가 경제에 문제 생긴 것이 방만한 재정 때문이라는 잘못된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복지지출을 과도하게 늘리면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느니, 심지어 베네수엘라처럼 나라 경제가 망한다느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횡행하는 것이다.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항상 복지논쟁에 뒤따르는 것이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이냐, 과연 국민들에게 세금 부담을 설득할 수 있느냐 등의 비판이다.

그런데 이런 세금과 재정에 대한 인식은 이념적으로 진보든 보수든 가릴 것 없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최근 회자되는 기본소득에서도 이런 인식은 발견되는데, 재원 마련의 대부분을 탄소세, 법인세, 부유세, 등의 세금으로 상정한다. 불평등의 시대, 대중들은 뭔가 로빈후드와 같은 정의로운 해결사에 대한 갈망이 있다. 부자들의 곳간을 털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선행을 국가가 대신 해주길 바란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이것을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로 포장한다. 그런데 국가는 로빈후드가 아니다. 로빈후드처럼 두건을 쓰고 몰래 들어가 곳간을 털 필요가 없다. 곳간 속 돈은 국가가 만들어 낸 것이니, 정말 필요하다면 국가가 직접 만들면 되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에서 선출된 권력은 공익을 위한 명분과 규칙에 따라 돈을 만든다. 바로 민중들이 그 명분의 규칙을 만드는 주체이다.

이처럼 재정이 세금으로 충당돼야만 한다는 생각에 함몰되면, 우리는 세금 논쟁이 불러들이는 갈등의 회오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부자증세, 복지증세, 중부담-중복지 등은 이미 5년 전, 10년 전 대선 때 마다 불거졌던 화두들이다. 아마 이번 대선에서도 이런 논쟁은 또 다른 버전으로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상위 5%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부과하는 종부세 논란도 어찌할 바 몰라 이리 혼란스러운데, 대대적인 세제개혁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세금과 재정의 잘못된 인식의 고리를 끊어낼 수만 있어도 우리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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