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시체 없는 살인과 피 묻은 바나나

[지금, 여성 사회주의자] 카롤리나 가르손과 최전선의 엄마들

  카롤리나의 생전 모습 [출처: PstColombia]

카롤리나 가르손(Carolina Garzon)은 그림과 책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방 한쪽에는 자메이카의 저항적 레게 가수 밥 말리의 포스터를 붙였다. 사회가 못마땅했지만, 예술처럼 다른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그는 10대 때부터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에 빠져들었다. 보고타 디스트리탈대 예술학과에 입학한 후로는 대학신문(El Macarenazo) 기자로 사진을 찍고 사회주의노동당(PST) 학생 대표로도 활동했다. ‘가로지르는 극단(Diafragma Teatro)’에서도 활동할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카롤리나는 2011년 일어난 대규모 학생 시위에서 전투적인 활동가로 알려지며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정부는 영리 대학을 설립해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만 등록금 부채를 면제하고, 취업해야 학점 이수를 인정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정부의 대학개혁안은 2006년 콜롬비아가 미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CTPA)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여기에 반발한 학생들은 대규모 시위에 나섰고, 그해 11월에는 칠레 학생들과 공동 시위를 벌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결국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힌 정부는 해당 정책을 철회했다.

카롤리나는 콜롬비아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학생과 빈민, 원주민, 노동자와 함께 아래로부터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었다. 이를 위해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12년 4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시작해 에콰도르를 거쳐 브라질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에콰도르는 벌써 네 번째 방문이었기에 길이 훤했다. 하지만 4월 28일, 카롤리나가 갑자기 실종됐다.

카롤리나의 부모는 에콰도르로 향했다. 그들은 딸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 체류하며 길거리를 헤맸다. 버스정류장과 철도역, 전봇대와 벽에 카롤리나의 사진 수만 장을 붙였다.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법무부 등 89개의 법정 기관과 7명의 검사실의 문도 두드렸다. 하지만 어디서도 딸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정부는 오히려 딸이 홀로 여행을 가게 놔뒀다며 가족을 비난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난 2017년 9월 13일, 카롤리나의 부친 왈떼르 가르손(Walter Garzon)이 사망했다. 그는 딸이 실종된 후 깊은 우울증에 빠졌고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했다. 카롤리나의 모친 알리스 아르딜라(Alix Ardila)는 여전히 에콰도르 키토에서 딸의 행방을 찾고 있다.

‘강제실종’

콜롬비아에서 실종된 자녀를 찾는 사람은 아르딜라만이 아니다. 콜롬비아에선 좌파나 사회운동가들이 암살을 당하거나 실종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유엔 강제실종위원회(CED)는 지난 4월 콜롬비아 정부에 대한 두 번째 조사 결과, 1958년부터 2020년까지 모두 8만582명이 강제실종 됐다고 밝혔다.1) 이들 중 청소년의 수는 1만 명에 이른다. 이는 ‘더러운 전쟁’2) 중에 발생한 아르헨티나 강제실종자 수를 능가하며, 남미에서 가장 큰 규모일 정도로 심각하다.

강제실종이란 국가나 정치조직, 기타 당국의 묵인 아래 수행된 비밀 납치 또는 투옥을 말한다. 대개 납치된 뒤 불법으로 구금돼 심문 중 고문을 당하고, 살해당한 뒤 시체가 은밀히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유엔은 2006년 12월 20일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 협약을 채택했지만,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역이 적지 않다. 콜롬비아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콜롬비아에서 강제실종은 군대와 준군사조직, 경찰이 모두 연루돼 있다. 그중에서도 준군사조직이 강제실종에 대한 책임이 가장 크다. 콜롬비아 준군사조직은 내전3) 기간 좌파 혁명가들을 공격하기 위해 미국의 콜롬비아 대분란전(COIN) 전략에 따라 군에 의해 설치됐다. 현재는 대토지 소유주, 마약밀매자, 정치인과 다국적 기업이 소유하며, 주로 활동가나 좌파를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콜롬비아 인권단체는 암살의 70~80%의 책임이 준군사조직에 있다고 말한다.

이중 다국적 산업과 콜롬비아 농기업 등의 재계는 소농과 원주민에게서 토지와 자원을 강탈하고 통제하기 위해 준군사조직을 운영한다. 대표적인 기업인 바나나생산업체 아우구라(Augura)는 준군사조직을 직접 후원하며, 기업 임원 상당수가 준군사조직 후원자이거나 직접 참여하고 있다.4) 이렇게 생산된 바나나는 세계 전 지역으로 수출된다. 국내에도 2012년 6월 콜롬비아와 FTA를 체결한 뒤, 수만 톤의 바나나가 수입되고 있다.5)

마약 밀매자들은 준군사조직을 통해 코카인 생산지를 장악하고 카르텔을 유지한다. ‘더러운’ 일은 이들 손에서 해결되지만 수익의 절대다수는 미국 등 서구 금융기관으로 흘러 들어간다. 지난 2012년 <가디언>은 알레한드로 하비리아(Alejandro Gaviria) 보고타 안데스대 교수 등이 수행한 연구를 인용해 미국 금융기관이 자금 세탁을 통해 콜롬비아 코카인 생산 시가총액의 97.4%를 벌어들인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이에 “마약 생산과 밀매로 콜롬비아와 멕시코 같은 나라는 폐허가 됐지만, 이 수익은 주로 미국과 유럽의 부유한 마약 소비국에서 압도적으로 취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6)

이러한 콜롬비아 강제실종에는 미국 등 서방 그리고 한국 정부까지 개입돼 있다. 콜롬비아는 중남미에 있는 미국의 전략지로 현지에서 가장 많은 군사 원조를 받고 있다. 지난해 콜롬비아에 대한 미국의 전체 원조액은 4억4800만 달러(약 5천1백억 원)였으며, 이는 9년 만에 최대 규모였다. 그중 약 절반은 강제실종에 책임이 있는 군대, 준군사조직, 경찰에 돌아간다.7) 한국도 2012년 콜롬비아와 FTA를 체결한 뒤 양자 군사·치안 협력을 강화했다. 2015년 4월에는 한-콜롬비아 치안 협력 MOU까지 맺었다.

‘카사스 데 피께’

콜롬비아에선 정부가 2016년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평화협정을 맺은 뒤에도 매일 4명꼴로 강제실종 되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에 따르면, 2019년에만 93명이 실종됐다.8)

지난 4월 말 시작한 콜롬비아 반정부 시위에서도 강제실종이 되풀이됐다. 콜롬비아 언론 <엘에스펙타도르> 6월 13일 보도9)에 따르면, 현지 인권단체는 시위 기간 약 700명이 강제실종 됐다고 밝혔다. 반면 정부는 강제실종자가 84명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 또한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또한 콜롬비아 인권단체 ‘템블로레스(Temblores)’에 따르면, 6월 16일까지 물리적 부상 1,486명, 눈 공격 70명, 총상 215명, 체포 1,832명, 평화 시위에 대한 난동 734건 등 모두 4천여 건의 공권력에 의한 불법 행위가 보고됐다.10)

시위대 사상자 숫자 뒤의 현실은 참혹하기 그지없다.11) 지난 5월 23일 콜롬비아 인권단체 ‘후스티시아 이 파스(Justicia y Paz)’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칼리 시청은 비밀 작전의 중심지로 사용됐고, 붙잡힌 시위대는 이송되기 전까지 이 건물 지하에 감금됐다. 칼리 외곽 두 개 지역에서는 대량무덤이 발견됐고, 시신은 실종된 시위대의 것이며, 경찰이 트럭에 쌓아 옮겨 유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칼리 상류층 지역 시우다드 하르딘에선 또 다른 ‘카사스 데 피께(casas de pique, 원한의 집)’가 발견됐다. 이는 준군사 조직이 이용하는 비밀기지로 희생자를 수감, 고문, 살해하고 종종 시신을 토막 내기 위해 사용되는 곳이다. 또 5월 24일 콜롬비아 언론 <엘 에스펙타도르(El Espectador)>에 따르면, 시위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암살 표적이 돼 현상금까지 걸렸다. 이 때문에 의료노동자들은 의료진이라는 식별 표시를 떼고 일했다.

최전선의 엄마들

콜롬비아에선 최근 이 같은 폭력으로부터 시위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전선의 엄마들(Mamás de la Primera Línea)’12)이라는 집단이 생겨났다.

  최전선의 엄마들 [출처: MAMAS.PL2021]

애초 이번 시위는 지난 4월 정부의 세제 개편안을 계기로 일어났다. 시위가 처음 벌어진 곳은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 소수민족이 주로 사는 칼리 지역이었지만 곧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발전했다. 결국 전국의 사회운동, 노동조합이 가세해 전국파업위원회를 결성하고 7주간(6월 18일 기준) 총파업을 벌이며 정권을 압박한 끝에 세금개편안을 철회시켰다. 이에 5명의 내각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지만 시위대는 정책의 변화만이 아닌 체제의 변화를 원했다. 콜롬비아에선 2018년부터 두 차례의 총파업과 대규모 봉기가 이어졌을 만큼 사회적 반발이 고조해왔다.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뿌리 깊은 빈곤과 불평등, 배제와 차별 때문이다. 단적으로 2012년 콜롬비아의 실업률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11.9%였고, 2017년에도 9.4%를 기록했다.

최전선의 엄마들은 생계를 위해 버둥거리던 평범한 여성들이다. 이들은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온종일 집안일을 하고, 불안정한 직장을 오가며, 자녀를 홀로 키우고, 굶주림을 피하고자 곡예를 탔다. 코로나19로 더욱 어려운 콜롬비아지만 유독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여성들이기도 하다.

콜롬비아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350만 명이 빈곤선 아래로 떨어졌다. 실업률은 5% 치솟아 16.8%로 증가했다. 그중 여성의 실업률은 20.7%로 남성보다 약 10%가 높다. 더구나 지난해 콜롬비아에선 630명이 페미사이드에 희생됐다. 이는 전년에 비해 10%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9월에만 85명의 여성이 페미사이드로 숨졌다.

현재 시위에서도 여성은 이중의 폭력을 당하고 있다. 콜롬비아 인권단체 ‘데펜소리아 델 부에블로(Defensoría del Pueblo)’에 따르면, 전국적인 시위 중 경찰에 의한 강간 2건, 성폭력 14건, 이외의 젠더 폭력 71건이 신고됐다.13) 지난 5월 12일에는 경찰에 끌려간 뒤 4명에게 강간을 당한 17세 소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으로 콜롬비아에선 지난 5월 14일 다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피해자가 구금돼 있던 경찰서는 불길에 휩싸였다.

경찰의 공격이나 성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최전선의 엄마들은 시위를 오가다 함께 뭉치기로 했다. 정부가 거리 시위대를 ‘폭동꾼’이라고 몰아붙이던 때였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폭동꾼이 아닌 자매이자 이웃이며, 평화롭게 시위하고 저항하는 청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머니라고 자임하고 나섰다. 그리고 방패를 만들 만한 것들을 사 검은색으로 칠하고 ‘첫 번째 줄의 엄마들(Mamás 1 Línea)’이라는 문구를 썼다. 여성들은 코로나와 최루가스 그리고 신원 보호를 위해 두건을 썼고, 보호용 헬멧 또는 학생과 페미니스트 단체가 선물한 여러 가지 고글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삽시간에 SNS를 타고 퍼져나갔다.

최전선의 엄마들은 시위대가 필요한 돌이나 페트병을 조달하고, 기부를 받은 물이나 샌드위치를 ​나눠주며, 충돌이 빚어졌을 때도 개입한다. 그동안 가정에서 무급으로 일해 왔던 노동이 시위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올해 36세로 12세와 4세 자녀를 둔 호한나(가명) 씨는 “우리는 콜롬비아의 모든 어머니, 아이들을 빼앗겨 싸우러 나간 세계의 모든 어머니의 고통과 연결돼 있다. 우리는 전쟁을 위해 자녀를 낳지 않았다. 국가가 그들을 살해하도록 세상에 아들과 딸을 데려오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위험을 알고 있다. 하지만 더욱 두려운 것은 우리 아이를 안는 것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라를 바꾸는 데 목숨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포기할 것”이라고 말했다.14)

전국파업위원회는 지난 6월 15일 정부와의 협상을 이유로 파업을 일시 중단했다. 그러나 17일 칼리, 메데인 등에서는 파업위가 자신들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또 다른 시위가 벌어졌다. 수많은 사람이 강제실종 되는 인권유린의 땅에서, 과연 정부와의 협상은 가능한 일일까. 한편, 정부 측 협상위원 중에는 후안 레스트레포(Juan Restrepo) 아우구라 회장도 포함됐다.


<각주>

1)
https://www.telesurenglish.net/news/United-Nations-Examines-EnforcedꠓDisappearances-in-Colombia--20210419-0014.html

2)
‘더러운 전쟁’이란 아르헨티나 호르헤 비델라 대통령 집권 시절인 1976년에서 1983년까지 국가에 의한 테러, 조직적인 고문, 강제실종, 정보 조작이 자행된 시기를 말한다.

3)
콜롬비아는 미국, 농기업과 유착한 우파 정부의 학정에 소작농과 빈민, 좌파 혁명가들의 저항 운동이 가장 치열한 곳 중 하나였다. 특히 1964년에는 공산주의 혁명조직과 토착 농민들이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을 결성해 우파 정부에 저항해왔다. 50년 이상의 내전 과정에서 22만 명이 숨질 만큼 콜롬비아의 현대사는 피로 얼룩졌다. 강제실종의 다수도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2016년 11월 쿠바의 중재 아래 FARC 간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평화협정 후에도 236명의 옛 반군의 피살(2020년 11월 기준)이 계속됐고 약속도 지켜지지 않으면서 결국 FARC는 2019년 11월 다시 무장투쟁을 선언했다.

4)
https://jacobinmag.com/2021/06/colombia-protests-duque-suppressionꠓpolice-paramilitary-human-rights-abuses-us-colombia-relations

5)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0461

6)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2/jun/02/western-banks-colombianꠓcocaine-trade?mobile-redirect=false

7)
https://www.newframe.com/colombia-on-strike-this-government-has-toꠓfall/

8)
https://www.aa.com.tr/en/americas/ngo-points-to-2-historical-crimes-inꠓcolombian-conflict/1960195

9)
https://www.elespectador.com/judicial/desapariciones-en-el-paro-nacionalꠓentre-silencio-y-eufemismos/

10)
https://www.aa.com.tr/es/mundo/denuncias-de-violencia-policialꠓen-colombia-durante-las-protestas-del-paro-nacional-ser%C3%ADanꠓm%C3%A1s-de-4200-seg%C3%BAn-ong/2276632

11)
https://jacobinmag.com/2021/06/colombia-protests-duque-suppressionꠓpolice-paramilitary-human-rights-abuses-us-colombia-relations

12)
https://amerika21.de/analyse/251196/kolumbien-die-mamas-der-erstenꠓreihe

13)
https://www.hrw.org/news/2021/06/09/colombia-egregious-police-abusesꠓagainst-protesters

14)
https://amerika21.de/analyse/251196/kolumbien-die-mamas-der-erstenꠓrei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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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난다는 시구절이 생각납니다....하루바삐 자유와 평화의 그날이 오기를 기원드립니다.........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