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내곡동 사저 낙찰, 그리고 쓰다 만 기사들

[1단기사로 보는 세상] 필요한 기사는 대충 취재하고, 쓸데없는 것만 집중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올 1월 대법원에서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 원, 추징금 35억 원을 확정 받았지만, 벌금과 추징금을 내지 않았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재산을 압류하고 공매에 부쳤다. 이렇게 박 전 대통령이 감옥 가기 전 마지막에 살았던 서초구 내곡동 집이 지난 11일 공매 입찰 1회 차에 낙찰됐다.

  2021년 8월 13일 매경 29면, 서울 11면, 동아 12면, 조선일보 10면(왼쪽 위에서 시계방향).

경매 낙찰가는 잘해야 감정가의 70%선에 그친다. 하지만 이 집은 감정가 31억 6554만 원보다 무려 7억 원이나 높은 38억 6400만 원에 낙찰됐다. 경매에서 감정가보다 22%나 높은 이런 바보 같은 금액을 써내는 사람은 없다. 경매에서 1차에 낙찰자가 정해지기도 드물다. 보통 경매에선 3차에 가서야 겨우 낙찰자가 나오거나 아예 유찰돼 재입찰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언론은 8월 13일 일제히 이 소식을 전하면서 “주변 시세보다 훨씬 높게 낙찰됐다. 실수요자가 아닌 이해관계인이 낙찰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이게 다였다. 감정가보다 7억 원이나 높은 금액을 쓴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취재하지 않았다.

언론은 엉뚱하게도 보수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 소장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MBC 기자가 입찰에 참여해 두 번째로 높은 금액을 써낸 사실을 보도했다. 단순히 흥미 유발 외엔 특별한 내용도 아닌데 가세연의 입찰은 챙겨 쓰면서도 정작 낙찰 받은 사람은 신경도 안 썼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은 과거 권력자들의 경매 재산을 낙찰 받은 이들이 누구인 취재했다. 2006년 4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소유한 서울 서초동 땅은 두 번의 유찰 끝에 3차 경매에서 감정가(1억 8162만 원)의 64%인 1억 1939만 원에 낙찰됐다. 감정가의 64%로 낙찰됐다면 정상인데도 아래 조선일보 기사는 낙찰 받은 사람이 정 모 라는 여성이라고 밝혔다. 몇 년 전에는 전 전 대통령이 사는 연희동집 별채도 경매에 넘어갔는데, 낙찰 받은 이가 이순자 씨의 동생인 이창석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뿐만 아니라 2010년까지 미납한 추징금이 1672억 원이었던 전 전 대통령이 납부기한을 앞두고 300만 원을 꼼수 납부한 사실도 취재해 보도했다. 추징금 1672억 원 가운데 고작 300만 원을 자진 납부한 걸 명분으로 강제집행(경매)을 늦추려는 속셈이었다. 이런 꼼수로 전 전 대통령은 추징시효를 다시 연장했다. 하긴 전 재산이 29만1000원이라고 했으니, 자진 납부한 300만 원도 큰돈이라고 우길 만했다.

  조선일보 2006년 4월 29일 22면(왼쪽)과 서울신문 2010년 10월 16일 27면.

상식을 가진 언론이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 집을 감정가보다 7억 원이나 더 주고 낙찰 받은 이 정신 나간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 나서야 한다. 52년생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에 내곡동 집으로 이사했지만 얼마 살지 못한 채 감옥에 갔다. 반면에 만 69살 박 전 대통령이 40년을 살았던 신당동 집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신당동 집은 고 육영수 여사가 마련해 박정희 일가가 58년 5월부터 살았다. 당시 장충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박 전 대통령도 당연히 함께 살았다. 육 여사는 56년 서울 중구 신당동 401-7에 첫 자가 소유 집을 샀지만, 낮에도 전등을 켜야 할 정도로 어두웠고, 비가 오면 이웃집 하수구 물이 몰렸다.

남편 박정희 준장이 58년 3월 소장으로 진급하자 육 여사는 58년 5월 어둡고 습기가 차는 신당동 집을 32만 환에 팔고, 같은 신당동 중앙시장 앞 중구 다산로36가길 25(신당동 62-43)에 새집을 사서 58년 5월 16일 이사했다. 5.16 쿠데타 만 3년 전 일이다. 새집은 대지 100평에 건평 30평에 450만 환이었다. 볕도 잘 들고 작지만 예쁜 뜰도 있었다.

이 집이 국가등록문화재 제412호인 ‘신당동 박정희대통령가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집에서 무려 40년을 살았다. 만 69살인 박 전 대통령 인생의 절반이 넘는 세월이다. 박 전 대통령은 고 육영수 여사가 58년 5월에 산 이 집에서 장충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4년 3월 성심여중 입학할 때까지 6년을 살았다. 박 전 대통령은 64년 3월부터 아버지가 죽은 79년 10월까지 15년을 청와대에서 살다가, 신당동 집으로 돌아와 2013년 2월 대통령 취임 때까지 다시 34년을 살았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10일 헌재에서 탄핵당하고 또다시 신당동 집으로 돌아와 두 달 남짓 살다가, 서초구 내곡동에 집을 사서 이사 갔다.

박근혜와 40년을 함께 했던 신당동 박정희 가옥은 한국 현대사의 우여곡절을 안고 있다. 60년 11월 9일 이 집엔 박정희를 중심으로 젊은 장교들이 모였다. 이 ‘신당동 11.9 회합’은 박정희를 지도자로 한 쿠데타를 다짐하는 자리였다. 이날 박정희는 ”청년장교들의 단결만이 이 나라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신념에 차 발언했다. 박정희는 61년 5.16쿠데타를 일으킨 뒤에도 한동안 여기 살면서 외국 대사들을 초대하는 등 국정을 논의하다가 같은 신당동 총리공관으로 옮겼다. 63년 10월 대통령 당선 뒤에도 두 딸 근혜와 근영은 외할머니와 함께 신당동 집에서 1년을 더 살았다. 64년 3월 큰 딸 박근혜가 장충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일가족 모두가 청와대로 모였다.

육 여사가 신당동에서 첫 집을 구한 건 어릴 적 동경과 연결돼 있다. 고향 충북 옥천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육영수는 1938년 3월 배화여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한국에 정주한 일본인을 위해 여러 채의 ‘문화주택’을 지어 고급 주택가를 만들었다. 문화주택은 당시 규모로는 큰 편인 대지 100평에 건물 30평 규모로 지어져 신당동에 몰려 있었다. 일제 강점기 서울에는 부유한 일본인들은 남산 자락 고지대에 자리 잡은 ‘신당동 문화주택촌’에서 발아래 청계천변 저지대에 사는 가난한 조선인을 내려다보며 살았다. 신당동 아래 동대문 인근 국립중앙의료원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일대에는 노동자와 지게꾼, 날품팔이 등 서민들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여기서 동대문구 신설동에 들어선 신발과 섬유공장으로 출근했다. 초가집도 지을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은 움집을 짓고 살았다. 이 지역은 저지대라서 비만 오면 잠겼다. 10대 때부터 일본인들이 사는 윗동네(업타운) 신당동 문화주택을 동경했던 육영수가 자가 소유 첫 집을 신당동에서 찾은 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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