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중위 해체’가 기후정의의 시나리오

시민사회, 탄중위 해체 요구 “시민사회 동원해 밀실 회의 진행, 민주주의와 거리 멀어”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기후위기 최전선의 민중을 배제한 채 깜깜이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탄소중립위원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가 모이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 탄소중립위원회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마련하는 등,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정책과 이행과제 등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시민사회는 탄중위가 정부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위원회의 구성과 현재의 운영 방식으로는 지금 필요한 과감한 감축목표와 감축방법 등을 선택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탄중위가 지난 8월 4일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신원이 공개돼 있지도 않은 11개 부처 추천 전문가로 이루어진 기술작업반에 의해 초안이 작성됐고, 현재까지 나온 시나리오들은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기후정의포럼, 멸종저항서울,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는 25일 오후 ‘탄소중립위원회와 탄소중립시민회의 무엇이 문제인가’ 줌 토론회를 열고 탄소중립위원회와 탄소중립시민회의의 문제점과 이후 대안 등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토론은 100여 명의 참가자가 모여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발표자로 나선 한재각 기후정의포럼 활동가는 탄중위의 소통 부재, 편향적 구성, 전문가 독재 성격을 비판했다. 한재각 활동가는 “‘기후위기 핵심 피해 계층’의 참여는 전반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편중돼 있다”라며 “청(소)년의 참여는 상대적으로 강조되고 있지만, 노동자, 농민, 영세상공인, 빈민들을 대변할 수 있는 참여자는 거의 없다. 노동계에선 한국노총 위원장 1명이 참여하고, 민주노총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승인적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지적했다. 한 활동가의 지적대로 탄중위 민간위원 구성은 기업과 전문가 집단에 편향돼 있다. 김동욱 현대차 부사장, 추형욱 SK E&S 대표이사, 최정우 포스코 회장 등 산업 및 기업 측 인사들은 8명으로 민간위원 77명 중 10% 이상을 차지한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한 활동가는 “탄소중립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그리고 제시하고 있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보면, 위원회는 과학적 기반(탄소예산)과 기후정의 원칙에 따른 과감한 감축목표의 강화, 감축경로의 설정, 감축수단의 선택을 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배출자인 기업의 책임을 묻고 기후위기 최전선 민중/공동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탄중위의 시나리오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는 “탄소중립위가 제시한 3개의 시나리오 중 2개는 탄소중립에 도달하지 못하는 시나리오”라며 “위험하고 현실성 없는 ‘미래 기술’이 ‘혁신성 원칙’ 아래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핵심에 위치해 있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더불어 탄중위의 활동, 회의 자료와 논의 과정, 결과 등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현재까지 탄중위의 회의 자료, 논의 과정, 결과에 관해선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활동가는 “탄중위가 정부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탄소중립위원회는 ‘협의체’나 ‘국민정책참여단’ 등과 같은 절차 마련을 강조하면서 시민들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지만 ‘협의체’의 구성과 운영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현재로서는 협의체는 누가 참여하는 것이며, 무엇에 대해서 논의를 하며, 그 결과는 무엇인지 확인할 방안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출처: 멸종반란한국·멸종저항서울]

정부가 일반 국민과의 소통 절차를 강조하며 출범시킨 ‘탄소중립시민회의’ 역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시민회의는 시민들이 직접 ‘숙의 민주주의’를 실천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중립적인 구성부터 표준적 절차를 밟고 있지 않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또한 정부는 시민 공론장을 만드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적 성격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했으나, 이날 토론회에선 “공론화란 일종의 갈등관리기술일 뿐”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채효정 녹색당 정책자문위원은 “중요한 것은 그 토론의 규칙을 “지금 시민대표단이나 시민회의라고 부르는 기획 공론장에서 무엇을 토론의 규칙을 제공하는 것은 누구이고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반문하며 “중요한 것은 누가 정하고 누가 시작하며 누가 끝내는가’이며 토론 속에서 동등한 발언의 힘을 가지는가이다. 이런 기획 공론장에서의 기획된 토론이란 것은 실상 행동과 결합한 ‘투표하는 민주주의’보다 더 못하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민주주의의 기초인 공개성과 투명성의 원칙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는, 밀실에서의 숙의가 숙의민주주의인가?”라며 “대부분의 시민들을 대기관람자로 만들어버리는 이 ‘가짜 숙의민주주의’에서 ‘토론하는 민주주의’라는 명분은 ‘행동하는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수단이 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탄중위의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부터 사퇴해야

[출처: 멸종반란한국·멸종저항서울]

발표자들과 토론자들은 우선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탄중위에서 사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들러리만 서고 거짓 정당성에 동원되는 것이나 뒷북 규탄 성명서만 내는 것 모두 피해야 한다”라며 “시민사회 출신 위원들의 사퇴와 탄중위의 해체, 이를 압박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구 기획실장은 “그동안 정부위원회는 위원회 구성원들과 정부에서 논의하고 있는 내용을 바깥에 공표하지 않겠다는 비밀 유지 서약을 해왔다. 하지만 어떻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바깥의 사람과 소통하고 책임지는 결정을 할 수 있겠나. 탄중위 역시 마찬가지다. 탄중위에서 무엇이 논의되고, 어떤 결정이 일어나는지 깜깜이 속에 있다. 완전히 민주주의와 대척점에 있다. 지금 탄중위의 잘못은 서약서를 쓰고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의 실책이기도 하다. (시민사회 인사들이) 사퇴하는 방법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채효정 녹색당 정책자문위원도 “시민사회 대표 몫으로 주어진 입장권은 그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또 다른 알리바이에 불과하다”라며 “시민사회 대표권을 시민사회가 아니라 정부가 개인들로 지정한다는 건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 대표를 정부가 지정하는 것만큼이나 모욕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급박한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도 하지만, 탄중위 활동이 지속되면 정작 중요한 골든타임을 놓친다. 탄중위 시나리오를 보면, 이들이 시급하게 기후위기 대응할 마음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시민사회가 협력할수록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대응할 타이밍도 놓치게 된다”라고 시민사회 활동 경력을 바탕으로 탄중위에 들어간 위원들의 결단을 촉구했다.

한편, 탄중위 해체 후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자는 한재각 활동가의 제안에 많은 토론회 참여자들이 호응했다. 한 활동가는 “9월부터 정부가 예고하고 있는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및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결정 시기까지, 한시적으로 탄소중립위원회의 해체를 위해서 공동으로 투쟁하는 단체와 활동가들의 연대기구를 제안한다”라며 이같은 제안은 멸종저항서울, 기후정의포럼,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과 함께 논의했다고 밝혔다.

구준모 기획실장도 “지금 필요한 것은 결정 기구가 아닌 만민공동회 같은 공론장”이라며 “기후위기 최전선의 주체라고 할 사람들을 탈탄소 주체로 이끌어내고 민중이 주체가 되는 기후위기 대응 시나리오를 짜는 작업이 시작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오는 9월 24일 글로벌기후파업을 전후로 공동행동에 나서 탄중위 해체, 탄소중립 시나리오 거부, 기후정의 공론장 마련까지 이어지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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