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 할머니들과 아사히비정규직 노동자들

[소성리를 쓰다⑨] 소성리 할머니들의 ‘연대의 마음’

5.18 광주항쟁 41주년을 맞은 지난 5월 18일 새벽, 경북 성주군 소성리에 1,500명의 경찰 병력이 들어왔다. 이들은 사드 기지 장비 반입 위해 주민을 고립시키고 반발하는 이들을 강제해산시켰다.

2016년 소성리에 사드 배치가 결정된 이후, 지난 5년간 주민들은 끊임없는 경찰 폭력에 시달렸다. 촛불정부를 자임하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친 2020년에도 폭력과 침탈은 이어졌다. 소성리 주민들의 투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주민들을 상대로 소환장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소성리 마을 주민인 시야 기록노동자는 지난해 5월부터 소성리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록해오고 있다. <참세상>은 총 11회에 걸쳐 시야 기록노동자의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소성리에도 농사철이 찾아왔다. 6월과 7월에는 마늘과 양파, 감자를 수확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경찰 병력이 들어오는 바람에 마을길을 지키느라 일할 시간을 빼앗긴다. 틈틈이 밭에 나가 수확하고, 빈 땅에는 깨모종을 옮겨 심느라 이 집 저 집 품앗이가 한창이었다. 팔순 넘은 할머니들의 일손이 웬만한 장정보다 더 필요한 철이다.

  소성리 할머니들 [출처: 사드철회상황실]

소성리 할머니들은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다

도금연 할머니가 몸살이 났나보다. 온몸이 아프다며 생전 빼먹은 적 없는 소성리 야간시위에 불참했다. 소성리부녀회장님은 금연 할머니에게 나올 생각 말고 무조건 푹 쉬시라고 했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안 나올 분이 아닌데, 정말로 나오지 않아서 부녀회장님도 덜컥 걱정이 되더란다. 부녀회장님도 며칠 전 백신을 맞고 팔이 아픈데도 쉬지도 못한 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경임 할머니 혼자 진밭에 보초를 서면 심심해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진밭을 지킬 테니, 그냥 모두 집에서 몸조리 하며 푹 쉬시라고 간곡히 말씀드렸다. 하지만 부녀회장님 생각은 달랐다. 약속한 지킴이 활동을 하겠다는 경임 할머니의 의지를 우리가 꺾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녹록치 않는 상황에서 연로한 할머니들이 편찮으실까 봐 전전긍긍 애만 태웠던 밤이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경임 할머니 댁으로 차를 몰았다. 할머니는 벌써 집을 나설 채비를 끝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돌 할머니 댁에 찾아가니 약봉지를 든 할머니가 나를 반겼다. 금연 할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닫고는 ‘나라도 가서 자리를 지켜줘야지’하며 집을 나서던 차였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아 말려보지만, 경임 할머니와 약속을 했다면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는 집을 나선다. 경임 할머니와 상돌 할머니를 모시고 마을회관 앞으로 올라갔다. 도로 갓길에 부녀회장님과 도금연 할머니, 그리고 백광순 할머니가 걸터앉아 있다. 텃밭에서 김을 매다 나왔는지 백광순 할머니의 얼굴이 땀범벅이었다. 부녀회장님과 금연 할머니는 진밭에 보초를 서러 갈 준비를 했다.

  도경임 할머니 [출처: 사드철회상황실]

금연 할머니는 하루 푹 자고 일어나니 아픈 데가 멀쩡하다고 했다. 아침 일찍 마을회관으로 나와 앞마당 비질도 했다고 말했다. 아마 상돌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말을 듣고, 진밭 지킬 사람이 몇 되지 않는 게 걱정돼서 나오셨을 거다. 그렇게 마음대로 아플 수도, 쉴 수도 없는 부녀회장님과 금연 할머니, 상돌 할머니, 그리고 경임 할머니와 진밭을 지키러 올라갔다. 진밭 초소에 오르니 박석민 님과 김상패 감독, 단아 님이 올라와 있다. 대구에서 원불교 손법선교도가 하루 진밭 지킴이를 자처하며 들어왔다. 할머니들과 평화지킴이들은 북적대며 진밭을 지켰다.

진밭에서 보초를 서는 것은 사드기지로 올라가는 미군통행차량과 군사차량들이 소성리 마을길을 함부로 통과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활동이다. 실제로 보초를 서고 있으면 미군차량이 함부로 올라오지 못한다.

아사히비정규직노동자들을 만난 소성리 할머니들

코로나19 감염병 유행이 확산되면서 소성리 수요집회가 멈췄고, 토요일 밤마다 즐겼던 촛불문화제도 중단됐다. 마을회관을 이용할 수 없게 됐고, 연대자의 발길도 끊어졌다. 나도 자연스럽게 소성리로 올라가는 횟수가 줄었다. 그리고 내 딸이 아팠다. 예전만큼 연대투쟁도 활발히 다닐 수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할머니들은 또 한 살 나이를 잡수셨다. 한 해 한 해 기력이 달라지는 게 눈에 보인다. 어느 날 문득 할머니들을 모시고 밖에 다니는 것이 불안해졌다. 코로나19 감염병도 걱정이었지만, 할머니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예전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어디 가자는 말을 꺼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사히 수요 투쟁문화제도, 부산 신라대 청소노동자 투쟁문화제도, 할머니들에게 함께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소성리 할머니들 [출처: 이재각 사진가]

사드철회성주대책위 이종희 위원장님이 아사히비정규직 투쟁 6주년 결의대회에서 연대발언을 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부녀회장님은 자기도 같이 가봐야겠다며, 할머니들에게는 무리하지 말고 갈 수 있는 분만 가자고 했다. 경임 할머니가 “가야지”라고 했고, 금연 할머니도 “당연히 가야지” 하셨다. 그리고 그날 밤 마을 주민들은 난롯불에 모였고, 그 자리에서 구판장 이옥남 사장님과 짱돌, 소야훈 님, 그리고 원불교 교무님들이 연대 방문에 나서기로 했다.

아사히글라스 공장이 있는 구미공단에 도착했다. 거기서 소성리 평화지킴이들은 사드 반대 라인을 만들었다. 결의대회가 시작되고 두 번째 순서로 이종희 위원장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뒤늦게 차로 달려가 카메라를 챙겨 나오니, 이미 위원장 발언이 시작됐다. 나는 제일 뒷자리에서 단상 위에 선 위원장의 모습을 담았다. 발언을 마치고 내려온 위원장에게 떨리지 않았느냐 물었더니, “5천명도 안되는데 뭐가 떨리느냐”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종희 위원장은 박근혜 퇴진운동 당시 몇 만 명이 모인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연설도 했었지. 잠시 잊고 있었다.

사드 반대투쟁이 시작된 후, 성주 촛불이 분열되고, 소위 ‘운동권’ 일부가 소성리에 등을 돌리는 등의 부침을 겪었다. 이종희 위원장은 그때 기꺼이 소성리로 들어와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는 대구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정년퇴직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사드반대 투쟁을 위해 소성리로 찾아온 수많은 노동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그는 사드 반대 투쟁을 하며, 자신이 상식이라 믿었던 것이 무너지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됐다.

이번에는 할머니들에게 카메라 초점을 맞췄다. 금연 할머니는 “노동자들이 불쌍하다. 매일 길거리에서 싸워야 하니까. 그렇지만 여기는 우리처럼 경찰들이 없어서 다행이다”라고 하신다. 그리고는 금연 할머니는 꾸벅꾸벅 졸았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쳐다봤다.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아사히글라스 공장 굴뚝 위로 영롱한 하늘이 펼쳐져 있다.

  도금연 할머디 [출처: 사드철회상황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애정이 가득 담긴 집회를 열었다. 나는 그곳에서 긴장하고 흥분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소성리 부녀회장님과 할머니들은 그 모습을 부러워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도, 젊은 사람이 많은 것도 부럽다.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소성리 마을길을 미군에게 내어주지 않기 위해 단 몇 분이라도 버텨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무엇보다 부러운 건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일 테다.

문득 궁금해졌다. 소성리 할머니들에게 연대란 어떤 의미였을까. ‘연대’라는 말을 꼭 쓰지 않아도, 어렵고 힘든 곳에 찾아가 눈물짓는 마음이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 할머니는 한 마디로 “불쌍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마 더 많은 어휘를 써서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기 어려웠을 거다. 그 한마디가 할머니의 마음을 전부 표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성리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 더 언어화해보고 싶다. 무엇이 할머니들을 측은지심으로 눈물짓게 하는 걸까.
덧붙이는 말

[기록노동자 시야] 소성리사드-미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성주주민이다. 노동자 편드는 글을 쓰고 싶어서 인터뷰하고 기록한다. 함께 쓴 책으로 <들꽃, 공단에 피다>와 <나, 조선소 노동자>,<회사가 사라졌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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