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는 ‘최악’의 후보와 ‘차악’의 후보만 존재한다

[미디어택] 우리는 ‘제3의 선택지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



“또? 진짜 뽑을 사람이 없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주변인의 표정은 하나같다. ‘또’라는 부사는 안타깝게도 apple이 아닌 사과(謝過)를 의미한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하루가 멀다고 각종 막말과 가족들의 비위행위가 쏟아진다. 그러면 후보들은 고개를 숙인다. 벌써 몇 번째 사과인지 세다가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런 유력 대선후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만 괜스레 민망해지는 요즘이다. 이처럼 선거는 어느새 좋은 후보를 뽑는 게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고 아예 눈을 감을 수 없으니, 오늘도 화를 누르며 뉴스를 본다. 대선 보도도 한국 사회만큼 다이내믹하다. 어제는 분명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허위 경력 기재 논란으로 뜨거웠다. 그런데 오늘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아들의 상습도박이 대선 보도를 뒤덮었다. 그에 따라 두 후보의 지지율이 출렁인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그 둘이 여전히 유력 대선후보라는 점이다. 이것이 이번 대선을 지켜보며 가장 참담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대선 보도, 여당과 제1야당만 존재하는 현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더 나은 미래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정치혐오가 자란다. 이런 대선 보도를 볼 때마다 불만이 쌓여왔다. 오늘날의 정치 지형을 만들고 더욱 공고히 하는데 ‘언론’이 이바지했고, 여전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선 관련한 보도 그리고 시사 프로그램, 라디오를 켜보라. 단언하건대, 그곳엔 여당과 제1야당의 노출만 즐비할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사회적으로 공적 책무를 부여받은 지상파 KBS와 MBC·SBS 메인뉴스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 허위 경력 논란에 다시 불이 붙고, 이재명 후보의 아들 상습도박 논란이 이어진 12월 14일부터 3일간의 대선 보도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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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여당과 제1야당이 아닌 정당과 후보가 거론된 리포트는 KBS 1건(11건 중), MBC 2건(14건 중), SBS 7건(14건 중)에 불과했다. 39건의 리포트 중 단 한 번도 제3의 후보가 중심이 되지 못했다.

KBS 〈뉴스9〉의 모니터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MBC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MBC 〈뉴스데스크〉는 대선과 관련해 ‘대선, 알고 보니’ 코너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의 부동산 세금 정책을 비교해봤다”와 같이 검증 대상은 유력 후보에 그쳤다. SBS는 그나마 소수정당 등 제3의 후보 노출 빈도가 나은 편에 속했다. 그러나 16일 자체 여론조사 결과 리포트를 제외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듯, 제3의 후보는 대선 보도에서도 주변인으로 머문다.

그렇다면, 대선 보도는 유력 후보들이 정책과 미래비전을 두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도록 하고 있나. 그렇지 못하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제3의 후보들 안 보일수록
한국은 실질적인 ‘양당제’를 벗어날 수 없다


현재 대선은 유력 후보들 간에 최악의 꼬리표를 붙이는 과열 경쟁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듯, 자신은 ‘겨만 묻었을 뿐’이라며 말이다. 언론은 그런데도 그들의 싸움을 그저 중계‘만’한다. 결국, 언론 역시 유력 후보들의 진흙탕 싸움의 공범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도 못하다. 언론은 제3의 후보를 보여줄 수 있고 그런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있다. 늘 그래 왔듯.

언론의 이런 행보는 보도와 시사 프로그램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SBS 〈집사부일체〉에 당시 민주당 이재명, 이낙연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출연한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언론의 이 같은 행보는 결국 한국 사회 내 ‘양당 구도’를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결국, 정치의 후퇴다.


같은 기간, 소수정당 등 제3의 후보들은 놀기만 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들은 최근 유력 후보들에 쏟아진 가족 비위 사건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SNS를 통해 “조작된 표창장이 입시의 공정을 무너뜨린 것처럼, 조작된 지원서는 채용의 공정을 무너뜨린 것”이라며 “(이는) 다름 아닌 검찰총장 시절의 윤석열 후보가 수사를 통해 만들어놓은 사회적 기준”이라고 날을 세웠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또한 (동의 여부와 별개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며 양 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무소속 김동연 후보는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무소속 김동연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 후보들도 검증하다 보면 가족 비위 등이 튀어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유력 후보가 아닌 후보들도 유권자를 만날 기회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하고 싶다. 그렇게 계속해서 제3의 선택지도 있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제3의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 중에 눈여겨볼 만한 게 있다면 공론의 장에 올려 한국 사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선거를 앞두고 언론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그래야 이번 선거는 망했다고 생각되더라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력 후보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지만,
정도는 필요하다


혹자는 ‘지지율에 따라 언론에 노출되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6조(형평성) 제3항은 “방송은 후보자나 정당의 수가 많고 방송 시간의 제약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 특정 후보자나 정당을 중심으로 보도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5인 이상의 국회의원이 소속된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직전 전국단위 선거에서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여론조사 결과 평균 지지율이 5% 이상인 후보자(대통령선거 기준)를 중심으로 노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시에 단서를 두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 밖의 후보자나 정당을 포함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말이다.

또한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은 제7조에서 ‘소수자에 대한 기회 부여’를 담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정성 및 형평성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소수자나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출연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 임의규정이긴 하지만 별도로 규정한 취지는 분명하다.

SBS 〈집사부일체〉에 민주당 이재명·이낙연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출연하는 것을 두고 기자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그런 말을 했었다. 세 후보 간 정책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데, 그들만 노출하는 게 시청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자본주의 사회 틀에서 정책의 차이란 어차피 미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세히 보면 조금은 다르긴 하다. 투표할 때 1순위를 ‘소수자’로 둔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지 않을까.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에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거나 아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거나의 차이. 아니면, 여성가족부 폐지 및 성폭력 무고죄 신설을 내세우거나 남초 커뮤니티를 순회하거나 정도의 차이? 오늘은 또 유력 후보들의 어떤 사과가 이어질까. 벌써 슬픈 유권자의 푸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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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혹자는 ‘지지율에 따라 언론에 노출되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6조(형평성) 제3항은 “방송은 후보자나 정당의 수가 많고 방송 시간의 제약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 특정 후보자나 정당을 중심으로 보도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5인 이상의 국회의원이 소속된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직전 전국단위 선거에서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여론조사 결과 평균 지지율이 5% 이상인 후보자(대통령선거 기준)를 중심으로 노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시에 단서를 두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 밖의 후보자나 정당을 포함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