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이 쏘아 올린 100조
킹메이커라 불리는 그의 입에서 100조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여권 대선후보가 이를 바로 받아치면서 이슈가 급부상했다. 여기에 최근 100만 원 손실보상금 지원에 대한 논란이 기름을 부었다. 자영업자들은 차라리 100만 원 안 받을 테니 영업시간을 늘려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누가 봐도 100만 원으로 이 힘든 겨울을 버티기엔 역부족이다. 코로나 2년 동안 K방역의 실체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진 것임이 이제 명확해졌다. 그리고 그 희생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필요함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 그래서 100조라는 말을 이전처럼 허황한 숫자로 치부할 순 없게 됐다.
그런데 이야기가 계속 맴돌고 있다. 우리가 집권하면 하겠다는 발언을 보면, 무슨 흥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이 사태를 보고 있는 듯하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이 사태에 실질적인 주도성을 보여야 할 입장에 서 있음에도 이것을 정치공세의 도구로만 활용하고 있다. 여야 합의가 먼저니, 당정 합의가 먼저니 하면서 서로가 상대방의 진정성을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돼 있는데, 그럴수록 자신들의 진정성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잘못된 재정 준칙이 모든 걸 가로막고 있다
일단 100조라는 말이 쏘아 올려졌다. 이제 우리는 그것의 구체적인 실현방안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사실 답은 누구나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기존 예산을 깎는 것, 국채 발행, 혹은 이 두 가지 방법을 어떤 비율로 섞든, 이미 선택지는 정해져 있다. 다만 어느 누구도 이걸 과단성 있게 밀고 나가지 못할 뿐이다. 왜? 스스로 만든 국가재정에 대한 잘못된 관념과 정치적 후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까지 안 했던 것을 하자니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재정에 대한 낡은 족쇄를 먼저 부숴야 한다. 바로 국가부채 60%라는 숫자이다.
지난 가을 기획재정부는 2025년부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60% 이내, 통합 재정수지 적자 비율(GDP 대비 적자재정)을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문제는 이렇게 도출된 숫자에 뚜렷한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라는 지표 자체가 설득력 없는 숫자조합에 불과한데, GDP는 매년 생성되는 유량(flow)개념이고, 국가부채는 매년 누적돼 쌓이는 저량(stock)개념이다. 비교 대상의 성격이 다르다. 가령 국가부채에 대응되는 국가자산 총량은 2020년 현재 1경6000조 원이다. 하지만 이 비교 또한 의미 없다. 국가자산을 팔아 현금화해 국가부채를 갚아야 할 극단적 상황이라면 차라리 혁명을 해서 구체제의 국가채무를 말소하는 게 훨씬 낫다.
그럼 왜 60%인가? 이 기준은 90년대 초 유럽연합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당시 유럽 주요국의 국가부채 비율의 평균값을 고려한 결과이다. 30년 전 통합 유럽 건립 당시 유럽 12개 회원국 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셈이다. 그리고 현재 유럽 연합은 2021년 3월부터 재정 준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면책 조항을 발동하고 있다. 또한 이미 10년 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은 2011년 ‘부채 지속가능성 분석’ 보고서에서 국가부채 60% 기준은 국가부채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때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가 GDP 대비 90%가 국가부채의 임계점이라고 주장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는데, 곧바로 이것이 계산 오류임이 밝혀지면서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통계적 지표로도, 역사적 근거로도, 정치적 의도로도, 뭘 봐도 참조할 게 없는 이 의미 없는 숫자를 고집하고 있다. 이건 마치 1차 대전 이후 서유럽 국가들이 힘을 잃은 금본위제에 얽매여 세계 대공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던 과거 선례와 흡사하다. 당시 금본위제를 끝까지 고수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쇠퇴국면을 벗어나질 못했고, 금본위제를 탈피한 독일과 일본이 불황의 터널을 일찍 마치고 경제를 부흥시켰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이런 기재부의 목표가 현실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재정적자 비율은 일정 조건 하에서 장기적으로 명목성장률에 국가부채 비율을 곱한 크기와 근사적으로 같은데, 이는 수학적으로 설명된다. -나원준, 〈코로나19 이후 정부의 재정준칙〉, 2021) 현재 정부가 밝힌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선 명목성장률이 5%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5% 성장률 달성은 불가능에 가깝다. 3% 성장률이 그나마 현실 가능한 수치인데, 이를 위해선 재정적자 비율을 1.8% 이내로 낮춰야 한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 사태 때 재정적자 비율이 3.7%였다. 당시 다른 나라에 비해 돈을 너무 적게 쓴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이를 고려할 때, 기재부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선, 현재 요구되고 있는 모든 손실보상금을 비롯한 각종 재난 지원 지출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와중에 기재부는 2021년 10월 초 약 13억 달러의 외국환 평형 채권(외평채)을 역대 최저 금리로 발행했다고 홍보했다. (우리나라는 2005년에 국부펀드라 할 수 있는 한국투자공사가 출범했는데, 2021년 현재 약 2,000억 달러(240조 원)까지 자산규모를 늘린 상태다. 이 돈의 대부분은 정부가 외평채를 발행해 마련한 외화기금이다.
즉 국가부채로 만들어진 자금이다. 2001년부터 2021년까지 정부 부채 중에서 외국환평형기금 마련을 위해 발생한 부채가 270조 원 정도이다) 하지만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4조7000억 달러로서 세계 9위다. 국가부채 비율 상승이 우려된다며 재정 준칙을 밀어붙이던 기재부가, 외환보유고가 넉넉함에도 외평채를 발행해 국가부채 비율을 스스로 끌어올린 역설적 상황을 자화자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정부가 외평채를 싼 금리로 발행하면 한국의 기업과 은행들도 외화자금을 싼 금리에 빌릴 수 있다고 둘러댄다. 한마디로 시민의 복지나 고용 요구에 재정 건전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변하면서도, 결국 대자본의 이해관계가 우선순위에서 가장 앞서고 있음을 실토한 것이다. 과연 기재부가 만들고 싶은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궁금하다.
다시 100조 원 마련 문제로 돌아와 따져보자. 우리를 옥죄고 있는 이런 잘못된 재정 준칙만 걷어내고 나면, 더욱 넓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정부는 추경 불가를 고수하고 있지만, 애초 근거 없는 숫자에 얽매여 재정정책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한다.
예산 절감? 갑을 전쟁만 부를 뿐이다
그러나 이 숫자가 주는 재정 공포증의 위력은 여전하다. 국가부채 억제, 국채 발행 최소화라는 전제가 항상 상황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쉽게 예산 10% 절감 등을 꺼낸다. TV에 등장하는 정치 패널 대부분이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 10%에 얽힌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은 갑을 전쟁으로 번질 수밖에 없음이 명확하다. 만약 K반도체 예산을 깎는다고 하면, 미래 먹거리 산업에 대한 포기 논란으로 연일 언론이 들끓을 것이다. 결국 이슈에서 멀어지고, 사회적 목소리가 약한 곳부터 손대기 시작할 것이다. 국가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사회복지사업부터 재정 효율화 명분으로 삭감 또는 폐지될 것이다. 여기에 진영논리까지 겹치면 더욱 상황은 복잡해진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세운 ‘서울시 바로 세우기’를 보라. “서울시의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현금인출기)으로 전락했다.”
이 혐오를 부추기는 말 한마디로 서울시 예산을 둘러싼 을들 간의 전쟁, 진영 간의 전쟁을 개시했다. 현재 서울시는 사회 분야 민간위탁 보조금 예산을 47%나 삭감하는 예산안을 제시했는데, 사업 축소 및 중단으로 노동자 1000여 명이 실직할 상황에 놓여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정치인은 이 문제를 예상할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둘러대기 좋은 말이고,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쉬우므로 예산 절감을 거론한다. 결국 이들은 나중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회적 타협이 필요한데, 논의가 더 필요하다.” “서로서로 양보하여 차선책을 찾아야 한다.” 국가부채 억제라는 큰 기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 논의는 이처럼 겉만 요란하면서 지리멸렬하게, 그리고 목소리가 약한 사람들부터 희생되도록 흘러갈 것이다. 위기는 동시에 찾아왔으나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매우 차등적이다.
한국은행 국채직매입, 돈을 찍어야 산다
2020년 다른 나라들이 했던 것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자. 말레이시아가 GDP 대비 17%를 재정에 쏟아부었다. 그런데 우리는 5% 미만에 불과했다. 이 뿐만 아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GDP 대비 자산 비중을 3배로 늘렸다. 이를 단순하게 산술적으로 환산해 한국은행 자산규모에 대입해 보면, 500조 원을 1,500조 원으로 늘린 것과 같다. 자그마치 1,000조 원이 넘는 돈을 한국은행이 쏟아부었다고 상상해보자. 아마도 이 돈이면 대선공약으로 거론되는 모든 예산의 수십 배는 될 것이다. 그 외 필리핀, 브라질, 폴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개발도상국 여러 나라가 중앙은행 발권력을 동원해 국채 매입으로 재정을 보조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위 어느 나라도 국가 부도 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신흥국의 방만한 재정통화정책이 외환위기로 연결된다는 논리를 기본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공식은 지금의 정세와 맞지 않다. 방만하다는 것은 불필요한 돈을 찍어서 시장을 교란하고 경제를 망가뜨릴 때 쓰는 표현이다. 2020년 코로나 사태처럼 경제가 붕괴할 상황에 이르면 돈을 찍어서라도 뭔가 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사태가 한참이던 2020년 말 한국은행 대차대조표 변동사항에서 화폐 발행이 20조 원 정도 증가했는데, 대부분 국내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때문이었다. 한국판 양적 완화라는 말로 요란했지만, 그 수혜 대상은 증권회사를 비롯한 금융기업들뿐이었다. 그런데도 K방역의 성공에 심취해 재정을 과하게 쓰기 않아도 된다고 자찬했다. 이게 독이었다. 지금까지 2년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공공의료 확충에 재정투자를 소홀히 한 결과, 병상 확보가 충분히 되지 못해 ‘위드코로나’를 접어야 하는 상황에 몰리지 않았는가? 만약 공공의료 확충에 과감한 재정투자가 선행됐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위·중증 환자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의료 인력과 병상확보에 쓸 돈을 아까워하다 수백 배가 넘는 경제적 손실을 마주하게 됐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일본과의 소재부품 무역 분쟁에서 전 국가적 자원을 동원했던 의지는 왜 여기선 보이지 않는가? 부총리는 사퇴해야 하고, 대통령은 상황을 잘못 판단했음을 시인해야 한다.
100조 원 손실보상금 마련, 이제 구체적인 대답을 내놔야 한다. 한국은행이 국채를 직접 매입해 재원을 마련하자. 한국은행 대차대조표에서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돈으로 누구에게 얼마큼 공정하게 보상할지가 진짜 문제다. 우리 모두가 이 복잡한 이해갈등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지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분열로 점철될지, 통합의 발판을 만들지 중요한 선택에 놓여 있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라는 영화 속 대사가 그냥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