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산업재해다. 재해 자본에 저항하자

[녹색스트라이크]


산업재해로서 기후위기

우리는 산업재해로서 기후위기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를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이 업무에 관계되는 건설물·설비·원재료·가스·증기·분진 등에 의하거나 작업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하여 사망 또는 부상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산업재해를 판단하는 주요한 잣대는 ‘인과성’이다. 해당 재해가 업무상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면 국가와 기업은 그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면 화석연료 기반 산업이 수십 년간 온실가스를 배출해 지구온난화가 가속했고 기후위기와 재난이 발생했다면, 우리는 기후위기를 산업재해로 불러야 마땅한 것 아닐까? 온실가스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 물질이 아니지만 대기 중 일정 농도를 초과하는 온실가스는 치명적인 위해를 가져온다. 기업과 노동자의 일대일 관계라는 법률 해석에 갇힌 산업재해의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탄소 배출량을 에너지, 산업, 수송, 건물, 폐기물, 농축산 부문으로 쪼개는 방식은 오로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만을 산업에 할당한다. 하지만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원자재와 상품의 수송, 공장과 기업의 건물, 산업폐기물, 농축산에 개입한 산업 시스템 등 산업계와 연루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대로 따지면 인위적인 배출량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여러 단계로 이뤄진 위탁 생산 시스템은 산업재해와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분절시키고 지운다.

책임을 재구성하려면 조각조각 쪼개진 과정과 맥락을 이어 붙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복원된 연결고리에서 우리는 화석연료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며 키워온 산업과 생산시스템이 기후위기를 초래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재해 개념은 노동자의 신체에 일어난 손상에 그쳐서는 안 되며, 생태계와 사회 기반을 파괴하는 기후위기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 책임을 명시하기 위해 “기후위기는 산업재해다!”를 함께 외칠 것을 제안한다.

위험을 증폭시키는 화석연료 기반 산업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산업은 생태계와 공존할 수 있는 한계선 내에서 사회구성원의 공공복리에 필요한 재화를 적절하게 생산한다는 합리적인 목표와는 전혀 관계없는 경로로 발전해왔다. 자본은 몸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고, 자연적 토대를 파괴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 수 있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 대량생산 시대를 연 이후 1920년대 미국 자동차 사고 사망자 수는 20만 명이 넘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20만 명이다. 미국의 도시역사가 피터 노튼은 자동차 대량생산 시대가 열리면서 ‘새로운 종류의 대량 사망’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그전에는 교통사고랄 것이 자전거와 행인이 부딪히는 정도였지만 자동차가 거리에 나오고부터는 생명을 잃을 위험이 도처에 깔리게 된 것이다. 이후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해 교통법규가 생겼고, 자유롭게 거리를 가로지르던 행위에는 ‘무단횡단’이라는 범죄 꼬리표가 달렸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떨까? 놀라지 마시라. 지난 20년간 자동차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통계청에 집계된 수만 총 10만8,960명이다. 지난 20년만 따져도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차에 치여 죽었다. 차가 아닌 비행기, 선박, 기차, 지하철 등 다른 교통수단에서 일어난 사고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숫자로만 표기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한 명, 한 명이 세계와 맺은 관계들을 상상해보라. 이는 엄청난 재난이고 참사다. 몸의 죽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겠는가? 불행하지만 자동차 산업이 불러일으킨 참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2020년 자동차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3,081명이다)

산업계는 그 어떤 자연물보다 단단한 철근을 만들고, 엄청난 속도의 이동체를 만들기 위해 기술을 개발해왔다. 또한 썩지 않는 물질(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석유화학 공업을 발전시켰고, 기술이 고도화된 최근에는 유해화학물질을 이용한 반도체 기술과 우주 산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생산 방식은 어떤가? 철광석을 채굴하고, 철광석을 용광로에 녹여 철을 대량 생산한다. 쇠로 만든 중장비를 이용해 땅을 더 깊이 파고, 지반 암석을 쪼갠다. H빔을 만들고 타워크레인을 세워 고층 건물을 올린다. 화석연료를 폭발시킴으로써 매우 빠른 속도로 수백 킬로그램의 고철 이동체를 이동시킨다.

고층 아파트, 쭉 뻗은 고속도로 위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는 고급 승용차…. 오늘날 산업을 포장하는 이미지는 번드르르하다. 그러나 이면에는 사람 머리 위로 떨어지면 두개골이 깨질 정도로 무거운 물건, 치이면 즉사하는 차량의 속도, 무너지면 곧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건물의 높이, 끼이면 잘리고 으깨지는 강고하고 밀착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정체불명의 유해화학물질이 있다. 위험 요인이 산적한 환경에서 매끄러운 상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대화에 기여했다고 여기는 화석연료의 문명은 위험이 중첩된 생산 시스템에 근거하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이 이동하는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가 끼어 죽은 고 김용균, HDC현대산업개발 아파트 건설 현장 붕괴 사고로 잔해에 묻힌 노동자들, 양주 석산에서 시멘트에 사용할 모래를 만들기 위해 천공작업을 하다가 토사에 깔려 죽은 삼표산업 노동자들, 여수국가산업단지 화학공장 폭발 사고로 숨진 노동자들, 전선 교체 작업을 하다 감전 사망한 한국전력 협력업체 노동자, 버섯 영양제가 실린 600kg 무게의 탱크를 하차하다 굴러떨어진 탱크에 머리를 심하게 다쳐 사망한 캄보디아 노동자, 철강 코일 사이에 끼어 숨진 동국제강 노동자까지. 최근 알려진 산재 사망자가 종사했던 산업은 모두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성장한 산업이며 동시에 재해율이 높은 산업이다.

민중은 국가의 승인 아래 산업계가 보여주는 도시와 생애의 비전을 받아들여 왔다. 여러 광고매체와 무비판적인 교육이 이러한 비전을 체득하도록 했다. 자본은 자신의 비전에 도달하기 위해 위험을 키웠으나, 그 위험을 노동자의 신체에, 시민에게 그리고 자연 세계로 외부화했다. 동시에 자신의 비전이 여러 사람에게도 이로울 것이라는 환상을 계속해서 심었다. 그리고 우리는 위험하고 이상한 세계의 주민으로 모든 위험의 총체인 기후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어떻게 위험한 산업은 계속 유지되는가?

“당신이 주문한 아이폰이 택배 상자에 담겨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당신은 택배 상자를 뜯다가 경악하며 상자를 내던진다. 상자 안에 아이폰과 함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중국 노동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었다.” 이 끔찍한 장면은 내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지금의 경제체제가 무엇을 은폐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져 왔듯이, 노동자의 죽음은 마치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은폐되고 있다.

국가는 신자유주의를 맞이하면서 자본가에게 폭력을 행사할 자유, 그리고 그 폭력을 은폐할 자유를 허락하고 심지어 그렇게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을 비롯한 규제 완화 정책은 각 국가와 지역이 가진 고유한 맥락을 소거하고 아스팔트 아래로 묻어버렸다. 이는 지역 공동체가 자연 세계와 맺어온 관계의 방식을 지우는 폭력이었다. 노동 영역에서는 한 개인의 고유하고 특별한 신체가 세계로부터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사용하던 특정한 방식을 잘라냈다. 일하는 몸이 느끼는 감각, 정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뤄지고, 몸의 차이는 규격화를 강요당하며 짓뭉개졌다.

산업재해는 ‘일하는 사람의 몸과 정서’라는 고유한 맥락을 배제함으로써 발생한다. 몸을 고려하지 않는 작업 환경, 신체 리듬을 고려하지 않는 노동 시간, 감정노동 등은 재해로 이어진다. 자연 세계가 가진 고유한 물리 법칙을 고려하지 않는 생산활동은 곧바로 파괴적인 참사로 전개되며 그 피해는 현장에 있는 노동자가 떠안는다. 고유 영역에 대한 이와 같은 탈맥락화는 위험을 초래한다.

탈맥락화는 생산, 유통, 소비에 이르는 경제체제 전반에서 이뤄지고, 자본은 시민이 분열적으로 사고하게끔 여러 장치를 동원한다. 대표적으로 광고가 있다. TV나 유튜브 광고는 즐겁고 행복한 일로 가득하다. 모든 사람에겐 더 좋은 집에서 더 편리한 가전제품을 사용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미래가 있다. 광고는 고도의 소비생활이 주는 쾌락을 모두가 평등하게 욕망하도록 공략한다. 사람들을 만성적인 욕구불만 상태로 만든다. 광고는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맥락을 벗겨낸 진공 상태에서 표백 처리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국가는 ‘고유한 자연 세계 질서와 지역 공동체, 인간/비인간 동물의 몸’이라는 맥락을 지우는 자본의 횡포를 제도적으로 인정해줌으로써 폭력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는 그 자체로 폭력이 돼 주변화한 생태계와 인간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가져온 폭력의 최전선 중 한 곳인 멕시코 티후아나에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티후아나는 미국 샌디아고의 접경지역이자 마약 카르텔의 본거지다. 이 도시에서는 폭력과 밀매, 공공연한 살인과 같은 비극이 매일 재현된다. 청년들은 미래가 보장된 유일한 일터인 마피아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청년들이 실종되고 갑자기 사라진 자식을 찾기 위해 땅을 파고, 시쳇더미를 뒤지는 엄마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라.1) 하지만 1세계 주류 경제 담론에서 이와 같은 불법 경제는 다루지 않으며 티후아나 사람은 유령으로 취급된다. 티후아나 출신의 트랜스 페미니스트 활동가 사야크 발렌시아는 강요된 세계화가 초래한 디스토피아를 드러내는 담론으로써 ‘고어 자본주의’를 이야기한다.

“마르크스는 부에 대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방대한 상품 더미로 나타난다’고 말한 반면, 고어(gore)2) 자본주의에서 이 과정은 전복된다. 몸이 파괴되는 것 자체가 생산물이자 상품으로 바뀌고, 부의 집적은 사망자의 숫자를 기입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죽음이야말로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3) 《고어 자본주의》에서 발렌시아는 제3세계 퀴어, 소수자의 관점에서 은폐되고 배제된 현실을 재맥락화함으로써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 내지는 전복의 가능성을 시도한다.

재해 자본에 저항하기

내가 살고 있는 음성군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계 지역, 중부고속도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충북의 첫 번째 도시다. 음성군으로 이주하면서 나는 경제체제에서 주변화된 소수자로서 사유할 수 있었다. 음성노동인권센터에서 노동자를 상담하면서 그들이 자본에 고용되어 일하면서 겪는 손상과 그에 대한 저항을 만날 수 있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나 역시 건설 현장을 다니면서 나의 감정과 느낌, 신체의 위협과 그에 대한 공포를 처리하는 과정을 겪었다. 절단기로 15mm 쇠파이프를 자르며 잘못하다간 손가락이 잘릴 수 있다는 공포를 견뎌야 했고 그 공포는 피부와 뼈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한 중년 여성 노동자가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돼지와 소의 피를 보는 생산 공정을 기피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반대로 채소와 과일을 취급하는 생산 공정을 선호한다고. 직감적으로 그 이유를 알았지만 나는 그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는 나에게 동물의 피를 봤을 때 느꼈던 꺼림칙한 느낌을 설명해주었다. 채소와 과일을 다루는 공정은 일에 비해 사람이 많아 문제였지만, 사람들이 육가공 라인의 업무 지원을 거부해서 항상 사람이 부족하다고 했다. 누가 봐도 일거리가 없는 채소, 과일 라인을 지키고 있는 것도 스트레스라고 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직했다.

위험은 연결돼 있다. 노동자가 겪는 심리적 위험과 기후위기도 서로 연결돼 있다. 하지만 위험의 심각성에 비해, 위험을 설명하는 언어는 부족하고 그 언어를 담을 담론은 빈약하다. 노동자가 자신이 겪는 위험과 공포를 이야기할 때 비로소 기후위기를 산업재해로까지 연장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노동자가 겪는 위험의 맥락이 기후위기를 촉발한 맥락과 구조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나에게 혹은 다른 이에게 어떤 손상을 가져다주었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온실가스가 아닌 우리 사이에 이미 당도해 있는 태풍과 홍수, 가뭄과 산불을 목격하게 될지 모르겠다. 어제 죽은 노동자의 마지막 순간을, 트럭에 치이기 전 고라니의 공포를, 거리에 나와 있는 유가족들의 존재를 말이다. 재해는 고통스럽지만 연결돼 있다. 이 무거운 진실에서 저항을 시작하자. 당신의 공포와 나의 고통을 이어 나가자.

<각주>

1) ABC뉴스 팀이 제작한 〈Inside Mexico’s Most Powerful Drug Cartel〉은 유튜브에서 시청이 가능하다.
2) 고어 영화는 공포 영화의 한 종류로, 내장을 보여 주거나 생생한 폭력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특수 효과와 가짜 피의 과도한 사용을 통해 육체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몸의 훼손을 극화하는 것이다.(아래 책 25쪽 각주) 발렌시아는 영화 장르 중 하나인 고어물을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설명한다.
3) 사야크 발렌시아, 《고어 자본주의》, 워크룸 프레스, 202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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