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이 세 개라도 본질은 하나

[워커스 상담소]

근로기준법상 권리 쪼개기

근로기준법의 온전한 적용을 피하고 사업주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많은 편법·불법이 존재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의 핵심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악용해 사업장 규모를 축소하기 위한 사업장 쪼개기나 4주를 평균하여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노동자에게 주휴수당, 퇴직금,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로의 전환 등이 적용되지 않음을 이용하는 근로 시간 쪼개기가 대표적인 법 회피 행위이다.

위에서 언급된 두 사례는 많이 알려지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 발의(사업장 규모와 관계없는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초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차별 폐지 등)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 새롭게 알게 된 쪼개기 행위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계약을 셋으로 나누어 체결하면서 계약서에 프리랜서임을 명시해 노동자성을 위장하고, 이후에 노동자성이 인정되더라도 계약마다 시급이 다르게 책정된 것을 근거로 체불임금을 축소해 산정하는 방법이다.


사람을 셋으로 나누는 이상한 계약

광주에 있는 구립 청소년수련관에서 수영강사로 근무했던 분의 상담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노동자성 사건이라고 생각했으나, 보내준 계약서 파일이 이상했다. 3년 동안 근무한 A씨가 보내준 계약서는 8개, 계약서가 너무 많았다. 심지어 교부받지 못해 제출하지 못한 계약서가 더 있다고 했다. 청소년수련관은 수영강사의 업무를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생활체육/안전 근무로 나누어 계약을 체결했고, 각각의 시급을 다르게 책정했다. 그리고 생활체육과 안전 근무 계약서에 당사자의 신분이 ‘프리랜서’임을 명시했으며, ‘프리랜서’임을 근거로 소정근로시간을 정하지 않았고, 수련관에 의해 근무 시간이 변경될 수 있음을 명시했다. 권리의 주체인 A씨는 한 명이지만, 수련관에서 근무하는 A씨는 ‘방과후아카데미 강사’, ‘생활체육 강사’, 그리고 ‘안전 근무자’로 세 명이었다.

사람을 쪼개면 이윤이 생긴다

청소년수련관이 A씨와의 계약을 세 개로 쪼갠 이유는 명확하다. 방과후아카데미 강사 계약의 경우 통상시급이 높기 때문에, 동일한 높은 시급으로 생활체육 강사, 수영장 안전 근무 등 다른 업무를 맡기는 것을 회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년수련관은 생활체육 강사의 경우 방과후아카데미 강사료의 60%로, 수영장 안전 근무의 경우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시급 만 원으로 책정된 계약서를 작성하게끔 했다.

  A씨가 청소년수련관과 작성한 계약서 3종. 청소년수련관은 수영강사의 업무를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생활체육/안전 근무로 나누어 계약을 체결했다. [출처: 권리찾기유니온]

이렇게 계약을 세 개로 나누자, 실제로는 주 40시간 가까이 근무했으나 노동자로 인정하는 시간은 주 15시간이 채 되지 못하였고, 형식적으로는 주휴수당·연차휴가미사용수당·퇴직금이 발생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수련관이 정해준 시간표에 따라 근무 시간이 달라지므로,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노동시간을 일방적으로 줄이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형식적으로 프리랜서 신분이기에 근무 시간을 마음대로 줄여나갈 수 있었다.

A씨는 청소년수련관의 일방적인 계약만료 통보에 대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하고, 임금체불에 대해 노동자성을 주장하며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그러자 수련관은 “노동자로 볼 수 없으며, 설사 노동자로 인정되더라도 가장 낮은 시급을 책정한 안전 근무 계약을 기준으로 체불금품을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쪼개기 계약을 체결한 이유를 스스로 밝힌 셈이다.

계약이 세 개라도 본질은 하나

수련관 관장은 지난 노동청 대질조사에 출석해 A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어떠한 지시도 내린 적 없고, 출퇴근을 관리한 적 없으며, A씨는 수업만 진행했고 수업이 끝나면 바로 퇴근하는 등 자유롭게 근무하는 프리랜서라고 했다. 그러나 방과후아카데미 강사 계약에서 ‘근로기준법’을 기준으로 근무조건을 정한 사실, 근태관리를 위해 지문인식으로 출퇴근하도록 지시한 사실, 수영장이 문 닫는 날 출근해 수영장 청소를 지시한 사실, 예비군에 다녀오겠다는 A씨에게 휴강이 불가능함을 통보하고 출근을 강제한 사실, 근무일지를 세세하게 작성시키고, A씨 의사와 무관하게 수강생의 반을 변경하도록 한 사실에 대해서는 대답을 피하거나 담당자(팀장)의 잘못으로 책임을 돌려버렸다.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말로 ‘삼위일체(1)’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는 세 가지 양태나 부분을 뜻하는 것도 아니며, 한 사람이 세 가지 기능이나 직분을 수행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인격은 세 가지라 하더라도, 본질은 하나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한 사람을 세 명으로 나누고, 하나의 계약을 세 개의 계약서로 쪼개, 각각 별개의 계약인 것처럼 위장하더라도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노동관계의 실질에 있어 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했다면, 그 사람은 노동자다. 계약을 열 개, 스무 개로 쪼갠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계약(서)의 개수가 아니라, 한 사람의 노동력이 사업장에 제공되는 과정이다.

최소한의 노동기준을 규제하는 근로기준법을 회피하는 방법들이 계속해 진화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자칫 누군가에게 또 다른 편법을 안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다만 명백한 것은, 편법은 편법일 뿐이고 사업주의 책임을 회피하는 묘수는 없다는 것이다. 타인의 노동력을 통해 이익을 누린 사람은 책임을 지게 돼 있다. 이 사건도 노동자성 인정을 전제로 체불금품의 산정을 앞두고 있다. 두 번째 대질조사에서는 수련관이 자신의 책임으로 잘못을 인정하기를, 그리고 부당해고와 장기간의 임금체불을 겪은 A씨에 대하여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 사과하기를 기대한다.

(1) 하나님의 한 본질에 구별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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