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의 대통령 당선
많은 사람의 기대와 예상에 부응하듯 2022년 노동자당 소속 룰라가 12년 만에 대통령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고전 끝에 돌아왔다. 2022년 10월 2일 1차 투표에서 그는 득표율 48.43%로 1위를 차지했지만, 자유당 소속 보우소나루를 압도적으로 앞섰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2차 투표에서 룰라는 보우소나루와 겨우 1.8%p의 차이로 당선됐다. 1.8%p 차이는 약 2백만 표에 해당한다. 브라질 인구가 2억 명, 선거인 명부에 등록된 유권자가 1억 5천만 명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룰라는 간발의 차이로 3선 대통령이 됐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 노동자당은 68석을, 자유당은 99석을 얻었다. 총 23개 정당이 자리를 차지한 513석의 하원에서 노동자당과 연합할 의석은 30% 남짓이다. 룰라는 12년 만에 대통령으로 돌아왔지만, 2010년 90% 지지율이 과장이 아니었던 영광의 순간을 다시 맛보지는 못했다.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 보우소나루가 1차 투표에서 노동자당의 페르난두 아다드와 15%p, 2차 투표에서 10%p 이상의 득표율을 벌리며 당선됐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선거 결과는 12년 만의 ‘귀환’이나 제2의 분홍빛 물결이라기보다 2022년 브라질 사회의 욕망이 새로운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징후로 읽어야 할 사건이다. 2000년대 분홍빛 물결은 채굴 경제가 이끌어간 발전이라는 비전과 중국 시장의 부상이 마련해 준 경제 호황기를 배경으로 새로운 진보주의 이념과 원주민 운동을 기반으로 삼은 정치적 모델들의 연쇄적 출현을 뜻한다. 반면 2022년 세계 경제는 하락세를 그리고, 대중적 보수주의가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브라질을 이끌어갈 룰라 자신과 룰라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룰라주의(lulismo)’를 현재화할 필요가 있다. 선거전에서 룰라는 과거의 전성기를 소환시키는 전략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2022년의 현재는 그의 과거로 흡수되지 않는다.
반보우소나루 전선
2019년 룰라는 500일이 넘는 수감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후, 2021년 3월 대법원으로부터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고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후 그의 선거전은 과거의 정치적 지지 세력은 물론이고 적대 세력까지 규합해 반보우소나루 전선을 광범위하게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그 출발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제라우두 알키민(Geraldo Alckmin)의 영입이었다. 그는 전통적으로 노동자당과 경쟁 관계에 있는 브라질사회민주당(PSDB) 소속으로 2006년 대선에서 룰라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낙선했으나, 2021년 탈당한 후 브라질사회당(PSB)에 들어간 후 룰라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됐다. 그 후 룰라는 브라질사회민주당뿐 아니라 2016년 룰라의 후계자였던 지우마 호세프의 탄핵을 주도했던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의 주요 인사는 물론이고 사회 운동 세력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룰라는 과거에 절대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경제적 모델을 다시금 제안함으로써 보우소나루가 만들어 놓은 브라질의 현재에 흡수되거나 그것을 투과하지 않고, 자신이 쌓아놓은 전성기의 과거로 되돌아간다. 룰라 집권기인 2003~2010년은 정치인으로서 룰라의 전성기이기도 하지만 브라질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이 시기 브라질은 유례없는 발전에 도달했다. 경제적 의미에서, 사회적 의미에서, 정치적 의미에서 브라질은 룰라 집권기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룰라는 보우소나루라는 경계면에서 반사돼 2003~2010년 룰라주의 전성기로 되돌아가며 브라질의 “재건”을 약속한다. 그의 약속은 과거나 지금이나 양극화된 경제적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의 기능을 강화하는데 집중돼 있으며, 2022년 룰라는 과거를 소환시키는 정책들을 제안했다. 최저임금 인상, 배달 플랫폼 배달 노동자 등 새로운 형태의 고용 관계를 포함하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대, 국내 유통되는 연료 가격 규제를 통한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제시해 준 국영기업이 민영화되는 흐름에 제동을 걸고자 한다. 조세 개혁을 통해 빈곤층의 세 부담을 경감시키고 부유층에 증세한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룰라가 만들어낸 반보우소나루 전선은 정치적 지지 세력의 규합과 과거의 전성기를 상기시키는 정책으로 드러났지만, 미래를 향한 동력을 현재에 대한 반대와 과거로의 회상에서 찾는 것은 룰라가 처한 근본적인 취약점이다. 보우소나루와 고작 이백만의 표 차이로 당선됐다는 사실, 오천만 명이 극우파로 분류되는 현 대통령의 재임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룰라가 일으켜 세운 전성기를 거친 오늘날 브라질 사회의 욕망이 어떤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보길 요구한다.
과거를 투과하는 현재
이번 대선에서 보우소나루를 지지했던 중하위계층과 중간층은, 과거의 룰라가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빈곤층 감축 정책 덕분에 계층 상승에 성공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룰라의 진보주의를 거치며 빈민층을 벗어나 중간층에 편입했지만, 진보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대신 소비주의적 지향을 수용했고, 보우소나루의 보수주의를 거치며 계층 사다리에서 더 이상의 상승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대중적 보수주의로 흘러 들어갔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의 룰라 1·2기 집권기 브라질의 경제 성장과 성공적인 소득 재분배는 중국의 부상에 힘입은 세계 시장의 경제 활성화가 떨구어 준 선물이었다. 이 시기 룰라는 소득 재분배를 위해 상위 계층의 부를 표적으로 삼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경제 성장의 과실을 빈곤 문제 해결에 쏟아부었다. 잘 알려진 보우사 파밀리아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빈곤층의 실질임금을 인상한 결과 내수 시장이 활성화하는 효과를 얻게 됐다. 브라질 역사상 처음으로 생필품 구매가 가능해진 빈곤층은 내수 시장의 새로운 소비자가 됐고, 소비 활성화는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 룰라 집권 시기의 처음과 끝을 비교하면 빈곤층은 28%에서 10%로 감소한 대신 소득 수준 중위층은 같은 기간 6천만 명에서 1억 명으로 증가했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에도 룰라 정부는 자동차 산업과 건설업을 촉진하는 정책을 취했는데, 이는 빈민층에서 중위층으로 새로 진입한 이들의 소비 욕망을 적절히 예견한 것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구매력을 갖춘 새로운 중위층 덕분에 2010년까지 브라질 경제는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룰라가 영광스럽게 퇴임하고 지우마 호세프에게 그 자리를 물려준 직후 세계 경제는 더 이상 브라질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계층 상승을 경험한 이들은 이제 적극적으로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다. 그러한 욕망은 대도시라는 공간 안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발현되고 확인된다. 도시는 양극화된 브라질의 경제적 불평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이다. 자동차 소유자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도시의 일부 구획은 중산층과 부유층을 위한 거주지이며, 자동차를 소유하지 못한 빈곤층은 대중교통을 중심으로 도시의 삶을 경험한다. 이 무대에서 이제 중위층으로 진입한 이들은 자동차를 구입한다. 교육 불평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돼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프로우니(ProUni)와 같은 장학금 제도로 마침내 고등교육을 받게 된 이들은 더 나아가 해외여행을 통해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이제 이들은 그저 고등 교육에 접근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질 좋은 교육 ‘서비스’를 받기 위해 사립학교를 욕망한다. 룰라의 진보주의 정책으로 비로소 사회복지제도의 혜택을 받기 시작한 이들은 이제 민간 보험에 가입한다. 양극화된 경제적 불평등이 고스란히 반영된 브라질의 도시엔 여전히 여가 공간이 부족하고, 치안은 불안하다. 이러한 도시의 어둠은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기에 브라질 중위층들은 부대시설이 잘 마련돼 있는 주택 단지에 거주지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다. 그러나 브라질의 경제 성장은 이들의 욕망이 확산하는 속도도 범위도 따라가지 못했다.
룰라의 딜레마
룰라의 진보주의는 빈곤층 일부를 계층 사다리의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려주었다. 그 덕분에 형성된 새로운 중위층은 이제 소비주의적 욕망을 품은 채 스스로 계층 사다리를 올라가려 애쓰지만, 그사이 저물어버린 경제 성장은 그들을 사다리 한 칸에 가둬버렸다. 대학에 진학한 수백만 명의 청년은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이전에는 감히 넘볼 수 없었던 자동차를 소유한 중위층은 인플레이션으로 상승하는 연료비 부담에 허덕이게 됐고, 인프라가 개선되지 않은 채 양적으로만 팽창한 도시의 삶은 팍팍해졌다. 더 이상 빈곤층이 아니라 중위층 유권자가 된 이들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할 수 없는 사회에서 정권 교체를 희망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팍팍한 삶에 복음주의 교회가 파고들었다.
과거 룰라의 전성기는 경제 호황이 가져다주는 과실을 국가 주도로 재분배한 덕분에 가능했다. 경제 호황 덕분에 노동자당은 계급투쟁을 생략한 채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는 감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를 소환하고자 하는 지금의 룰라는 그 어느 때보다 계급투쟁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에 전면적인 계급투쟁을 주장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과거와 달리 부유층을 압박하지 않고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이번 대선에서 룰라는 20년 전처럼 빈민층을 주요 유권자로 고려해 기아 문제 해결, 고용 촉진, 소득 증대, 보건 개선을 주장했지만, 자신이 과거에 성공적으로 감소시킨 그 빈곤층은 이제 대중적 보수주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가 경제적 불평등 해소라는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수록 그를 향한 절대적인 지지 세력은 축소될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계층 상승을 넘어 더 나은 사회를 성찰하기 위한 정치적·사회적 비전을 공유하는 데 실패한다면, 그는 자신이 한 약속을 이행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결국 실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