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 전투
[더 네이션] 7/23 월든 벨로
제노바 반G-8시위의 조직자들은 200,000명의 사람들이 어제 거대한 시위에 참여하
기 위해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에서 왔다고 발표했다. 금요일과는 현저히 다르게 그
날은 저녁때까지는 상대적으로 평온하게 보였다. 오후 11시경 나와 몇몇 언론인들
이 기사를 다듬고 있는 동안, 경찰은 ‘무정부주의자’들을 찾기 위해 제노바사회포
럼 프레스센터로 침입하였다.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이 우리를 밀치고 마루에 앉으라고명령하자 우리는 “Prensa,
prensa”라고 손을 높이 들고 외쳤다. 우리는 그후 한시간동안 포로가 되었는데 도
시 외곽에서 온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임시 숙소인 고등학교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
했다. 폭동진압장비로 무장한 약 200여명의 경찰이 빌딩안으로 난입했으며 무정부
주의자로 짐작되는 20명의 젊은이들을 찾으려고 나치스타일로 그들의 주의를 에워
쌌다.
그래도 전날보다 상황은 조금 덜 혼란스러웠다. 나는 결코 금요일을 잊지 못할 것
이다.
경찰차가 시위대를 추격하기 위해 좁은 길의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미친 듯이 왔
다갔다하며 토마소 인브레아 거리를 질주하여 달려왔다. 나는 벽에 납작하게 달라
붙었고 2피트 차이로 나는 그 위기를 모면했다. 거기서 6인치 더 갔더라면 내 앞의
남자를 납작하 쓰러뜨렸을 것이다.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차량이 멈췄을 때 사람들
은 “살인자, 살인자”라고 소리쳤다. 한 대머리 경찰이 문을 열었고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노려보았다.
모든 것이 매우 빠르게 일어났다. 바로 25분전인 오후 2시 15분경에는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이름난 ‘뚜떼 비앙께(완전 백색이란 뜻을 가진 단체 이름으로 반세계화
단체 중 가장 급진적인 편에 속하며, 폭넓은 반(反)자본가 운동을 추구한다-옮긴
이)’라는 단체가 이끄는 8천에서 1만 명 가량의 행렬이 차량의 메가폰으로 “이것은
비폭력 행진이다. 우리는 비폭력을 원한다” 라고 큰 소리로 방송하며 똘레마이데
거리를 행진했다. 행진참여자들의 목표는 2km떨여져 있는 G8 정상회담이 열리는 장
소인 두칼레 광장주위에 정부당국이 설치한 20피트의 철 담장에 도달하는 것이었
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 벽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 고지 아래에서, 꼬르시노와의
길 교차로에서, 좁다란 길가에 숨은 경찰이 정당한 사유없이 최루가스를 발사하기
시작했고, 기자와 텔레비전 스탭들이 많이 있던 시위대 선두열이 흩어졌다.
제노바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후 네 시간 동안전투는 좁은 옆골목과 꼬르소 또리노 지역의 작은 광장에서 일어
났고 전선이 계속 움직이는 가운데 경찰은 최루가스, 운송트럭과 장갑차로 공격했
다. 시위대는 퇴각했다가 돌과 포장도로에서 떼어낸 벽돌을 가지고 돌아왔다. 거대
한 쓰레기통이 바리케이트로 이용되었다. 경찰에 의해 뒤로 밀릴때마다 군중들은
폭발하여 “자유 제노바! 자유 제노바!”를 외쳤다.
오후 4시 20분, 부상당한 한 남자가 뚜떼 비앙께의 응급요원에 의해 운반되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그 비슷한 시간에 거의 같은 곳에서 한 사람이 경찰이 쏜 총을
맞고 숨졌다. 구급차의 싸이렌이 끊임없이 울렸다. 얼마 후 나는 그날 동안 부상당
한 사람이 무려 150여명이라는 것과 그 중 50명 정도가 언론관계자였다는 것을 알
게되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날 하루종일 시민불복종운동이 있었다는 것을 들었다. 그 중에
가장 극적인 예로는 ‘핑크블록’이라 불리던 시위자 그룹의 한 여성이 갈고랑쇠를
꽂기 위해서 철벽을 올라갔는데 거의 꽂대기에 올라갔을 때 경찰이 호수로 물을 뿜
어서 난폭하게 바닥으로 내팽겨쳐졌다.
불행히도, 소위 블랙블록이라고 불리는 무정부주의자들도 그 주위에 있었다. 주류
시위자들의 비폭력을 호소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 대의 알페 로메오를
포함한 몇 대의 차들을 불태웠다. 또한 그들은 제노바의 아름다운 해안도로인 코르
소 이탈리아를 따라 행진하며 음식점들을 제외한 은행과 자동차 회사의 유리창들을
골라 깨뜨렸다. 도로변의 벽에는 ‘자본주의는 사람을 죽인다’라는 무정부주의자들
의 구호가 도색되어 있었다.
많은 시위자들이 약 10만여 명에 달하는 세계각국에서 모인 집단 중 수백 명의 무
정부주의자들이 행한 괴상한 행동에 대해 매우 당혹해 했다. 페비오 벨리니라는 25
세의 제노바 사람은 “서방선진국 G-8에 대해 항의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
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이며 그것이 내가 여기에 와 있는 이유이지만 유리창을 깨뜨
리는 폭력은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제노바를 위해 슬픈 일이다”라고 말했다. 캐나
다의 [헨리펙스 이니셜티브]의 간사인 팸 포스터는 “왜 경찰들은 평화로운 시위자
들의 뒤를 쫒는데 주력하면서 무정부주의자들을 대처하는 데에는 왜 이리 늦장을
부리는지 알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해질 무렵 시위자들이 피아찌아 케네디 합동센터에 되돌아 와 왔을 때 블랙블록의
괴상한 행태에 대해서는 많은 격렬한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이러한 즉각적인 토론
의 하나의 예로 벨기에 인디미디어 센터의 한소에티는 “경찰들이 무정부주의자들을
체포하기보다는 이들을 위험지역으로 호위하여 인도한 의혹이 있으며 같은 일이 종
전의 바르셀로나 또는 프라하에서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인이나 비이탈리아인이나 시위자들의 가장 큰 비난과 분노는 새 이
탈리아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에게 집중되었다. 꼬르소또리노에서의 시위 도
중 지노 피에란토니라는 또 다른 제노바 사람은 “이 혼란 속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책임이 상당부분 이탈리아를 이끌어 나갈 능력
이 부족한 실비오에게 있다”고 언급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시위대의 주장을 수용하
려고 애썼던 지방정부들의 움직임에 반하여 그 사태에 무장대응으로 악화시킨 인물
로 지목되고 있다.
1970년대 유엔 평화유지군 지휘관으로 베이루트에서 복무했던 한 퇴역 이탈리아 장
성은 베를루스코니에 대해 많은 이탈리아인들의 감정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해줬다.
그것은 즉, “베이루트 전체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2500명의 병력이 필요했는데, 왜
베를루스코니가 제노바에 2만 명의 전경을 배치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애틀, 위싱톤, 그리고 프라하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까지 최대규모의 반세계
화 시위를 주도해온 단체들의 가장 큰 염려는 가두전투와 무정부주의자들의 과격한
행동이 그들이 G-8에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의 빛을 바라게 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
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제노바 사회포럼에서는 약 600여 개의 단체들은 비폭력
노선을 유지하겠다는 결의를 이끌어내었으며 또한 국제적인 발제자들을 초빙하여
약 1주일 가량의 ‘무역자유화, 누가 필요한가’에서부터 ‘국제적 민주주의를 위한
방법론’, ‘세계화의 대안’들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의 강연과 교육프로그램을 후원
했다. 발제를 한 사람들 중에는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비판자인 수잔 조지, 맥도널
드 지점을 파괴한 사람으로 더 잘 알려진 조제 보베 등의 반세계화 거물들이 포함
되어 있었다.
그러나 G-8 정상들은 거리의 항의시위에 귀머거리였다. 베를루스코니가 시위자의
죽음에 ‘유감스럽다’는 매우 정치적으로 계산된 발언를 하면서도 그는 그 죽음이
G-8과는 무관한 것임을 주장한 바 있다. 불난 데 부채질하듯 G-8 정상들은 7월 20
일 저녁 카타스에서의 뉴라운드 협상 발족을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수
천 명의 사람들을 유럽 및 전세계에서 제노바로 집결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뉴라운
도와 WTO에 대한 반대였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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