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노동의 산물이다.

김병돌의 나의 노동자 문화체험 네번째 이야기

걸개그림 - 더 이상물러설 곳이 없어요 [이기연 1984]

'예술'하면 우리는 아주 '고상한 사람들'이나 입에 담는 것인양 비꼬면서 장난으로 받아넘기는 것이 다반사다. 예술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지난 우리의 배움과 사회 속에서 암암리에 형성해낸 우리의 '문화'인 것이다. 그것은 먹고살기에도 바쁜 현실과 함께 우리의 삶에 밀착되어 있지 않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예술'이 모든 예술일반을 점령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고급 및 신비로움'이 우리 노동자들에게 이미 주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노동자의 관점에서 예술을 바라보고, 예술을 이해하며, 생산하고, 향유하도록 하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서의 예술을 단호하게 배척하고 왜 예술이 우리 노동자계급의 것의 것으로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예술이 얼마나 노동자의 삶에 밀접할 수 밖에 없는 지를 예술의 기원을 살펴봄으로써 정립하도록 하자!!

예술의 기원의 문제에 있어서도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구석기 시대의 비너스
간단히 언급하면 생물학적 기원설, 유희 기원설, 노동주술적 행위 기원설, 노동 기원설 등등. 여러 학설속에서 예술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노동을 하며 살게 된 것과 함께 발생했다는 노동기원설에 입각하여 전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바로 노동이 원시사회의 예술가에게 끌을 제공해 주었기에 이것을 가지고 암벽의 표면에 동물의 형상을 새겨 넣을 수 있었으며. 바로 노동 속에서 끌에 익숙해질 능력이 향상되었기에 끌의 움직임을 자기의지 아래 복종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노동이 건축과 응용예술분야에서의 예술적 창조를 위한 기술적 토대였으며, 그것이 인간의 손에 만들고자 하는 대상과 도구에 미적인 형식을 부여할 수 있는 권능을 주었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최초의 돌멩이가 인간의 손에 의해 칼로 가공될 때까지, 그에 비하면 우리가 알려진 역사적 시간이 아무것도 아닐 정도의 기나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일보는 내디뎌졌다. 손이 자유로와 졌고, 날로 새로운 손재주가 발달할 수 있었으며, 그럼으로써 얻어진 더욱 큰 조형력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고 또 증대되었다. 그러므로 손은 단순히 노동의 기관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또한 그것의 산물이기도 한 것이다. 오직 노동을 통해서만..... (중략) 인간의 손은 라파엘로의 그림, 토르발젠의 조각과 파가니니의 음악을 산출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완전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인간의 손뿐만이 아니다. 언어 역시 노동을 통해 인간에게 전달된 것이다. 언어는 인간들이 집단적 생산행위 속에서 서로 의사소통을 할 필요성으로부터 발생했기 때문이다. 고리끼가 말한대로 언어는 노동을 토대로 하여 언어예술의 '원초적 요소'가 되었다. 언어와 말이 형성되어가는 이후의 역사적 과정속에서, 인간의 후두가 성대의 복잡한 기제와 더불어 변형되고 완성되기에 이른다. 이로써 음악예술은, 특정한 높이의 음을 만들어 내고 이로부터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 필수적인 조성 및 리듬구조를 발전시키는 데 적합한, 최초의 놀라운 악기를 갖게 된 것이다. 또한 노동은 음악에 여타의 모든 악기들을 제공해 주었다. 현악기의 시조는 사냥꾼의 활이었고, 관악기의 시조는 엽적과 목적이었으며 북, 팀파니, 징의 시조는 사냥에 사용된 신호용 타구였다.

이렇게 손과 후두가 그러했듯이 인간의 모든 신체 역시 노동과정 속에서 발전되었다. 오로지 노동을 통해서만 인간은 신체운동의 유연성과 무용언어를 통해 자신의 내적 상태를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일체의 몸동작을 통제하는 능력을 획득할 수가 있었다. 원시인들은 사냥하는 과정에서 동물로 분장하고, 동물의 움직임과 행동거지를 모방하는 법을 배움으로써만 자신의 내부에 연행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었으며, 형상적 묘사의 수단을 다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예술적 창조는 신의 선물도 자연의 선물도 아니며, 오직 노동의 산물인 것이다. 형상적 의식의 형성(자연을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의 형성)은 세계를 예술적으로 전유할 가능성을 낳았고, 노동은 이 가능성을 현실화 시켰다.

그렇다면 왜 인간이 예술을 발명하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인류 최초의 사회는 원시공동체였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노동하고
*알타미라 동굴벽화
똑같이 나누어가졌다. 생산력이 낮았기 때문에 집단이 생산해 낸 것은 그 사회 성원이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데도 모자라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양식을 차지한다면 모두 굶어죽었거나, 야수로부터 그 집단을 보호할 수 없었다.

이처럼 생산력이 낮았기 때문에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 즉 계급이 발생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원시시대 사람들의 심성이 착해서 서로 나누어 먹고 살아서 계급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족생존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바로 생산력이 생산관계를 결정했고, 모든 노동은 공동으로 행해졌고, 생산물은 공평하게 분배되었으며, 모든 재산은 종족 성원 전체의 것이었다. 예술 역시 모든 종족 성원 전체의 것이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데 있어 더욱 많은 사냥감을 획득하고자 자신들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그리고 실제적, 심리적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던 것이다. 주술적 무용이나 노래 등의 예술은 모든 성원들에 대한 사회적 교육의 수단, 즉 육체적, 직업적, 윤리적, 미적 교육의 수단으로 모든 성원들을 정신적으로 집단에 연결시켜주었다, 조직된 사회공동체의 성원으로 느끼게 해주고,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감을 발전시키고, 집단의 힘에 대한 신념을 확고히 해 주었으며, 나아가 능란한 몸놀림을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다.

그리고 동물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억제하여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다. 또한 집단적인 격렬한 춤과 노래를 통해서 실제 사냥에 필요한 신체단련을 했고, 나아가 종족의 나이어린 성원들은 사냥의 전 과정을 재현하는 춤을 통해 사냥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행위 속에서 힘든 격투에 대비하여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무장시키고, 그것의 성공에 필수적인 정신적 속성들을 자신들의 내부에 계발해 왔던 것이다. 이렇듯 예술은 자연 뿐아니라 인간 자신까지도 '인간화'시켰다.

예술은 노동과 종족의 제도를 통해 인간이 동물적 상태로부터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인간이 스스로를 인간으로 느끼고 인식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와 기능을 정신화시켰으며, 무한히 힘겹고 거의 짐승에 가까운 고난스런 그의 현존을 극복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우리는 왜 예술이 발생할 당시에 일반적으로 창조자와 소비자, 공연자와 관객의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술적 창조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수동적인 미적 관객들을 위한 공연물이 아니라, 집단의 자기활동이었으며 여기에는 성원들 모두가 참여해야만 했는데, 이는 그 사회가 그것을 환상적으로, 소박한 종교적 관념의 수준에서 해석하고는 있었지만, 객관적으로나마 성원 모두에 대한 이러한 형태의 사회적 자기교육이 지닌 효용성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예술적 창조는 사회적 생명활동의 가장 중요한 과정들을 형상적으로 반영해야만 했다. 노동, 수렵, 그리고 후에는 농경, 전쟁, 성적 성숙과정, 윤리적 규약에 의해 규제된 양성간의 관계 등 이 모든 사회적으로 규정된 행위들이 예술적 형상화를 요구했는데 이는 예술이 언제나 인간의 실천적 생명활동에서 정신적 지주였고, 또한 그것이 사회의 실천적 삶을 산출해내고 모든 성원들의 의식 속에 그것을 보존하고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사활적 문제라고 여겼던 것이다.

여기 원시공동체 시대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자. 과학이 미발달해 문자도 없고, 책도 없는 당시, 현실을 인식하는 무기는 유일하게 예술이 담당하였다. 이렇게 자기들이 사냥하는 가운데 획득한 지식들을 그림 속에 담아 동물의 특성에 대해 서로 공부를 했고, 그 정보를 후손들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한편 구석기 시대의 비너스가 있다. 당시의 다른 동물그림들은 사실적인데 비해 이 조각품은 실제의 모습에서 상당히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는 구석기 시대의미의 이상이 담겨있다. 생존조건이 험난한 상황에서 사람 수 자체가 생산력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애를 잘 낳는 게 가장 예쁜 아름다운 여성이었던 것이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기능과 밀접한 곳들이 과장되어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작품에 그들의 바램인 다산을 담아 냈던 것이다.

이렇듯 예술은 그 사회의 생산에서 요구되는 종족 구성원 모두에게 여러 가지 교육과 신체단련과 지식전달, 그리고 보다 나은 생산을 위한 염원을 담아내는 것으로, 정신적 단련의 무기로, 자연을 인식하는 무기로 그것과 싸워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서 복무하게 된다.

원시공동체 사회는 계급이 없는 사회였기 때문에 예술 또한 계급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것은 예술은 당시의 생산양식(예술은 노동의 산물이며, 생산력의 반영물)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기원과 그 기능이 전 사회구성원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모든 성원이 참여하는 집단적인 공연물이었기 때문에 원시공동체 사회에서의 예술은 전체 성원 모두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계급이 발생하게 되었고,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되어 생산물의 대부분을 한 계급이 독식하게 되고,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계급사회 속에서 예술 또한 생산수단을 확보한 한 계급에 의해 점유되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예술로서 예술의 계급성이 드러나게 된다.

예술의 계급성에 관해서는 다음 주제로 남겨놓고 이글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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