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민중의 도시는 어디인가

제2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건설이 시작되었다

전경련이 제안하고 노무현정권이 받아들인 기업도시건설특별법은 노동유연화에 골몰해 온 자본의 최근 관심사항이 몽땅 집약되어 있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15일 조선호텔에서 '기업도시건설을위한정책포럼'을 열고, '가칭)기업도시건설특별법'을 제안했다. 전경련이 이달 안에 정부에 제출할 이 기업도시건설특별법은 기업이 도시개발 계획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조성된 토지를 임의로 처분할 수 있고, 외국 병원과 학교 설립으로 의료, 교육 등 공공 영역을 시장으로 재편할 수 있고, 경영상 긴박한 이유가 없어도 정리해고가 가능하며, 파업기간에 파업 대체 노동자를 쓸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5일 포럼에는 원주, 익산, 군산, 무안, 광양, 포항, 김해, 진주, 서귀포 등 9개시 지자체 단체장들과 정부 관계자와 현역의원들이 대거 참석하였고, 삼성, 현대자동차, SK, 금호아시아나, 한진, 한화 등 주요 재벌 관계자들이 참석해 지자체가 제시하는 유치 조건을 뜯어보았다.

전경련은 이달 안에 법안을 정부에 건의하고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추진할 예정이며, 연말께 기업도시 대상입지를 선정하고 참여 희망 기업들을 확정해나간다는 구상을 밝혔다. 더군다나 전경련이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부측 관계자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만큼 원안의 골격이 거의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말해 정부와도 충분한 사전 조율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실제 이헌재 부총리는 "기업이 경제회복과 지역사회 발전의 주체라는 자부심을 갖고 노력해 달라.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적극 반영해 지원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고, 노무현정권은 조만간 기업도시 건설 지원을 위한 실무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기업도시지원실무위원회는 건교부 주도 아래 약 20∼30명 정도로 구성되며 기업도시 개발과 관련된 각종 규제현황과 제도상의 문제점 분석과 개선을 위한 실무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노무현정권은 또 1천만평 규모의 기업도시에 대해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홍재형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과 이강두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법안 제정에 적극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함으로써 자본의 요구에 대해서는 상생의 태도를 분명히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작년 7월 1일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이 발표된 이래 1년 만에 제안, 추진하고 있는 기업도시법은 내용상에 있어 경제자유구역법을 확장하는 것이며, 동시에 WTO 개방과 한-일FTA 협상의 쟁점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자유구역이 지역 노동자 민중의 저항 등으로 특정 지역에 한해 추진되어왔다면 기업도시는 지자체가 요구하는 전국 대부분의 도시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경제자유구역의 전국화를 꾀하는 셈이다.

우선 기업도시에 투자하는 기업의 경우 출자총액(공정거래법), 동일기업신용공여한도(은행법), 부채비율 200% 제한(금융감독법) 등을 적용 받지 않게 된다. 이는 자본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제도 개선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재벌에 대한 규제 제한을 풀어주는 것이다.

전경련은 현재 토지공사나 지자체가 하고 있는 '토지수용권'을 요구하는데, 이는 재벌이 조성된 토지 처분을 결정하고, 주택 공급 방식은 시행자가 결정하도록 위임하는 것으로, 택지 개발과 아파트 건설 분양에서 발생하는 모든 이익을 독차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노무현정권이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를 반대하고 나선 배경과 맥락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자립형사립고, 특수목적고 설립 조건 완화와 외국인 대학 설립 허용, 영리법인의 대학 설립, 그리고 등록금 자율화 및 기여입학제도 허용 요구는 WTO 교육 개방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무릇 공교육 정상화를 역행하는 것이다. 이미 구조적으로 차별화, 상품화되고 있는 교육 문제를 자본의 흐름에 완전히 종속시키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영리법인의 종합병원 개설 허용과 원활한 병원 유치를 위한 법인세 인하 요구 역시 공적 영역인 의료서비스를 상품화함으로써 더 많은 이윤을 얻어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기업도시특별법이 추진되면 안될 결정적인 이유는 노동유연화 강화에 있다. 전경련의 기업도시법 요구 내용에 경영상 긴박한 이유가 없어도 정리해고가 가능하고 파업기간에도 파업 대체 노동자를 쓸 수 있다는 것이 버젓이 쓰여 있다. 이는 경제자유구역법에도 담겨있지 않는 것으로, 앞으로 매우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노동유연화 공세를 가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이 내용은 한-일FTA 협상 내용에도 반영되어 있는데, 자본이 기업도시법을 통해 노리는 핵심 의중이 무엇인가가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기업도시건설특별법은 자본의 이러저러한 요구를 모두 담은 종합패키지이다. 노무현정권은 받겠다, 추진하겠다고 했고, 전국의 주요 지자체들은 벌써부터 치맛바람을 피워대고 있다. 자본을 위한 도시, 기업만을 위한 도시 건설 작전이 실행되었다. 노동자 민중이 살며 가꾸어야 할 도시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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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 논평 , 자본 , 경제자유구역 , 기업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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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각시

    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