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고 김선일 씨는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가

의혹에 대한 진실은 오직 촛불을 든 사람만이 밝혀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동맹의 현실을 직시한 것은 작년 취임 3개월 째, 국내 재벌들과 함께 미국을 방문한 전후 시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할 말 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건낸 말은 몇 마디 없었다. 일순 '미국이 하는 말 듣겠다'는 태도로 돌아섰다. 미 제국주의와 맺어온 이 땅 지배자들과의 동맹 관계를 목도하는 순간, 초국적자본이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장쾌하게 내치닫던 한 자유주의자의 호기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고, 서둘러 국익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거론하는 체제순응형 관리자가 되고 말았다.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 기조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상시적으로 한반도 전쟁 위기를 조장하는 일이다. 전쟁 위협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긴장을 조성함으로써 미사일방어전략을 포함한 신군사전략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지금까지 미국의 군산자본 지원을 위해 단계적으로 국방비를 증액해왔고, 세계 경찰 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동맹국과의 관계 개선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악의 축 발언 이후 아프가니스탄 침략, 이라크 침략 등 전쟁 도발을 서슴지 않았다. 대북을 향해서도 전쟁을 전제한 군사전략이 관통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추진하고 있는 주한미군 평택 이전과 주한미군 단계적 감축은 전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PAC-3 미사일 배치, 스트라이크 여단, 해군의 초고속 함정과 하와이, 괌의 공해군력 추가 전진 배치 등을 통한 전력 증강을 의미한다. 이는 한-미-일 삼각 동맹 체제를 기반으로 한 해외미군재배치전략(GPR)의 일환으로, 기동군사체제로의 전환(PPH-MOB)을 포괄한다. 북핵 문제를 틀어쥐고, 작전계획5030에 기초한 대북 말살 정책을 지속함으로써 끊임없이 한반도 긴장을 유지하겠다는 계산이다.

또 하나는 동아시아 지역 질서 재편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문제이다. 다자협상의 몰락 흐름과 이를 대체하는 양자무역협정의 확산, 그리고 과도적 양상으로 전개되는 지역블록화 흐름은 단순한 경향을 넘어, 오늘날 세계적인 자본 축적 위기를 반영하는 지표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따른 경제위기 문제 역시 일국 차원을 넘는 연쇄적 폭발 가능성을 내포한다.

유럽과 미주 지역 질서 재편이 일단락 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제 본격화되고 있는 한-중-일과 아세안(ASEAN) 지역 질서 재편이 갖는 비중은 실로 막대하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의 주도권 장악을 둘러싼 제국주의 세력간 대립 경쟁과, 초국적자본 운동의 확대가 예고되고 있어,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지형은 끊임없는 동요와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곧 정치적, 사회적 위기의 심화를 동반할 것이다.

한-미동맹 체제는 앞으로 한반도에서 벌어질 정치적, 사회적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위기관리체제이자 지배자들간의 동맹 질서를 의미한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 동맹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사활로 삼고 있고, 한국을 지배하는 세력들은 이 질서를 깨뜨려낼 만한 물질적 기반이나 정치적 의지 그 어느 것도 갖고 있지 못하다. 파병은 부시정권의 요구인 동시에 노무현정권의 의지였고, 한-미동맹의 정치적 산물인 셈이다. 결국 작년 4월 국익 논란 속에 결정했던 서희·제마부대 파병과, 작년 9월 추가 파병 제기 이후 질질 끌다가 6월 18일 최종 결정한 파병 방침의 성격은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국익'이나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나 '이라크 재건 활동'이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상식으로 받아들인다.

남의 일로 여겼던 이라크 전쟁에서 한국 사람 고 김선일 씨가 죽게 된 배경, 그것은 명백히 한-미동맹 시스템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론은 이라크 저항세력에게 과격하다며 비난을 퍼붓고, 테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고 김선일 씨의 죽음의 배경, 진실은 분명코 그것이 아니다. 노무현정권이 파병을 하지 않았다면, 가나라는 자본이 군수 지원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고 김선일 씨의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한-미동맹의 정치적 작동이 없었다면 고 김선일 씨의 죽음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사태의 진실, 그 핵심은 간단하다. 제국주의 국가간 세계 질서 재편과 초국적자본간 경쟁 격화의 정점에서 감행된 미국의 이라크 침략, 이라크 점령군에 대한 이라크 민중의 끈질긴 저항과 세계 반제반전운동의 고양, 이윽고 미국의 전쟁 패퇴 징후, 위기에 처한 미국의 신군사전략을 동반한 동맹국과의 결속 강화, 그에 따른 한-미동맹 시스템의 풀가동, 마침내 고통스럽게 죽어간 고 김선일 씨... 거듭 확언컨대, 고 김선일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한-미동맹이라는 썩어문드러진 정치적 작동 시스템이다.

고 김선일 씨 실종 이후 가나자본, 대사관, 부시정권, 노무현정권의 상황 인지 여부를 둘러싸고, 고 김선일 씨를 살리기 위한 대응 여부를 둘러싸고 숱한 의문과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정보의 모든 통로를 장악하고 있는 한-미동맹의 정치적 시스템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한, 진실이 얼마만큼 규명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진실은 밝혀내야 한다. 그것은 오직 촛불을 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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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동맹이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김선일씨가 죽은 이유는 미국 때문 아니에요? 효순 미선이 죽음 때도 미국이 문제였는데 왜 우리나라는 미국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고통받아야 하는지.. 우리는 언제까지 촛불을 들어야 되요?

  • ...

    미국 때문만이겠어요? 부시가 군대보내라고하면 국민들 죽던가말던가 무조건 보내겠다고 하는 미친넘들이 어디 한둘이랍디까. 반기문이 외통부 장관하기전에 청와대 안보수석하면서 파병을 앞장서서 외치던 넘이고, 그렇게 반대를 해도 못들은척 국익운운하면서 파병결정한 노무현이 있고, 국회에서 통과시킨 열우당, 한나라당 등 국회의원들이 있지요...그리고 언론넘들은 또 어떻고...

    지난 탄핵파동 때 이쪽에서 파병통과 문제로 더 세게치고 나가 탄핵시켰어야 김선일씨도 죽지 않았을텐데...죽고 싶은 심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