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지르는 폭력, 그리고 전쟁

[박기범의 철군투쟁 단식일지 34] 2004년 9월 11일

남원,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얇은 비옷을 걸치긴 했지만 우산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바람에 움직일 때마다 짐 가방이며 옷이 추적추적 젖었다. 하루 이틀 볼 일을 보고 집에 들어가고 하는 거라면야 그깟 비 좀 맞는 게 문제도 아니겠지만 계속 움직여 다녀야 하니 이 비는 그리 반갑지가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몸이 괜찮다, 좋다고야 말하곤 하지만 그런 말이야 크게 아프지 않다는 뜻이지 기운이 없다. 오히려 평소처럼 그대로 기운이 있다고 하면 그게 이상한 말이다. 그래서 아쉬웠다. 절 안을 잘 둘러보고 싶었는데, 절 뿐 아니라 절 둘레 마을과 산도 천천히 거닐고 싶었는데 그런 것을 못했다. 나중에는 우산을 빌려 쓰고 나가도 머리와 어깨 정도만 겨우 가릴 뿐 바람 섞인 비에 온 몸이 다 젖을 정도였다. 우리는 함양에서 아침 일찍 떠나 실상사로 왔다.

다 젖은 채로 짐을 풀어 놓고 바로 큰 법당으로 옮겨 실상사에 있는 작은 학교 아이들을 만났다. 오늘은 토요일이어서 오전 공부만 있는데 그 가운데 세 시간 동안 우리 순례단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대신한다고 했다. 절로 막 들어올 때도 그랬지만 아이들을 만난다고 할 때 나는 속으로 많이 궁금하고 설렜다. 몇 해 전부터 대안적인 삶에 대해 관심을 두면서 보아온 책이나 글로 보아온 이곳은 ‘도법 스님, 수경 스님, 인드라망 공동체, 실상사 귀농학교, 실상사 작은학교, 한생명, 지리산 생명평화결사……’ 같은 이름들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뭐랄까 아직 내가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나 그러한 삶의 방식, 그리고 그러한 삶의 방식에 어울리는 마음의 태도를 지닌 사람들을 한꺼번에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는 그저 내 마음 속에 어떤 상을 그려놓고 동경해 오고 있었다.

청빈이라거나 절약이 무슨 규율처럼 엄숙하게 있는 게 아니라 덜 쓰고 덜 먹으며 사는 게 더 좋아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라 막연히 생각하며 말이다. 절과 마을, 학교, 산, 논과 밭이 경계 없이 어울려 있으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 또한 그 안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며 사는 어떤 곳.
실상사 작은학교 아이들과 큰 법당에서 모인 날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이라크 전쟁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바지에서 빗물을 뚝뚝 흘리며 법당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만났다. 하하, 아이들. 한 쪽 구석에 가서 그 쪽 자리 아이들 곁에 붙어 앉았다. 머리 모양이 제각각인 아이들이 두셋 씩 서로 장난을 치며 떠들었다. 먼저 평화바람이 준비한 영상을 틀어 보여주었다. 내 바로 곁에 있던 아이는 친구들하고 장난도 치지 않고 두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들지 않더니 영상을 시작하니 몸을 반쯤 일으키고 열심히 보았다.

끔찍한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이 전쟁을 일으킨 자들과 이 전쟁에 끼어드는 한국 대통령을 꼬집어 풍자하는 것. 영상을 보고 난 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쟁, 국익, 한미동맹, 파병, 평화……. 나는 아마 어느 부분에선가 - 화면에서 본 폭격장면은 비록 작년에 찍은 거지만 지금도 밤이면 민간인들이 사는 마을에 융단폭격이 있곤 한다는, 저 모습보다 더 끔찍하다는 - 이야기를 하면서 열을 올리기도 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이 아이들 앞에서 왜 그렇게 열을 올렸는지 후회가 되었다. 이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오히려 어른들이 이 아이들이 사는 모습을 본받아 살기만 했어도 파병도, 전쟁도 아주 없는 말이었을 것을. 비는 그치지 않고 내렸고, 잠깐씩 말이 멈추면 법당 안으로도 빗소리가 크게 들어왔다.

작은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평화’가 무언지 얘기해보자 했을 때 수사님이 그런 말을 했다. 지금 법당 바깥에서 들리는 저 빗소리 같은 게 평화가 아니겠냐고. 그래, 맞다. 뭐니 뭐니 해도 평화와 가장 닮은 얼굴은 자연이다. 빗소리 뿐 아니라 졸졸졸 물소리도, 바닷가 철썩이는 소리도, 나무를 스치고 오는 바람 소리도, 소 울음이든 염소 울음이든 짐승과 새의 울음소리도. 그리고 어디 소리뿐인가? 철 따라 나고 지고, 물이 오르고, 빛이 바뀌는 모습들만큼 평화로운 게 또 어디에 있을까? 새싹이 돋고, 연둣빛 새 잎이 돋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바래고, 어미가 되고, 새끼를 낳고, 알을 품고, 젖을 물리고, 고치를 벗고 날아오르고……. 이렇게 생각을 잇다 보니 평화와 가장 닮은 얼굴은 자연의 얼굴이면서 자연의 얼굴과 가장 닮은 얼굴은 또다시 생명의 얼굴로 닿았다.

그렇게 나도 나름으로 ‘내가 생각하는 평화’를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으려니까 이번에는 ‘내 안의 폭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말씀이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 둘 때리고 싸우는 것 뿐 아니라 속으로 미워하고, 나쁘게 되기를 바라는 그런 얘기들을 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내 안으로 다시 곱씹어 생각을 했다. ‘내 안의 폭력’이라는 것. 물론 중요하다. 그리고 이 평화운동을 통해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 안에 있는 그것을 발견하고, 저마다 한 뼘이라도 더 평화와 닮은 삶을 살게 될 수 있다면 세상은 그만큼 평화로워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 안의 폭력’이라는 부분에 대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끔, 이 전쟁을 일으킨 건 결코 침략자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전쟁의 씨앗에도 원인이 있었음을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나도 생각에 잠겨 내 안의 폭력에 대해 생각했다. 결국은 내가 일으킨 전쟁이었다는 것을 곱씹었다.

삐딱한 생각

내 안에 있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는 마음 같은 것들을 생각하다가 정말로 그런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정말로 내 안에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라크에 전쟁이 일어났을까 생각했다. 내 마음 속에 누굴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하고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하고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물론 내 안에 그런 마음들이 더 적어지고, 없는 쪽에 가까워진다면 내가 관계 맺는 이들과 사이가 훨씬 좋아질 것은 당연하다. 두루두루 사이좋게, 평화롭게 지내게 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도대체 그것과 이라크 전쟁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지? 혹시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는 건 아닌지, 아무렴야 미워하고 싸우며 사는 것보다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사이좋게 사는 쪽이 어느 모로 봐서든 좋은 것이니 억지로 연관이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삐딱한 생각인 거다. 보통은 이렇게 설명을 한다. 나와 곁에 있는 사람이 평화롭고, 우리 식구와 이웃 식구가 평화롭게 사는 것이 더 크게는 마을과 마을의 평화, 나라와 나라의 평화로 이어지는 거라고 말이다. 다시 삐딱한 생각, 정말 그럴까? 나와 곁에 있는 사람이 잘 지내고, 우리 식구와 이웃식구도 평화롭게 지내는데 그 평화가 딱 우리 마을과 이웃 마을까지만인 거고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안 그런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이를 테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라크 파병을 불가피하게 찬성한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정말 남과 북의 평화, 민족의 평화를 바라는 것 같지만 그것을 댓가로 이웃나라 사람들을 침략할 수도 있다고 말을 하는 것 아닌가? 우리끼리, 우리 마을끼리, 우리나라끼리만 평화를 누리고 싶지 우리에게 이익이 되면 다른 나라야 얼마든지 학살을 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고 영국, 한국이 아닌가?

다시, 평화에 대한 생각

허나 내 말은 틀렸다. 추론 과정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전제로 말하는 것이 틀렸다. ‘개인과 개인, 식구와 식구, 마을과 마을까지만 평화롭게 살지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안 그런 경우’라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 안에서만 평화를 누리고 싶지 우리에게 이익이 되면 다른 나라야 얼마든지 침략을 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 영국, 한국이 아닌가?’ 하고 자문한 것. 왜냐하면 두 가지 물음 모두 처음부터 성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평화라는 것이 깨뜨려지는 기본 조건은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남의 것을 빼앗아 더 누리겠다는 욕심인데, 한 나라 안의 마을과 마을 사이에서 평화롭게 산다면 결코 다른 나라와 평화롭지 않게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 한국이라는 나라는 자기네 나라 안에서는 평화를 원치만 다른 나라에 대해서만 전쟁을 하는 나라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거꾸로 말해서 다른 나라와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 하지 않는 미국과 영국, 한국이라는 나라는 자기들 나라 안에서도 결코 평화롭지 않다는 것이다. 나라 안에 벌써 평화가 깨져 있다. 나라 안에도 지역 별로, 계층 별로 그 평화는 깨져 있다. 이번에는 거꾸로 계속 내려가면 ‘내가 사는 고장만을 위해, 내 식구만 위해, 나만 위해’라는 말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제도와 틀 내에서는 더 선한 사람이 있고, 덜 악한 사람이 있지만 결국 모두 나와 내 식구만 위해 살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무리 너무너무 착해서 만나는 이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향기를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이 사회의 룰, 경쟁의 질서와 소비의 자유 위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평화로운 관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평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착하게 노력하고, 착하게 함께 어울려 살고 싶은 사람들조차 사실은 (너무나 슬프게도) 폭력과 착취의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내 안의 폭력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우리 안에 있는 폭력이 이 전쟁을 일으키게 했다 하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내 안의 폭력’의 핵심은 내가 마음으로 누굴 미워한다거나 누구를 용서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내 삶의 방식, 그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삶의 방식이란 이 세상의 조화를 깨뜨리면서 사는 모습, 내가 더 가지거나 더 씀으로써 누군가가 그만큼 갖지 못하게 되고 써야 할 곳에 쓰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 소유나 소비가 일상화 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석유가 모자라 그것을 가지고 싸움을 하는데 나는 여전히 안 써도 될 석유를 알게 모르게 더 쓰고 있었을 것이다. 2리터 들이 생수를 사 마시면서 계속해서 플라스틱 통을 쓰레기로 만들기도 하고, 떠날 때 옷을 챙겨오지 않아서 집에 속옷과 양말이 많이 있는데도 어쩔 수 없이 새 속옷과 양말을 샀다. 이것 말고도 무수히 많겠지. 필요 없는 전기를 더 썼고, 필요 없는 물을 더 틀었다. 예전에는 이러한 것들이 그저 당위로서의 절약 정도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깐깐하게 그렇게 따진다는 게 아주 고리타분했다. 하지만 모든 다툼이든 전쟁이든 결국은 한정된 자원을 두고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먼저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이 쓰기 위해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래서 힘이 더 센 자들이 힘 약한 자들을 죽이면서 빼앗는 거라 생각하면 내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가지는 것보다 더 큰 폭력이란 없다는 걸 알겠다. 점점 더 자본, 그리고 자본과 결탁한 권력이 더 더 더 더 많이 가지려 하는 까닭에는 세상 한 쪽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쓰며 사는 데에 익숙해 있고, 또 다른 세상 한 쪽에는 그런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만큼도 얻지 못해 굶어죽는 이들이 그 수만큼이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마치 내가 가진 돈으로는 내 마음대로 펑펑 써도, 아무렇게나 소비하고 쓰레기를 만든다 해도 존중받을 개인의 취향 정도로만 여겨진다. 그건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죽이는 일이다. 내가 더 쓰는 만큼, 누군가는 그만큼 모자랄 것이고 그건 곧 그만큼의 목숨을 빼앗기고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안에 있는 가장 큰 폭력은 소비하는 삶에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우선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걸 거다. 최소한으로, 최소한으로 꼭 필요한 만큼만. 그 다음으로는 이제라도 손수 만들거나, 손수 거두거나, 손수 지을 수 있게 하나하나 새로 배워야 한다. 완전 자급자족은 하기 어렵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그쪽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게끔. 이 폭력, 누구나에게 있는 ‘소비하는 삶’이라는 이 폭력은 그 사람이 선한가 선하지 않은가의 문제를 떠나 있는 것이다. 경쟁과 소비라는 말로 대변되는 이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살고 있다면 스스로는 원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그 폭력의 구조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삶의 방식에서야 조금 더 쓰고, 조금 더 누리는 것이 하나도 죄 될 일이 아니었지만 결국은 그것으로 해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으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니 내 안에서부터 폭력을 지우고 평화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에게 꼭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있는지, 쓰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할 일이다.

비는 종일 왔다.

4년 만에 만난 후배. 절에서 내준 방에 돌아와 쉬고 있을 때 후배가 찾아왔다. 지난해부터 이곳에 와서 실상사를 둘러싼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건 들어 알고 있었다. 학교에 다니던 때 세상에 대한 질문을 함께 나누었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느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후배다. ‘엄격’이라는 낱말이 어울리지 않지만 언제나 자신에게 엄격한 기준을 세워 힘들어하던 아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언제나 기준을 ‘진실‘이라는 것에 두었으니 그 기준 앞에서 얼마나 모자라기만 했을까? 지난 해 실상사에 와 지낸다 하는 얘기를 처음 듣고는 깜짝 놀랐는데 이내 안심이 되었다. 참 어울리는 곳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가 있구나 싶었다. 후배가 일하는 곳, 사는 집들을 다녀왔다. 그러면서 지낸 이야기나 마을 이야기들을 들었다. 나중에 배웅을 받고 나오면서 고맙다고, 이렇게 잘 사는 모습 보여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이렇게 사는 모습 보니 나도 용기가 생긴다고, 나도 잘 살아야지 하는 생각하게 해주어 참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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