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열사를 생각하는 10월

김주익 열사를 보낸 지 1년을 맞으며

김주익 열사가 죽을 당시, 1천351억 1천218만 5천222 원이라는 돈이 노동자 앞으로 청구되어 있었다. 노무현과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려고 수백억 원을 쏟아부을 때 이 땅의 노동자들은 1300억 원이 넘는 손배가압류로 숨막히는 생활을 버텨야 했다. 한진 자본의 조남호 회장이 7억이 넘는 주식 배당금을 챙길 때 600명이 넘는 한진중공업의 조합원들은 길거리로 내쫓겨야 했다. 열사의 죽음은 이미 예고되고 있었다.

노동자 김주익은 85호 크레인으로 내몰렸다. 노동자 김주익을 땅위에 발딛고 살지 못하게끔 하였다. 크레인에서 129일간 농성을 벌였다. 그리고 1년 전 오늘, 노동자 김주익은 "오랜만에 맑고 구름 없는 밤이구나. 내일 모레가 추석이라고 달은 벌써 만월이 다 되어 가는데..."로 시작하는 차마 읽기조차 힘든 유서 몇 장 남기고 영원히 하늘로 갔다.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의 뒤를 김주익 열사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박일수 열사가, 세원테크 이해남 열사가,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 이용석 열사가, 한진중공업 곽재규 열사가, 세원테크 이현중 열사가 따라갔다. 죽음의 행렬, 그것은 가난하고 멸시받는 노동자만의 죽음이 아니었다. 오늘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다수 민중의 자화상이었고, 민중의 삶과 생존의 거울이었다.

현실은 그랬다. 노무현정권 출범 이후 1.7일에 1명 꼴로 구속노동자가 속출했다. 이라크 파병 결정 직후 수많은 저항의 현장이 전투경찰의 군화발에 짓밟았다. 공무원 노동자의 합법적 집회 연단을 폭력으로 점거했고, 해고노동자들의 단식 농성장 침탈은 예사였으며, 이주노동자의 연행과 강제추방은 끊이지 않았다. 부안은 전쟁터였고, 청계천 노점상도 갈 곳이 없었다.

저항이 시작되었고, 손배가압류와 노동탄압을 지휘하던 노무현정권은 일순 위기에 빠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신을 투쟁 수단으로 삼단 시대는 지났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노동부장관은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없지 않느냐"는 황당한 논리를 폈다. 관계장관대책회의는 연일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폭력 시위 엄단을 지시했다. 자본가들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총파업 기도 중단 △손배가압류는 사용자들의 최소한의 자구책 △근로자의 사망 내지 분신 미화 우려 △경제 살리기를 위해 집단이기주의 불허 △손배가압류 제도를 제한하려는 정부 방침 재검토를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노동자의 잇따른 죽음 앞에 조금도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김주익 열사의 죽음은 노동자의 투쟁을 불렀고, 부안 주민의 투쟁을 불렀고, 농민의 투쟁을 불렀고, 빈민의 투쟁을 불렀다. 김주익 열사가 저항한 것은 자본과 정권만이 아니었다. 실천하지 않는,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 모두를 향한 저항의 몸짓이었다. 노동자 민중은 노무현정권의 개혁이 더 이상 민중의 언어가 아님을 현장에서, 거리에서 투쟁을 통해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1년이 지난 지금, 김주익 열사의 죽음으로 맞바꾼 현장, 지금 무엇이 바뀌었는가.

노무현정권과 자본은 위기관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열사투쟁이 끝나자 대규모 검거 열풍으로 현장을 위협하고,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적용하고, 비정규직 확산을 부채질하고, 개방을 촉진했다. 노동운동의 상층을 제도 안으로 불러들였다. 사회적 교섭 기구, 노사정위원회 재구축 시도를 통한 대노동 관리는 주효했다. 교섭을 중시한 민주노조운동 지도부의 행보는 현장의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 틈을 타고 정리해고, 노동강도 강화, 노조말살 등 단위사업장별 현장통제가 위력을 발휘했다. 연월차 휴가 축소, 임금할증율 인하 및 초과노동시간 연장, 생리휴가 무급화 등을 골자로 2003년 말 개악된 근로기준법은 자본의 현장 통제의 기준이 되었다.

주5일제 도입 시도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노동강도 강화로 연결되었고, 궤도노동자가 앞장 서서 저항했지만 국면을 바꾸지는 못했다.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교섭에서는 투쟁없는 산별 교섭이 얼마나 큰 한계를 갖는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엘지칼텍스노조의 투쟁에서 자본, 정권, 언론의 공격을 당하면서 많은 교훈을 되새길 수 있었다. 직권중재는 노동자의 투쟁을 위협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민주노조운동의 운명에 대한 우려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왔다.

노무현정권은 자신감을 얻었고, 승부수를 던졌다. 개정파견법과 제정기간제법안이 그것이다. 이 비정규법안은 자본과 정권의 의도가 압축된 총체적인 공격이라 이를만 하다. 양대노총이 총파업 투쟁 등 법안에 반대하는 투쟁을 선언했지만, 아직 정권의 태도는 단호하다. 노동자의 저항의 크기를 봐가며 여차하면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도이다. 법안 내용 손질의 폭과 속도를 가늠하는 한편, 사회적 합의주의를 재추진한다는 여러 복안을 갖고 국면을 이끌고 있다.

자본과 정권의 노동에 대한 공격은 비정규법안에 제한되지 않는다. 기업도시특별법 통과가 기정사실로 간주되고 있다. 교육, 의료, 문화가 개방되고, 파업권이 제약되고, 파견법이 확대 적용된다. 경제자유구역에 이은 기업도시 추진은 전국을 자본을 위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한-칠레에 이은 한-일자유무역협정 추진은 경제기반을 붕괴하고, 노동유연화 확대에 따라 지금도 버티기 힘든 삶의 기반을 조목조목 망가뜨리게 될 것이다. 불길하다. 경제 위기는 지속되고, 누구도 심화되는 사회적 빈곤의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 현장은 1년 전보다 나아지기는커녕 더 고통스럽다. 도처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손배가압류 때문에 신음하고 죽어간 노동자, 김주익 열사, 배달호 열사... 그리고 노동탄압에 항거하며 뒤를 따랐던 열사들의 죽음, 그것은 결코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노동자 김주익이 하늘로 간 지 1년, 누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열사가 남기고 간 한 줄 글, 한 마디 말들이다. 그것은 기념사가 아니다. 1년 전 노동자 민중은 그 열사의 뜻을 가슴으로 읽고, 마음으로 새기고, 몸으로 저항했다. 저항만이 노동자의 말, 민중의 언어를 온전하게 만든다는 것을 스스로 이해한 10월, 11월이었다. 미칠듯이 푸른 가을 하늘 한 켠에서, 지금도 열사 김주익은 초췌한 모습으로 고공 크레인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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