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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무릎

들꽃 이야기 (19)

숲 속을 걷고 나니 바지에 온통 짚신나물 열매가 달라붙어 있다. 아직은 이 정도지만 가을이 좀더 깊어지면 가막살이며 도깨비바늘, 도꼬마리, 도둑놈의갈고리나 진득찰, 멸가치 따위 열매가 다닥다닥 달라붙어 옷은 풀씨들의 종합 전시장이 되어 버릴 것이다. 풀은 발이 없어도 가시나 갈고리 또는 털이나 끈끈이를 가지고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쇠무릎도 씨앗을 싸고 있는 가시로 동물 몸에 붙어 퍼져나가는 풀이다. 길가나 밭 둘레에 쇠무릎이 쑥 자라 올라 가시를 벼뤄가고 있다. 쇠무릎 꽃은 꾸밈이 없다. 꽃잎이 없고 꽃받침과 암술, 수술로만 이루어진 볼품 없는 꽃이다. 씨앗이 여물면 꽃받침은 단단하고 날카로운 가시로 바뀌게 된다. 꽃잎도 없고 꽃받침도 다시 가시로 바꾸어 쓰는 쇠무릎은 그래서 꾸밀 줄 모르셨고 무엇 하나 버릴 줄 모르셨던 예전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쇠무릎은 두 장 잎이 마주 달리는 마디마디가 불뚝 부풀어 있는데, 이곳에 식물에 기생하는 벌레가 알을 낳아 벌레집을 만들기도 해서 더욱 혹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 모습이 꼭 소 무릎을 빼 닮았다. 그러고 보면 쇠무릎은 성질도 꼭 소를 닮았다. 무척 억셀 것 같은 인상과는 달리 참 순하고 부드러운 풀이니 말이다. 여름내 자라 올라오는 잎을 뜯어서 나물로 먹는데 아린 맛도 없고 풀내도 심하지 않다. 중국에서는 밭에 심어 재배하기도 했다는데 충분히 그럴 만하다. 잎을 말렸다가 차로 마셔도 좋다.

쇠무릎은 뿌리가 별나다. 국수 가락 같은 여러 가락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 자라는데 그 뿌리에서 인삼 냄새가 난다. 그래서일까? 이 뿌리는 민가에서 약초로도 많이 쓰여 왔다. 관절염, 허리통증, 타박상, 월경불순, 산후복통, 동맥경화, 당뇨 따위에 쓰였고 몸이 허약할 때 보약으로도 쓰였다. 쇠무릎 뿌리에는 곤충이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탈바꿈하는데 필요한 호르몬 같은 성분이 들어 있어서 이것으로 천연농약을 개발하려고도 한단다.

잡초는 머무르는 법이 없다. 안주할 밭이나 화단은 잡초 것이 아니다. 항상 새로운 땅을 향해 퍼져나간다. 돌밭이나 길가라도 좋다. 잡초에게는 잃을 것이 없다. 척박한 땅을 일구는 것 그것이 잡초의 삶이다. 노동자에게도 머물러 있거나 안주할 곳이 없다. 낡은 세상을 박차고 나가는 것 그것이 노동자의 삶이다. 노동자에게 잃을 것은 오직 쇠사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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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 , 들꽃 , 쇠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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