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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파트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4] 한 개인의 일생을 넘는 인간의 해방

1. 병상에 누운 아라파트와 팔레스타인을 바라보는 시각

아라파트

아라파트가 병상에 눕자마자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요 논점은 과연 아라파트 이후에 누가 권력을 잡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한 국가의 운영 방향은 누가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핵심이 아니듯이 아라파트 이후의 권력 관계가 팔레스타인의 장래의 핵심 문제는 아닙니다.
아라파트 이후 문제를 권력 중심으로 보는 시각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팔레스타인 내부의 권력문제로 본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은 누가 권력을 쥐느냐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미국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입니다.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아라파트가 없던 시절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은 투쟁 했으며 아라파트가 사망하더라도 그들의 해방운동은 계속 될 것입니다.

아라파트 이후를 계기로 우리가 제기하고 행동해야 할 것은 누가 권력을 쥘 것이냐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어떻게 중지 시킬 것이며 팔레스타인 내부가 어떻게 민주적으로 단결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부시와 샤론

두 번째는 아라파트 사후 팔레스타인 내부 권력 투쟁을 계기로 중동지역에 혼란이 가속화 되는 것은 아니냐는 식의 시각입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문제의 핵심을 비켜 나갔습니다. 중동지역의 평화를 해치고 혼란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팔레스타인 아니라 이스라엘과 미국입니다.

만약 아라파트의 사후 중동 정세가 더욱 혼란해진다면 그것은 팔레스타인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미국 때문입니다. 특히 부시가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미국은 더욱 강력하게 테러를 응징하겠다고 나서고 있고, 이에 이스라엘과 샤론은 ‘옳다구나’ 박수를 치며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테러’라고 밀어붙이며 공격할 것입니다.

아라파트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떠나 어쨌든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반면에 이스라엘과 미국의 입장에서는 아라파트가 다른 정치세력에 비해 요리하기 쉬운 상대였습니다. 하지만 아라파트가 물러나게 되면 그들이 요리하기 어려운 세력들이 권력 참여를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이스라엘과 미국은 자신들이 요리하기 쉬운 세력을 권좌에 앉히려 하는 것과 함께 요리하기 어려운 세력에 대해서는 권력 가까이에 가지 못하도록 공격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선별적인 지원과 선별적인 제거를 위해 무력공격과 공작정치를 강화할 것이며 이것이 중동지역의 평화를 해치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2. 두가지 사건과 내부 개혁

이스라엘과 미국의 행동과 함께 중요한 것은 팔레스타인 내부를 어떻게 개혁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부패에 관한 얘기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래 두가지 입니다.

① 시멘트 사건

서안지구에 건설중인 고립장벽

2004년 2월 끔찍한(?)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아니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는 새로운 일이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오히려 외부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지원하는 활동가들에게는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할만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멘트 사건.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추가로 빼앗고, 그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서안지구에 짓고 있는 장벽과 이스라엘 점령촌 건설에 사용되는 시멘트를 팔레스타인 회사가 이집트에서 수입해서 이스라엘 회사에 넘겼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시멘트 회사를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총리인 아흐마드 쿠레이아(Ahmad Qureia)가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쿠레이아는 이미 소유권을 다른 가족에게 넘긴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② 무사 아라파트 사건

무사 아라파트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

2004년 7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인 야세르 아라파트가 자신의 조카인 무사 아라파트(Musa Arafat)를 팔레스타인 보안국장(Palestinian General Security Servie)에 임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수천 명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이 집회를 열고 무사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부패의 상징이라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이 집회에는 아라파트가 중심으로 있는 정치조직 파테(Fateh)의 알 아크사 순교단(Al-Aqsa Martyrs' Brigades)까지 참여 했으며, 이 사건은 인티파다 이후 성장한 팔레스타인 내부의 새로운 해방운동 세력이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 외부에서 투쟁을 벌여온 세대에 대해 어떤 감정과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라파트는 파타와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을 결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수십 년간 요르단, 레바논, 튀니지 등지를 오가며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펼쳤고, 이스라엘과의 협상 진전에 따라 국내로 귀환하여 팔레스타인 현대사에서 최초로 선출된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와 그의 동료들이 수십 년간 죽을 고비를 넘기며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투쟁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도 않으며 그들의 투쟁에 존경을 표합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그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서도 개혁을 요구합니다. 비합리적인 권력의 선출과 독점, 부패, 투명하지 않는 재정 등은 극복해야 될 과제입니다. 이것은 자치정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팔레스타인 최대의 정치세력인 파테조차 자신의 지도부를 조직원들 스스로 선출하지 못하고 몇몇 권력자들만이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패한 정부가 평화협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혹은 안하는-것은 당연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유지하고 휘둘러온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안에서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정부가 민중들의 입장에서 행동하고 협상할 것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의 결과가 그동안 진행되어 왔던 평화협상이 ‘평화’를 위한 협상이 아니라 ‘점령’을 지속하는 협상이 되도록 했던 것입니다.

3. 선거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로 두 동강난 팔레스타인. 두 지구 안은 더 많이 쪼개져 있는 상태

팔레스타인이 내부로부터 민주화 되기 위해서는 새로 선출될 대통령은 반드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현재로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며, 민주적인 선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전제 조건을 풀어야 합니다.

첫째 이스라엘이 선거를 보장해야 합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 도시와 도시, 마을과 마을이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 분리 ․ 고립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제대로 된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포함한 전역에서 ‘형식적으로’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은 딱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리하기 쉬운 세력이 승리할 것이 확실시 될 때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 이스라엘은 선거보다는 현재의 권력 핵심들끼리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방법을 선호하게 될 것이며 이를 위해 공작 정치를 펼칠 것입니다.

두 번째 현 지도부가 선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설사 자신들이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말입니다. 해방운동은 내부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일 때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내부가 민주적이지 못할 때 해방운동을 부패하고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점점 약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과 부패 문제로 역량을 약화시키지 말고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독립을 향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4. 하나이지 않은 팔레스타인 해방

팔레스타인이 해방된다는 것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 국가를 건설한다는 의미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민중들이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곧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앞으로 싸워야 할 대상이 이스라엘과 미국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패한 권력을 쥔 채 놓지 않으려는 권력자, 다른 민중들의 고난과 가난을 외면하는 거대 가문, 이윤을 위해서라면 장벽 건설에 쓰일 시멘트까지 팔아먹는 자본, 보수적인 이슬람 논리를 내세우며 여성들을 억압하는 남성들 이 모든 것들과 차근히 싸워서 민중 스스로 해방 되어야 합니다. 부정과 부패에 지배당한 채 팔레스타인이 독립을 하게 된다면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민족이 해방된 기쁨과 함께 지배자가 유대인에서 아랍인으로 바뀌는 현실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

따라서 아라파트의 퇴장을 계기로 우리가 지원하고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냐 뿐만 아니라 이것을 계기로 이스라엘과 미국이 어떤 노략질을 할지 감시하고 저항해야 하며, 권력의 변화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문제의 뿌리에 좀 더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사회전반을 어떻게 민주화하고 개혁할 것이냐에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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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 , 아라파트 ,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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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새슬

    건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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