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노무현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발언

어처구니없는 수구숭미세력 혹평, 민주노동당 환영 논평도 과도

국제문제협의회(WAC), 로스엔젤레스 동포와의 간담회에서 대북정책과 관련한 노무현 대통령 발언을 둘러싸고 시비가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및 남미 순방길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은 13일 오전 로스앤젤레스(LA)를 방문, 대북 무력행사와 봉쇄정책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미국의 민간외교정책단체인 국제문제협의회(WAC) 초청 오찬연설에서는 "대북 무력행사는 협상전략으로서의 유용성 면에서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북 봉쇄정책은 불안과 위협을 장기화시킬 뿐이고, 붕괴는 한국 국민들에게 큰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에 대화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또 LA 동포와의 간담회에서는 "아무리 우방, 동맹이지만 남의 나라 군대를 친구라 해서 앞에 세워 놓고 인계철선이라 이름 붙여 절대 제거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자주국가 위상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잇따른 대북정책 관련 발언을 두고 주요 일간지는 일제히 사설을 내고 비판 또는 지지를 표명했다. 조중동문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한-미관계를 해치는 적절치 않은 발언이라는 입장을, 한경대는 대체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한 발언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나라당은 논평을 내고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의 네오콘 쪽에서 제기한다는 '북한 선제공격설'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장표명을 하기에 앞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핵보유를 용납할 수 없는 우리 외교의 기본적인 입장부터 천명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민주노동당 대표는 "노 대통령이 대북 선제공격론과 대북 봉쇄를 반대하고 대화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밝힌 것은 참 오랜만에 잘한 발언으로 환영한다"고 밝히고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고 한 발언에 이어 잘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지지 표명을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 관련 발언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재선으로 기존 일방주의 대외정책의 지속과 대북 공세가 예고되는 시점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국내 정치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한-미간, 남북간, 6자간 흐름에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내용에서 확인된 현 정권의 대북정책이 미국의 강경세력의 입장과 일정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특별히 새로운 사실이 아니며, 기존의 대북정책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노무현정권의 평화번영정책은 주지하듯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에 기초한 아시아 단일시장 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단계 북핵 문제 해결, 2단계 남북협력 심화와 평화체제 토대 마련, 3단계 남북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구축을 줄거리로, 여기에 동북아경제 중심 추진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사실상의 대북 흡수전략 기조를 의미하는데, 말하자면 북을 동북아 단일시장으로 재편한다는 정치적, 경제적 구상을 내포한다. 따라서 평화번영정책은 핵 문제, 평화체제 등 구래 남북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긍정적 측면과 한반도 금융, 물류 허브 형성을 통해 초국적자본의 이해를 전면화 한다는 반동적 측면을 동시에 담고 있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위해 앞으로 3년간 예산을 확대 재편해서 해공군력과 정보력을 강화하고, 미사일 방어체제(MD) 구축을 완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미 병력을 줄이는 대신 첨단 전력 위주로 군사력을 재편해 나가고 있다. 최첨단 무기로 재무장하고, 군사조직을 재편해 동북아 신속기동군으로서의 위상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작년 11월 부시 대통령이 발표한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도 이러한 전략적 내용이 반영된 것이다.

주한미군 이전 문제나 국방비 증액 추진 등 노무현정권의 평화번영정책과 자주국방론은 미국의 이러한 정책과 대치되지 않는다. 자주국방론은 오히려 미국의 MD정책과 철저히 조응하고 있다. 국방부는 15일 국회 설명에서 '협력적 자주국방' 추진을 위해 전력투자비를 매년 11% 가량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감축에 따른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다. 또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예산 비율이 현행 2.85% 수준에서 3.2% 이상으로 늘어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조처라기보다 오히려 군사적 긴장을 확대하는 내용으로, 본질적으로는 미국의 대북 군사전략과 공동의 이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보수와 개혁 세력간 정쟁의 수단이 될 수 있고, 미국의 강경파 또는 부시정권과 일정한 마찰을 빚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노무현정권이 선제공격입론과 한반도 전쟁을 공공연히 거론하는 미 강경파의 입장에 반대하는 것 자체로 긍정성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노무현정권이 미국과 얼마만큼 대립각을 세울 수 있을 지, 그리고 진정한 한반도 평화 실현과는 거리가 먼 자주국방정책의 모순을 어떻게 풀어갈 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이런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혹평하는 수구숭미세력들의 준동은 거론할 것도 없거니와, 그걸 잘 한 발언이라고 환영 의사를 논평한 것도 과도하고 신중치 못한 처사인 셈이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한-미동맹의 정치적 군사적 관계를 단절한다는 선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현재로서는 파병연장안 철회 입장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여기서 나아가 신국가안보전략과 미사일방어전략에 기초한 미국의 동북아 지역 군사 도발에 단호한 반대를 표명하고, 국방비 증액을 핵심으로 하는 자주국방정책도 단호히 폐기해야 한다. 진정한 한반도 평화는 남북간 직접 대화를 통한 평화협정 추진과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민중의 뜻이 반영되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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