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또 정권의 교란전술에 휘말리나

22일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 비정규법안 '유보' 발언, 현장 술렁
투본회의, '유보' 물리치고 '폐기' 무기한 총파업투쟁 결의를

민주노총은 비정규법 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최초의 조합원 총투표를 치렀다. 지난 13일 전체 조합원 58만9천4백68명 가운데 34만2천1명(58%)이 참여해 23만1천8백95명(67.7%)이 찬성했다. 10월 25일부터 11월 12일까지 진행된 조합원 총투표 결과는 어려운 현장 상황을 감안해 볼 때 법안에 대한 노동자의 분노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었다.

국회 법안 처리 일정으로는 오는 26일부터 12월 1일까지 환노위 법안심의 일정이 잡혀 있고, 26일 환경관련법 상정과 29일 비정규법안 상정이 예고되어 있다. 이미 국회에 제출돼 15일이 지난 노동관계법안은 정부의 비정규직법안을 비롯해 모두 26건이며 상임위에 일괄 상정돼 전체회의에서 논의하게 된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비정규법안이 제출된 시점에서부터 대의원대회, 투본회의, 중집-중앙위 연석회의 등 주요 회의를 열고 개악 저지를 위한 전술 논의를 진행해왔다. 특히 지나 19일 중집-중앙위 연석회의에서는 정부가 개악안을 철회하지 않을 시 26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갈 것을 선언하고 세부 전술을 논의하는 등 본격적인 총파업투쟁 준비에 들어갔다. 이날 회의는 개악 저지를 위한 결의를 모으는 자리로 큰 이견이 없었고, 26일 하루 파업이 아니라 개악안을 폐기하는 때까지 투쟁한다는 결정이었다.

한편 민주노총은 22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비정규법안 철회 등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기 위한 '집중 교섭'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수호 위원장은 "정부 당국이 교섭에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파업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강경한 입장을 반복해왔던 정부 여당은 마치 '교섭' 요구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부영 의장 발언을 통해 '연내 처리 유보' 의사를 피력했다. 당일 오후 이부영 의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는 양대노총 위원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국회 일정에 맞춰서 밀고가지 않겠다"고 말함으로써 내년 2월 임시국회 때까지 유보한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연내 입법화를 고집했던 노동부도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는 대화와 타협의 기본원칙을 견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악안이 얼마나 심각한가는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다. 그리고 개악안을 제출하고 밀어붙이는 자본과 노무현정권의 의도도 많이 폭로된 바 있다. 한 연맹 간부의 표현대로 '10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총공세'이기도 하다. 다만 주목할 것은 왜 지금 시점에 자본과 정권의 노동유연화의 법제도적 완성을 위한 총공세가 펼쳐지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자본과 정권의 행보가 얼마나 치밀한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본의 축적 위기의 심화와 무한 경쟁 속에 출구를 찾지 못하는 자본 운동 경향의 산물한다. 자본과 정권은 이미 전 산업의 구조조정과 사회 전 부문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속도를 높여왔다. 여기서 최근에 제출된 비정규법안은 노동유연화 공세의 법제도적인 완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총공세는 위축된 노동운동에 대한 자본과 정권의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노동유연화의 강도를 높이는 것 외데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는 자본의 절박한 사정이 배경을 이루기도 한다.

자본과 정권은 노동유연화를 더 높여야 한다는 노골적인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 가운데 법제화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사안이 중대하고 노동자의 저항이 예고된 것인만큼 반발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법안을 관철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 상반기와 여름 투쟁에서 노무현정권은 한편으로는 대화와 타협을 거론하며 사회적 합의기구를 추진하고, 한편으로는 직권중재와 대기업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분할 교란하는 각종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붓는 등 현장탄압을 병행하였고, 이 결과 정국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이 여세를 몰아 공무원투쟁 탄압과 비정규법안 법제화 강행 등 일방적인 공격을 감행해왔다.

이런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린우리당 점거 투쟁은 자본과 정권의 의도를 사회적으로 알려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연맹, 지역본부, 단위노조 등 현장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총파업투쟁을 결정했다. 행정파업, 부분파업이 아니라 총파업으로 맞서야 그나마 법제화를 막아낼 수 있다는 결의를 모아왔다. 이런 점에서 이번 민주노총 조합원의 총투표에 의한 총파업투쟁 결정은 국회에 제출된 비정규개악안을 폐기하는 것, 수정이나 유보가 아니라 원천무효화 하는 투쟁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22일 양대노총과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과의 면담은 불길한 징조를 보여주고 있다. 법안 폐기를 위한 총파업투쟁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유보'를 준거점으로 한 '교섭'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또 다시 정부의 교란 전술에 당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우려이다. 양대노총 위원장과 이부영 의장의 면담 사실이 알려지자 현장은 크게 술렁거리는 분위기다. 여기에다 오늘 오후에 열릴 투본회의에서 지난 중집-중앙위원 연석회의 결정을 뒤집는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어 긴장이 확산되고 있다. 가령 4시간 파업으로 전환한다든지, 하루 파업으로 바꾼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거론된다면 이는 명백히 정부의 교란 전술에 휘말리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히 환기해야 할 점은, 올 한 해 사회적 교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축하기 위해 공을 들이던 노무현정권의 태도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자본과 정권의 입장에서 법제화는 빨리 서둘러야 할 문제이지만 내년 2월로 미루더라도 노동자의 저항을 관리하는 가운데 추진된다면 조금도 나쁠 게 없기 때문이다. '유보'는 총파업투쟁에 겁을 먹은 노무현정권의 양보가 아니라, 노동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치밀한 공작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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