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의 남미이야기](2) - 볼리바르혁명

21세기의 반항아 유고 차베스, 대안 경제체제와 민중헌법 수립
“누구도 볼리바르혁명의 민주적 성격 시비 걸 수 없다”

21세기 돈키호테, 유고 차베스

갑옷을 입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어느 시대나 시대의 대세에 저항하는 돈키호테와 반항아는 존재해 왔다. 그렇다면 21세기의 돈키호테는 누구일까? 21세기는 한 마디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대이다.

유고 차베스
쉽게 말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시대다. 한국 경제도 1997년 이의 희생자가 되어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 사회민주주의라는 유럽의 전통적인 진보정권들도 ‘제 3의 길’ 운운하며 이에 순응하기에 여념이 없다. 거역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같은 흐름에 도전하고 있는 21세기의 반항아는 단연코 베네주웰라의 ‘볼리바르혁명’, 그리고 그 지휘관인 유고 차베스 대통령이다.

물론 북한과 쿠바도 대세에 저항하고 있지만 이는 잔존 사회주의의 수세적 저항에 불과하다. 또 새로운 진보로 주목을 받으며 집권한 브라질의 노동당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우파보다도 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베네주웰라의 경우 남미를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킨 전설적인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를 따 국가 명칭까지도 ‘베네주웰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꾸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저항하는 볼리바르혁명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특히 베네주웰라는 쿠바혁명과 같은 기존의 혁명과 다르게 혁명을 민주적 선거의 틀 속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다.

남미 해방의 혁명가인 시몬 발리바르의 동상

베네주웰라는 다른 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빈부 격차가 극심한 나라이다. 그러나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군사독재의 남미 국가들과는 달리 민주주의를 지켜왔다. 세계 5대 산유국으로 석유에서 나오는 재원으로 빈곤층에게 일정한 복지를 제공해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들어 석유값이 떨어지고 경제위기가 남미를 강타하면서 베네주웰라도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해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식료품값을 대폭 인상했다.

볼리바르혁명, 불패의 신화

이는 빈민들의 폭동으로 이어졌고 군을 동원한 진압작전은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군이 국민에게 총격을 가해야 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젊은 장교들은 ‘볼리바르운동’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92년 진보적인 혁명을 위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한다. 그리고 그 지도자인 차베스는 2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와신상담한 차베스는 출옥 후 전국을 돌며 혁명의 필요성을 연설하고 지지자를 조직해갔고 9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소외층의 지지에 의해 승리했다. 볼리바르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대안수퍼마켓에서 파는 모든 식품의 포장에는 볼리바르 헌법이 인쇄되어 있다.

주목할 것은 이후의 과정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불리한 세계적 여건에서도 세 차례에 걸친 수구세력의 쿠데타를 분쇄함으로써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집권 후 차베스는 진보적인 복지 및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는 한편 국호를 바꾸고 국민투표에 의해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 협동조합과 노동자 자주관리와 같은 대안적 경제체제를 골자로 하는 급진적 헌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침략행위라고 비판하고 이라크를 방문해 후세인을 만나는, 겁 없는 독자노선을 펴나갔다.

그러나 노는 땅에 농민들에게 경작권을 부여하는 농지법 등 49개의 혁명적인 법안을 신헌법의 대통령의 권한에 의해 제정하려고 하자 수구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국의 개입과 사전인지설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는 이 쿠데타에 의해 차베스는 카리브해의 고도로 유배됐고 수구세력은 상공회의소 소장을 신임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자본의 총파업에 따라 생겨난 식료품 난을 해결하기 위해 세운 대안수퍼마켓의 메니져가 대안수퍼마켓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자 차베스를 지지하는 빈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통령궁으로 몰려 왔고 차베스를 지지하는 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 마셀로 아르젤라는 “결국 민중들이 우파의 반혁명으로부터 차베스 대통령과 볼리바르혁명을 구했다”며 당시의 감격을 잊지 못해 했다.

수구세력의 저항과 자본가의 총파업 막아내

복귀한 차베스 대통령은 친기업 인사를 경제장관에 임명하는 등 유화책을 폈다. 이에 자신을 얻은 수구세력은 2차 쿠데타에 돌입했다. 차베스를 몰아내기 위해 경제를 완전히 마비시키는 자본 총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석유회사의 중역들은 보수적인 노동귀족인 석유노조의 지지를 받아 젖줄인 석유의 생산과 배급을 중단했다. 기업가들은 기초식료품 등 생필품의 생산, 보급까지 중단했다.

파업은 무려 두 달 이상 계속됐지만 정부는 풀뿌리 민중조직들과 연대해 대안적 생산조직과 보급망을 만들어 파업을 이겨냈다. 그 결과 차베스정권은 석유를 장악하고 있던 수구세력을 몰아내고 석유라는 핵심적인 전략적 고지를 장악하게 됐다. 그리고 이 재원을 가지고 진보적 프로그램들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러나 수구세력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 사태의 최종 해결책이라며 차베스의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문맹 퇴치프로그램인 미션 로빈슨의 선전포스터

차베스는 제3차 쿠데타라고 불리는 이 소환투표를 전격 수용했고 지난 8월의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차베스는 선거 과정에서의 진보적 담론과 포퓰리즘적 행태, 수구세력의 탄핵 시도 등 여러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집권 후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추종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볼리바리안, 두 가지 위기 어떻게 해쳐 나가나

차베스 대통령은 카스트로를 존경한다고 말해왔다. 이와 관련, 서방언론에서는 그를 카스트로류의 독재자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다수 베네주웰라 국민이 민주적 과정을 통해 선출한 민주적 지도자이고 그의 프로그램은 극심한 양극화라는 남미의 현실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해 다수 국민들이 선택한 대안이다. 즉 남미 전문가 마타 하네커의 말대로 “이제 미국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볼리바르혁명의 민주적 성격에 시비를 걸 수 없게 됐다.”

문제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거대한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남미의 작은 나라 베네주웰라의 실험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차베스는 다양한 진보세력의 세계적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제 3세계와 달리, 베네주웰라가 갖는 장점은 석유, 특히 최근의 고유가이다.(사실 차베스 대통령은 강경론을 통해 산유국의 고유가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당사자이다)

결국 볼리바르혁명이 안고 있는 위기의 요소는 두 가지다. 우선 고유가가 무너질 때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2006년 차베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서 개헌을 통한 장기집권이냐, 아니면 권력 양도를 통한 혁명의 제도화냐는 어려운 선택에 부딪힐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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