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사회 극단화 기름 붓는 경제정책

경제장관간담회, 05년 경제운용방향 세부실천계획 등 논의
원로들 '2005희망제안'으로 들러리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지난 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경제장관간담회를 개최, 2005년 재정 조기집행 계획', '05년 경제운용방향 세부실천계획', '종합투자계획 세부추진계획' 등을 논의하고, '대규모 국책사업 추진현황'을 점검하였다. 약 열흘 전인 12월 29일 '경제민생점검회의 겸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확정한 '2005년 경제운용방향을 기초로 하고 있다.

20여 명의 관계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간담회는 올해 정부의 경제정책의 방향과 계획이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참석자들은 2005년 경제운용 목표를 '일자리 40만개 창출을 위한 5% 성장'으로 놓았다. 이를 위해 상반기 재정을 조기 집행하는 한편, 종합투자계획에 대한 신속한 집행 절차를 마련, 사업선정·설계·시공·운영의 각 과정에서 민간 참여를 확대하여 '전 국민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 이밖에 중소·벤처기업, 서비스산업의 활성화 등 중점추진과제에 대해서도 별도의 세부 추진계획을 제시하기로 하였다.

한편 경제장관간담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6일 '새로운 공동체 건설'과 '일자리 창출'을 기치로 이른바 사회 각계 원로와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2005희망제안'을 발표하고, 종교계, 시민사회, 학계, 문화계 인사 170명이 제안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2005희망제안'은 △경제 사회 발전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실시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상생의 공동체 만들기를 요점으로, 정치권에는 정쟁 중지를, 기업에는 인간적이고 생산적인 패러다임 구축을, 노동조합에는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 자제를, 지식인에게는 사회통합에 앞장설 것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초 주요 인사들의 신년사와, 이른바 원로들의 희망제안과, 경제장관간담회의 계획 발표에서 공통의 관심사로 표현되는 단어, 그것은 '사회통합'과 '일자리 창출' 두 가지로 압축된다. 사회통합 이야기는 아무리 쳐준다 해도 새해 덕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아무도 사회통합에 이르는 구체적인 경로와 방법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대립, 갈등, 분열을 죄악시하고, 화해 대화 타협을 이상이라고 선전하는 탓에 이제는 그리 낯설지도 않는 풍경이다. 그 선전 주체는 항상 가진 자, 지배자들이고, 그 선전을 듣는 다수 사람들은 대립, 갈등, 분열의 현장에서 싸우지 않고서는 삶을 버틸 수 없는 민중들이다. 오늘날 사회의 대립, 갈등, 분열의 원인이자 배경인 신자유주의 자본정책이 청산되지 않는 이상 '사회통합' 방안을 그 누구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난 몇 년동안 대립, 갈등, 분열의 현장에서 익히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획하고, 자본이 화답하고, 원로들이 들러리를 서서 내놓은 '일자리 창출을 통한 사회통합 구상', 그러나 이 구상은 사회통합은커녕 대립, 갈등, 모순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경제장관간담회에서 확인된 '일자리 창출을 통한 사회통합 구상'에는 성장 우선을 말하든, 성장을 통한 분배를 말하든, 시장자본주의의 경쟁 체제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아야 분배도 고려 가능하다는 자본의 담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부는 올해 재정의 59%를 조기 집행, 상반기에만 33만 개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방침이다. 상반기 국민임대주택 건설사업 규모의 70%, 중소기업 개선사업의 74%, 소상공인 지원사업의 66%를 집행하고, 자본도 삼성 21조 원, LG 11조7천억 원, 현대차 6조7천억 원을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비로 투자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의 일자리 창출은 실업과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사회안전망의 관리와 노동유연화 확대를 위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는데 힘을 쏟았지만 결과는 고용의 질 악화로 이어졌다. 임금근로자 중 정규직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낮아진 반면 일용직의 비중은 높아지는 추세가 이를 말해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월 평균 신규 일자리 수가 42만 개 늘었는데, 올해 연간으로는 평균 41만 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일자리 수는 늘어났지만 고용의 질은 현격히 떨어졌다. 노동부의 분석 결과만 보더라도 작년 8월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는 540만 명으로 1년 전보다 80만 명 정도 늘었고, 주당 36시간 미만의 불완전 취업자도 작년 1∼11월 255만5천 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의 239만7천 명보다 15만8천 명이 증가했다. 특히 29세 미만 청년실업자는 지난해 11월 현재 36만 명으로 전체 실업자의 절반에 육박한다.

실업과 고용불안은 곧 노동의 불안정화로, 사회 위기의 심화로 이어져왔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근로소득보전세제 도입, '일을 통한 빈곤탈출' 강요, 차상위계층으로 한정짓는 수급대상 정책은 아무리 일해도 계속 빈곤이 재생산되는 '사회적 빈곤'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위기의 근본적인 처방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정부가 밝히고 있는 일자리 창출 방안 어디에서도 고용의 질을 고려하는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청년실업자, 저소득층, 노인 등을 대상으로 제공하려는 일자리는 간병인, 보육도우미, 정부자료DB구축 요원 등 이른바 '사회적 일자리'로 불리는 것으로 주당 근무시간 30시간 미만의 임시직, 일용직이다.

또한 일자리 창출을 개방화 시장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고소득층이 국내 소비를 줄이고 해외에서 돈을 쓰는 것은 국내 서비스업 발달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유학·골프·관광·의료 목적으로 해외에서 지출된 98억달러 규모를 고려, 시장개방 확대를 통해" 이를 붙잡는다는 기조의 대책을 세우고 있다. 1/4분기 중 국무총리가 주재하고 사회부문 주요 장관들까지 참석 범위를 확대한 '서비스산업 관계장관회의'를 신설하고, 올해 안으로 교육·의료·법률 등을 중심으로 서비스시장 개방 종합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교육, 의료 법률 시장 개방은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기에 앞서 공공성 악화와 노동시장 유연화와 직결되는 것으로 민중의 기초적인 삶을 위협, 심각한 사회모순을 동반하게 된다.

정부가 제출한 일자리 창출 계획에는 사회 극단화 문제를 해결할 분배에 대한 고민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성장 논리 속에 제출된 일자리 창출 계획은 개방과 투기로 집중되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 통과된 기업도시법, 경제자유구역법개정, 기금관리기본법개정, 민간투자법개정 등은 자본의 투기를 부추기는 동시에 최후의 보루인 사회 공공 영역마저 자본 시장으로 내모는 제도적 기능을 할 것이고, 여기에다 국민연금법개정과 비정규법안 등이 2월 국회에서 처리되면 사회 극단화의 모순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런 법제도의 기반 위에서 서비스산업 확충, 노동시장 유연성과 안정성 제고, 일자리 창출과 일을 통한 빈곤탈출, 개방형 통상정책 등으로 요약되는 올해 정부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 정치위기와 사회안전망의 위기를 내포하는데, 이것이 어찌 사회통합으로 연결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 다수 민중에게 사회통합이란 말은 그저 지나가며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 아마 한 달 채 안 갈 것이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설득력이 없거니와 대립, 갈등, 분열의 현장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말 "해고가 조금 쉬워지면 많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구조"라면서 "확고한 직업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쪽(정규직)에서 근본적으로 양보해 줘야겠다"고 말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지난 12월 28일 중앙일보노동정책포럼에서 민주노총에 대해 "조건부 노사정위 가입을 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피력했고, 1월 6일 "노사관계로드맵을 노사정위에서 다양한 논의를 통해 의견을 모으고 금년 중에 입법화를 추진하겠다"고도 밝혔다. 대립, 갈등, 분열의 현장을 관리하기 위한 발빠르고 다각적인 포석이라 하겠는데, 이른바 원로들까지 가세하는 모양이니, 대책없이 다급하고 쫓기기는 지배하는 쪽이 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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