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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대통령 선거를 생각하며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9] 이스라엘은 '평화를 위한' 협상에 나서야

2005년 1월 10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표와 같이 압바스가 당선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보다 민주적이고, 민중적인 정부로 거듭나길 바라며, 저의 생각 몇가지를 적어 봅니다.


1. 이스라엘 덕분에 치러진 선거?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군사점령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생활 곳곳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억압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선거가 실시 되었습니다. 언론들은 중동지역에서 아주 드물게 선거가 민주적이며 평화롭게 치러졌다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상황을 조금 거꾸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만약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될 것 같았다면 과연 이번 선거가 그렇게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었을까요? 저만의 억지 주장일지는 몰라도 만약 이스라엘에 대해 지속적인 해방운동을 벌일 것을 주장하는 후보가 당선될 것 같았으면 이번 선거가 그렇게 쉽게 치러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선된 마하무드 압바스

투표가 있기 전부터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국제 평화산업세력들은 압바스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그에 발맞춰 서방 언론들은 압바스의 선거운동을 자세히 보도하면서 압바스야말로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고,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평화를 원한다면 그를 지지하라는 투로 계속 보도를 해 댔습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자 마자 마치 모두 준비했다는 듯이 압바스가 당선되었으므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에 새로운 희망이 생겨날 것이라는 표현을 아낌없이 쏟아 냈습니다.

2. 누구에 의한 선거?

압바스가 당선 되었으니 평화협상에 큰 진척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말 그대로 ‘희망’에 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압바스이가 당선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팔레스타인이 처해 있는 상황이 누가 자치정부의 대통령이 되어도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아주 좁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선거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첫번째 대통령 선거(아라파트 당선) 이후에 이미 치러졌어야 할 대통령 선거가 자치정부의 거부로 여러해 동안 치러지지 못하다가 아라파트의 죽음을 계기로 공식 대통령 선거를 치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말 그대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 선거일 수 밖에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대통령은 1967년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또다시 식민지가 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만 선출 됩니다. 어쩔 수 없이 현재의 이스라엘에 거주하게 된 팔레스타인인들이나 수백만의 난민들은 선거에 참여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가지지구와 서안지구에 거주하는 등록된 팔레스타인인들만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스라엘에 의해 7-8천여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구금되어 있습니다. 이 속에는 여러 조직과 지역 사회의 주요한 활동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팔레스타인 사회의 많은 주요 인물들이 감옥에 그대로 갇혀 있는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인 것입니다.

3.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군인에게 가로막힌 무스타파 바르구티 후보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은 동예루살렘을 자신의 영토로 영구화하려는 이스라엘의 방해로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계속된 이스라엘의 주장은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영토이니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선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예루살렘은 67년 이스라엘의 점령 이전에는 분명히 아랍인들의 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도로와 검문소에 여전히 군대를 배치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투표장으로 가는 것을 수시로 방해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권과 경제 생활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검문소가 선거과정에서도 팔레스타인의 민주주의 가로막는 장애물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이스라엘은 압바스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의 이동을 제한함으로써 선거운동을 방해 했습니다.

민주적으로 치러졌다는 팔레스타인 대통령 선거의 이면에는 이스라엘의 비민주적인 행태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4. 선거, 평화, 민주주의

선거와 선거 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도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였고, 점령촌을 건설했으며, 고립장벽을 확대했습니다. 선거 이전에 국제사회에 대고 ‘평화로운’ 선거를 보장하겠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거짓 몸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기간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에 맞서 자신의 마을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무력을 사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국제평화산업세력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비난을 퍼부었을 것입니다.
‘거 봐 내가 뭐랬어. 팔레스타인인들은 민주주의 할 능력도 생각도 없어’
‘저들은 오직 폭력만을 즐길 뿐이야’ 이렇게 말입니다.

잠깐 한국 언론인 ‘브레이크 뉴스’ 기사를 볼까요?

‘지난해 11월 아라파트 사후 구심점을 잃은 상황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7명의 후보와 경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을 끌었다. 선거 내내 폭력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것도 팔레스타인 사상 최초의 민주선거라는 평가를 내리는데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압바스 당선 ‘이제 중동에 평화 오려나’] 가운데


이 말은 팔레스타인의 선거는 폭력을 동반할 것으로 예상 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말인가요? 어떤 이유에서 팔레스타인 선거에서 ‘폭력 상황’을 예상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저는 이것이 ‘브레이크 뉴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 즉 그동안 ‘팔레스타인=폭력’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 놓은 인식의 함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폭력 행위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더래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까요? 미국 대선에서 폭력 행위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팔레스타인에서 폭력 행위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특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유럽과 미국의 백인들이 하는 것이고, 다른 인종이나 지역에서는 민주주의를 할 능력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인종주의적 시각을 국제사회는 하루 빨리 극복해야 합니다.

5. 선거 이후 그리고 평화

‘우리는 그의 당선이 궁극적으로 테러 문화를 추방하는 계기로 승화되길 기대한다’
[압바스 당선, 중동 평화 청신호] 가운데. 부산일보


저는 이런 판단에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수십년간 팔레스타인을 군사 점령한채 사탕 사러 가던 3살 난 어린이를, 책가방 메고 학교 가던 13살 난 어린이를 사살하고, 학교에 탱크를 몰고 가서 교실에다 사격을 해대고, 평화롭게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에게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 누구입니까? 팔레스타인 지역 테러 문제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국가테러리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무엇을 ‘테러’라고 규정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열정적으로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벌이는 단체와 활동가들 모두를 ‘테러리스트’라 부르고 그들의 활동을 싸잡아 ‘테러’라고 비난합니다. 심지어는 외국의 평화운동가에게까지 ‘테러리스트’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테러’의 의미는 실제로 테러를 했느냐 안했느냐의 의미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에 반대 했느냐 찬성했느냐가 기준입니다. 그런데도 국제사회의 주류는 지극히 편파적인 그들의 용어를 그대로 받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 이라크 해방운동 진영을 테러집단으로 몰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테러’에 반대합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말 그대로의 ‘테러’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 말하는 반테러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나쁜 이미지를 뒤집어 씌우고 그들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평화협상의 성공 여부는 지금부터 아바스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 보안군과 무장세력을 확실하게 장악해 자치정부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아바스의 당선에 거는 기대] - 한겨레


저는 이 글과도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먼저 무장 세력을 확실하게 장악해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은 100% 미국과 이스라엘의 희망입니다. 만약 그런 의미의 글이라면 말 그대로 협상에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를 짚어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말하는 무장 세력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스라엘이 말하는 무장 세력이란 ‘무장한’ 세력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보다 강하게 주장하는 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장’은 핑계입니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은 무장과 폭력을 핑계로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자치정부가 통제하고, 그 자치정부를 다시 이스라엘이 통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라파트 시절에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무장세력을 통제해라, 그렇지 않으면 평화도, 경제적 지원도 없다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압바스를 평화의 선구자와 같은 이미지로 만들어서 다른 세력을 통제하는데 나서라고 압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조선의 일제 식민지 시절, 임시정부가 국내외의 독립운동세력을 통제해서 그들로 하여금 해방을 향한 강력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 채 일본 정부와 협상을 한다면 그 협상의 결과가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와 같은 논리로 이 문제를 보면 답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평화협상의 성공 여부는 압바스에게도, 자치정부에게도 달려 있지 않고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달려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명한 ‘오슬로 협정’입니다. 오슬로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은 너무 많은 것을 양보 했습니다. 평화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땅 약 80%를 빼앗기는 것도 받아 들였고, 그 나머지 땅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까지 받아 들였습니다. 평화를 위해 ‘사기’ 당한 오슬로 협정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언제, 어떻게 진행될지도 모르는 ‘독립국가’라는 말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지만 아무 것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철수하지도 않았고,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보장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슬로 협정을 통해 ‘그래도 이젠 무언가 변하겠지’ 하고 몇 년이고 마냥 기다리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무력 공격과 군사 점령을 확대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미국이 뒤에서 지원해 주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평화’를 얻기 위해 땅도, 주권도, 자존심도 내주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주검과 계속되는 학대 행위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약 20%의 땅도 가자지구는 이미 몇 년째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고, 서안지구도 이스라엘이 절반 가량을 추가로 합병하기 위해 장벽 공사를 진행 중입니다. 이것이 그동안 진행되었던 ‘평화협상’의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이제 더 무엇을 내놓아야 팔레스타인이 협상을 통해 평화를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스라엘이 원하는대로 90% 땅을 내어 주고, 10%의 땅에서 외부와 완전히 차단 당한 채 숨죽이며, 국제 사회의 원조로 근근히 목숨만 이어가는 것이 평화입니까?

저는 평화협상을 지지합니다. 제가 지지하는 것은 말 그대로 ‘평화를 위한’ 협상입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미국’과의 평화 협상의 성공 여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평화와 인권 그리고 존엄성을 보장하는 그 순간 평화협상은 성공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이번 선거를 보며 들었던 저의 짧은 생각입니다. 제게 부족한 점을 망설임 없이 지적해 주시면 계속 공부하고 함께 토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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