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제33차 대의원대회가 남긴 것

결정은 난무한데 동지는 간 데 없고
누구든 민주노조운동이 가야할 방향 내놓고 실천 논쟁을

평가안과 계획안이 통과되었지만 제 33차 정기대의원대회 현장에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최대의 쟁점이었던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이 무산되었지만, 기뻐하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수호 위원장은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해서 오늘 처리하지 않은 안건을 다시 다루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었다.

외양상으로는 이수호 위원장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수호 위원장은 정기대의원대회를 하루 앞둔 19일 오전, 하얏트호텔에서 SBS와 베인&컴퍼니 공동주최로 열린 '미래한국리포트' 포럼에서 김대환 노동부 장관,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이수영 한국경총회장 등과 7개월만에 공식 대면한 자리에서 "조직 안팎의 어려운 점을 해소시켜 사회적 대화를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호 위원장으로서는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을 힘있게 끌어내고, 2005-6년 사업계획에 기초한 본격적인 교섭 전술을 구사한다는 구상이었을 것이다.

4기 집행부도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상집, 중집을 거치는 과정에서 한 해를 평가하고 2006년까지를 내다보는 계획안을 만드느라 비지땀을 흘렸을 것이다. 상집의 주요 간부들은 대의원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제출된 원안에 질문이나 의견이 나올 때마다 호소와 의지를 담은 답변을 내놓았다. 곳곳에서 감정이 묻은 논쟁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진땀을 빼가며 대회를 진행해가려는 모습이었다. 전해투 대의원의 문제제기에 대해 이석행 사무총장이, 비정규직 사업비 50억 기금 마련 비판에 대해 신승철 부위원장이, 사업계획과 2월 총력투쟁 계획안 비판에 대해 김태현 정책실장이 번갈아가며 논박하는 등 힘겨운 대의원대회를 이어갔다. 대의원대회 유회가 선언되자 모두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4기 집행부를 비판하는 대의원들도 상정한 안건과 밤새 씨름하느라 고달픈 모습이었다. 서울대병원 관련 건, IT연맹 건 등이 부결되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고, 사업평가에 대해서는 이안을 내놓기에 이르렀고, 비정규 조직화 기금 50억 마련 문제도, 2월 총력투쟁 계획안도 사사건건 시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욱 현자노조 위원장의 경우 2월 총파업 투쟁을 실질적으로 성사시킬 것이면, 투본대표자들의 분명한 결의가 있어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에 총파업투쟁을 결정했던 대의원 누구도 화답하지 않았다. 4기 집행부를 비판하는 대의원에 있어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의 부결은 대체로 기대하던 바였겠지만, 충분한 토론과 논쟁 없이 정족수 미달에 따른 결과라는 점에서 흡족한 표정을 짓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을 둘러싼 긴장이 시종일관 흘렀다. 대회장 안팎에서는 의사가 진행되는 동안, 또는 정회 시간 동안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을 통과 또는 부결시키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4기 집행부가 대회를 강행해서 숫자로 안을 밀어부칠 계획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반면, 반대하는 편에서는 정족수를 미달시켜 안을 무산시킨다는 계획이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일부 대의원들은 발언 기회를 통해 짜증과 원성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민주노총 최고의결 주체인 대의원들 역시 피로가 엄습하는 가운데 갈등과 우려의 밤을 지새고 있었다.

사태는 제4호 의안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과 제5호 의안 '고용보험과 국가예산 확보 및 남북교류협력 기금 사용 건', 제6호 의안 '기타'와 '대회결의문 채택'이 무산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1, 제2, 제3호 의안은 어느 것 하나 '단결 투쟁'의 분위기로 처리된 것이 없었다. 이수호 위원장의 의사 진행은 상당한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우격다짐의 모습도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더군다나 결정된 내용을 누가 어떻게 집행할 것인가에 대한 확신도 없어 보였다. 50억 기금을 결정했고, 2월 총파업 투쟁도 결정했다. 하지만 대의원 어느 누구도 모두가 힘을 모아 기꺼이 잘 해 보자고 호소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철폐, 빈곤 철폐, 공공성 확보, 한반도 평화, 비정규법안 저지와 입법 쟁취 등등 할 일과 과제는 널려 있고, 계획은 요란한데 나서서 해보겠다는 결의 발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제33차 대의원대회장은 그랬다. 정기대의원대회장에는 투쟁 구호가 쓰인 프랭카드 한 장 없었고, 정회와 속개를 거듭하는 동안 투쟁가요 한 곡 선창하는 대의원이 없었다.

대의원대회 유회가 거듭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과 민주노총에 대해서 정말 진정 어린 마음으로 자문해 보아야 한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이런 초라한 모습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면 그 일차적인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민주노총의 현 상황을 위기라 하든 위기가 아니라 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정확히 짚어내기만 한다면 위기가 아무리 깊어도 헤어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단결과 연대의 처방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민주노총이 걸어왔던 반자본,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지난 역사는 수많은 위기를 만나고, 그 위기를 극복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왔기 때문이다.

제33차 대의원대회가 초라하게 막을 내린 데 대해 누구보다도 이수호 집행부가 진실한 모습으로 지난 1년을 다시 돌아보길 권고한다. 타당-적절-타당-적절로만 구성된 자화자찬식 평가서를 내놓고 힘차게 결의하자고 하는데 그걸 어찌 쉽게 받을 수 있겠는가. 서울대병원지부 문제나, IT연맹 건이나, 전해투 교부금 건의 경우 이 역시 소중한 민주노조운동의 일부이자 민주노총의 일로 삼아야 지당한데, 그렇게 마음을 열지 않는 이상 어떻게 자본에 맞서 싸울 대동의 판을 만들 수 있겠는가. 많은 대의원, 조합원들이 죄악시까지 하는 '사회적 교섭 건'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려는 데 어떻게 반발하지 않겠는가.

제33차 대의원대회가 초라하게 막을 내린 데 대해 이수호 집행부를 비판하는 대의원들 역시 자성과 통찰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비판하는 대의원이나 세력 중 누구도 이것이 나아갈 방향이다 라는 제안과 정책, 그리고 설득력 있는 실천 방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평가 이안이 4기 집행부의 평가안과 달리 정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평가에 머무르고 방향의 선명성 여부만 담고 있는 한 큰 의미가 없다, 그것이 저절로 민주노조운동의 물질적 힘으로 바뀌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자본은, 신자유주의정권은 민주노총 제33차 대의원대회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사회적 교섭에 관한 안'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행여 자본과 정권이 실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명백한 오산이다. 아마도 '손대지 않고 코 푸는 격'이라며 희희낙락 대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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