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민주노총과 열린우리당 수장들의 같은 언어

보수언론이 '내부의 적' 분리 추동, 민주노총 우려스러운 행보 중단해야

민주노총은 17일 '제9차 중앙집행위원회 및 총력투쟁본부 제18차 대표자회의'를 개최하고, '대의원대회 무산 이후 대책과 4월 총력투쟁 방향' 등을 논의했다. 회의에 제출된 자료의 원안에서는 △대의원대회 무산과 민주노총의 위상 추락 △전선의 형성과 시급한 지도집행력의 복원 요구 상황임을 밝히고, 4월 1일 총파업투쟁 총력 집중, 비정규 관련 노사정 교섭틀 확보와 전조직적 논의와 의견 수렴을 통한 지도 집행력 회복 등을 대응기조로 제출했다.

원안에는 15차 대의원대회 무산에 대해 반대 세력의 무단 점거와 원천 봉쇄를 문제로 지적하고, 이로 인해 "민주노총의 위상과 지도집행력이 추락되고 비정규 개악안, 노사관계 로드맵 등 산적한 노사관계 현안뿐만 아니라 4월 총파업 전선의 균열이 초래되었다"고 쓰여있다. 이러한 민주노총 지도부의 인식은 17일 발표한 '대의원대회 무산과 4월 총력투쟁 입장'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민주노총은 지도부가 대의원대회 개최 시기 연기와 토론 및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고, 교섭방침과 총파업방침에 수정을 해서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 자체를 물리력으로 원천봉쇄하는 행위에 대해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의견을 힘으로 강제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시 물리력으로 관철시키겠다는 태도에 대하여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편 임채정 열린우리당 의장은 "노동운동이 파탄으로 가게 되면 우리 사회도 피해를 본다.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대화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고,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은 "민주노총은 극소수 극좌적 맹동주의자들과 결별해야 한다. 한 줌도 안 되는 극좌파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수장들과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지 않다. 이것은 우연일 수 있다. 대의원대회 무산이라는 특정한 정세가 만들어낸 산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지도부의 언어가 대의원대회 무산 문제 차원에 마무르지 않고, 현 정세의 주요 사안 전반의 이념적, 정책적 문제에까지 동일한 인식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라면 사태는 보다 심각해진다.

민주노동당은 16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연속 무산에 대한 민주노동당 입장'을 최고위원회 이름으로 내고 "최근 민주노총의 반복되는 폭력 사태와 대회 무산은 국민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었고 민주노조의 정신을 훼손한 것으로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라고 밝혔다.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현 정세 흐름의 맥락으로 볼 때 민주노총 지도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진보정당으로서의 처신으로는 매우 부적절하고 실망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민주노동당 역시 열린우리당의 수장들과 동일한 언어를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진지하게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중앙일보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태도를 환영하는 사설을 냈다. "민주노총이 내부의 적과 확실하게 선을 긋고 폭력을 동원하는 극소수 강경파에 단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 노동운동사를 살펴봐도 노동운동의 최대 적은 자본가가 아니라 내부의 극좌 맹동세력이었다"며 불난 데 부채질을 해도 아주 제대로 하고 있다. 기업가들을 초청해서 의견을 듣기로 한 민주노동당의 변신에는 박수를 보내기까지 했다.

뭔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흐름이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과 동일한 언어를 쓰고, 보수언론으로부터 환영과 박수를 받는 형국이라니, 모든 문제의 정상을 참작한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민주노총은 기자회견에서 위원장 재신임건 자진 철회, 4월 총파업투쟁 준비, 위원장 책임 하에 사회적 교섭 추진 후 대의원대회 승인을 골자로 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이러한 의지는 오늘 노사정대표자회의 공식 제안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비정규법안 문제 자체만 놓고 보자. 민주노총의 의사대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린다 하더라도 이 문제가 의도대로 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내부의 사회적 교섭 논란과 관계없이 이미 객관적으로 주어진 조건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정권은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다룰 안건으로 '노사정위 개편과 로드맵'을 들고 있으나 비정규법안은 논의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다. 노동부는 수차례 "비정규직법안은 정치권과의 협의를 거쳐 4월 중 처리하기로 된 사안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다시 논의할 성격이 아니다"고 밝힌 바 있고, 경총 등 자본 측도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이번 결정이 비정규직 관련 입법을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는 주문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요구하고 들어가더라도 비정규법안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실익도 얻지 못할 것이다. '사회적 교섭'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를 강행하는 것은 실로 우려스러운 행보가 아닐 수 없다.

비정규법안 문제가 심각하고, 민주노조운동의 상황이 어려운만큼 더욱 냉정과 이성을 갖고 사태의 본질을 살펴야 한다. 살펴보는 데 있어 중요한 점으로 누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에 주목하는 것이며. 그 연장에서 지금 민주노조운동의 분열을 추동하는 세력이 누구인가를 정확히 짚어보는 일이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참세상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