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이 순간에도 생성 중인 x-파일

x-파일, 8년 전 권력의 작동 메카니즘 지금도 살아 있어

21일 조선일보가 첫 보도를 한 이후 신문, 방송, 미디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보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미디어단체나 정당, 사회단체의 성명과 입장 표명도 줄을 이었다. 알 권리와 통신비밀보호가 쟁점이 되고, 보도 경쟁 자체가 뉴스가 되었고, 홍석현 현 주미대사의 행보와 거취도 초점이다. 중앙일보의 보도와 삼성의 강경 대응 입장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으로 어느만큼 더 공개될지, 제2, 제3의 파일은 없는지, 검찰의 수사는 어디까지 갈지 등도 꼬리에 꼬리를 문다.

x-파일은 1997년 대선을 앞둔 4월, 9월, 10월, 한국 사회 지배질서의 단면을 보여준다. 또 당시 독점재벌이 직면한 자본의 위기를 정치로 풀어가기 위해 얼마나 좌고우면했는 지를 보여준다. x-파일의 요점은 간단하다. x-파일은 독점재벌이 제공하고, 언론이 운반하고, 정치권력이 사용하고, 검찰이 보호하는 장면과 다시 검찰이 눈감고, 정치권력이 요구하고, 언론이 전달하고, 독점재벌이 돈을 만드는 장면을 담고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만한 내용으로, 1997년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자본권력-정치권력-언론권력-검찰권력의 메카니즘이 사실적으로 드러났다.

지금 x-파일은 8년이라는 시공을 넘나든다. 8년 전 x-파일은 권력재편을 앞두고, 정치-자본-언론-검찰의 지배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그로부터 8년 후, x-파일을 둘러싼 소동은 오늘날 정치-자본-언론-검찰권력이 지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1997년, x-파일에는 대선 후보, 재벌총수 비서, 언론 편집국장, 검찰이 등장한다. 둘이 들기에 무거운 오리발이 건네지고, 보험을 위해 양다리를 걸치고, 다시 더 많은 총알을 요구하거나 감사의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예정 대로였다면 x-파일은 대선과 함께 운명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재편기 숨가쁜 정세와, 김대중정권과 신자유주의지배연합, 그리고 노무현정권으로 이어지는 역동의 한국 정치사는 x-파일을 그저 역사 속에 묻어놓지 않았다. x-파일이 죽지 않고 출현하게 된 것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정치의 불안정성의 증폭에 따라 벌어진 필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영삼정권은 경쟁력 강화론을 펴며 제2의 산업구조조정을 펼쳤다. 공기업 민간불하, 이동통신 특혜산업 지정, 현대의 제철산업과 삼성의 자동차산업에 대한 과잉중복투자를 허용하였다. 그러나 김영삼정권 집권 후반기 불황의 골은 깊어지고, 경제위기의 징후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삼성이 노리던 기아차는 급기야 외환위기를 촉발하기에 이른다.

1996년 12월 노동악법, 안기부법 날치기는 정권의 위기를 심화시켰다. 날치기 노동법은 근로기준법과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자주적 단결권과 단체행동권마저 제한하였다. 화가 난 노동자는 23일 동안 총파업투쟁을 벌였다. 총파업투쟁이 마무리되자 집권 말기 비리 사건이 불거졌다. '한보사건'과 '현철사건'은 문민정부의 개혁성을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하였다. 정권을 벼랑으로 몰아간 한보사건과 현철사건은 한편으로는 x-파일의 오픈 버전이자 x-파일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였다.

이 즈음 한국 사회 지배세력의 얼개가 드러났다. 위기의식을 느낀 독점재벌은 보수 지배분파들을 오가며 신자유주의지배연합의 장기 지배전략을 짜기에 이른다. 총파업과 한보, 현철, 청문회 국면으로 이어지는 정세 속에서 독점재벌은 보다 안정된 지배체제를 희구하였고, 따라서 언론권력, 행정권력, 검찰권력의 포섭에 심혈을 기울였다. x-파일은 이 때 잉태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x-파일의 내용만으로도 당시 불투명한 정국 속에서 지배세력들이 신자유주의지배연합의 안정된 체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을 기울였는지 쉽게 짐작된다.

김대중정권은 IMF처방을 서두르고, IMF와 만나 정리해고제를 수용하고 IMF의 요구사항을 유보없이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소로스 같은 국제 금융투기업자와 만나 한국 투자를 권유하고 조언을 구했다. 또 노동단체 대표자들과 만나 '사회적 합의'에 참여할 것과 외자유치와 기업의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정리해고제 등을 수용할 것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기업의 인수 합병 시 '고용승계 의무'의 폐지를 천명하였다. 이렇게 x-파일은 김대중정권 집권 5년간 수많은 유사 파일을 복재하며 권력의 재생산과 지배체제 안정화의 시나리오를 이어갔다.

오늘 x-파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은 8년 전 권력의 작동 메카니즘이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8년 전 지배구조의 재생산이 쉬쉬하며 조심스럽고 비밀리에 작동되었다면, 오늘날 지배구조의 재생산은 보다 공공연하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x-파일 공개 이후 벌어지는 여러 장면들은 오늘날 삼성공화국-신자유주의정권-중앙일보-검찰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 지배라인의 수구성, 반동성을 정확히 각인시켜준다.

21일 첫 보도 직후 홍석현과 이학수는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실명이 거론된 검찰 관계자들은 아무도 시인하지 않고 있다. MBC는 7개월간 껴안고 있다가 떠밀리다시피 하며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삼성은 불법 도청의 위법성을 들어 역공세를 펴고 있다. 청와대는 안기부의 조사를 지켜본다며 침묵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개인이 판단할 일로, 한나라당은 표적 공세 의혹까지 제기했다.

x-파일을 단지 8년 전 사건으로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x-파일은 오늘날 살아 날뛰며 현실을 유린하는 지배시스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상은 파헤치되 진상 규명에 머무르면 아니 되고, 공소시효 논란의 터무니없음을 인지해야 하고, 도청이냐 알권리냐의 찬반 취사선택 유도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x-파일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흘린 피와 땀이 얼마나 베어 있는가를 똑똑히 살펴야 한다.

더군다나 지금 이 순간에도 2005년판 x-파일이 공공연하게 생성, 작동되고 있지 않는가.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참세상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왠지

    왠지 내용이 뚜렷한 근거에 기초하기보다는 유추가 너무 많네요. 특히 "이즈음 ~ 이어갔다"는 너무 논리를 비약시킨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