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그날이오면에 가다

[두 책방 아저씨](1) - 김동운 사회과학서점 ‘그날이오면’ 주인

세미나 커리를 짜기 위해 하루 종일 서점 한 구석에서 책을 뒤지고 있다. 넉넉지 못한 지갑사정에 보고 싶다고 그 책을 다 살 수 없는 법. 특히 월간지나 계간지를 매 번 사서 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책장 앞에서 순식간에 이번 달 월간지들을 독파한다. 약속 장소는 늘 학교 근처 그 서점 앞이고, 약속 시간이 남으면 으레 서점에 들어가 이리저리 책을 들춰본다. 서점 앞, 그리고 서점 안은 학생들로 붐빈다.

80년대 그리고 어느 즈음까지 각 대학 앞의 인문사회과학 서점은 학생들에게 하나의 생활공간이었다. 책을 읽고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공간이자, 선후배 동기들과 술 약속을위해 만나고 남는 시간을 죽치고 앉아 보내는 일상의 작지 않은 부분이었다.

주지하다시피 90년대를 거치며 학생운동이 점차 퇴조하면서 이른바 ‘운동권’ 학생들의 생활터이던 사회과학서점도 따라서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인문사회과학의 위기’나 ‘사회과학 출판사의 어려움’ 등등은 이제 식상한 얘기가 되었고, 사회과학서점의 경영 위기와 이에 따른 ‘서점 살리기’ 운동이 벌어지곤 했던 얘기도 어느덧 저만치 지나간 뉴스가 되었다.

2005년, 서울대 앞 녹두거리에는 ‘그날이오면’이라는 사회과학서점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대 앞에도 비록 내용과 색깔을 바꾸긴 했으나 명맥을 잇고 있는 서점 ‘풀무질’은 존재하고 있다. 참세상에서는 인문사회과학서적을 소개하는 코너를 기획하면서 이 두 서점의 주인아저씨를 만나보았다.

9월 첫째주부터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 <그날이오면>의 책소개 코너 ‘두 책방 아저씨’가 독자들을 찾아간다. 매 달 두 권, 아저씨들이 직접 소개해주는 책과의 만남을 기대하시라.


88년도에 문을 연 ‘그날이오면’(그날)은 이제 17년째를 맞았다. 서점 운영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지금까지 역사를 간단히 소개해 달라

처음에는 서점을 지금처럼 계속 중심을 두고 하겠단 생각은 아니었다. 처음 서점 운영을 하려고 했던 건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90년도에 활동을 하다가, 당시 결혼을 한 상태에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됐는데 그렇다고 아무거나 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연관성 있게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날은 88년도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89년에 서점 주인이 돌아가셔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아는 사람을 통해 연결이 돼서 90년에 인수하게 됐다. 처음에는 처(부인 유정희 씨는 관악구 의원으로 ‘도림천을지키는모임’ 등 여러 생태관련 운동을 해오셨다)가 운영했었고, 93년부터 내가 맡아서 하고 있다.

"사회과학에 대한 고민, 흐름을 이어가는 공간으로서의 서점"

90년도에 들어서면서 하나둘씩 사회과학서점이 없어지기 시작했지만 90년대 중반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서점들이 어려워지고, 그런 상태에서 서점운영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됐다. 서울대 주변에 여러 개 있었던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다 문을 닫는 상황이 생겼고, 그런 상황에서 나는 서점 운영을 좀 더 적극적, 공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야’(서울대 앞 또 다른 사회과학서점)를 인수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고.

  김동운 '그날이오면' 대표

서점이 없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가게 하나 문닫는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문사회과학책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서 서점이 없어지는 것이지만 또 그런 공간이 없어짐으로 해서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이나 이를 고민하는 흐름이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이 따른다. 이런 악순환을 어떡하든 막아보고 싶었다. 학생들이 점점 정치적, 사회적 문제보다는 개인적으로 변해가고, 집단적인 모색은 계속 약화되고. 그런 상황들을 막아보고 싶었다. 그런 문제의식으로 서점을 넓히고 2층 까페도 넓혔던 것.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는 까페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에게 세미나, 토론을 위한 공간도 마련해주시고 까페를 통해 ‘저자와의 대화’니 영화상영도 하신 걸로 안다. ‘그날에서책읽기’라는 소식지도 발행하셨는데 이런 활동들 소개해달라.

까페에서 이야기마당을 열어 저자와의 대화를 기획하기도 하고 관악 총학생회와 연계해서 ‘새내기 길라잡이’도 같이 내는 작업을 몇 년째하고 있다. 앞서 얘기했던 학생들의 사회나 운동에 대한 무관심, 이런 부분들을 그것이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막아보고 싶고 속도를 늦추고 싶었다.

"그날 거쳐갔던 사람들, 사회 각 영역에서 변혁위한 고민 계속했음"

‘그날에서 책읽기’는 98년 초에 만들어서 99년 말까지 발간했다. 그때는 사실 전반적으로 그런(사회과학) 책을 읽고, 그 내용들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모습들이 약화되면서. ‘그날에서 책읽기’가 소통의 매체가 됐음 해서 시작했었다. 또 더 크게,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서점을 해오면서 항상 늘 아쉽게 생각하는 게 그날을 거쳐갔던 사람들, 치열하게 책을 읽고 고민했던 사람들이 졸업 후에 만나서 얘기 들어보면 빠른 시간 안에 일상성, 체제 속에 적응하고 변화돼있다는 점이었다. 사회에 나가면 한편으로 학생 때의 집단중심적 사고나, 특정한 경험을 아주 극대화해서 바라보는 것과 달리 한발 떨어져서 사회를, 사회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시기에 현실적이지 못하고 관념적인 측면이 있었다면 현실에 들어가서, 구체적인 삶의 영역을 갖고 있다는 것은 기존의 관념성을 극복하고 더 풍부하고 확고하게 살아가는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는커녕 기존의 사상적 관념성, 건강성마저 잃어버리는 게 안타까웠다.

대학시절 그 이전의 선배들이 보였던 불철저한 모습에 대해 비판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으려했던 사람들이 결의나 의지, 삶의 모습에서 훨씬 더 긍정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너무 많이 봤다. 80년대를 극복한다면서 당시 가졌던 건강성은 다 잃어버리고 오히려 부정적인 모습만 가져가는 경우를 보며 실망스러웠고. 80년대에는 거시적, 정치적인 문제를 얘기했다면 90년대에는 일상적인 문제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양한 영역을 얘기하는 건 좋은데 그것이 중심이 해체된 상태에서 표피적인 형태로만 남아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주 사소한, 작은 문제들에 부딪히는 과정 속에서 쉽게 무너지는 모습들을 많이 봤고.

‘그날에서 책읽기’는 이런 고민 하에서 만들어졌다. 그날을 거쳐갔던 사람들에게 삶의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길 바랐고, 치열하게 문제의식을 가졌던 사람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끊임없이 거기서 뭔가를 만들고 기성사회의 두꺼운 껍질을 깨는 그런 역할 할 수 있길 기대했다. 사회 속에서 근본적인 사회변혁의 가능성들을 계속 품어갈 수 있었으면 했고. ‘그날에서책읽기’를 만들어서 우편으로 사람들에게 보내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그날, 학생운동 진보운동의 상징적 의미"

2000년대 ‘그날이오면’의 의미는 뭘까?

97년, 98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서점이 활발히 운영됐었는데 점차 서점운영이 어려워졌다. 연대, 고대 앞 사회과학 서점들도 문을 닫고. 상대적으로 그날은 급격히 하락하진 않았지만 점차 내리막길 걷게됐다. 앞에서 얘기했던 공격적으로 운영했던 그런 부분들도 여력이 생기지 않았고. 지금 상황에선 여타 부분들을 최소화하고 서점이 살아남는 걸 최대 목표로 해서 버티고 있다. 사실상 지금 사회과학서점의 성격 유지하고 있는 곳은 몇 군데 없다. 이름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순수하게 사회과학 서점으로 남아있는 곳은 그날 밖에 없는 상태다. 그날이 지금 모습 상태로 살아남는 것, 존립이란 것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날이오면> 내부

사회과학서점은 학생운동이나 진보운동 자체와 맥을 같이했다고 볼 수 있다. 예전과 같지 않지만 학생들이 여전히 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그날도 함께 하고 싶고 그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상징적인 의미로 존재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날은 없어지면 안 된다는 얘길하는데,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그런 것들에 대한 책임성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 과거 적극적으로 했던 일들을 같이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안타깝지만, 숲이 항상 울창한 형태로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앙상한 채로, 마른나무로 겨울도 버틸 수도 있는 거고. 이런 상황은 언젠가 변할 수 있고 겨울도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준비하고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

연재를 시작하며 참세상 독자들에게 한 마디

예전에 ‘그날에서 책읽기’할 때를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그런 사업은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긴장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게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과정인데, 일을 하다보면 책을 하나하나 이해하고, 문제의식을 심화시켜나가는 이런 과정들이 잘 안 된다. 단순히 그냥 수많은 책들 그냥 가볍게 스쳐가는 형태로가 아니라, 일정하게 나 자신을 강제하면서 좀더 열심히 책을 보고 그랬는데.

앞으로 책을 정기적으로 연재하게 되면 그런 면에서 제가 긴장을 갖고 책을 보게 될 거고. 또 기존에 갖고 있던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현재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위치에서 학생들의 의식수준과 사회운동 상황들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책을 읽고 발언하는 것을 통해 좀 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측면에서 그런 흐름들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책 소개도 단순히 개인적인 영역, 경험담에 치우치는 거 보다는 전체 사회운동의 흐름이나 문제의식에 맞는 책들 위주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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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그날이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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