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밤 홍콩 쿤퉁법원에서는 한국인 기소자 11명에 대한 구속적부심이 진행됐다. 이 심사를 지켜 보면서 정녕 한국정부가 타국의 법 기관에 기소된 한국인들에 대한 대책이 있는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들 수밖에 없었다.
이날 구속적부심에서 한국 집회참가자의 변호를 맡은 스티븐 류 변호사는 "조셉쩐(陳日君) 천주교 홍콩 주교가 신원보증을 할테니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 해줄 것"을 판사에게 요청했다. 이에 앞서 조셉쩐 주교는 연행자 중 신부 2인이 포함된 것, 수녀에 대한 인권탄압이 있었던 것에 강력히 항의하며 오늘(19일)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 항의의 의사를 표시 했다. 나아가 '자신의 보증'을 전제로 현재 기소되어 있는 이들에 대해 불구속 상태의 수사를 요청했다.
결국 이 보석신청은 기각됐다. 그러나 홍콩재판부의 판단 여부와 상관없이 스티븐 류 변호사는 이 재판심사에 앞서 한국정부에 기소된 한국인들에 대한 신원보증을 요구 한 바 있었다.
스티븐 류 변호사는 '한국정부가 이들에 대한 신원보증을 하게 되면, 홍콩법원에서 불구속상태에서 수사를 할 수 있게 결정하도록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가능하겠냐"는 제안을 한국민중투쟁단에게 해 왔다. 그리고 이런 입장을 홍콩주재 한국영사에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날 심사에 왔던 장** 홍콩 주재 영사는 "도주의 위험이 있는데 어떻게 믿고 그런 결정을 할 수 있겠냐"라고 답하며 "보증이 어렵다"고 답했다. 과연 이 영사가 얘기한 '도주의 위험'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홍콩에서 '반 WTO' 싸움을 전개한 한국민중투쟁단은 홍콩시민들의 호응 속에서 홍콩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진행해 왔다. 또한 그 과정 하나 하나가 언론에 알려지며 수많은 감동 사례를 남겼다. 시민들의 지지와 편지가 줄을 이었고 심지어 한 교민은 절편 떡을 만들어 우카샤 전농 숙소까지 배달하며 '지지'의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언론이 폭도로 매도했다는 17일 집회 이후에도 법원 앞에는 한국인들을 지지하는 홍콩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한국민중투쟁단 소속의 11명의 기소자들이 오히려 한국 정부로 부터 '도주의 위험'이 있는 위험인물로 낙인되고 있고, 심지어 타국에서 타국에 나간 한국인들을 보호한다는 한국 영사관에서 부터 '도주위험'이 있다는 말을 듣는 위험인물이 됐다.
장 영사의 답을 한국정부의 입장이라고 단언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같은 자리에 있던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모 차관과의 전화통화를 하며 '한국인들에 대해 한국정부가 '도주 위험을 운운하는 것'이 말이 안된다'며 '이들에 대한 신원 보증을 간곡히 부탁한다'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전화 통화를 한 모 차관은 '판사가 요청하면 검토할 수 있겠으나 그게 아니고서는 정부가 그런 보증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자진해서 이들에 대한 '신원보증'을 하고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민중투쟁단의 요구는 이들의 무죄를 입증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홍콩의 법처리 상 이들에 대한 법절차를 구속한 상태에서 할 것인지, 불구속 상태에서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는 '도주 위험성'에 대한 부분을 보증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또한 언론에도 공개된 홍콩 구치소내의 여락한 시설을 고려했을 때 좀더 나은 조건에서 법 절차를 밟겠다는 것,기본생활이 될 수 있는 곳에서 홍콩의 법절차에 따라 불구속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 달라는 것이다.
이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이들에 대한 '신원 보증' 조차도 거부했다. 과연 이들이 믿고 이들을 국제적으로 보증할 국가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또 한국 정부가 한국인들에게 '도주의 위험이 있다'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홍콩 법원에 '도주 위험이 없으니 불구속 수사를 결정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날 홍콩 법원이 내린 결정은 안타깝지만 너무 당연한 결정인 셈이다.
한편 정부가 말하는 도주의 위험은 도대체 뭘까. 홍콩에서는 사실상 불구속 재판을 받는 다 하더라도 여권을 압수 당하기 때문에 적법한 방법으로 타국에 간다는것,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말하는 '도주의 위험'이라는 부분은 영화에서나 나올법 한 밀입국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방법인 셈이다. 1.2km를 삼보일배로 걷고, 홍콩 앞바다에서 반WTO를 목이 터져라 외친 이들이 그런 방법으로 한국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충분히 판단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범법자에 기초한 사고'에 매몰 된 채 홍콩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들을 범법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또한 자국의 국민에 대한 신용보증도 서지 않으면서 오히려 큰소리로 '이들이 도주의 위험이 있다'며 외치고 있는 꼴이다. 문득 '자신을 살려달라'고 외친 고 김선일 열사가 생각나는 것은 그 또한 국민적 열망과 의지와 상관없이 정부의선택에 의해 희생당한 한국인이기 때문이리라.
기소된 이들은 정부가 그렇게도 경계하는 폭탄을 소지하고 있는 테러 대상자가 아니다.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거나 국제적인 사기 및 사건에 연류되 인터폴에 거명된 수배자도 아니다. 이들은 한국이라는 땅덩이에서 일을 하고, 땅을 일구는 사람들이다. 단지 WTO 세계화에 반대하고 자신의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홍콩에 왔을 뿐이고 이 또한 홍콩 시민과 어우러져 일주일간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중범죄도 아니고 '불법집회'와 관련해 연행 됐던 것에 대한 심사 과정에 정부가 '도주 위험'을 운운했던 것은 오히려 자국민 보호에 대한 의지 없음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자국민 조차도 '도주의 위험이 있는 위험인물로' 생각하는 정부, 과연 정부의 역할, 해외 공관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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