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각료회의, 2006년 내 협상 완료 계획 재확인

개도국 합세로 홍콩 WTO 각료회의 선언문 이끌어내

홍콩에서의 12월 17일 밤과 18일 새벽은 여러모로 긴장이 감도는 밤이었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수천 명의 노동자, 농민, 활동가들은 홍콩컨벤션센터 바로 밖에 있는 도로 위에서 홍콩 전투경찰이 발사한 고무탄과 최루탄을 맞으며 저항하고 있었으며, 컨벤션센터 안에서는 WTO 각료들이 불안에 떨면서 선언문 초안 최종판을 놓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18일 새벽이 되자 차가운 거리 위에 연좌한 시위대를 향해 경찰은 ‘전원을 연행하겠다’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으며, 바로 그 때 WTO는 그린룸회의(소수 각료들 간 비공식 회의)를 진행하면서 막바지 조율을 하고 있었다.

새벽 3시부터 시작해 12시간 후인 18일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대오의 마지막 인원이 연행되었고, 연행이 완료된 바로 직후 WTO는 ‘홍콩 각료회의 선언문’을 공표하면서 폐회를 선언했고, WTO가 계속 가는냐 붕괴하느냐를 좌지우지하는 각료회의를 성황리에 마친 것을 자축하였다.

이번 홍콩선언문은 초국적자본과 강대국들의 승리이다. 애초에 WTO 사무국과 강대국들은 또 한 번 각료회의가 결렬됨으로써 정치적 치명타를 입는 것이 두려워 ‘낮은 수준에서의 합의’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즉, 홍콩 각료회의에서 도하개발의제 협상의 세부원칙을 바로 결정하지 않고 ‘중간 점검’ 정도로 사고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개도국들의 대표주자였던 브라질과 인도가 강대국들의 제안에 전격 합의를 해줌으로써 위기에 처한 WTO를 구출해냈고 그 동안 뜨거웠던 쟁점 여러 가지를 타결 지으면서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홍콩 각료회의 선언문이 나오기까지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브라질과 인도 등 농업수출국과 투자자유화 등이 핵심 내용인 이른 바 싱가포르이슈에 반발하는 개도국들의 퇴장으로 5차 각료회의가 결렬되었고, 그 이후에도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태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2004년 7월 말, 의미심장한 분위기가 스위스 제네바 WTO본부에서 형성됐다.

여태까지 미국과 유럽연합 등 주요 강대국들이 WTO를 주도하면서 개도국들과의 갈등을 빚어왔는데, 2004년 7월 선진국 대표주자와 개도국 대표주자들이 이른 바 ‘이해당사자 5개국 (유럽연합과 미국, 호주, 인도, 브라질)’ 회의를 진행하였으며 이들 사이에서 모종의 합의가 나올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급기야 2004년 8월 1일 이들이 합의한 ‘도하개발의제 세부원칙 기본골격’이 공개됐다. 물론 내용은 자유무역의 허구성과 반민중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으며, 선진국들에게는 유리하고 개도국들에게는 불리한 것이었다.1)

그러나 7월 기본골격이 나온 이후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나름대로 ‘기회’라 사고되었던 올해 7월 및 10월 일반이사회에서도 회원국들은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으며, 그러면서 홍콩각료회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하다가 홍콩 각료회의도 결렬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홍콩 각료회의가 결렬된다면, WTO에게 ‘총 여섯 차례의 각료회의 중 세 번 결렬(시애틀, 칸쿤, 홍콩), 한 번 간신히 통과(도하)'라는 부끄러운 기록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전세계 민중들의 저항으로 이미 정당성의 위기를 겪기 시작한 WTO와 이것이 대변하는 신자유주의 무역체제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과 미국, 유럽연합 등 주요 강대국들은 일찌감치 홍콩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결과가 실제 그러할 것으로 예상했다기보다 WTO가 붕괴하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럼에도 긴장은 계속되었다. 라미는 모호한 표현과 개도국을 최대한 많이 언급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홍콩 각료회의 선언문 1차 초안2)을 11월 26일 회원국들에게 회람했는데, 여전히 많은 개도국들이 비난을 쏟아 부었다. 긴장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선언문 초안은 두 번의 수정을 거쳐 12월 13일 각료회의 첫 회의에 제출됐다.

그러하다보니 홍콩 각료회의 초반에는 협상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최빈개도국 지원 방안에 미국이 계속 반발하고 있었으며, 유럽연합은 농업 수출보조금을 2010년까지 철폐하라는 주문을 거부하고 있었고, 강력한 수준의 서비스 자유화에 대해서는 개도국 및 최빈개도국 그룹인 G90이 반대하고 있었다.

심지어 12월 16일에는 G33(농업협상에서 특별품목 인정을 주장하는 40여개 국가), G90, 아시아카리브태평양 그룹(ACP)이 ‘G110’을 구성하여 149개 회원국 중 상당수가 강대국들에 대항하는 단결된 목소리를 내려는 조짐이 보이면서 이번 각료회의도 결렬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12월 17일 오후에 상황이 급반전했다. 새벽에 서비스 협상이 전체 협상 진척 여부에 결정적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몇몇 엔지오들은 장내 활동에 박차를 가했고, 민주노총을 선두로 한 한국민중투쟁단 100여 명은 “유럽연합이 서비스 협상 초안을 강제하면 진격한다”는 엄포를 하고 유럽연합 총영사관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다.

오전 회의가 아무런 합의 없이 무사히(?) 넘어갔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비농산물시장접근(NAMA)와 서비스, 농업에 대해 상당한 합의가 이루어진 4차 초안이 나왔고, 각료들은 17일 오후부터 18일까지 협상을 벌여 홍콩 각료회의 선언문에 합의하게 된 것이다. 회의장 밖에서 수천명이 최루탄, 고무탄을 맞으면서 시위를 벌이다가 1,000여명이 연행되던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결국 ‘높은 수준의 합의’가 된 홍콩 각료회의 선언문3)

59개 조항으로 구성된 본문과 NAMA, 서비스, 규범, 무역원활화, 특별차별대우(최빈개도국 관련 사항)에 관한 6개 부속서로 구성된 홍콩 선언문 내용은 2004년 7월 기본골격 내용과 각료회의 바로 직전에 나왔던 초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최종 선언문이 13일부터 16일까지의 마라톤 협상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정되었던 합의, 즉 ‘대표주자들 간’ 막바지 주고받기에 의거한 합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간 점검’이니 ‘낮은 수준의 합의’ 등의 언사는 실제 벌어질 광경을 사전에 은폐하기 위한 술책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먼저, 비농산물시장접근(NAMA)에서는 이른바 ‘스위스공식’을 도입하는 데 합의했다. 스위스공식은 관세가 높을수록 더 많이 감축해야 한다는 공식인데, 이는 상대적으로 관세가 높은 개도국들에게 상당히 불리하다. 이에 더해 관세 상한선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관세화 되지 않은 상품에 대해서는 곧바로 관세화해서 급격히 낮추라고 주문하고 있다.

NAMA는 농업과 서비스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재화와 상품 - 공산품, 수산물, 광물 등 - 을 포괄하고 개도국들은 제조업 붕괴와 이에 따른 실업사태를 우려하면서 스위스공식과 급격한 관세 인하를 반대해왔다. 다른 말로 하면, NAMA 협상결과로 제3세계 소규모 제조업은 몰살하거나 한 줌의 초국적 기업의 하청으로 전락하여 대량실업과 노동유연화를 초래할 뿐 아니라, 해안지역의 소규모 어업을 초토화하고 자연자원에 대한 착취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NAMA는 휴대폰과 전자제품 등 몇 가지 핵심 공산품을 생산하는 소수 재벌 자본에게만 이익이 되고 나머지는 하청이 되던가 붕괴하게 된다.

서비스협상에서도 강대국들과 자본의 승리였다. “양허․양허요청안 협상을 강화하고 가속화하고”, “실질적인 개방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양자간 협상 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모드별 협상’, ‘부문별 협상’ 등 ‘복수적 협상방식’이 서비스에 관한 부속서C의 주요 내용이다. 복수적 협상은 복수의 국가가 상대국 특정 서비스분야의 개방을 집단적으로 요청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개도국들과 국제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대해온 이유는 기존의 양자 협상방식이 별다른 진척을 안보이고 개도국들이 양허안 제출을 계속 유보하자 보다 강력한 수준의 서비스 자유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도입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이 집단적으로 특정 국가의 특정 서비스 사유화를 강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홍콩 선언문은 “2006년 2월 28일까지 복수적 양허요청서를 제출”, “2006년 7월 31일까지 2차 수정양허안을 제출”, 그리고 “2006년 10월 31일까지 최종양허안을 제출”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유럽연합과 미국, 일본, 한국 등 복수적 협상방식 주창자들은 새로운 협상 방식을 기반으로 통신과 금융 등 부문에 대해 제3세계로부터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얻어내 시장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우리는 교육과 의료, 물과 에너지 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집단 공격’을 받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가장 쟁점이 되었던 농업협상에서는 2013년까지 유럽연합과 미국의 수출보조금을 완전히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마치 개도국의 이해를 대폭 반영한 것처럼 보이나 개도국들의 요구는 애초에 2010년이었으며, 게다가 유럽연합과 미국은 이미 여러 가지 편법을 이용하여 자국 농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유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충분히 지속할 수 있다. 작년 7월 기본골격을 만들면서 미국과 유럽연합은 수출보조금 중 상당 부분을 국내보조금으로 ‘위장’하여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놨다.

그래서 2013년 이후에도 유럽연합은 ‘무역을 왜곡하지 않는’ 국내보조금 형태로 매년 550억 유로를 농기업에 지불할 수 있다. 개도국 또는 농업수입국들에게 또 다른 관심사였던 관세 감축폭과 관세 상한선 부과 여부는 미지수로 남겨졌으며, 민간품목에 대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추가 합의가 필요한 부분과 세부원칙은 2006년 4월 30일까지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최빈국들에 대해서는 무관세, 무쿼터로 시장접근을 허용하기로 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조항으로 남겨져 사실상의 성과는 아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또 다른 대립 지점이었던 면화에 대해서는 선진국들이 2006년까지 면화 수출보조금 철폐하기로 함으로써 이것 또한 양보한 듯 하나, 다른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문제가 되는 미국 면화 기업 보조금 400억 달러 중 실제 철폐대상은 20억 달러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면화에 대합 협상도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한국 정부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 ‘농업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함으로써 비난을 샀으며, 16일에는 농민들의 한국 총영사관 점거농성에 직면해야 했다. 비록 이번 협상에서 상당 부분이 미합의된 채 남겨졌지만, 한국 협상단의 이와 같은 발언은 향후 협상에 대한 예고가 아닐 수 없다.

선언문을 이끌어낸 핵심 공로는 강대국들과 손잡은 브라질과 인도에게

위에서 “‘중간 점검’이니 ‘낮은 수준의 합의’ 등의 언사는 실제 벌어질 광경을 사전에 은폐하기 위한 술책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라고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즉, 이번 합의문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 아무리 애초부터 초국적 자본과 강대국들이 WTO를 주도해왔다 하더라도 여전히 갈등이 많은 상태에서 어떻게 선언문을 채택하고 위기에 빠진 WTO를 구출할 수 있었을까?

일단, WTO의 오래된 비민주성과 밀실협상, 선언문 졸속통과가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홍콩에서 149개국 각료들은 총 650여 차례 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중 전체회의 성격을 띤 공식 회의는 몇 차례 안 되며 나머지 수백 차례 회의는 모두 그룹별 비공식 회의였다고 한다.

또한 마지막 날 선언문 채택을 위한 전체회의에서는 “각료들 앞에 책상도, 명판도, 마이크도 없었다. ... 최종 회의에서 각료가 발언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특히 존 장 (John Tsang) 홍콩 상업부 장관[의장]은 참가자들을 보지도 않은 채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라면서 결정사항을 나열하고 봉을 내리쳤다.”4)

그러나 이런 비민주성은 표면적인 이유이며, 오히려 근본적인 이유는 유럽연합과 미국 등 강대국들의 교활한 전술과 이에 합세한 브라질과 인도 정부이다. 강대국들은 농업협상에서 양보하는 척 하면서 사실상 챙길 것을 다 챙기는 전술을 발휘했으며, 개도국 ‘대표주자’ 역할을 자임하던 인도와 브라질은 작년 7월 기본골격 합의에 이어 이번 홍콩선언문이 나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해당사자 5개국’은 홍콩 각료회의 전부터 비공식회의를 진행했었고, 유럽연합은 수출보조금을 철폐할 의향을, 대신 브라질과 인도는 서비스와 NAMA 협상에서 양보할 의향을 비공식적으로 내비친 바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16일까지 서로의 카드를 제시하지 않고 줄다리기를 하면서 각자가 얼마나 내줄 수 있는지를 계속 타진하였고, 12월 17일이 되어서야 유럽연합은 2013년까지 수출보조금을 철폐하겠다는 카드를, 브라질과 인도는 서비스와 NAMA에서 양보하고 나머지 개도국들을 설득시키겠다는 카드를 테이블에 내놓은 것이다.

인도와 브라질은 최빈개도국들로 하여금 ‘무관세․무쿼터 시장접근권’과 ‘무역을 위한 원조’ 등 강대국들이 제시한 ‘개발’ 사탕발림, 면화에 대한 수출보조금 철폐 1년 유예, 농업 수출보조금 2013년 철폐 등 농업협상안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하였고, NAMA에서의 급격한 관세감축과 서비스협상에서의 ‘복수적 협상방식’ 등은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설득하면서 ‘이해당사자 5개국’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 중 특히 ‘무역을 위한 원조’는 이번 협상의 의도와 본질을 잘 드러낸다. ‘무역을 위한 원조’는 강대국들이 개도국과 최빈개도국 경제를 WTO 체제에 알맞게 재편하도록 대부를 제공해주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너무나 자명하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IMF와 세계은행이 대부를 제공한다는 명목 하에 제3세계에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제하였고, 이런 흐름에 WTO가 가세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선언문에 WTO, IMF와 세계은행이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대목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 협상의 최대 수혜자는 초국적 자본과 국제무대에서 급부상하는 개도국 자본

기존 강대국들과 브라질, 인도는 이번 홍콩선언문을 이끌어내고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줬다. 이들은 합심해서 마치 농업협상에서 강대국들이 엄청난 양보를 하는 척 하는 그림을 만들어줬고, 대신 서비스와 NAMA 협상에서 개도국들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이들은 난관에 봉착했던 여러 쟁점에 대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면서 사실상 ‘높은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냈고, 도하개발의제 협상이 개도국의 ‘개발’을 위한 것이라는 거짓 명분을 되살려줬으며, WTO를 구출했고 신자유주의 무역체제가 아직까지는 견고함을 과시했다.

파스칼 라미는 18일 각료회의가 끝난 직후 기자회견을 하면서 “권력이 개도국 쪽으로 기울었다”고 발언을 했다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WTO가 추진하고 브라질과 인도가 승인해준 도하개발의제 협상은 신자유주의적 '개발‘을 위한 것이며, 새롭게 권력을 쥐게 된 자들은 국제무대에 새롭게 부상하면서 신자유주의 체제에 철저히 복무하는 ’개도국‘들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이번 협상의 최대 수혜자는 초국적 자본과 국제무대에서 급부상하는 개도국 자본이다. 그렇기에 인도와 브라질에 설득 당한 나머지 개도국들을 ’피해자‘라 할 수는 없다. 나머지 개도국들도 결국 암묵적으로나마 이번 합의에 승인을 해준 것이며, 이들 또한 자국 민중이 아닌 자본의 이해관계를 계산하고 있었다. 한국은 이미 이 대열에 합류했고, 중국과 베트남 등 공산권 국가도 최근 WTO에 가입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리더‘격이던 남아공의 ANC 정보도 우경화의 길을 걸으면서 WTO에 안주한 것이며, 지난 몇 년 동안 브라질 노동자당도 이미 IMF와 초국적 자본, 브라질 내 기업과 우익정치인들에게 굴복하면서 우경화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인도의 연립정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출범하였으나 이제는 적극적인 ‘추진’ 입장으로 돌아섰다. 즉, 브라질 및 인도를 포함해 많은 개도국들 내 계급지형이 이번 협상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한편으로는 예고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18일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베네수엘라와 쿠바가 선언문에 대한 ‘우려’ 정도를 나타냈을 뿐이다.

향후 전망

WTO는 이번 홍콩 각료회의를 계기로 2006년 내 협상을 완료한다는 계획을 재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면 늦어도 2007년 중반까지 협상을 완료하고 2008년에 도하개발의제를 발효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이번 선언문의 또 하나의 ‘성과’는 협상을 최대한 빨리 완료시키겠다는 회원국들의 일치된 결의이며, 이를 구체적인 일정으로 표출했다는 것이다.

농업과 NAMA에 대한 세부원칙은 2006년 4월 31일까지 마련하겠다고 하며, 서비스협상에서도 새로운 협상 방식에 의거한 달력을 내놓았다. WTO는 이러한 일정을 지키기 위해 질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부시 대통령의 ‘무역증진권한’5)이 2007년 6월에 만료될 예정이어서 조속한 시일 내 협상을 완료하라는 미국의 압력이 지대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 WTO 각료회의 저지를 위한 한국민중투쟁단’ 1,500여 명과 전세계에서 모여든 수천명의 노동자, 농민, 활동가들은 6박7일 동안 힘있는 투쟁을 보여줬다. 그리고 한국민중투쟁단 11명을 포함해 아직도 14명이 기소된 채 홍콩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홍콩 투쟁을 통해 홍콩시민과 전세계 민중들, 국제 노동자․농민운동의 뜨거운 연대와 힘을 보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홍콩경찰의 인권유린, 폭력과 비상시적 기소, 그리고 WTO를 다시 살려낸 초국적 자본의 힘과 이에 조응하는 한국 정부 등 지배계급의 ‘국제연대’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세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이번 홍콩 각료회의가 저들의 승리로 끝났지만 동시에 WTO와 도하개발의제, 이에 편승한 개도국 정부들의 본질을 다시 한 번 확연히 드러내줬다. 홍콩에 모였던 일부 엔지오들은 브라질과 인도 정부를 규탄하면서 나머지 개도국들에게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브라질과 인도, 그 외 개도국들이 희망이었던 적은 없다. ‘개도국’들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WTO의 향후 일정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을 계속 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들의 국제연대를 강화함으로써 각국 정부와 지구적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투쟁을 일국 차원과 국제 차원에서 강화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살농 정책과 농민 살해, 비정규 법안 강행 처리 시도, 의료 및 교육 법인화․사유화 등 추운 겨울을 틈타 지배계급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강제하고 있다. 앞으로 국내외로 투쟁해야 할 사안이 그만큼 많지만, 동시에 이것이 위기에 처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마지막 발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주)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2004년 8월 1일에 통과된 기본골격에 대한 분석은 WTO반대 국민행동 논평 “8월 1일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 기본골격 합의 - 전세계 민중에 대한 공격 다시 본격화” (2004.8.3) 참고. antiwto.jinbo.net 주요이슈란. 위로

2) 파스칼 라미 1차 초안에 대한 분석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민중행동 논평 “11월 26일 WTO 사무총장 파스칼 라미 홍콩선언문 초안 회람 - 실질적인 ‘알맹이’ 없다고 하지만 이번 각료회의 결국 개도국들 입장 여전히 무시한 강대국들의 잔치가 될 것으로 예상” (2005.11.29) 참고. www.peopleaction.or.kr 성명서란. 위로

3) WTO 홈페이지에서 선언문 원문을 볼 수 있다. www.wto.org 위로

4) 마틴 코어, “How the WTO's Conference Adopted Its Ministerial Declaration in Hong Kong”, 제3세계네트워크(TWN), 12월 19일. 위로


5) 이른바 ‘fast track'으로 알려진 법안으로, 부시 대통령이 2001년 도하 각료회의를 앞두고 황급히 통과시켰다. 의회를 거치지 않고 무역 협상에 대한 모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해주는 일종의 경제 ’계엄령‘으로 비판받았다. 위로

덧붙이는 말

전소희 님은 자유무역협정WTO반대국민행동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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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각시

    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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