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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막혀서 눈물이 나던 날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24) - 차가운 현실과 따뜻한 사람들

      
팔레스타인에 온지 나흘째 되는 날입니다. 우리의 여행을 도와주고 있는 아마니와 그의 동생 라에드와 함께 헤브론으로 가기 위해 라말라에서 세르비스 택시를 탔습니다. 세르비스(service) 택시는 합승 택시쯤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대부분 정원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특정 구간을 오가는 노란색 자동차입니다.
 
헤브론까지 차를 타고 가면서 많은 얘기를 듣고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나는 것을 겨우 참았습니다. 여러 번……. 아마니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러 번…….
 
아마니는 평생 2번, 라에드는 1번 예루살렘에 가 봤다고 합니다. 거리가 멀어서거나 차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팔레스타인인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예루살렘 방문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예루살렘 안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어떻게든 쫓아내려고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습니다.
 
 
                        갈란디야 체크 포인트(왼쪽)와 콘테이너 체크 포인트(오른쪽)
 
 
차를 타고 한참 뒤에 우리는 콘테이너 체크 포인트(검문소)에 닿았습니다. 갈란디야 체크 포인트에 비하면 작은 규모입니다. 하지만 이 체크 포인트가 서안지구의 남북을 가르기 때문에 중요한 곳이라고 합니다.
라에드가 설명하기를 이 체크 포인트는 택시와 같은 차량이 아닌 개인 차량은 지나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전 왜 그러냐고 물었고, 또 당연한 대답이 돌아 왔습니다.
 
“몰라요”
 
체크 포인트가 닫힌다거나, 누구는 통과하고 누구는 통과하지 못하는 사건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데 이유는 다들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가 달리는 동안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갑자기 울퉁불퉁하고 낡은 도로가 나오면 거긴 분명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의 도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얘기하면 서안지구 안에서도 이스라엘인들이 이용하는 도로는 잘 닦여 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도로는 관리가 제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로에서부터 차별이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또 다른 차별의 상징 신분증. 초록색은 팔레스타인, 파란색은 이스라엘인을 의미합니다.
 
꼬불꼬불 길을 달리면서 라에드가 또 하나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다음에 여러분들끼리 예루살렘에서 헤브론으로 갈 때는 다른 길로 가세요. 그러면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에요.”
“왜요?”
“우리는 그 길을 사용할 수 없어서 먼 길을 돌아가지만 예루살렘에서 헤브론으로 가는 다른 길이 있거든요.”
“이스라엘인들과 외국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는 말인가요?”
“네.”
 
헤브론에서의 첫날
아마니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모두 나와 우리를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나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름이 ‘마클루베’라는 음식이었는데 쌀과 닭고기 등으로 만든 음식이었습니다.
 
엄청 배가 고팠던 차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자꾸 더 먹으라고 권하시니 밥 한 숟가락 더, 닭다리 하나 더하며 자꾸 먹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잊지 않으시는 말씀.
 
“얼마만큼 먹는지가 얼마만큼 사랑하는지를 표시하는 거에요.”
 
최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잔뜩 먹고 응접실에 나오니 또 차와 과자가 나오고 아버지인 아부 아흐메드(아흐메드의 아버지라는 뜻)가 직접 과자를 집어서 또 권하십니다. 에구구......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곧 있을 팔레스타인 총선 얘기가 나왔습니다. 아마니의 아버지는 하마스를 지지하고 어머니는 파타를 지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왜 하마스를 지지하냐고 여쭤봤습니다.
 
“저와 친한 사람들이 관계 되어 있기도 하죠. 하마스는 이집트에서 시작된 무슬림 형제단 운동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하마스는 학교나 자선과 같은 활동을 활발히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마니의 가족들. 왼쪽 뒤편에 하얀 히잡을 쓰신 74세의 할머니가 보입니다.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하던 시대 때부터 얘기해 주실 수 있다고 합니다.
 
이어서 아부 아흐메드는 팔레스타인에서 무슬림(전체 인구의 약 90%)들과 기독교인(약 10%)들이 얼마나 함께 잘 살고 있는지를 설명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번 있었던 지방 선거에서 베들레헴과 라말라에서는 하마스가 기독교인들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선거와 각 정당에 대한 얘기를 길게 듣고 나서 팔레스타인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이 어떤 게 있는지 여쭤 봤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토지 몰수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토지를 몰수해서 이스라엘인들의 점령촌을 만드는 거죠. 두 번째 도로 봉쇄가 있는데요, 이스라엘 마음대로 도로를 봉쇄해서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는 경우가 벌어집니다. 세 번째는 물 문제인데요, 이스라엘이 수자원 전체를 통제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자원을 개발하려고 하면 못하게 막습니다. 네 번째는 하늘을 통해 이동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죠. 다섯 번째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요르단을 가든 이집트를 가든 이스라엘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국경을 통제하고 있는 거죠. 여섯 번째는 장벽인데요, 오늘은 통과를 허가 했다가 내일은 거부하는 식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돌 맞을 뻔 했다.
 
아부 아흐메드와 긴 얘기를 나누고 팔레스타인 친구들과 함께 산책 겸 친척 집 방문을 나섰습니다. 어딜 가나 ‘헬로 헬로’ ‘웰컴 웰컴’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한참 걷고 있는데 뒤에서 라에드가 동네 꼬마들에게 무언가 소리를 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아마니가 얘기하기를
 
“이 동네 애들이 외국인을 본 적이 잘 없어서 외국 사람이면 무조건 이스라엘 사람으로 생각하고 돌을 던지는 거에요.”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 정말 동네 꼬마들이 우리를 향해서 돌을 던지고 있었고 라에드는 아이들을 야단치고 있었습니다.
 
                                 해질 무렵 헤브론의 하늘이 아름다웠습니다.
 
친척집 방문을 끝내고 집에 오니 가족들이 알자지라 방송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장면을 보니 사람들이 군용 차량에 돌을 던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늘 제닌에서 이스라엘이 지하드 소속 사람을 체포했고, 사람들이 이스라엘 군인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사망자도 발생했다고 합니다. 제닌은 우리의 여행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라말라에서 오는 길에 느꼈던 눈물 어린 마음이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속에 풀리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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