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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갯벌엔 어민들이 있었네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16) - 여전히 주민생계의 터전, 새만금갯벌


지난 2006년 2월 13일, 월요일 전주를 출발하여 부안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새만금 소송 대법원 공개변론에 나가는 모 교수가 어민 한명당 잡아온 조개량이 얼마나 되는지, 갯벌에서 잡힌 수산물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산물시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내달라는 요구를 해왔기 때문이다.

먼저 부안독립신문 염기동 사진기자(편집국장)의 협조아래 부안상설시장에 있는 수산물 판매 상가를 사진 촬영하였다. 아직 오전이여서 손님들은 많지 않다. 시장입구에서 바지락을 까는 한 할머니는 “해창갯벌에서 잡아왔다. 그런데 바다를 막으면서 옛날보다 적게 난다”고 하면서 “하루에 2-3만원 정도 벌 때도 있다”고 하신다.

한 젊은 상인은 “주꾸미, 백합, 개불을 가리키며, 부안에서 잡히는 것이다”고 말한다. 시간이 많지 않아 사진 촬영을 하고, 급하게 서둘러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오후 4시 정도가 만조시간이고 보름때여서 곧 어민들이 갯벌에서 밖으로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대화를 나누었던 어민 한분이 서 있어 함께 버스를 타고 이런 저런 예기를 나누며 계화도에 도착하니 11시30분 경이다. ‘그레’ 사무실에 들렀으나, 장화가 없어 자전거를 타고 살금마을앞 계화도갯벌에 도착했다. 아직 멀리 바닷물이 들어온 것 같으나, 경운기들이 갯벌안에 멀리 보이고 점점이 어민들이 모습이 보인다. 갯벌에 자주 오다 보니, 아주 작게 보여도 사람인지, 다른 물체인지 구분할 수 있다.

맨발로 갯벌에 들어가기로 작정하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갯벌에 발을 딛었다. 1995년 겨울쯤 인가 갯벌에 맨발로 살짝 들어간 적이 있었다. 쏴한 느낌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런데 재법 따뜻하다. 요즘 날씨가 많이 풀려서인지 갯벌이 차갑지 않다. 1km 정도 들어가니, 경운기들이 하나 둘 멀리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농사 짓는 농촌에도 보기 어려운 경운기 소리가 갯벌을 요동치고 있다. 예전에 갯벌에 경운기가 들어다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었다. 갯벌보존운동을 하고 어민들을 직접만나고 조개잡는 광경을 직접 보면서 지금은 정감어린 소리로도 들린다.

일부 갯벌을 훼손하는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간척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문제가 절 하리라 생각한다. 경운기가 광음을 내며 밖으로 하나 둘 빠져 나간다. 손을 흔드니, 알아보면서 고개를 끄덕이신다. 뒷 자석에 탄 아주머니 들은 맨발을 보고 춥지 않냐고 소리친다. 어떤 아주머니는 백합 하나를 던져 주신다. 소주 한 잔 먹을 때 먹어라신다. 눈물이 핑 돈다. 이 모습도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불길한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만 생각난다.

멀리서 경운기를 타지 않고 걸어 들어가 ‘그래’로 조개잡는 분들이 보인다. 조개잡는 모습도 사진촬영하고 조개잡은 양을 촬영하기 위해 발길을 제촉했다. 어느 만큼 가자 그만 잡으시고, 두분이 함께 나오신다. 머리까지 뒤집어 쓴 수건안에 어떤 얼굴인지 알수 없다. 바닷바람과 햇빛을 막기 위해 수건을 쓰고, 고무 장화와 춥지 않도록 옷속에 중무장(?)을 하셨다. 몸 작으나 발걸음이 재법 빠르다. 젊은 사람인가. 옆으로 슬쩍 보니, 얼굴에 주름이 많다. 나이가 많이 드신것 같다.

차마 나이는 못 여쭈어 보고, 오늘 얼마나 벌으신 것 같냐고 물으니, “한 3-4만원 번것 같다”고 하신다. 매일 나오시냐고 하니, 매일 나오신단다. ”저 방조제를 막으니, 많이 안나온다“고 하신다. ”날강도 강현욱이 찟어죽어야 허는디. 내일 모래 도청에 갈 거여“ 하신다.

갯벌밖으로 나오시더니, 잠시 걸터 앉아 쉬더니 곧장 댁으로 가신다. “건강하십시요” 하고 인사를 건냈다.

제일 늦게 경운기들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사진촬영을 위해 한 중간도매상으로 향했다. 조개를 잡아온 주민들이 각자 담장밑에 늘어놓고 조개종류와 백합을 크기별로 구분하신다. 부부가 잡은 것을 한 곳에 모아 두기도 했다.


한 장소에서 중간도매업을 하는 나이 지긋한 한 아주머니가 계신다. 이전에도 인사를 한 적이 있어 거북 스럽게 대하지는 않으신다. 저울로 조개를 담은 망태의 무개를 달고 전표를 끊어 준다. 20년 정도 중간도매업을 하셨단다. 사진촬영을 하자고 하자, 기꺼이 응해주신다. 요즘 어느정도 잡히냐고 물으니, “겨울철이라 적은 편이다. 우리와 거래하는 아주머니들이 예전엔 50명 정도 되었는데 요즘엔 20명도 체 나가지 않은것 같다”고 하신다.

언제 계산을 하냐고 물으니, “보름에 한번씩 계산을 하신다”고 하신다. 그동안 전표를 받아보기 어려워 주민들의 수확량과 수입액을 정확히 알수 없어 답답했었다. 아무리 조개가 아직도 많이 잡히고, 어민들에게 생계수단이 되고 있어 어민생존권을 유지하는데 갯벌이 중요하다고 말을 해왔지만 구체적으로 수치화된 수확량과 수입액을 제시할 수 없었다. 어민들과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요청해도 받아내기 어려웠다.

어민들도 돈을 받고 나면 전표를 대개 버리기도 하고, 가볍게 여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옆에서서 잠시 틈을 내 “이름을 밝히지 않을 때니까, 오늘 조개를 잡아온 어민들의 전표를 보여달라”고 하자, 스스럼 없이 보여주신다. 불러 주시기 까지 하신다. “혹시 예전 것도 볼 수 있을까요” 하고 물으니, 짐이 되어 작년말에 모두 없애버렸다고 하신다. “아이고 아까워라!”고 한탄을 하면서 작년에 말씀을 드릴 걸 아따까운 마음이 들었다.

트럭을 가지고 온 다른 도매상이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사간다. 어디 까지 팔려가느냐고 물으니, “서울, 부산까지 간다고 들었는데 정확히 모른다”신다. 계화도내에서 도매상을 운영하는 다른 분들도 트럭으로 사 가져 간다. 왜 사가느냐고 물으니, “다른 도매상들은 배로 잡아온 조개를 취급하는데 요즘 배들이 나가지 않았는지, 우리 집에 와서 사간다”고 하신다.

따님인지 며드님인지 물 호스로 뻘을 싯어낸다. 거의 정리가 다 될 때 쯤 한명의 아주머니가 자건거에 싷고 온 조개를 저울에 올려 놓는다. 조금 더 지나자, 작은 손 수레를 끌고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조개를 가져 오신다.

“왜 이제 오세요” 하니까, “아까 갯벌에서 본 사람이여” 하신다. 아! 그러세요. 중매 아주머니가 “종덕이 어머니여”하신다. “그러세요”라고 말하고, 머리에 쓴 두건을 벗은 상태로 보니 70세가 넘으신 것 같다. 무게를 다니, 3만8천 원 정도의 수입 전표를 받으신다. “안녕히 가세요” 하니까, 말없이 손수레를 끌고 가신다. 뒷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고, 삶의 고단함과 오늘도 직접 돈을 벌어 손에 넣었다는 자부심이 배어있는 듯 하다.

오늘 어민들이 4시간 동안 계화도갯벌에 나가 ‘그래’로 조개를 잡아와서 한 중간도매상에 판매하여 수입을 얻은 어민 18명의 조개판매 수입내역을 아래 <표>에서 보는 것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어민 이름과 중간도매상 명칭은 당사자들의 동의가 없어 밝히지 않습니다.)

위와같은 자료로 통해서 보면, 아직도 계화도 어민들이 하루에 4시간 정도 갯벌에 나가 조개를 잡아 1인당 최저 3만원에서 최고 1십만원 이상까지 수입을 올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새만금갯벌은 수많은 생명체들의 터전이자, 어민들의 생계를 잊게 하는 주요한 소득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갯벌을 저금통장이라고 한다. 원금은 그대로 두고 이자만을 찾아서 먹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다.

즉 작은 조개들은 잡지 않고 큰 조개들만 잡아 파는 것이다. 스스로 노동을 통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은 굶지 않고 먹고 살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곳이다. 그래서 갯벌엔 IMF도 없다고 한다. 2004년엔 많은 젊은 사람들이 갯벌로 되돌아 와 머물러 살고 있기도 하다. 이곳 중간도매상외에도 다른 도매상에 판매하거나 몇일간 보관하다 어느 정도 모였을 때 판매하는 어민, 어선배를 이용하여 어업을 하는 어민, 계화도 이외에 새만금 연안에 사는 어민들을 모두 합한다면 그 수입액과 갯벌에 기대어 사는 사람은 엄청날 것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일자리와 지역경제에 두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정확한 통계조차 확인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오늘 어민 몇 명의 조개 수확량과 수입액의 자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새만금갯벌의 가치와 보존의 필요성, 그리고 새만금 연안 어민들의 생존권을 알아주시를 기대해 본다.


다시 중매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니, 한 아주머니가 멀리서 걸어 오신다. 누구신가 보니, 아는 어머니다. 새만금갯벌 살리기 운동을 열심히 해 오셨고, 작년 말 청와대 1인 시위를 제안하고 직접 몇차례 하셨던 분이다. 얼마전에 만나 들으니, “갯벌이 죽을 날이 얼마 안남아 갯벌을 직접 느껴보기 위해 경운기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닌다”고 하신다. 얼마 벌었느냐고 하니까, “얼마 못 벌었어” 하신다. 등에 진 “구럭‘을 보니, 홀쭉하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나 고만 찍어. 맨날 나만 찍어“하신다.

다른 사람들에겐 쉽게 시진을 찍자고 하기가 여럽다고 하자, 이제는 나도 싷다고 하신다. “열심히 반대했지만, 성과가 뭐 있어. 헛튼 짖이지”하신다. “그래도 하는데까지 해야지요” 했다. 계속 따라가 집에 들어가니, 수돗가 벽에 ‘그레’와 ‘구럭’을 걸어놓고, 바구니를 열고 잡아온 조개를 넣는다. “왜 바로 중간도매인에게 넘기지 않느냐”고 하니까, “너무 적어 더 많이 모아서 판다”고 하신다.

“요즘 건강이 안좋아 갯벌에 몇일간 나가지 못 했다”고 하신다. “갯벌이 죽을 것을 생각하니 잠도 오지도 않고 몸이 괜히 아프다. 몸이 아파도 갯벌에 나가면 몸 아픈 것을 잃어 버리는데 ㆍㆍㆍ.” 잠시 후 “여기 갯벌에 나가 조개잡는 어머니들은 나처럼 몸 상태가 않좋다”며 한숨을 쉰다. “왜 이렇게 좋은 갯벌을 막느냐 말이여”하신다.

몸도 싯어야 하고 하여, 인사를 나누고 발길을 제촉하여 다시 ‘그레’ 사무실로 가다가 또 한 주민을 만났다. 전표 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건네준다. 예전것도 주신다. 다시 계화도 갯벌로 갔다. 물이 재법 많이 들어왔다. 오후 4시가 만조 시간이니까, 계속 들어 올 것이다. 물이 완전히 찬 모습을 찍기 위해 갯벌 주변을 돌아 다니며 사진을 촬영했다. 군부대 초소자리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선외기 1대가 다른 선외기 한 대를 끌고 앞을 지나간다. 계화도 양지포구에서 오는 모양이다. 물이 들어왔을 때 가까이 지나가는 배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계화도 1호 방조제앞에 정박해 놓고 다시 양지포구로 되돌아 간다. 한 승용차가 들어오더니, 사진을 찍는다.

만조시간이 되어 꽉 찬 바닷물과 넘실거리는 파도를 찍는다. 비디오 카메라는 건전지가 다 소비됐고, 디지털 카메라와 슬라이드 사진을 찍었다. 정말 풍성하다. 바닷물이 빠져 갯벌이 보여도 풍성하고, 바닷물이 들어와 들어 차도 풍성하다. 나는 아직도 수영을 못한다. 그래서 바다에 자주 오기 전에는 바다만 보면 무서웠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배도 많이 타 보고, 갯벌도 자주 들어가 보아야 그렇게 무섭지는 않고 풍성하게만 크껴진다. 짱뚱어 솟대는 비안도 방향으로 보이는 가력도 옆 터진구간을 뒷 배경으로 해수유통을 강하게 희망하는 듯이 외롭게 꼿꼿이 서있다. 사진을 촬영하면서 더 이상 막히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기도 드려 본다. 이제 계화도 갯벌에서 나가야 할 시간이다. 길가에 심어진 철쭉은 샛잎이 조금씩 나와 있다. 벌써 봄이 오는 모양이다. 오후 5시에 새만금 관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계화도를 떠났다.


전주 집에서 출발하면 계화도까지 대략 3시간 가까이 걸린다. 자전거, 직행버스, 시내버스를 갈아 타고 기다리다가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 놓고 못온다. 2년전엔가 계화도에서 약속이 있어 전주에서 택시비 4만5천원을 주고 온 적도 있고, 부안읍내에서 1만원이 넘는 택시비를 주고 온 적이 있다. 오늘은 시간이 많이 든 만큼 큰 소득을 얻었다. 12일 에제 계화도 봉수제와 풍어제를 보지 못하고,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를 위한 3차 평화대행진에 참여해서인지 좋은 기회를 주신것 같다.

사진과 어민소득 조사 자료가 가치있게 쓰여질 것이 확실하다. 전라북도가 새만금 1심 재판부에 제출했던 자료를 보았는데 실측 조사자료가 아닌 개략적으로 어민 몇 명에 소득 얼마해서 곱하기 얼마 이렇게 대충 계산하여 어민들의 소득이 별로 없는 것처럼 했기 때문이다. 이 자료도 16일에 있을 대법원 공개변론에 사용하도록 전달할 예정이다.

<표> 2006년 2월 13일, 계화도 어민들이 4시간 동안 계화도 갯벌에 나가 ‘그레’로 조개를 잡아와 한 중간도매상에 판매하여 수입을 얻은 조개 수입내역 (어민 이름과 중간도매상 명칭은 당사자들의 동의가 없어 밝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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