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갈구하는 땅

[박수정의 사람이야기](8) - 대추리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

평택 팽성읍 대추리로 가는 길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5월 14일, 대추리 평화예술동산에서 ‘5.18 정신계승 미군기지 확장 전면 재검토!! 군부대철수 평화농사실현 범국민대회’가 열렸습니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추리로 오기 위해 모여들었지만 가로막은 길을 열고 오지는 못했습니다. 대추리로 이어지는 길이란 길은 죄다 전경차로, 철망으로, 방패로, 전경으로 다 막아놓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자들도 여러 차례 검문을 당해야 했다고 하더군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날도 대추리 바깥에서는 연행되고 다친 사람들이 여럿 있었더군요.

앞날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 늦은 밤 대추리로 향했습니다. 대추리가 한참 떨어진 곳에서부터 검문검색이 심하더군요. 차 트렁크를 열어보고 실내 조명등을 켜보라고 하고 차 안에 탄 사람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그렇게 네 번의 검문검색을 당하고 마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함께 차에 타고 간 사람이 모두 세 사람이었는데 우리가 갖고 간 시위용품이란 별다른 게 아니라 마음뿐이었습니다. 경찰들은 우리한테서 눈에 띄는 시위용품을 찾고 싶었나 봅니다. 우리가 가져간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그이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경찰의 검문검색이 끝나고 마을로 들어서자 이번엔 마을에서 차를 세웁니다. 사복경찰이 활보하고 밤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을주민들이 밤잠을 포기하고 마을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간 중간 길을 막아 놓은 것은 전경차나 방패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것들이 아닙니다. 플라스틱 음료수상자, 종이상자, 고무대야 같은 거나 어린아이용 플라스틱 자동차나 세발자전거였습니다. 자동차와 자전거에는 깃발도 매달아 놓았죠.

마을은 어둡고 조용했습니다. 밤은 늘 어둡고 조용할 테지만 이전의 밤들과는 다를 것입니다. 장난감 같은 바리케이트이지만 그렇게라도 길목을 막아야 하고 누군가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까지 온 상황이 어둡고 조용함을 다른 느낌으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요란한 헬기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처음 헬기소리를 들은 건 아침 6시 45분 무렵이었습니다. 내가 못 들은 소리가 더 일찍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시간이면 벌써 사방이 훤하니 새벽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군요. 요란하게 울리는 헬기소리를 들으면서 아침을 맞이한다는 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날마다 헬기소리를 들으면서 아침을 맞이하는 이곳 주민들에겐 고역을 넘어서 벌써 노이로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새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 그 헬기소리를 이겨내려고 애쓰는데, 한 술 더 떠서 ‘애국가’가 쏟아집니다. 헬기에서 울렸다고 하더군요. 참 오랜만에 듣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5시 무렵이면 국기를 내리면서 학교 운동장에 울려 퍼지던 애국가. 누가 보지 않아도 자동기계처럼 걸음 멈추고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끝날 때까지 꼼짝 않고 서 있어야 했던 때 들었던 노래. 심지어는 영화를 보러 간 극장에서도 일어나 있어야 했던 노래. 그런 때가 문득 떠오르더군요.

소리. 소리로 괴롭혀 보겠다는 것이지요. 위축시켜보겠다는 것이지요. 평생 논에서 밭에서 바람소리, 빗소리, 풀벌레소리, 새소리 듣던 사람들에게(농사가 기계화되면서 농기계에서 나는 소리가 물론 있기는 하지요)는 고문과 같을 것입니다.

아침 11시 35분, ‘대추리 평화예술동산’에서 범국민대회를 시작했습니다. 마을주민과 지킴이들 그리고 어떻게든 들어온 사람들과 기자들이 전부였습니다. 뒤에서 평화예술동산에 앉은 사람들의 수를 세어보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나중에 여러 언론들에서는 오늘 대회에 몇 명이 참석했다라고 기사를 쓸 텐데 그 몇 명이 그리 중요할까 싶었습니다. 이 평화예술동산에 단 한 명이 앉아 외치더라도 그 외침이 옳은 것이라면 우리는 그 외로운 외침에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회가 열리는 평화예술동산에서 둘러보니 대추리를 빙 둘러싸고 곳곳이 전경차들입니다. 바로 아래에서 문무인상까지 이어지는 길만 해도 전경차들이 줄을 섰습니다. 서른 몇 대까지 세어보다가 눈이 아파서 그만 두었습니다. 한없이 너른 들판을 바라보다 보면 저쪽 어디선가 꼭 막히고 맙니다.

"4년 동안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싸워왔다."
"고통과 서러움과 분노와 억울함…"

범국민대회 사회를 맡은 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게 뭔 지랄이야. 우리 대추리 도두리 팽성 주민들을 놓고 말장난을 해. 우리가 언제 보상을 얘기했나. 이주 대책을 얘기했나. 무슨 평화집회? 우리가 언제 폭력을 썼나. 우리를 탄압해서 맞섰던 것을 자꾸만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여기에 도두리 주민이 오지 못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문정현 신부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든 사람들이 본정리에서, 계양초등학교 부근에서 길이 막혀 오지 못했고 가까이 도두리 주민들도 마찬가지로 문무인상 있는 곳까지 왔다가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파랑새’상이 있는 곳에 나무의자가 있는데 그 곳에 한 아저씨가 앉아 있었습니다. 앉은 모습이 그리고 얼굴이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평화예술동산에 풀이 잔뜩 뒤덮인 무덤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털퍼덕 앉아 들판 쪽을 바라보시는 한 할아버지 모습도 여간 쓸쓸해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마침 아는 분이 그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기에 다가가 앉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도두리에서 온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계신 그 아저씨도 도두리에서 온 분이셨고요. 도두리에서 출발한 주민들 가운데 두 분만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 두 분의 쓸쓸함이 그제야 조금 해결되었습니다. 평화예술동산 아래로 펼쳐진 너른 들을 보면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년 같으면 5월 12, 13일이 모내기 하는 날이다. 보통 5월 5, 6일부터 심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대부분 5월 20일쯤이면 모내기를 끝낸다. 일찍 서두르면 그만큼 수확이 빠르다. 이곳은 들이 좋기 때문에 수확도 좋다. 바람이, 통풍이 잘 되기 때문에 벼가 안 쓰러지고 잘 자란다. 보통 다른 곳 200평 땅에서 3가마 나오면 여기는 150평에서 3가마 나온다. 밥맛이 기똥차다. 그렇게 좋은 땅을 미군한테 주라고 한다. 이북이 고향인 사람들이 철조망 너머 저기가 내 집인데 하는 심정을 몰랐는데 내가 지금 그 심정이다. 문무인상에서 100미터 가면 내 땅이다. 바로 저긴데…."

지금 한창 논에 들어가 해야 할 일이 많은 때인데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니 그 심정이 어떠시겠습니까.

"새벽에 일어나면 논 한 바퀴 뺑 돌아보고 와야 밥맛도 좋고 그랬는데 그런 일을 못하고 있다. 한 바퀴 돌아보면서 ‘야, 오늘은 뭘 해야겠다’ 생각하는 거지. 재료 필요한 거 싣고, 경운기 끌고 가야 되면 끌고 가고, 오토바이 타고 가야 하면 오토바이 타고 가고. 그런 일을 일절 못 하고 있는 거지."

보통 때 할아버지께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논을 한 바퀴 돌면서 물꼬 쳐다보고, 논에 무슨 일이 있나 살펴보면서 그날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챙기셨다고 합니다. 아침 6시쯤 집에 돌아와 밥 먹고 이제 들에 나가 일을 하셨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일상은 사라졌습니다. 몇 십 년을 해온 그런 일상을 빼앗겼습니다. 영판 다른 아침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은 할 짓이 없으니까 옥상에 가서 저놈들 쳐다보고 있지. 지금은 감옥이나 마찬가지여."

들판으로 나가지 못하고 할아버지는 집 옥상에 오르십니다. 새벽부터 시끄럽게 나다니는 헬기들을 보면서 기막히는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할아버지께 논이 자식 같겠어요, 하고 여쭈었더니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논은 내가 아니면 죽는 거나 마찬가지다. 생명이나 마찬가지다. 자식은 크면 자기가 따로 살아나가지만 논은 사람 손이 가서 물주고, 약 주고 해야 되지 내버려두면 곡식이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다."

풀이 잔뜩 난 무덤을 가리키면서 논도 마찬가지로 사람 손이 안 닿으면 이렇게 잡풀만 무성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먹는 밥, 그 쌀을 만들어내기 위해 논도 안간힘을 쓰겠지만 그 논을 돌보는 사람들은 평생을 ‘생명’을 대하는 마음으로 일을 해 오셨습니다.

"옛날에 이 논 만들 때 가래로 흙을 파내는데 장대에 3명, 양쪽 줄에 5명씩 13명에서 15명이 매달려 일을 했다. 둑 쌓고, 도랑을 만들고 사람들이 일일이 등짐 져가며 일을 했다. 그럴 때 정부가 밀가루 한 포대 주지 않았다."

그 자체로 생명인 논, 그리고 다시 생명을 먹이고 살리는 논인데 그 생명을 죽여버리자고 한다면 그 논을 만들어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일을 하신 이 분들이 그래 그러자꾸나 하시겠습니까. 일 년이면 많은 수의 사람들이 먹고 살 쌀이 나오는 땅을 기껏 사람들에게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만 주는 군대기지를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이 땅이 그대로 논일 때와 군대기지일 때, 그 어느 때 우리는 더 평화로울까요?

범국민대회를 마치고 대추리로 오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행진을 한다고 하는데 늘 다니던 길조차 못 가게 막아 마을을 한 바퀴 빙 돈다고 했습니다. 뒤늦게 사람들이 간 곳을 따라가려니 보이지가 않더군요. 대신 평화예술동산 맨 위에 의자를 놓고 사람들이 간 곳을, 전경들이 막고 있는 길을, 너른 들을 내려다보는 할머니들이 계신 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볼 때야 다 그 논이 그 논이고, 익숙한 이름 ‘황새울’만 입에 올리지만 할머니들한테는 그렇지 않습니다. 평화예술동산에서 바라볼 때 보이지 않는 왼쪽으로가 ‘황새울’이고 신원, 안신원, 흥농계원처럼 다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는 논이더군요. 논을 일굴 때 붙여졌나 봅니다. 더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는데 다 기억해 두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한 할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예전에 미군기지 철망 바로 옆에서 살았는데 지금 다시 우리 논에 철조망이 쳐 졌다. 가시철망 옆에서만 평생을 살았다."

‘가시철망 옆에서만 평생을 산다’는 그 말을 아무래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시철망은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할머니 삶의 가시철망이었을 것이고,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에 쳐진 그 어떤 가시철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가시철망을 넘으려고 할 때, 끊어내려고 할 때 우리 몸과 마음에 많은 생채기를 내겠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겠지요.

바람 부는 동산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너른 들을 바라보던 할머니들. 그 분들의 눈 속에는 짜디짠 갯땅을 바꾸기 위해서 고생한 시간들과 여러 차례 쫓겨나야 했던 아픔과 넉넉하지 못했던 배고픔과 그래도 이 들에서 꿋꿋하게 살아온 자부심 그 모든 게 다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온 그 시간들이 존중받을 수 있었으면, 그리고 존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범국민대회가 열리기 앞날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대추초등학교를 정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교로 한번 가 보았습니다. 5월 5일 보았던 모습과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면 평화예술동산에서는 다 모이기 힘들 거라고 학교 운동장을 애써서 치워놓았다는데 말씀들은 안 하셔도 많이들 서운하고 안타까웠을 겁니다. 그런데 학교 운동장에 내려서자 보이는 건 학교 들어오는 길에 죽 늘어선 전경차들과 방패를 앞세운 전경들이었습니다. 바로 곁에 그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이 와 있는지 몰랐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더군요. 솔직히 말해 그렇게 가까이서 보고 있자니 눈길을 피하고 싶어집니다.

나중에 아주머니 두 분과 그 앞까지 가 보았습니다. 전경들이 막아선 자리에 앞에서 말한 유아용 자동차와 세발자전거가 있었고 그 곳에 마을주민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길모퉁이 담벼락 아래 할머니 두 분이 앉아계셨습니다. 예전에는 노인정에서 화투도 치고 그랬는데 요즘엔 정신이 없어서 화투도 못 친다고 하십니다. 그러게요. 때때로 십 원짜리 화투도 치고, 우스갯소리도 하고, 노래도 하고 그래야 할 텐데 미군기지 확장이전 강제토지수용이라는 문제가 정신도, 마음도 산란하게 만들어 놓아버렸습니다. 낮에만이 아니라 새벽이고 밤이고 대추리 하늘 위를 날아다니며 정찰하는 헬기 때문에 잠을 빼앗기고, 귀가 아프다고 하십니다.

"4월초에 볍씨 뿌린 게 싹이 났던데 그걸 죄다 밟아놨어. 자기들은 밥도 안 먹나."

할머니 목소리는 작고 낮았지만 생명을 짓밟은 행위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은 강했습니다. 4월 초였으니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이군요. 볍씨가 싹을 틔우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인데 그 얼마나 애를 썼겠습니까. 볍씨도 살아 있는 것이었고, 싹도 살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들께서는 그 ‘생명’ 있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잠시 서른 날을 넘게 몸부림쳤을 볍씨를, 그 속에서 나온 싹을 생각해 봅니다. 사람도 누구나 살기 위해 애쓰듯이-갓난아기도 얼마나 애를 씁니까- 볍씨도 살아나기 위해 애썼고, 그래서 싹을 틔워 세상에 고개 내밀었는데 군홧발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아 놓았습니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온 사람들이 동산 곳곳에 앉아 있습니다. 할머니들끼리 모여 있기도 하고 할아버지들끼리 모여 있고. 한 할아버지 곁에 다가가자 보리밭을 가리키십니다.

"저 보리 좀 봐. 퍼렇게 자랐는데 저걸 그냥 내둬야 돼. 저게 찰보리야. 여기 쌀이 맛있는 게 심어 놓으면 보리고 쌀이고 다 찰져. 가장 맛있는 보리야."

지난 가을에 벼 베고 난 뒤 심군 보리가 그나마 푸른빛을 내며 들판이 살아있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6월이면 누렇게 익어 베어야 한다는군요. 저 보리는 따로 씻어서 불려 놓지 않고 그냥 한 움큼 쌀이랑 섞어서 씻어 막바로 밥을 해 먹어도 된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며칠 전에 논에 들어가 잠시 일을 하셨답니다. 저쪽에서 한 할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농사도 못 짓고, 논에도 못 들어가고 이제 뭐하냐?"

당장이라도 논에 들어가 일을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일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몸이 마구 말을 하는가 봅니다.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논들을 눈앞에 두고 손길 가 닿지 못하니 얼마나 속터지시겠습니까. 그 마음 진정 다 이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 머리 위로 계속 헬기가 날아다닙니다. 할아버지들이 일어나셔서 장구를 메고 북채를 잡고 꽹과리를 손에 쥐고, 징을 듭니다. 날라리 소리와 함께 풍물을 시작합니다. 장단에 맞춘 걸음걸이를 눈여겨보았습니다. 때를 기다리고 맞추고, 철을 알고 살피며 살아온 분들이 내딛는 걸음걸이는 부드럽고 자연스럽습니다. 정부가 대화와 타협이라는 말을 하던데 그러려면 여기서 산 이 분들의 방식으로 대화하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느리면서 낮고, 조용한 그 분들의 목소리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처럼 말입니다.

들판 한가운데 철조망을 쳐 이곳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군병력을 보내 들판을 짓밟고, 사람들을 짓밟으면서, 시도 때도 없이 헬기를 띄워 고통을 주면서 대화하겠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그 모든 것들을 다 멈추고, 내 보내고 더 늦기 전에 여기에 와서 직접 이 분들의 살아있는 말을 한번쯤 귀담아 들어보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작년에 ‘평화유랑단 평화바람’이 이곳 주민들을 인터뷰해서 엮은 책 『들이 운다 - 땅을 지키려는 팽성 주민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가슴으로 한번씩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저녁에 할 ‘황새울인권영화제’를 준비하는 모습만 보고 대추리를 나왔습니다. 더 머물다 왔으면 좋았으련만. 바깥에서 열린 집회가 끝나고 사람들이 각자 온 곳으로 돌아간 뒤에도 대추리로 찾아든 사람들이 있더군요. 나오는 길, 몇 안 되는 사람들을 두고 나오려니 마음이 안 좋았는데 그렇게 찾아간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잠깐 가서 보고 들은 것을 글로 써도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는 지킴이들도 있는데 그야말로 바람처럼 왔다가 가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녹음기 없이, 수첩 없이, 미리 생각한 질문 없이 그냥 다가가 함께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른들께서 먼저 한 마디씩 들려주십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번씩 대추리로 가보면 좋겠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많은 것을 얻어올 것입니다. 한 사람 두 사람, 그렇게 가다보면 평택 팽성읍 대추리로 가는 길이 점점 쉬워질 것입니다. 생명으로, 평화로 가는 길이 멀지만 점점 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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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

    대추리 농민의 목소리, 누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군요.

  • 정수

    대추리 농민의 목소리, 누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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