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 채택은 기만이다

민족공조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것도 경계해야

북의 미사일 실험 발사에 대한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이 채택됐다. 미국은 그동안 일본을 앞세워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전방위적인 활동을 벌여왔다는 점에서 대북 압박 정책을 당분간 지속, 강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 역시 미국을 등에 업고 이번 결과를 낳기까지 앞장서 역할을 함으로써 일단의 힘을 발휘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중국은, 북의 미사일 실험 발사를 막지 못했고, 동시에 결국 의장성명이 아닌 안보리 결의가 채택됨으로써 상당한 정치적 손상을 입었다. 특히 한국은 북의 미사일 실험 발사를 전후로 한 국면에서 사실상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해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안보리 결의안 채택에 대해 북은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전면 거부 입장을 표명했다.

오늘의 세계는 명백히 전쟁의 시기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한 모습인 무장한 세계화와 함께 미국 제국주의의 직접적 전쟁 행각에 의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무력 충돌도 단지 중동 고유의 정세‘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중동 고유의 정세가 거꾸로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약간 예외적인 모습을 제외하면 전 세계는 지금 군비증강 물결에 휩싸여 있다. 특히 미국이 이라크 침략전쟁을 감행한 이후 이 현상은 더욱 급물살을 타고 있다.

물론 지난 1,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즉 제국주의 열강 사이에 벌어지는 형태의 세계전쟁이 가까운 시일 안에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성은, 단지 시간과 계기의 문제일 뿐, 여전히 현실의 문제로 살아 있다. 전쟁은 정치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며, 정치는 경제의 집중된 모습이라는 점에서, 오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심각한 위기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그 위기 탈출을 위해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계급이 보여주고 있는 폭력성, 야만성, 무차별성에 의해 사실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북 체제에 대한 인식보다, 북 정권에 대한 판단보다, 북의 핵무기 보유 의지와 미사일 실험 발사에 대한 태도보다 먼저 앞서야 하는 것은 오늘의 세계에 대한 객관적 인식, 판단, 태도이다. 북 체제에 대한 인식 못지않게, 북 정권에 대한 판단 못지않게, 아니 북 체제와 북 정권에 대해 어떤 인식과 판단을 하느냐 와는 무관하게,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계급이 오늘 저지르고 있는 행위야말로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직접적이고 일차적 원인임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북의 핵무기 보유 의지와 미사일 실험 발사가 한(조선)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끼칠 영향을 따져보기 전에 미국, 일본의 지배계급이 한(조선)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악화시키는 주범임을 먼저 분명히 하는 것을 출발지점으로 삼아야 한다. 중국, 러시아 역시 역내에서의 주도권 행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도 전제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비로소 북의 행위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가능하다. 북의 행위는, 그 사실이 어떤 것이든, 그 사실이 끼칠 파장이 무엇이든, 그 행위 주체의 의도가 어떠하든 객관적으로는 압박과 압력을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응이지 그 역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남의 노동자 민중의 대응이다. 안보리 결의안 채택으로 인해 남의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축소되었다. 안보리 결의안 채택이 가져올 파장과 효과는 한미FTA 추진이 가져올 그것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남의 노동자 민중을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하고 있다. 남의 노동자 민중은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에 맞서 싸워야 하면서도 동시에 한(조선)반도 및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군사적 환경과도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본질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즉 오늘의 세계자본주의가 노동자대중에게 강제, 강요하고 있는 계급적 반동성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를 위해서라도 한(조선)반도 및 동북아의 정치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더 나아가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는 정세를 적극 타개해 나가야 한다. 한(조선)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이 위협받는 정세 아래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도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투쟁전선에 교란과 혼란이 더해지고 나아가 생명의 위협까지도 받아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보리 결의안 채택은 겉으로는 북의 미사일 실험 발사에 대한 대응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북의 미사일 실험 발사가 미국 제국주의 세력의의 대북적대정책이 불러온 결과라는 점이 사태의 본질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안보리 결의안 채택은 정치적 기만이자 위선에 불과하다. 다만 남의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 북의 대응이 과연 올바르고 또한 효과적인가라는 질문을 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이 성립된다는 것과 안보리 결의안 채택이 갖는 근본적 문제를 서로 섞어서는 안 된다. 비록 북의 행위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입장에 선다하더라도, 그러한 질문을 하기에 앞서 또한 그와는 비교되지 않는 강도로 안보리 결의안 채택이 갖는 기만과 위선을 먼저 폭로하고 규탄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비로소 남의 노동자 민중은 자신의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정치적 입지와 영향력을 길러 나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는다면 남의 노동자 민중은 의도와 다르게 제국주의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거나, 남, 북 정권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부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남의 노동자 민중은 당연히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기득권 세력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와 그들 사이에 사실 그 어떤 정치적, 계급적 차이가 없음을 폭로해야 한다.

북은 당사자로서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강력히 거부하고 있다. 이 자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북도 사실은 미국, 일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물론 남에 대해서도 일관된 태도를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이 의미하고 있는 바는 북의 행위가 전 세계 노동자 민중과 같은 계급적 태도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북 체제 또는 북 정권의 이해를 우선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 정권 자신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최우선적인 정치적 목표로 삼고 있다.

북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해 반응하고 있는 일차적 태도도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이 보여주고 있는 반전투쟁과 같은 맥락이라기보다는 북 체제와 정권 방어라는 측면을 더욱 중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이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강력 거부하는 것과 남의 노동자 민중의 그것과는 상호 중복되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북은 언제라도 남의 또는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이해와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다. 남의 노동자 민중은 이 때를 대비할 수 있는 정치적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남, 북 정권 모두에서 말하고 있고, 국내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은 남북공조 또는 민족공조를 최우선적 가치로 삼는 것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의 노동자 민중이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강력 규탄하는 것과 북이 그렇게 하는 것과는 정치적 맥락이 다르며, 노무현 정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도 노무현 정부가 남북공조 또는 민족공조를 우선시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이해와 다르기 때문이다.

남의 노동자 민중이 정치적으로 연결하고 연대해야 대상과 방향은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이다. 오로지 노동자 국제주의에 설 때만이 정치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며 문제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있으며 정치적 독자성을 갖출 수 있다. 남의 노동자 민중이 만약 남북공조 또는 민족공조를 우선시 하는 정치적 태도를 취할 경우에는 남의 노동자 민중이 궁극적으로 연결하고 연대해야 할 대상이자 방향인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의 이해와 다른 국가주의 또는 민족주의적 선택을 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이 점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이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오늘의 세계정세가 이미 그러한 지점에 도달해 있어 더욱 현실적인 문제이다. 결코 원칙적이거나 원론적인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이와 같은 문제인식은 이른바 NL, PD 논쟁의 재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국사회 또는 한(조선)반도 전체에 대해 미국 제국주의 세력이 끼치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히 대단하다. 이를 해결해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다. 그러나 그 방향은 남북공조 또는 민족공조를 통한 길이 될 수 없다. 이는 낡은 패러다임일 뿐만 아니라 그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마찬가지로 남의 독자적인 선 이행 후에나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관점도 관념에 불과하다. 수많은 현실의 정치 쟁점이 매일 같이 쏟아지고 있는 세상에서, 남북문제가 오늘의 계급투쟁에 시시각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상에서 그와 같은 태도는 한가로운 차원을 넘어 정치적 무능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족공조를 내세우는 세력이 제국주의의 현실을 너무 자의적으로 취급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위력에 눌려 한(조선)반도 나아가 동북아에서 노동자 민중에게 유리한 정치군사적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조차 못하는 세력도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남의 노동자 민중에게 이슬람과 같은 무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조건과 필요에서 그러할 뿐이다. 남의 노동자 민중은 강력한 대중투쟁과 정치적 헤게모니라는 무기를 갈고 닦아야 한다. 이를 근간으로 현실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실험되고 있는 반자본(시장)적, 반권력적, 반권위주의적, 반가부장적, 새로운 문화실천적 행위들을 날줄과 씨줄로 엮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들어가야 한다. 이를 토대로 전 세계 노동자 민중과의 교류와 연결과 연대 축을 세워 나가야 한다.

북에 대한 내재적인 접근이나 민족적인 시각, 그리고 한국사회 뿌리 깊은 냉전 성벽 허물기도 이와 같은 틀에서 재해석, 재구성 할 때 새로운 모멘텀을 형성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갖는 최소한의 진보성조차 대중에 대한 설득력을 더는 갖기 어렵다. 극우, 반공적 의식과 태도‘만’이 문제가 아니라 미래를 열 수 있는 정치적 전망을 논의하고 제시하고 실천할 수 없는 것이 그러한 상황을 물리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아야 한다.

안보리 결의안 채택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규탄해야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정치실천을 해 나가기 위한 과정과 맞물릴 때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 북이 추가로 미사일 실험 발사를 시도할 것인지, 핵실험까지로 나아갈 것인지, 그리하여 안보리 결의안이 군사적 제재로까지 갈 것인지를 분석하고 대처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들이 필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정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은 세상을 해석하는 데는 기여할지 모르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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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의나무

    부시 행정부는 9.11테러(네오콘의 자작극 음모라는 설이 파다하다)이후 북한을 악의 축 국가로 규정하고 제네바 협정을 파기한 뒤 북핵동결의 대가로 북한에 건설해 주기로 한 중수로 발전소 건설을 파기시켰다. 그리고 미국은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PREEMPITIVE STRIKE하겠다며 공갈협박을 일삼은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처지에서 북한은 체제 수호가 일차적인 관건이지 국제적인 반전운동을 할 상황인가? 위 논설은 너무도 안일한 남한 노동자나 민중의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남한 좌파가 비난 받는 이유중에 하나는 이론은 그럴싸 한대 전혀 현실을 모른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사실상 미국과의 전면 전쟁의 대결 상태이다. 그런데 반전 국제주의를 나서지 않는 다고 비난하는 것은 어째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어줍잖은 주장같다. 북미간 전쟁상태는 곧 제국주의 미국이 한반도 전역에 폭탄을 퍼붓는 남한 민중이 포함되는 전쟁상태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체제 위협과 공갈을 가하는 동시에 역시 남한에도 한미FTA 카드을 꺼내들고 체제 위협, 민중수탈의 칼을 빼들고 있다. 그런데 남한 노동자, 민중들은 요란한 이론좌파들의 주장과 같이 정치적으로 각성되어 있지도 않고 투쟁적으로 조직화 되어 있지도 않다. 이론 좌파들이 보수우파와 같이 북한을 배척하며 반미투쟁을 외면하고 교과서적인 맑스주의나 읖퍼 대며 계급해방, 평등 세상이나 외치는 꼴이니 대중들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반미투쟁을 민족주의 투쟁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좌파들은 투쟁적 좌파라기보다는 현실에 유리된 옹색한 수준의 소부르주아 급진주의자 같다. 국제정세와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을 모른다는 것은 전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쳐다보며 우물안 개구리식의 민중운동을 해 보겠다는 것처럼 옹색한 짓이다.

  • 전쟁의나무

    윗 분 말씀이 맞네요. 자기 정권이나 수호하려고 군대를 앞세우는 북한의 지배세력이 한가하게 반전 국제주의 투쟁을 할 리가 있나요? (그들에겐 체제가 곧 정권이겠죠?)

    그리고 민족공조해서 반미투쟁해야 되지 않나요? 남한 양극화 해결 운운하면서 실제로는 북한 노동자 착취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로 연착륙시켜 흡수통일하려는 개성공단이나 남북경협도 민족공조지요. 일본 우익의 독도 망언과 과거사 왜곡에 한 목소리로 외치면서 우익 민족주의를 강화시키는 것도 민족공조지요. 그리고, 북한이 핵 개발했을 때 같은 민족으로 긍지를 가지고 지지하면서 한 판 붙어보자고 으쓱대는 것도 민족공조지요. 이렇게 남북 민족이 공조하면, 아마 미국은 조금은 쫄지 않겠어요? 그러다가, 아마 미 태평양 사령부 다 출동해서 동해와 남해에서 수시로 무력시위하면서 토마호크 날리고, 선제 정밀 타격할 태세를 갖추겠지요. 그 미사일에 맞아 수만명이 죽어도 우린 민족공조해서 반미투쟁해야지요.

    왜냐고요? 우린 한 민족이니깐.... 까짓 것 몇십만명 죽으면 어때요. 우리 민족의 자존이 중요하잖아요.

    참세상 논설위원님, 이렇게 좋은 민족공조하자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같이 민족공조해서 반미투쟁 전선에서 미사일 맞아 죽자고요. 제발~~~~~

  • 꿈돌이

    님이 생각하는 '국제정세'와 '숲을 쳐다보는' 운동이 어떤거지요?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요? 그 걸 알려주셔야 민중들이 '정치적으로 각성' 하고 '투쟁적으로 조직화' 되죠.
    그걸 정말 원한다면 님의 생각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