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길섶 |
최근 한국의 방송사들이나 환경단체들에서 도시농업을 보러 쿠바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아바나 시내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전북방송 취재팀도 우연히 만났다. 쿠바는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농업의 바탕을 이루어내었다. 도시농업이란 말 그대로 도시공간에서 농업을 하는 것 즉 도시를 경작하는 것이다. 도시농업을 통해 농산물이나 과일, 야채 등 기본 먹거리들을 확보한다. 인구 220만명의 아바나 시내는 가정텃밭, 개인농가, 기업농장, 협동조합농장, 자급농장 등 8천 곳이 넘는 곳에서 도시농업을 꾸리고 있다. 물론 아바나 비에하라든가 아바나 센트로 등 시내 중심지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나는 쿠바에 갈 때 모든 곳에서 도시농업의 풍경들을 볼 수 있으리라 상상하였지만 막상 도시 중심가를 하루종일 걸어도 텃밭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다.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아바나를 가리켜 ‘생태도시’라고 하기에도 너무 멋쩍어보였다. 나를 비롯해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이라는 책에 유혹당해 쿠바에 찾아간 사람들은 아마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할 것이다. 십중팔구 그 책은 의미있는 책이지만 과장되었다고 평가한다. 나는 쿠바 여행 내내 이 과장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내내 고민했다. 도시농업 풍경만을 볼 때 생태도시라 할만 하지만 도시 전체의 공간적 흐름으로 볼 때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도시농업 공간만을 본 것이다.
생태도시는커녕 카스트로가 표현한대로 “가장 독한 배기가스를 토해내는 헝가리제 버스나 아바나 시민을 콜록거리게 만드는 광경”을 접하면서 나는 처음에는 코를 막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아바나 시민들은 자동차가 얼굴에 시꺼먼 배기가스를 토해내고 지나쳐도 아무렇지 않아 한다. 입과 코를 가리거나 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서울 시민들이 서울이라는 대도시 오염에 아무렇지 않듯. 쓰레기는 함부로 버려졌다. 내가 맥주 빈 캔을 들고 택시를 타려 하니 기사가 친절을 베푼답시고 빈 캔을 빼앗아 길거리에 내동댕이 쳤다. 길거리에 빈 캔들은 눈에 자주 띤다. 물론 열심히 거리 청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쿠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매우 깔끔하다. 특히 교복입은 아이들은 깨끗한 운동화와 양말에 단정하게 복장을 한다.
나는 어느날 비교적 시내권에 위치한 혁명광장을 넘어 계속 걷다보니 도시 건물들과 밀림 사이로 가려진 도시농업의 풍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한두평 텃밭이 아니라 수백, 수천평의 농장이 아파트를 뒤로 하면서, 출근하는 사람들을 옆길로 내세우면서 도시농장은 조용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몇몇 시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상추를 뽑고 오이를 따고 있었다. 주인과 대화를 나누며 그가 따준 작은 포도를 먹을 수 있었다. 아바나에서 고속버스로 12시간 달리는 어느 소도시의 도시농업 농장 인부는 우리 일행에게 오이를 몇 개 건네주며 아바나 사람들은 인심이 너그럽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아바나의 도시농장은 중심가를 벗어나 프라이그, 세로, 보제로스 등 주변지역에서 발달해 있다. 도시농업농장에는 직판장이 설치되어 있어 아침이면 분주하다. 쿠바 사람들은 도시농업 이전에는 육류 섭취가 주를 이루었으나 도시농업 이후 야채 섭취 식문화로 상당히 바뀌었다 한다.
내가 보기에 쿠바의 도시농업은 다음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쿠바의 도시농업은 1989년 소련의 붕괴 이후 경제위기에 처한 생존의 몸부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쿠바는 ‘아주 특별한 비상시기’에 처해 물자들이 매우 부족하게 되었다. 사탕수수와 같은 대량단일작물 생산체제였으며, 여타의 물품들은 대개 해외에서 수입해왔으니 소련 지원경제가 끊기고 미국에 의해 해상이 봉쇄된 상황에서 먹을 게 제대로 나올 리 없었다. 미국 중앙정보부 자료에 따르면 1989년 이후에는 식료품 수입이 53퍼센트로 급락했다. 1991년 제4회 공산당대회에서 카스트로는 이렇게 연설했다. “쌀은 이미 바닥났고 콩은 50%, 식물성 기름은 16퍼센트, 라드는 7퍼센트, 연유는 11퍼센트, 버너는 47퍼센트, 분유는 22퍼센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식료품 수입의 급감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냉장 저장과 배송을 위한 유통시스템도 대부분 석유에 의존해 있었고, 따라서 사실상 유통시스템의 정지상태나 다름없었다. 대부분의 교통이 마비되어 대도시로 운송할 트럭이 없고 기름이 없었다. 당시 쿠바 국민의 80% 정도가 도시인구였는데, 도시는 식량으로부터 고립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생활권내에서 스스로 먹거리들을 생산해내며 자급자족하고자 하는 전략은 필연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농업은 그렇게 해서 형성되었다.
둘째, 쿠바의 도시농업은 100% 유기농업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아니 유기농업일 수밖에 없었다. 수입의 중단과 물자의 부족은 농약과 화학비료 등 농산물 생산자재의 부재를 초래했다. 농약을 치고 싶어도 농약을 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쿠바는 1990년 이전에는 친환경 유기농과는 전혀 거리가 먼 대규모 근대농업의 선두주자였다. 국영농장에서는 대형트랙터가 광대한 농지를 달리며 대량의 농약과 화학비료를 대거 살포했다. 화학비료 투입량은 미국보다 많았다. 농약 98퍼센트, 화학비료 94퍼센트, 가축사료 97퍼센트 등이 소련 등 사회주의권으로부터 수입되었다. 모든 화학농 생산자재들이 막혀버린 시점에서 살기 위해 택할 길은 친환경 유기농업의 길이었다. 쿠바의 전체 농민들은 이제 농약과 화학비료 대신 지렁이와 거름을 쓴다. 농산물 생산 시스템이 유기농으로 전환되었다. 도시농장에서도 그 흔적들은 곳곳에 묻어 있었다.
셋째, 도시농업 10여년이 지난 오늘날은 건강과 생태환경을 위하여 유기농을 한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하여 도시농업을 하였고 자재가 없어 유기농을 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건강과 생태환경을 위하여 도시농업-유기농을 하게 된다. 경제위기가 극복되었어도 쿠바는 도시농업-유기농을 계속하고 있다. 도시농업은 농산물만이 아니라 약초나 화훼, 가축 등으로 넓혀가고 있다. 그것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생태환경 조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유기농은 인간의 건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공식적인 연구성과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유기농 이후 쿠바의 암환자가 상당히 감소하였는데, 그것은 토지를 살아있는 토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쿠바는 이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실제로 전통요법을 무시하였던 쿠바도 이제는 비상시 대안요법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면서 수입의약품을 대체한 허브요법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시농업-유기농의 영향에 따라 쿠바에서는 약초를 재배할 때도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도시농업은 쿠바를 식량위기로부터 극복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도시농업은 대도시에서만이 아니라 중소도시에서도 보급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듯이 쿠바 사람들의 생산양식으로 전환된 게 아닌가 한다. 그 질적 특징을 보게 되면 첫째는, 도시농업을 통해 자립적 생산양식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유기농을 통해 생태적 생산양식이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화학비료나 농약이 있다 해도 과연 농민들이 그것을 거부할지는 알 수 없으나, 물론 국가정책으로는 유기농정책으로 계속 나간다고 하며, 한미 FTA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사회나 그 여파로 농업의 파괴가 가속화될 부안지역사회에서 볼 때 쿠바의 도시농업=유기농 성공(자립적 생태적 생산양식으로의 전환)이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