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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려 사는 게 얼마나 재미난지 알려주는 풀

[강우근의 들꽃이야기](45) - 명아주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절실하게 느끼는 게 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못난 구석이 있으면 잘난 데가 있게 마련이고, 게다가 잘나고 못나고도 보기 나름이라 못났다는 게 다르게 보면 잘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잘나고 못난 게 아니라 다양하다는 것이다.

  명아주 풀대 펜으로 그린 명아주

엘리트주의에 찌든 교육 행정 관료들은 자기네들이 만든 잣대 하나로 이런 다양한 것들을 재서는 일등에서 꼴찌까지 줄을 세우려 한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그건 소수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논리일 뿐이다. 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다양한 것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게 얼마나 재미난 삶인 줄 알지 못한다.

경쟁을 앞세우는 세상에서 잡초는 단지 몹쓸 풀일 따름이다. 버려진 땅에서 자라는 버려진 삶이고, 밭에 기어들어와 농사나 망치는 천덕꾸러기인 것이다. 몇몇 식물학자들은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타감물질을 많이 뿜어내어 땅을 독차지하려는 깡패식물이라고도 하고, 땅을 황폐하게 하니까 뽑아버려야 한다고 경고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잡초가 뿜어내는 타감물질은 어떤 식물한테는 "해롭지 않고 오히려 그 물질들은 이들 식물에게 양분으로 흡수된다"(『대지의 수호자 잡초』에서)

단순히 타감물질을 많이 낸다고 그 식물을 '몹쓸 풀'이라 하며 뽑아 버리는 건 얼마나 단순한 발상인가? 잡초가 무성한 곳에 한번 가보라. 그럼 무지 다양한 풀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게다. 거기엔 풀뿐만이 아니라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그걸 먹으려 많은 새들이 떼로 모여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감자 밭을 명아주가 뒤덮어 버려서 농사를 망쳤다고 낭패스러워 했던 농부가 실하게 자란 감자덩이를 보고 놀라워했다는 얘기가 있다.

"대자연의 귀중한 법칙들 중 하나는 두 개의 서로 관련 없는 뿌리 체계가 함께 자랄 때 둘 중 어느 하나만 자라고 있을 때보다 더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살림이나 목초지에서 자라는 야생 생장물은 그 법칙에 따르고 있다"(『대지의 수호자 잡초』에서)

명아주는 아주 흔한 잡초다. 보리나 밀이 이 땅에 들어올 때 함께 들어왔다고 추정되는 한해살이풀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명아주가 실리는 바람에 어떤 풀이냐고 묻는 이가 많다. 그럴 때마다 바로 찾아서 보여주면 이런 흔한 풀이었냐고 놀라워한다.

명아주 꽃은 6월쯤부터 피기 시작해서 여름내 피고 진다. 작은 꽃송이가 가지 끝에 송글송글 뭉쳐 달리는데, 꽃 한 송이는 너무 작은 데다 꽃잎도 없어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꽃송이가 여름내 피고 지면서 7만 개가 넘는 씨앗을 맺는다.

명아주는 꽃보다는 잎이 더 아름답다. 가을에 명아주 잎은 붉게 물든다. 아마도 풀 가운데 가장 아름답게 단풍드는 게 바로 명아주일 게다. 명아주 잎은 나물로 먹는데 먹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국도 끓여먹고, 말렸다가 삶아 기름에 볶아먹기도 하고, 전병을 해서 먹기도 한다. 말린 잎을 차로 마시기도 한다. 또 민간약초로도 두루 쓰여 왔다. 하지만 명아주는 뭐니뭐니 해도 단단한 줄기가 귀하게 쓰인다.

명아주는 제대로 자라면 어른 키보다 더 크게 자란다. 한해살이풀답지 않게 그 줄기가 아주 단단하다. 명아주 마른 풀대로 지팡이를 만드는데, 이 지팡이를 '청려장'이라 부른다. '청려장'은 가벼운 데다 중풍을 막는다는 속설 때문에 노인들한테 인기가 많다. 노인들한테 명아주는 귀한 풀인 것이다. 명아주 풀대를 잘라서 풀대 펜을 만들어도 좋다.

명아주는… 한해살이이고 유럽 자생종이다. … 이 잡초는 훌륭한 잠수부로 많은 영양물질을 표토로 끌어올린다. 그것들은 훌륭한 풋거름이고 콩과식물과 혼생되었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담금먹이로 쓰인다. 그것은 잘 통제되면 모성보호적 식물로 유익한 잡초다. 또한 최고의 채소 중 하나다.
(『대지의 수호자 잡초』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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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대

    길가에 무성하게 자라는 명아주
    심통나면 공연히 심술부리던 명아주
    나무도 아닌 것이 고목의 자태를 가지고 있는 풀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먹기도 하는 것은 몰랐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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