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자본만 있는 쌍방향성 합의

[기고] 2007남북정상선언의 특징과 평가

예상했던 의제를 가지고 합의했지만 상당히 포괄적이고 구체적이다. 말 그대로 남북관계가 한 차원 발전되고 긴장완화와 평화번영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통 큰 결단이 합의를 가능케 했다는 평가도 있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경협을 위장한 퍼주기 의혹이 있단다. 조선일보는 91년 기본합의서를 상당 부분 재인용했다면서 “추상적 표현들로 돼있어 권리.의무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는 법으로서의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했다. 조선일보의 입장에 대해서는 유구무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들의 무지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서 말하자니 입만 아프고 입안에 가시가 돋을 것 같다.

남북한 쌍방향의 동일성

이번 10.4선언은 김정일 위원장의 통 큰 결단이라기보다는 노무현-김정일 양자 간의 이해관계가 일부 맞아 떨어진 성과로 보인다. 양쪽 모두 남북관계의 불가역성에 대한 섬세하고도 강력한 장치가 필요했음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북으로서는 어차피 자본의 도입 없이 ‘먹는 문제’ 해결이 난망한 상황에서 지천에 널려있지만 체제 유지에 필요한 자본이 한 곳에서 오는 것보다 여러 곳에서 오는 것이 좋은 것이다.

오히려 북 군부의 강경파가 통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 동안 북한 군부는 한강하구에 대한 경제협력사업 뿐 아니라 해주 경제특구 등에 완강히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설정되면 중장기적으로 서북해역 해상전력이 후방 재배치되고 작전개념의 변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언의 특징은 노무현 정권과 김정일 정권이 상호 인식수준을 확인하고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기 위해서 공동보조를 취했다는 데에 있다. 즉 김정일 위원장이 일정을 하루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은 노무현 정권이 그동안 남북관계를 6자회담에 연계시켜 북을 불쾌하고 서운하게 했던 감정을 확인한 것이다. 민족공조와 국제공조의 연계성을 모를 리 없는 북으로서는 그 동안의 섭섭한 감정을 남으로 하여금 인식하게 만드는 확인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어떠한 방식으로 공동보조를 취할지 논의를 통해서 구체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남북관계를 불가역적인, 즉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발전시키겠다는 상호 인식을 확인하고 내용을 담은 것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행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담겼다. 전체적으로 보면 실천적 접근을 위한 실용적 의제가 회담에서 많이 논의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설령 정권교체 이후 실천력이 담보되지 않는다 해도 남북관계를 역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지난 7년 동안에도 남북교류협력의 활성화 외에 나타난 성과는 거의 없다. 다만 그러한 성과와 무관하게 남한 사회운동을 통일운동이 주도권을 쥐고 지속해왔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의 입장이 대량 난감해 졌다. 그들은 현재 차기정권의 획득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수권능력을 제고시키기 위해 노력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권이 남북관계의 불가역성을 어느 수준으로 만들어 놓을지 모르지만 부분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뒤집는다는 것은 무효화, 지연 또는 자신들이 성과로 변신시키는 마술 쇼 등을 말한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그 마저도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합의 내용이 구체성을 띠고 실용적 의제로 만들어질 줄 누가 감히 예상했겠는가. 이번 합의에서 노무현-김정일 양자는 환상적인 복식 파트너이자 짝패였던 것이다.

북은 남한과 미국 사이에서 안전보장 추구

이번 정상회담의 또 하나의 특징은 북이 남한과 미국을 활용해 생존과 경제 재건을 도모할 수 있는 2중 3중의 안전보장체제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확인된 회담이었다. 북은 6자회담을 통해 북미관계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공존관계를 그리고 3자 혹은 4자 정상회담을 통해서는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번 합의를 통해서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종전선언’ 문제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10.4합의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내용이 포함되어 미국의 불만을 최소화한 듯 보이지만, 향후 남북미간 기 싸움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6자회담 10.3’ 합의문에서 적시한 대로 불능화를 완료하고, 미국이 이에 대한 정치, 안보적 상응조치로 ‘테러지원국 지위’를 삭제한다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병행 발전되어 부시 미 대통령이 퇴임하는 2009년 2월까지 한반도에는 남-북-미 3자를 둘러싸고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핵 문제 및 한반도 평화는 6자회담을 통해 해법이 마련되어 있고 해결과정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개입할 여지는 적어 보인다. 물론 노무현 정부도 이를 인정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황이 복잡하다. 핵과 평화는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에 묶어서 다뤄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북미회담 및 6자회담에서만 다루게 되면 한반도 문제가 국제적인 성격을 띠게 되어 향후 남북관계의 위상과 역할은 축소되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노무현 정부는 남한 및 남북관계를 통해 문제 해결의 기여도를 높이고 싶고 이를 통해 6자회담에서 일정 정도 개입을 원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반도 문제를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한 결실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에 안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남북관계가 북미관계 및 6자회담과 선순환구조를 이룰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다면 낙관적이라고 전망하기에는 이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6자회담을 통해 이들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동북아에서 자신들의 개입력을 높여 지분을 더욱 많이 확보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난 일련의 흐름 속에서 남한을 배제하거나 견제하고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6자회담 10.3합의’ 발표가 지연된 이유가 네오콘과 군산복합체들의 불만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는 지적은 타당하지만 반드시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남북이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 구축에 주도권을 쥐게 됨으로써 나타나는 미국의 개입력 약화를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읽혀진다. 미국이 남북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에 대해서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앞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남북경협은 경제공동체를 통한 자본의 통일을 의미

북은 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정상회담의 효과를 철저히 ‘내부화’ 시킴으로써 통일과 민족승리 등의 담론을 내부에 유통시킴으로써 저항과 체제적 일탈을 방지할 것이다. 핵을 통한 안보 문제의 해결로 인하여 경제문제에 국가 정책의 강조점을 전환함으로써 아래로부터의 불만과 저항을 잠재우고 체제유지와 통합에 전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외부의 효과가 가시화되고 현실화되기 전까지는 선군정치 노선을 계속 밟아 나갈 것이다.

그래서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뒤 이은 북일관계가 정상화되어도 WTO, IMF와 같은 국제기구에 가입할 가능성은 단기간에는 낮아 보인다. 물론 북한이 1993년부터 2000년까지 7년 동안 아시아개발은행(ADB) 가입을 추진하다가 미국과 일본의 반대로 무산된 경험이 있지만 그 당시와 지금은 조건이 상당히 다르다. 국제기구가 요구하는 경제통계 공개와 현지 조사 등 글로벌스탠다드를 이행하기에는 체제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남북경협 강화로 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남북경협을 통해 긴장완화와 신뢰를 구축하고 이것이 북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져 자본의 논리로 남북이 통일될 수밖에 없다는 경제공동체 논리를 확인한 것이다. 경협의 강화는 북으로 봐서도 좋은 일이다. 경협을 강화하면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의 선택이 자본의 의도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당분간 약해 보인다. 그것은 첫째, 북핵문제 해결을 통한 외부 지원, 즉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지원(에너지 지원, 대북경제제재 해제 등), 북일관계 개선을 통한 지원(에너지, 경제제재 해제, 보상금 등), 기타 중국과 러시아의 외채 탕감 및 경제적 지원을 통해 경제 재건을 추진할 것이다. 둘째, 남북경협을 통한 인프라 구축 및 지원, 즉 도로, 철도 등 교통망 구축에 남한의 공적 자금이 대거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외부의 지원은 현금이 아닌 설비, 자재, 기술 등의 지원으로 구성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한 내부 기술 향상 및 개발을 통해 경제적 회복을 꾀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외국 자본이 북으로 들어갔을 때 북이 남한의 자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지가 의문이다.

그렇다면 당분간 자본의 북으로의 진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대자본이 북의 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수익성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위탁가공 방식의 북의 저임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진출이 예상된다. 임가공 형태에서 개발지원으로의 경제협력 성격의 변화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며, 설령 진행이 되어도 현대아산의 백두산 관광사업 수준의 낮은 단계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개성~신의주 철도 및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정부 재원으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철도공사, 도로공사, 토지공사, 한전 등이 수행한 것도 사회간접자본의 진출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자본이 공적자금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공기업에서 국민들에게 합의를 구하지 않고 대북 투자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또한 사회간접시설은 공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당연히 개입해야 한다. 특히 철도노조나 발전노조 등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당위이자 그들의 존재가치이다. 그 동안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민족문제나 통일문제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다. 이번 정상회담 국면에서도 답답한 모양을 연출했지만 이번 기회에 틈새를 활용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다. 만약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이 이들 공적 자본에 대해 투명성과 모니터링 강화를 요구한다면 현실정치의 개입력을 높여주고 최소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운동이 될 것이다. 북의 선택이 신자유주의의 한반도 전면화를 당분간 유보시켜주거나 느리게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개입 조건들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미FTA가 명시적으로 북한 주민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어서 남북경제공동체 건설과 양립 불가능한데 어떻게 해결할 지 궁금하다. 하지만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덧붙이는 말

배성인 님은 한신대 교수로,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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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낮은단계연방제-전민항쟁에 의한 자주적민주정부수립-높은단계연방제진입-진보적민주주의실현-사회주의로이행> 이것이 민족해방민주주의변혁의 경로입니다.
    지금은 낮은단계 연방제 진입을 앞두고 있지요. 이번 남북정상회담 선언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의주,라진 선봉지구, 개성공단 등의 경제특구 등은 낮은단계든 높은 단계든 연방제를 염두에 두고 예견성 있게 준비해 온 경제정책 중 하나이지요.
    궁극적으로는 남의 진보적민주주의 실현을 거쳐 사회주의로 이행하겠지요.

    이런 변혁전략에 대한 이해 없이 국가와 자본만 있다는 식의 칼럼은 읽는 사람으로하여금 상당히 당혹감을 느끼게 하는 글이네요.

  • 독자

    칼럼을 쓴 이는 북의 선군정치노선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군요.
    북의 선군정치노선과 관련하여 핵무기를 지렛대로 삼은 전술을 북의 체제유지를 위한 걸로 이해해선 곤란하지요.
    북의 사회주의를 압살하려는 미제를 굴복시키고 전국적 차원에서 민족자주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니까요.
    조-미 대결전을 승리적으로 결속짓고서 노무현정권을 상대로 낮은단계 연방제 진입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한 점을 유의하여 보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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