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정상회담에 보내는 싸늘한 시선들

팔레스타인 난민귀환권 등 난제는 언급조차 안 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2개의 국가 실현을 위한 협상을 내년 말 타결하기로 27일(현지시각) 합의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날 미국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의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중동평화회의에서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와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합의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을 통해 양측은 “모든 핵심 현안들을 예외없이 해결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양자협상을 즉각 개시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협상 재개’를 위한 협상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과 세계의 시각은 냉담하다.

우선 공동성명에서 “양측이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협상을 통해 2008년 말까지 합의를 볼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국경문제, 동 예루사렘의 지위,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 등의 난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번 공동성명에는 이스라엘이 주장하고 있는 ‘유대인 국가’라는 표현과 팔레스타인이 요구한 1967년에 시작된 이스라엘의 점령을 종식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유대인 국가’라는 표현이 들어가면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쫓겨났던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이 보장되지 않고, ‘이스라엘의 점령 종식’이 들어가면 이스라엘에서 정착촌을 철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양측은 난제에 대한 어떤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한 채 단지 ‘협상을 재개’한다라는 원칙적인 입장만을 확인한 셈이다.

더욱이 이번 협상에 참가한 주체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다. 이번 협상에는 작년 총선으로 팔레스타인의 내각의 다수를 차지한 하마스가 배제되었다. 압바스 수반은 지난 6월 하마스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내각을 강제로 해산하고 비상내각을 출범시켰으며, 하마스는 여기에 반발해 가자지구를 무장투쟁을 통해 권력을 잡고 있다. 팔레스타인인 다수의 지지를 받아 내각을 구성했으나, 내각을 강제해산당하고 ‘테러단체’로 낙인이 찍힌 하마스를 배제한 이-팔 평화협상 자체가 실효성이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냉담한 팔레스타인

이 때문에 가자에서는 이번 이-팔 정상회담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나폴리스에서 열린 중동평화회의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


가자에서 활동가하고 있는 저널리스트 파레스 아크람은 “팔레스타인의 압바스 수반은 회의에서 어느 정도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지지는 하마스와 싸우라는 지지일 뿐이다”라고 평가했다.

35세의 공무원 유세프 디아브는 “아나폴리스 회담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어떤 새로운 것도 가져다 줄 수 없다.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양보하라는 원칙을 강화해 온 다른 많은 회의들의 반복일 뿐이다”라고 현지 언론에 밝혔다.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어떤 합의도 불법적이다"

결국 이-팔 양측은 이번 아나폴리스 정상회담에서 접근 불가능한 양측의 합의를 2008년이라는 타결시한으로 정해, ‘협상 재개’를 위한 ‘협상’을 한 셈이다. 일부에서는 1년여 임기를 남겨놓은 부시 미 대통령의 ‘성과’를 남기기 위한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했을 뿐이라고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은 독립국가로, 이스라엘은 유대국가로 남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이-팔 간의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아울러, 이번 중동평화회의를 계기로 이란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번 회의에 중동 평화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란이 배제되었다. 미국은 최근 ‘세계 3차 대전’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이란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높여왔다. 따라서 이번 중동평화회의를 통해 반(反) 이란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수요일 부시 대통령이 주도해 진행된 이-팔 정상회담은 실패했으며, 이스라엘은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작년 선거로 당선된 하마스가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배제된 채 진행된 이번 정상회담에서 나온 어떤 합의도 불법적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같은 날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미국 각지에서는 이번 중동평화회의에 반대하는 시위가 진행되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지난 6월 하마스가 권력을 잡은 이후 최대규모의 시위가 열렸다. 시위에 참가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귀환권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땅을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고 구호를 외쳤다.

시위에 참가한 팔레스타인자치의회 대변인은 “오늘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아나폴리스에서 열리고 있는 회담에 빼앗길 수 없는 권리를 절대로 양도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7일 미국에서도 아나폴리스를 포함해 시위가 진행되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밀실에 모인 지도자들에게 팔레스타인인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부시가 이라크 전쟁 및 예고되고 있는 이란 전쟁의 의도를 더 강화시킬 뿐이며,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중동평화회의를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