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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미숙씨에게 박수를

[해방을향한인티파다](54)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고

처음엔 핸드볼하는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니깐 그냥 핸드볼만 하는 영화는 아니더라구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 보면 혜경(김정은)이 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 대행이었다가 짤리는 순간이 나와요. 이 과정에서 핸드볼 협회 간부가 "이혼하셨다면서요?"라고 하죠. 그러자 김정은이 이혼한 게 무슨 문제냐, 남자가 이혼했어도 문제가 됐겠냐며 따지죠.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엄마 생각이 나더라구요. 엄마가 저한테 그랬었거든요. "남들이 나보고 이혼한 여자라고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라고...

참, 이상하죠? 한국에서 대부분의 결혼 관계가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지고, 이혼을 해도 남성과 여성이 하게 되는데 남성이 이혼을 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고, 여성이 이혼을 하면 꼭 ‘이혼한 여자’라는 말이 붙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혼한 여자’라는 말을 가지고 당사자가 위축되게 만들구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것이 ‘아줌마’라는 말입니다. ‘아줌마가 왜 그러느냐’ ‘아줌마들만 믿는다’ ‘아줌마’ ‘아줌마’...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고 제 생각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 싶은데, 그런 농담을 하면서 키득키득 거릴 때가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어. 남자, 여자 그리고 아줌마”
“푸하하~~~”


영화에서 미숙(문소리)의 남편은 사업을 하다 실패해서 빚쟁이들한테 쫓겨 다니고, 미숙 자신은 경기장에까지 애를 데리고 다닐 수밖에 없는 핸드볼 선수입니다. 국가대표가 되고서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깐 감독은 왜 애를 데리고 오느냐며 어디다 맡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맡길 데가 있어야 맡기죠. 그렇다고 엄마 핸드볼 하자고 아이를 집에 가둬둘 수도 없고...

한번은 혜경이 연습장에 늦게 나타납니다. 애가 아침에 아팠다고 하네요. 하지만 감독은 나가라고 소리를 칩니다. 늦게 왔다구요. 그러면 아픈 애를 보고 ‘얘야, 세상이란 원래 험한 거란다. 아파도 혼자 씩씩하게 이겨 내거라’하고 집을 나서야 할까요?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세상 곳곳에서 많은 여성들이 밭에서 일을 하거나 직업을 가지게 되지요. 그러면 집 안 일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남편 속옷까지 챙기면서 일은 일대로 해야 하죠. 그러다 집 안 일 잘 못하면 ‘게으른 여자’가 되고, 아이들 챙기다 실수라도 있으면 ‘나쁜 엄마’가 되지요. 이것저것 다 잘하면 ‘착한 여자’가 되는 거구요.

아무리 이를 악물고 잠자는 시간을 억지로 줄여가면서 해도 모두 다 할 수 없어서 ‘힘들어’라고 하면 ‘그래 내가 뭐랬어?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그래’라는 말을 듣기 일 수지요.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한 가정의 생계를 이을 수 있어도 문제고, 또 자신이 하지 않으면 당장에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낼 걱정부터 해야 하는 사람이면 ‘살림이나 하지’라는 말은 그야 말로 머리 뚜껑열리는 소리지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이 영화가 제게 준 감동은 그들이 모든 일을 다 잘한 수퍼우먼들이었다거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서가 아닙니다. 자기 꿈이고 뭐고 당장에 애를 돌봐야 하고, 아줌마라는 구박을 수없이 들으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 영화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미숙’이 때론 자신의 꿈과 의지를 펼치기도 하고, 때론 어쩔 수 없이 굽히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영화의 감동은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과 이어질 때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아테네에서 미숙이 남편을 향한 전화에 대고 ‘난 포기하지 않을 거야’라고 할 때는 정말 눈물이 쭈~룩~. 그러면서 속으로 ‘그래요 포기하지 마세요’ 했죠.

  영화 [와이키브라더스]의 한 장면

제가 언제부턴가 영화를 볼 때 연애 이야기 보다는 다른 삶의 이야기에서 더 많은 감동을 받고 있네요. 2007년에 본 영화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는 것도 옛 동독 지역에서 체제에 저항하는 작가와 비밀경찰 사이의 관계를 그린 ‘타인의 삶’이었구요. 의지를 가지고 자기 삶을 이어가는 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오가는 사람의 감정을 표현한 영화나 글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세월이 갈수록 세상 모든 미숙씨에게 점점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이래저래 힘든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힘내시라고, 그리고 가슴 속 꿈을 이루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줌마니깐 아줌마다운 인생을 살아라’‘아줌마가 꿈은 무슨 꿈이냐’‘아줌마에게도 사랑이 있어?’라며 놀리고 구박하는 세상에 대해 ‘엿 먹어라’라고 크게 소리치신다면 저도 같이 ‘엿을 다발로 드세요’라고 같이 외치고 싶구요.

제가 할 수만 있다면 세상 모든 미숙씨에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팝콘도 한 봉지 사서 같이 먹으며 웃다가 울고 그러면 더욱 좋겠지요. 영화 보고 나서 뜨끈한 동태찌개에 쐬주도 한 잔 ㅋㅋㅋ 전 술을 못 먹지만...ㅋㅋㅋ

참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예전에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들었던 임순례 감독이라고 하더라구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 오지혜가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 그 영화도 느낌이 좋은 영화였는데...

눈이 쌓여 세상이 하얀 아침, 세상 모든 미숙씨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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