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의 실종과 진보의 재구성

막내린 87년 체제와 진보정당운동

총선, 대선의 재탕

전반전에 승부가 난 경기의 후반전은 지루하기까지 하다. 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관객처럼 평가도 냉정하다. 총선은 그렇게 끝났다. 18대 총선은 대선에서 확인된 것들의 재탕이었다. 통계로만 보아도 대선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두 선거 모두 선거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 이명박 당선율과 비슷한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확보, 정동영 당선율과 같은 민주당의 의석이 그렇다. 대선에서 보수후보가 68%의 득표율을 보였던 것과 같이, 이회창의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한나라당을 포함한 보수진영의 총선득표는 2/3에 육박한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등 신자유주의 세력은 90%넘는 지지율에 의석확보를 했고 진보진영은 8%대에 초라한 결과를 보여준 것도 대선과 같다.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일본식 1.5정당 체제’형성에 대한 예견은 정확했다. 한나라당이 과반을 간신히 넘는 의석을 확보했으나 무소속 당선자 대부분이 한나라당 계열이며, 이들은 한나라당에 조건없는 복당을 요구하고 있다. 친박연대 또한 한나라당으로 합류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거대 여당의 등장은 필연이다. 또한 자유선진당이 충청지역을 기반으로 부활한 상황에서 보-보 구도의 형성도 분명하다. 총선시기 대운하반대의 결정적 여론을 주도한 것이 박근혜계와 자유선진당이었던 점을 상기해 본다면 향후 정치구도가 ‘보수 대 중도’의 구도보다 ‘보수 대 보수’의 구도로 형성될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의회정치가 그만큼 더 오른쪽으로 이동한 셈이다.

반토막난 진보정당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화된 이후 진보정당의 총선대응은 양당 모두 진보정치의 희망은커녕 당의 생존에만 골몰하였다. 민주노동당은 선거 캐치프레이즈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의 조직 프리미엄만 챙겼다. 진보신당은 총선용 정당을 창당하는 순간 이미 인물중심의 선거대응은 전제하였다. 현실정치의 벽이라는 미명아래 얼굴과 이름이 알져진 사람을 중심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결국 ‘노회찬 심상정과 함께 하는 진보신당 ***’이라는 선거플래카드만이 휘날렸다.

진보정치의 실종.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가장 큰 특징의 하나이다. 이미 대선에서 프레임을 상실한 상황에서 총선대응은 그만큼 무력한 것이 되었다. 부분적으로 민생문제에 대한 강조,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등이 외쳐지기도 했으나 득표를 위한 상징적 동원에 머물고 말았다. 국고지원금을 받기 위한 여성후보의 동원, 비정규직 비례후보의 영입을 둘러싼 갈등 등 비정규직과 여성은 이미지와 재정을 채우기 위해 ‘동원’ 되었다.

또한 총선에서도 노동자 대중에 대한 진보정당의 지지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노동자밀집지구라고 하는 울산에서도 정당득표로 민주노동당은 5만여표, 진보신당은 1만6천여표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나날이 노동대중과는 유리되어 가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고 이른바 계급투표라는 정치적 동원조차 봄날 입김처럼 미약한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진보의 재구성은 시작되었다

오늘날의 진보정당은 87년체제의 유산이다. 국가주도형 노사관계를 벗어나 87년 노동자대투쟁과 민주노조의 건설로 형성된 87년 노동체제에 기반해 나타난 것이 바로 민주노동당이다. 정치적으로는 87년 보수야당의 배신과 보수대연합의 형성이후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제시되었으며 10년이 지나 민주노동당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잃어버린 10년이 여기에 있다. 97년 이후 신자유주의가 본격화 된 상황 속에서도 지체된 87년의 과업을 중심으로 뒤늦게 완성해 나가려 했다. 그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대표의 의회입성을 목표로 했고 자연스럽게 의회를 중심에 둔 대중 동원구조로 나타났다.

87년,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노동체제가 형성된 이후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민주노조건설을 넘어선 자기 전망을 형성하지 못했다. 이런 현실이 정치적으로 투영된 민주노동당 역시 정치 민주화, 의회의 다양성 확보를 넘어선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노동자, 농민 출신 의원들이 국회에 들어갔음에도 부유세 도입, 영세상인지원, 무상의료 무상교육, 국민연금 대납 등 신자유주의를 보완하는 부분적인 정책에 머물렀다. 87년 체제에 기반해 있는 정당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후퇴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 민주노동당은 지역 2석과 비례 3석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2004년 10석에서 5석으로 줄어든 현실에서 의회내에서 진보정치의 확장전략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이미 87년 체제의 극복이라는 과제가 주어진 상황에서 진보의 재구성은 이와 같은 의회동원식 정치구조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의회-의석-선거 중심에서 운동-대중-전선 중심으로 진보정치를 전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신자유주의반대, 생존권 기본권 방어를 넘어서 반자본주의-사회화의 전망을 현실화시켜 내는 것이 진보의 재구성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속에 진보정치, 정당운동의 전망도 새롭게 열어가야 한다.

향후 진보진영은 대중운동의 재편을 포함하는 거대한 재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갈 전망이다. 민주노동당의 일방적지지에 불과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현실적으로 무력화되었으며, 진보신당, 사회당의 경험에서와 같이 계급대중의 기반없는 진보정당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선거 후폭풍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진보진영의 잃어버린 10년, 지체된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한 장대한 첫걸음이다. 정치적 재구조화를 거쳐야 할 민주노총의 산별건설, 2009년 예고되는 비정규직 대란, 현실화되는 경제위기, 지속되는 에너지 식량 위기 속에서 노동의 정치, 진보의 정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찾기이다.

진보란 ‘필요한 것은 가능하다’는 신념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재 노동자 민중에게 가장 필요로 한 것은 힘있는 의회정당보다도 신자유주의를 뛰어 넘는 전망의 역동성일 것이다. 진보의 재구성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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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 총선 , 계급투표 , 87년체제 , 무상의료무상교육 , 에너지식량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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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만(논설위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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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재구성이라는 게 개량주의노선에 불과하다는 것!!!

  • 노힘의 계급정당은 도대체 언제 뜨는 것인가?
    제발 보여다오!!!!

  • 일용잡급

    진보? 재구성이란........
    [미워도 다시 한번] 하잔 말씀?
    그게 가능한 일인가? 쓸 카드 다 썼지않은가 말이오. 킁~

  • 일용잡급

    과장 조금 보태어 지난 20년간 길 위에서, 거리에서, 닭장차에 실려가며..., 현장에서 즉 운동판에서 운동이랍시고 해 온 나날들을 꼼꼼 되돌아보고 있소. 어떤 생각을 가져 무엇을 해 왔던가? 그것이 결국 누구를 위한 움직임이었던가?
    역사적, 변증법적 점검이 철두철미 필요한 시기. 성찰이 계속되지않고는 미래는 없는 법.
    본시 먹물은 아닌디 썩을 운동 엘리트적 발상을 다 못 씻은 흔적이 아직 있겠지. 더 낮아져야 해. 더불어

    이율배반적 배신행위 위선의 가면은 질긴 근성으로 더 물고 늘어져야 한다는 것.
    쉽게 잊고 용서하고... 흐리멍텅 해 온 역사부터 오류를 수정해야 하는 원칙을 다시 세우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것.
    .................
    ............

  • 또또

    재밌죠?
    반민노당, 반진보신당..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이 없어지면 무슨 재미로 살까? 반민노당 반진보신당이 직업이니..
    10년전부터 계급정당 만든다고 했으니 지금쯤 만들어질때 되지 않았나? 10년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말이나 하는 짓은 똑같아.. 제일 반성해야할 사람들은 바로 당신들이야~

  • 아직

    추상적인 단어들만 조합해 나열하는 한,
    가능성 제로다.
    자기도 제대로 이해못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주장하려니..이런 글이 나오지.

  • 참새

    정동영 당선율->정동영 득표율.
    계급투표에 관해선 절대비교보다 대선과의 우위비교, 이번 득표율 등을 종합해서 표현해야 설득력 있음.
    글 수준이 정말...

  • 참나~

    그래.. 그 전망의 역동성이란게 뭐요?? 재구성되어간다는 그게 뭐냔말이요?? 그걸 제시하시요.. 쓰잘데없는 말 씨불거리지말고..

  • 진리경찰

    이번 총선은 20대의 승리입니다!!!!!


    운동권이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어댔지만
    20대는 국민성공시대 개막을 위해 한나라당을 선택하였고
    이로서 운동권들은 극소수 중의 극소수임이 드러났습니다.
    저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들은 강하지 않습니다.
    운동권의 폭정에 신음하면서도 저들에게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던 분들은
    이번 선거결과를 보고 용기를 내 진리를 실현하고 정의의 심판을 내려주십시오.
    운동권의 실체가 드러난 만큼 이제 더이상 두려워하거나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지성인이라면 모두 들고 일어나 운동권에 죽음과 파멸을 안겨주어야 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저들은 강하지 않습니다. 승리할 수 있으며 승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좌익을 대한민국에서 몰아내는 우경화 혁명을 완수하여야 합니다.
    그로서 국민성공시대를 개막하고 선진화를 완수해야 합니다.
    다시는 자유대한에 좌익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여 진리의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반 진리를 추구하는 저들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아야 합니다.
    이번 총선은 20대의 승리입니다!!!!!


    그나저나 사천에서 민노당 농민폭도의 수괴가 당선됐다는데,
    4년동안 사천요리는 입에 대지도 말아야겠군요.

  • 또라이

    진리경찰 / 사천요리는 중국 사천성 요리다. 등신아.

  • 보스코프스키

    당의 생존은 불가피한 점이 잇긴 합니다. 물론 이걸 지지하지 않습니다. 개량주의의 복마전은 이제 좀 들어가야 할 때라고 판단합니다.

  • 진보의 재구성?

    뻥구라닷컴에서 퍼옴

    재구성? 뭘 재구성?

    총선 끝나자마자 곳곳에서 선거평가 비스무리 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게중에 눈길을 끄는 단어, 진보의 재구성. 하긴 진보신당이 내건 기치 중 하나도 '진보의 재구성'이었음에 다른 이들이 이와 똑같은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새로울 것은 없다. 막 구성된 동네에서 게다가 시작하자마자 총선치룬다고 눈코뜰 새도 없이 달려가던 와중에 꼬투리 잡을 시간도 없어 그냥 넘어갔지만, 솔직히 저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신종종합용어는 영 낯설다. 뭘 재구성? 언제 제대로 구성이나 해본 적이 있었나?

    흔히 앞에 "재(再)"자가 붙을 때는 기존에 뭔가가 있어서 이를 다시 어찌 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재구성"할만큼의 진보라도 해왔는가? 똑같은 맥락에서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을 "낡은 진보"라고 표현한 것 역시 결코 옳바른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이 가졌던 초심의 그 진보는 이제 10년 세월이 지나면서 "낡은" 사고로 전락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가졌던 "초심"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건 변절, 혹은 왜곡이 될 수 있을지언정 "낡은 진보"라는 레떼르를 붙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낡은 진보"가 맞지 않듯이 "새로운 진보" 역시 문제다. "새로운 진보"는 마치 열우당이 내걸었던, 노무현이 내걸었던 "참여민주주의"와 마찬가지의 동어반복이다. 어차피 진보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 여기에 다시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이는 것은 "새로운 새로움" 또는 "진보 진보"라는 것일 뿐이니까. 그런데 왜 굳이 이런 수사들이 필요한 건가?

    "진보의 재구성"을 이야기하면서 혹자는, 혹은 많은 사람들은 당연한 이야기를 다시 늘어놓는다. 예컨대 참세상의 한 논평.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전략) 정치적 재구조화를 거쳐야 할 민주노총의 산별건설, 2009년 예고되는 비정규직 대란, 현실화되는 경제위기, 지속되는 에너지 식량위기 속에서 노동의 정치, 진보의 정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찾기이다. 진보란 '필요한 것은 가능하다'는 신념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재 노동자 민중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힘 있는 의회정당보다도 신자유주의를 뛰어 넘는 전망의 역동성일 것이다. 진보의 재구성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 장엄한 "진보의 재구성"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문은 그러나 맨날 듣던 이야기다. 맨 윗구절의 "2009년"이라는 연도수와 마지막 구절, "진보의 재구성은 이미 시작되었다"라는 말만 빼놓고 보자. 새로운 거 하나도 없고 어디서 줄기차게 듣던 이야기들 뿐이다. 새롭나? 전혀 새롭지 않다. 그런데 이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이를 가지고 "진보의 재구성"을 선언한다. 재밌나?

    구체적인 실천의 이야기를 하려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 민중과 함께 투쟁을. 그래서 "어떻게 투쟁을?"이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항상 존나게 빡세게! 본사쪽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표현에 따르면 "전민항쟁". 뭐 내나 그런 식이다. 87년 6월의 추억을 존재의 근원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광장으로 몰려나왔던 그 수많은 민중들의 염원을 입맛에 맞게 주관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현장"에서 "대중"을 설득하고 그들의 투쟁에 전면적으로 결합하고 이들을 조직화해내면 반드시 쯔나미같은 민중항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이 틀렸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활동의 방식이라는 것이 더욱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조차도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그런데 분노의 조직만으로 열망에 휩싸인 대중을 전복의 길로 끌고 나올 수 있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구체성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른 것이 아니다. 뒤집어 엎음으로써 당신들은 이러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단어 그 자체로 "변혁"을 위해 아스팔트 위를 구를 수 있는 사람들은 "인민"을 위해 제 한 몸 불사르기로 각오한, 한 줌도 되지 않을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로 혁명봉기에 준하는 민중항쟁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걍 소설이다. 민중의 자발성이라는 것, 이거 자꾸 무시하면 안 된다. 그 무시의 끝이 이번 총선의 결과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런데 이 부분에서, 뭔가 구체적인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개량이니 뭐니 하는 비판이 쇄도한다. 예를 들어 진보신당이 총선공약으로 제시한 사회연대전략. 그 내용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규직"의 "양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랫돌 빼서 윗돌 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역시 참세상 기사다. 물론 마감시간에 몰리면서 발품팔아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에게 정책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이해하면서 기사를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보통 보도자료를 뿌릴 때, 중3이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지침이 있기도 하다. 기자의 지적 수준이 중3 수준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어쨌건 진보신당의 사회연대전략이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라고 비아냥 거릴 정도면 다른 정당의 정책은 어떤가를 봐야한다. 진보신당의 사회연대전략이 진보적이지 않은 정책이라면 다른 "진보정당"의 정책은 어떤지 한 번 봐주는 센스가 기자에겐 있었어야 한다. 그런 센스를 내가 대신해서 하나만 보여주자.

    진보정당의 맹주로 이번 선거에 5석의 의석을 건진 민주노동당의 비정규 공약.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일자리 나누기, 원하청 이윤공유제, 단체협약 효력 확장, 비정규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건강보험/국민연금 보험료 할인"

    재밌는 것은 이렇게 하면 좋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하면서 정작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민주노동당 정책자료집은 물론 다른 경로로도 그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왜그럴까?



    참세상 기자는 이 민주노동당의 정책이 진보신당의 사회연대전략과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했을까? 하긴 이런 정책이 있는지를 제대로 검토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워낙 바쁘니까. 바쁜 기자를 대신해서 이 정책을 보자.

    일자리 나누기. 어떻게 나눌 건가? 여러 방법이 있을 건데, 대표적인 것이 잔업 줄이는 거다. 정규직 잔업을 줄이고 거기에 비정규직 대체하는 거.

    원하청 이윤공유제. 이건 어떻게? 원청이 자기 이윤을 줄이는 것인데, 그 이윤을 줄이는 순간 원청 정규노동자에게 돌아갈 이윤금이 줄어든다.

    단체협약 효력 확장. 이건 어떻게 할 건데? 대부분의 경우 단체협약의 당사자는 정규직.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협의 공동주체가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안 될 경우 비정규직의 의사대변을 정규직이 해야한다. 그렇게 되면 정규직만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단협을 할 수 있나? 경우의 수는 두 가지. 첫 번째, 정규직이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고 그 것을 비정규직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 두 번째,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이해까지 관철하려고 했으나 어쩔 수 없이 정규직의 이해만 관철시키고 비정규직은 걍 알아서 하게 놔 두는 것. 전자가 될까, 후자가 될까?

    비정규직 저임금노동자에 대한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 할인. 할인된 금액만큼 충당분이 없을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비정규직 저임금노동자에 대한 보험료 지급분이 적어지므로 무효. 결국 누군가 그 빈 구멍을 채워야 하는데, 이거 누구 돈으로? 국민 세금으로? 자본가가 알아서 기나?

    무슨 이야기하는 건지 이해할텐데, 결국 민주노동당에서 내놓은 비정규정책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사회연대전략의 한 일환이다. 아니라고? 그게 아니면 방법이 뭔데?

    민주노동당은 끝까지 이것이 사회연대전략과는 다른 무엇이라고 주장한다. 왜? 이걸 사회연대전략의 일환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그들이 그토록 반대해왔던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짓을 자기 스스로가 하는 거니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사회연대전략이라는 것은 장기적 안목에서 효과적으로 정부와 자본을 견제하고 견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비록 그 구체적인 모습이 더 다듬어져야할 일이지만, 현실은 사회연대전략이라는 것을 보다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수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는 순간, 발화의 주체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천박한 짓을 하는 사람으로 매도된다.

    웃기는 것은 같은 이야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사회연대전략'을 이야기하는 쪽은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집단이 되고, 그걸 안으로 접어놓고 있는 쪽은 마치 그런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는 것처럼 소개되는 거다. 목적의식적으로 비판을 하기 위해 작성된 기사의 성격상 잔가지 다 치고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보더라도 좀 어이가 없지 않나?

    계급정당

    총선이 끝나고 진보신당은 재창당이라는 작업에 들어간다. 아마 온갖 설왕설래가 있을 거라고 본다. 제발 "진보 대연합"이니 하는 되지도 않을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당의 정치적 이념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나에서부터 어느 정치조직을 어떤 수준에서 결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물론, '계급정당'에 대한 논의 역시 빠지지 않을 모양이다. 노동자 중심성이라는 명제에 대해서 부정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이 땅에는 아직도 노동력을 팔아 임금으로 먹고 사는 노동자들이 1500만에 달하니까.

    그런데 "노동자 계급정당"에 대한 상을 볼셰비키 혁명당시와 같은 수준에서 사고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를 고민해야 한다.

    단병호 전 의원은 여전히 노동자 중심성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중심세력으로서 노동자 정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의한다.

    그런데 단병호 전 의원은 "중심세력을 만든다는 것이 마치 패권주의적 발상이고 주장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우려한다. 이 우려가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단병호 전 의원 역시도 단지 과거 민주노동당 안에서 발생했던 민노총 단위의 패권적 발상에만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결정적 문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계급정당"의 주체로서 이야기하던 "노동자계급"을 이제는 단지 "노동자"라는 단일한 정체성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더 이상 200년 전 산업혁명기 유럽의 노동자들과 등치될 수 없다. 아니, 불과 30~40년 전 100만불 수출의 선봉에 선 산업역군으로서 노동자들과 등치될 수도 없다.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고 할지라도 오늘날의 노동자들은 하루 14~16시간 장시간 중노동에 휴일도 없이 일을 하면서 빵 한 덩어리를 받아 가는 수준은 아니다. 더구나 이 땅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이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생각할 정도가 되었고, 또 다른 상당수는 공장 안에서 그리고 사무실 안에서 노동자로서 돈을 벌지만, 그 밖을 나오는 순간 시민활동가가 되기도 하고 인터넷 기자가 되기도 한다.

    어떤 노동자들은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쏟으면서 정당활동을 하기도 하고, 어떤 노동자들은 환경운동에 열성적으로 나서기도 하며, 어떤 노동자들은 자신의 취미활동을 위해 월급의 전부를 쏟아붓기도 한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선거일에 투표를 할 수 있고, 또 마음만 먹으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 "노동자"가 가지는 이처럼 다양한 계층적 수준을 도외시한다. 노동의 신성성이라는 것이 다른 모든 가치를 지배한다. 과연 그런가? 정말 노동은 신성한가? 신성은 개뿔, 노동은 힘든 거다. 신성이고 나발이고는 그 노동이 가지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가치를 이쁘장하게 포장하고 난 뒤의 이야기다.

    신성한 노동에 대한 댓가는? 국민소득 20000불 달성이라는 실감도 나지 않은 성과론? 대출금을 잔뜩 업은 덕분에 장만한 30평형 아파트? 적어도 자기 주머니를 뒤적이며 흐뭇할 수 있을 때만 노동의 신성성은 실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노동자"와는 다른 계층적 차원의 구별짓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진보는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왔는가? 어떻게 그것을 담기 위해 노력해왔나?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그 진보주의자들 중 상당수는 "낮은 데"가 뭔지를 모르는 것 같다. 그건 단지 니들이 바닥에 와서 기어봐라라는 요청이 아니다. 현상을 직시하는 시각을 가져달라는 요청이다. 자기 스스로 공장 문 안쪽에 있는 자신과 공장 문 바깓에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분리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향해, 공장 안쪽에 있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만이 자신의 유일한 존재기반임을 각성해달라고 주장하는 것. 이걸 탈피해달라고 하는 것인데, 그건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인가보다.

    그런 차원에서 진보신당이 본격적인 창당작업에 돌입하는 때에 "계급정당"을 이야기해도 좋고 사회주의 정당이냐 사민주의 정당이냐를 가지고 싸움질을 해도 좋다. 다만, 그 논쟁을 자신의 선명성을 부각시키기위한 방편으로 이용하지는 말아달라는 거다. 그런 논쟁의 와중에서 비정규직은 서서히 30~40년 전 노동자들의 수준으로 퇴보하고 어쩌면 200년 전 노동자들의 수준으로 퇴화할지도 모른다.

    정말 새롭기 위해

    자, 앞으로 돌아가자. 단어가 가지고 있는 몰정합성에도 불구하고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에 "진보의 재구성"이니 "새로운 진보"니 하는 수사들은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런데 이 "진보의 재구성"이나 "새로운 진보"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제 색깔 확실히 드러내는 구호만이 아니다. 정체성을 상징하는 구호를 명확히 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반드시 해야할 것은 그 구호가 단지 "쑈"로 치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방법의 제시다.

    구체적일 수록, 명확할 수록 제시된 대안은 개량이라고 욕을 먹게 될 것이다. 당연하다. 구체성이라는 것은 결국 원칙이라고 제시되어왔던 목적을 달성하는데는 한없이 부족한 것이 될 것이므로. 그러나 그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원칙을 깨서는 안 되겠지만, 오해에 의해 유발되는 개량이라는 비판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차라리 개량이라는 오명을 듣더라도 더욱 구체적이고 더욱 현실적인 대안을 내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원한다면, 노동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자. 그동안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임금을 받고 있고, 이윤을 창출하되 그 이윤을 착취받고, 자본에 의해 소외되어 노예로 살아가는 그런 존재로 상정하고 노동자계급을 운운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노동자들이 사회 제 분야에 걸쳐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때만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가능성이 있다.

    이상을 추구하는 것과 현실을 감내하는 것은 결코 달리 갈 수 없는 거다. 폐지를 주워 하루를 먹고 살면서도 투표에서는 한나라당을 찍고 나중에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들조차도 우리의 한 일부이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할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이상이다. 진보가 그래서 어려운 거다.

    태그: 노동자 / 비정규직 / 계급 / 상식 / 진보 / 총선 / 진보신당 / 사회연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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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발 2008/04/11

    저 역시도, 거창한 '진보의 재구성'따윈 모르겠고 '상식 일병 구하기'나 나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상식이 안 통하는 데 '아'가 '아'로 들리겠습니까? 어쨌든 긴 글 쓰느라, 그리고 그걸 쓰면서 열받고 사라져간 담배 6~7개피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마르레니 2008/04/11

    허허, 쓰시는 글마다 가슴속 깊이 솔솔 쓰레질 하고 가는구려...^^*
    가끔씩 들려 읽고 가지만, 대화하듯 써 내려간 글들이 온몸에 저려옵니다. ㅎㅎㅎ~
    끄덕~~ 2008/04/11

    그래도 '노동자계급정당'이 볼셰비키혁명당시와 같은 수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네요...당시 페트로그라드 인구가 270만 정도였는데, 볼셰비키 당원이 3만명을 훨씬 넘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사회연대전략에 대해 스스로 보다 구체적으로 다듬어져야 한다고 하면서도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는 비판에 대해 너무 과민 반응하는 거 같군요. 비판을 하는 이들에 대해 뭔가 편견이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요. 추상적이고 맨날 똑같은 얘기만 되풀이하고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면서 별로 생산적이지 않은 비판만 한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거 같은데...사회연대전략도 그렇지 않은가요? 이게 나온지 일년이 넘었는데..내용적으로 진전이 안되었잖아요. 구체적으로 다듬는 것도 계속 기다려야 하나요?

    계급정당을 주장하는 부류와 보다 구체적인 진보를 원하는 이들이 왜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지 안타까운 맘에 덧글 남깁니다.

    삐딱선 2008/04/11

    99% 동감합니다.^^
    그리고 긴 글 쓰느라, 그리고 그걸 쓰면서 열받고 사라져간 담배 6~7개피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2)


    나머지 1%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자면.. 결국 '진보의 재구성'이란 말을 그래도 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라는 게 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그것을 위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라, '나 진보야'라고 자임하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런 걸 해야 돼'라고 밀어붙이는 '패거리 문화'(작년의 '민중참여경선제'나 본문에 등장하는 '진보대연합' 따위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직시하고 요걸 깨야 한다는 의미일 거다 싶은 거죠.

    진보신당 홈피 들어가 봤더니 당원들이 "4월 중에 날 잡아서 한 번 같이 놀자!" 이런 작당들을 하고 있더군요. 그거 보면서 아쉽게 낙선한 당의 당원들이 이런 작당한다는 것에 흐뭇한 웃음과 아쉬움(미국에서 비행기 타고 날라갈 수도 없고...) 들었지 말입니다. 맹랑좌파당원으로서 위기감도 느꼈고 말이죠.^^
    행인 2008/04/11

    평발/ 이번 총선 보면서 잠깐 혼란에 빠진 것이, 이건 뭐 내가 알고 있었던 상식이란 게 원래 잘못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거죠. 세상에 돌아가기 위해 나와서 총선뛰고 복당하겠다고 난리치는 친박연대, 친박무소속연대 이런 애들이 당선까지 되는 걸 보니 상식이고 뭐고 ㅎㅎㅎ

    흠... 그나저나 이 글 쓰면서 담배 6~7개 필 시간 들이지는 않았는데, 면구스럽네용. ^^;;;

    마르레니/ ㅎㅎ

    끄덕~/ 볼셰비키 수준 되면, 그 땐 혁명을 이야기해도 됩니다. ㅎㅎㅎ 그 3만명의 수준이라면 말이죠. "사회연대전략"은 내용적으로 진전이 별로 없었죠. 그리고 "과민반응"일 수도 있겠지만, 원래 저 글 쓰면서 "사회연대전략"이야기를 주로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구요, 걍 하나의 예를 들려고 했던 거구요. 본문에 썼다시피 사회연대전략이라는 것이 내용적으로는 그렇게 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고 봐요. 다만, "사회연대전략"이라는 그 호칭 자체가 썩 어감이 좋은 것은 아니구요. 정규직의 "양보"라는 말도 적절하게 그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정비가 필요하죠.

    저는 아직 모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계급정당을 주장하는 부류와 구체적인 진보를 원하는 이들"이 서로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루 속히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노동자의 계급성을 논할 때, 지금까지와는 달리 보다 직접적으로 오늘날의 노동자를 바라봐달라고 주문하는 거구요. "화합"이라기 보다는 정비해보자는 이야기를 드리는 겁니다. 뭐 조만간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ㅎㅎ

    삐딱선/ 헉... 담배 많이 피울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는데용... ㅡ.ㅡ+
    패거리문화에 대한 삐딱선님의 지적은 민주노동당에서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의 창당작업에서도 반드시 짚어져야할 부분이겠죠.

    당원들이 소풍을 준비하고 있던데요, 잘 되었으면 하구요. 물론 저는 삐딱선님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될 수 있는 한 참석할 예정이구요. 이게 잘 되었으면 하는 것이 평당원들의 자발적인 이런 모임이 활성화될 수록 그동안 문제가 되어왔던 '패거리문화'를 발본색원할 수 있을 거니까요. 여담이지만, 어려운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버리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삐딱선님과 다른 많은 분들이 힘낼 수 있도록 여러가지로 신경써주신 덕분이구요. 감사합니다.
    홍실이 2008/04/12

    언론에 보니까 또 진보/개혁 묶어서 대동단결 어쩌구 하는데다, 진보세력이 참담함에 빠진 것처럼 그려놨던데... 저는 일단 기분 좋아요. 당 해산 안 해도 되서 ㅎㅎㅎ 행인님 수고 많으셨어요...
    민노씨 2008/04/12

    "어떤 노동자들은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쏟으면서 정당활동을 하기도 하고, 어떤 노동자들은 환경운동에 열성적으로 나서기도 하며, 어떤 노동자들은 자신의 취미활동을 위해 월급의 전부를 쏟아붓기도 한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선거일에 투표를 할 수 있고, 또 마음만 먹으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 "노동자"가 가지는 이처럼 다양한 계층적 수준을 도외시한다"

    명문이네요. : )
    이런 글이 좀더 널리, 많은 이들에게 읽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특히나...

    "폐지를 주워 하루를 먹고 살면서도 투표에서는 한나라당을 찍고 나중에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다고 하는 그 사람들"과 더불어, 그저 일상의 일부로서, 이런 고민을,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요즘은 특히나 콘텐츠, 어떤 정치적 담론과 메시지가 유통되는 그 유통의 메카니즘과 구조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데요. 블로그라는 새로운 도구가 이 '짜증스러운' 담론 유통의 구조에 의미있는 균열을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가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진보의재구성?님

    비정규직 관련 재원이라면, 사회연대전략과 달리 민노당에선 대기업들의 300조 넘는 사내 유보금을 내놓으라는 공약을 내놓았죠. 적어도 노동자들끼리 나누자는 낯간지러운 얘기는 안 하더군요.

  • 돼지껍데기

    논설위원의 말에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논설위원 말처럼 진보신당이 계급대중의 조직적 지원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도 창당한지 겨우 1개월을 넘긴 시점에서 그것도
    논설위원 말처럼 노회찬/심상정이라는 두 인물중심의 슬로건만을
    가졌다고 말한다면 그들이 받은 지지율은 하나의 희망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다하는 민중진영의 제 조직이 결사적으로
    몰아주는 민주노동당... 그것도 100곳이 넘는 지역구에 후보를
    낸 TV토론에도 나가는 그런 정당도 아닌데 말입니다....

    전 어쩌면 계급적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이 비록
    낙관적이지 못하더라도 진보의 재구성에 대한 노력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터넷에 회자되는 "지.못.미"가 계급적 각성에서 나오는 흐름도
    아닐것인데 말입니다. 언제 우리 민중진영이 최소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까?

    물론 이것이 정당성을 모두 획득하지도 않는 것은 맞습니다.
    자발적인 참여와 다양한 논의와 만남 속에서 진보의 재구성이
    논의될 것입니다. 그것이 물론 모든 진보진영에 대한 것이
    아닐지라도.... 이러한 새로운 흐름 / 신선한 흐름을 보다
    오래 그리고 강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동자의 힘이나 해방연대같은 분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극에 나오는 꼬장꼬자항 양반관료의 모습과 맞추어
    봅니다.... "아니되옵니다!!!" 그래서요?

    혹여....
    지금 말하고 싶으신 것이 그냥 "원칙"수준의 "선언"만은 아니길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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