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벌써 두 번째다. 1,000일이 넘게 파업을 벌여오던 기륭전자 노조가 지난 5월 11일 서울광장 하이서울 페스티발 행사장의 16m 무대 조명탑에 올라가 문제 해결을 촉구하였다. 5월 26일에는 구로역 광장의 25m CCTV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매일 저녁 7시 구로역 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1,000일이 넘는 파업도 그렇지만 1,000일 투쟁 기념치고는 너무나 잔인하지 않은가.
죽는 것 빼고 안 해본 것이 없다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첫 번째 고공농성 이후 사용자 측과 두 차례의 간담회를 가졌다. 그런데 두 차례에 걸친 노사간담회에서 회사 측은 고용에 대해서 확답을 줄 수 없으니 올해 말까지 무작정 기다리라고 하였다. 아마 1,000일을 기다렸으니 몇백일 더 기다리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모양이다.
사용자들에게 그들은 1회용품이거나 소모품에 불과한 잉여인간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의무만 존재할 뿐 권리와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있으되 산목숨이 아니요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들에게 1,000일은 목숨보다 질기고 죽음보다 어려운 시간이었다. 최저임금 기준보다 겨우 10원 많은 64만 1,850원에 불과했던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일반 정규직 노동자들이나 활동가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열혈 투사가 되었다.
하지만, 사용자는 권리만 있고 영혼은 없다. 노동자들의 요구, 감정에 대해서 무감각한 사이코패스(psychopath/ 반사회적성격장애)들이다. 사용자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도 않으며 무감각한 자신에 대해 반성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도 않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해법이 명확하고 간단함에도 불구하고 어려워 보인다. 보이지 않는 출구를 향해서 나아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끝 모를 투쟁에 서러움이 밀려오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300일, KTX 투쟁이 800일을 넘어섰다. 수많은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으로 인해 1-2년 투쟁은 가볍게 보일 정도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을 들여다보면 앞으로 2-3000일 장기투쟁(장투) 사업장의 증가는 시간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 장투 사업장들은 한국의 전체 노동자들이 안고 있는 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장투 사업장 문제를 노동계의 최대 당면 과제로 설정하지 않으면 노동의 미래는 어둡고 불투명할 것이다.
이번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은 자신들의 싸움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는 극한투쟁이다. 세상은 이들을 잊으려 하지만 이들은 결코 세상을 잊지 않았다. 2차례에 걸친 고공농성은 무심한 우리들의 마음을 점거하기 위한 농성인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념과 비전의 포로다. 이들은 끊임없는 투쟁과 불굴의 의지로 무관심한 대중들에게 오체투지한 사람들이다.
여전히 해법은 명확하다. 정리해고 철회,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탄압 중단 등 이들의 소박한 요구를 수용하면 된다. 광우병 열풍으로 촛불집회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야 말로 한국사회의 진정한 광우병임을 이명박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이들의 촛불도 꺼지지 않고 영원히 타오를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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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인 편집위원은 한신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