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대중항쟁은 시민대중들의 승리

[칼럼] 실망, 분노를 넘어 저항으로 : 더 이상 굴종은 없다

가만있어 봐라. 이게 무슨 노래지? 프라자 호텔을 사이에 끼고 한국은행을 지나 지하철 을지로 1가 역으로 접어들 무렵, 기억 속에 저장은 되어 있으되 잠시 잊었던 멜로디가 사람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다. “평화 올 때까지 평화 외쳐라, 평화 올 때까지 평화 외쳐라,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21년 전 6·10 항쟁 때, 28년 전 광주 항쟁 때 학생들은 노래 부르며 군사독재 타도를 외쳤다. “민주 올 때까지 민주 외쳐라, 민주 올 때까지 민주 외쳐라,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공수특공대가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인도로 뛰어들어 다짜고짜 곤봉으로 사람들을 후려패는 폭력으로 시작한 광주항쟁처럼, 경찰특공대는 대검이 아니라 끝이 뾰족한 방패로도 충분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피가 흥건한 수건, 방패에 맞아 피흘리는 얼굴, 쓰러진 여학생을 짓이기고 다시 후려친 군홧발, 눈과 귀를 멀게 한 물대포, 경찰차에서 무고한 시민을 밀어 떨어뜨리는 만행 등, 대검과 총을 들지 않았을 뿐이지 경찰의 폭력은 경찰국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 마디로 ‘인산인해’, 그 이상의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프라자 호텔 앞, 공장 건너 편 덕수궁까지 무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중들은 광장을 대중적인 저항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준비를 하며 인산인해로 모여 들었다. 2008년 5월 31일 오후 8시 반, “청와대까지 가시겠습니까?”라는 구호에 맞춰 대중들은 주저 없이 평화의 촛불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25차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대중들은 스스로를 대중지성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디카, 노트북, 핸드폰으로 무장한 대중들은 한마디로 도시를 휘젓고 다니는 디지털 게릴라였다. 지난 시절 전두환 군사독재가 아니더라도,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는 것도 ‘독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던 대중들은 이명박 정권 앞에 무릎을 꿇기는커녕 이명박 정권을 국민들의 주권 아래 굴복시키기 위해 ‘평화’를 외치며 청와대로 나아갔다.

  지난 5월 31일 밤 부터 6월 1일 새벽까지 삼청터널 입구/ 참세상 자료사진

87년 6월, 얼굴에 두건을 쓰고 준엄한 거리투쟁을 벌였던 바로 그 한국은행 앞 분수대를 지나치며 대중들은 이제 신자유주의적인 경찰국가에 저항하고자 ‘스스로’,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섰다. 호헌철폐를 외치다 쏟아지는 최루탄, 지랄탄을 피해 대학생들이 한국은행, 신세계 백화점 주변 골목들로 피신하던 그 곳을 말 그대로 ‘대중 일반’이 장악했다. 대학생, 고등학생, 어린아이, 아이 손을 잡은 젊은 엄마, 유모차, ‘우리 집은 광우병 쇠고기를 반대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진 플래카드를 온 몸에 두르고 촛불을 휘저으며 즐거운 표정으로 날랜 몸집을 보이던 여자, 그리고 그 옆에 진지한 표정이면서도 흐뭇해하는 남편, 중절모에 약간은 구부정한 모습이지만 꿋꿋하게 같이 행진하던 노인네들, 구호는 외치지 않고 양 손 호주머니에 낀 채 걸어가던 두 명의 공무원 같던 중년 남자, 2002년 월드컵의 추억 냄새 아련한 붉은 악마의 도깨비 불, 태극기를 펼치고 행진하던 아고라 회원들.... 대중들의 시위 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문 채 거대한 물결로 요동치고 있었다.

대중들은 거리와 골목길을 온 몸으로 밀어버리는 도시의 뱀들이었다. 대중들은 배후 운운하는 이명박 정권, 조중동, 한나라당의 코를 시원하게 뭉개버렸다. 대중지성답게 촛불시위의 배후가 이명박 정권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내 마누라, 남편 그리고 자식들에게 쓰레기같은 미국산 쇠고기는 절대 먹일 수 없다는 순수하고 원초적인 욕망에서 광장에 모이기 시작한 대중들은 드디어 청계광장, 시청 앞 광장을 일제시대의 만민공동회로, 정치의 장으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민주주의가 도래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민주 올 때까지 민주 외쳐라”를 부를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온 것일까? 신자유주의가 뭔지, 경찰국가가 뭔지, 신자유주의 경찰국가가 뭔지 몰라도 대중들은 이미 두 달이 다 되도록 청계광장에서 알찬 학습을 해 왔다. 의료보험 민영화가 무슨 파국을 일으킬 것인지, 0교시 자율화가 피말리는 경쟁을 야기하고, 물과 전기 민영화가 서민들의 삶을 어떻게 괴롭힐 것인지, 광우병 쇠고기가 뭔지 인터넷을 통해 이미 다 학습한 터이기도 했다.

국민들이 뭘 몰라 불안해한다는 이명박 정권의 말이 말짱 거짓말이자 꼼수라는 것을 대중들은 이미 다 줄줄이 꿰고 있었다. 두꺼운 사회과학 책을 읽지 않았어도 대중들은 알아서 시위를 조직하고 자원봉사자들을 모았으며 스스로 자원봉사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해한 법전의 내용은 다 몰라도 그 핵심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단순명쾌하면서도 핵심적인 조항을 알고, 광장에 모일 때마다 기꺼이 즐겁게 노래 부르던 대중들은 탄핵, 국민소환제, 고시무효 소송을 스스로 준비하고 있었다. 온라인에서 모여든 소울드레서 등 각종 카페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모금했고 그 돈으로 광고를 날렸다. 이명박 정권이 2MB라면 대중들은 그것의 수만 배, 수십만 배가 되는 기가바이트, 페타바이트였던 것이다.

인원수를 세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무수하게 이곳 저곳에서 몰려든 대중들은 을지로 1가 지하철역, 종각역을 지나면서 축제분위기에 들떴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대학로에서 ‘크라잉 넛’의 노래를 듣고 몸을 흔들어대던 광장의 축제 분위기, 2002년 붉은 악마의 향수에 젖던 분위기는 안국역에 가까워지며 대중저항적인 분위기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이명박 물러가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협상 무효, 고시 철회’ 구호 옆에 이명박 정권 퇴진 구호가 공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로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원초적 이기주의가 어느새 반정부 투쟁으로 몸을 틀고 있었다.

청계 광장이든 시청 광장이든 광장의 체험은 언제나 이중적이고 양가적이다. 광장 안에는 축제와 혁명이 공존한다. 촛불, 노래, 구호, 춤으로 한껏 들뜬 축제는 혁명적인 저항의 분위기로 치닫기도 한다. 카니발이 혁명으로 전환되는 예는 실제 역사에 존재한다. 1580년 프랑스 동부 로망에서 벌어진 페스티발은 무장충돌과 대량살상의 투쟁으로 변했다. 물론 5·31을 달군 축제 분위기가 바로 전통적인 의미의 혁명으로 직진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광장에서 대중들이 배운 학습 효과는 그러한 혁명적인 분위기에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 스스로 정치학습을 한다는 생각이야 안했겠지만 광장에 모여 이루어진 대중들의 자유발언은 이미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소중한 학습이자 정치학습이었고 광장에 모였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였다.

한두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 광장에서 몸으로 느낀 축제분위기와 자발적인 정치학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광장에서, 거리에서 뭉실뭉실 커갔던 연대와 공동체의 정신이다. 사리사욕으로 가득 찬 강부자·고소영과 달리 대중들은 차량으로 넘쳐난 거리를 점령한 데서 해방감만을 느끼고 만끽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따뜻한 차와 빵이나 김밥을 바리바리 싸갖고 오거나, 예비군복 차림으로 스크럼을 짜, 서로를 보호해주는 배려의 정신을 본능적으로 실천했다. 100일 만에 도덕적인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이명박 정권과 달리 대중들은 100일은 커녕 불과 한 두 달 사이에 이 엄청난 학습을 해 왔고 그 효과로 이명박 정권에 대해 마침내 도덕적인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를 경찰 폭력으로 훼손시켰지만 대중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원초적인 이기주의에서 출발했지만 그 이기주의가 이타주의와 소통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이라는 지식을 넘어, 이윤보다 생명이 왜 중요한지, 나만이 아니라 너도 중요하다는 연대와 평등의 정신을 대중들은 지금 ‘광장’에서 진지하고도 광범위하게 배워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대중들의 저항적인 분위기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국면 - 의료보험 민영화, 물가, 물·전기·가스 사유화, 유전자조작 옥수수, 한반도 대운하 등 - 과 맞물려 사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가격하는 물대포, 무자비하게 시민들의 얼굴과 몸을 후려패는 방패의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한 가운데 새벽녘 동이 트도록 사그러들 줄 모르던 5·31 대중항쟁의 붉은 기운을, 떠오르는 아침 붉은 태양이 시민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바톤 터치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말

이득재 님은 대구카톨릭대 교수로, 참세상 논설위원 입니다.

태그

민주주의 , 촛불집회 , 물대포 , 쇠고기 , 광우병 , 독재타도 , 고시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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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한

    잘봤습니다.

  • 진리경찰

    6월22일 월드컵 예선 남북전 필승전략



    6월 22일에는 서울에서 남한과 북괴간의 월드컵 예선전이 개최된다.
    물론 인공기가 계양되고 북괴의 국가가 연주되겠지만
    이것은 국제적 규칙이고 선례도 있으므로 OIE규정을 따르듯이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경기에 있어서는 정대세, 안영학 선수 등
    북괴가 인민의 고혈을 짜내 육성한 운동기계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를 간단히 넘어설 필승의 전략이 분명히 존재한다.

    정대세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북괴 공작원 양성학교인 '조선학교'에 다니면서
    북괴 대표팀에서 뛰기로 결심하여 북괴 국적을 취득하였다.
    대한민국 국민이 북괴 국적을 취득한 것이다. 바로 여기서 필승전략이 가능한 것이다.

    국가보안법에서 '반국가단체'라 함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말한다.
    북괴는 헌법상 규정된 대한민국 영토에서 정부를 참칭하고
    대한민국을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지휘통솔체제를 갖추고 있으므로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의 요건은 완벽히 충족한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이 북괴 국적을 취득한 것은 반국가단체에 가입한 것이다.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위협하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반국가단체 가입에 대한 처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팀에서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경우에는 5년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또한 북괴 대표팀 활동중 받은 보수는 몰수된다.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를 범한 자를 수사기관 또는 정보기관에 통보하거나 체포한 자에게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1억원 이하의 상금이 지급된다. 이는 생사에 관계없다.
    그 과정에서 상이를 입거나 사망한 자의 유족은 순직군경에 준하는 보상과 예우를 받는다.

    정대세는 여전히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어 국가보안법의 명백한 적용대상이며,
    북괴국적을 보유한 사실이 명백한 만큼
    반국가단체 가입 혐의 또한 자명한 사실이고 처벌은 필연적이다.
    정대세를 검거하기만 하면 재판부터 형 집행까지는 그야말로 사소한 행정적 절차에 불과한 것이다.
    북괴는 그래서 6월22일 경기를 제3국에서 열자고 억지를 부린 것이다.

    정대세를 검거하여 재판정에 세우면 북괴팀 선수는
    핵심전력 손실로 작전상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
    심판의 편파판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과 흥분에 휩싸일 것이고
    경기는 대한민국의 승리가 사실상 확정되는 것이다.
    또한 검거한 정대세는 수감기간중 체육활동을 금지시켜 선수생명을 끝낼 수도 있다.





    ★우리는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OIE가 공인한 값싸고 질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됩니다.★
    ★진실은 언제나 승리하기 마련이며, 변화의 대가는 크고 위대할 것입니다★

  • 시민

    ... 승리라 이렇게 빨리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무엇을 도대체 얼마만큼 얻었다는 건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집회를 조직하고 '인민주권'을 이야기 하며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싸운 것 자체만 놓고 보면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 6. 29 때의 그 역동적인 시민들의 움직임이 직선제라는 것에 묶여 또 다른 지배정치로 수렴되었듯이, 이번에도 역시 '재협상' 발표가 나면 시민들은 또 자신의 차이를 인식하고 일상으로 돌아갈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시민들이 스스로 얘기했듯이, 인민주권을 전면화 시킬 수 있는 구체적 무언가 - 예를 들면 국민소환/발의와 같은 - 를 남기지 못한다면 또 역사는 반복될 뿐입니다.
    시민은 본래부터 혁명적이지 않습니다. 항상 정세적으로만 그럴뿐입니다. 국가를 시민과 두부자르듯 나눠놓고 시민이 승리했다! 라고 말하는 사이, 국가는 또 변신을 거듭하여 시민들을 포섭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장치안에 인민주권을 위치시키고, 항상적으로 그것을 작동시킬 수 있도록 국가와 시민사회를 '단락'(절합)시키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국가 안에서의 시민권의 작동, 시민들이 정치주체로 늘 자리잡을 수 있게 하는 무언가. 다같이 고민해보야하지 않겠습니까?

  • 에그

    이득재 씨 글보다 시민 님의 덧글 몇 줄이 훨씬 낫군요.

  • 에그

    이득재 씨 글보다 시민 님의 덧글 몇 줄이 훨씬 낫군요.

  • 와앙

    시민님 댓글에 공감합니다!

  • 지나가는 1인

    시민/ 님의 의견에 저도 공감합니다.
    단지 쇠고기문제만으로 끝나는게 아닙니다.
    그때그때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은 현정부와 똑같은 처사일 뿐입니다.
    현재 우리는 승리가 아니라 귀중한 한걸음을 내딛였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촛불집회가 국민들의 정치참여를 독려하고 국회와 청와대, 정부를 향한 새로운 규제 및 보완의 틀로 자리매김하기전까지는 결코 승리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의견을 귀중히 생각하고 겸허한 마음이 뼈속깊이 새겨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과거처럼 멀지 않은 미래에 또다시 이러한 투쟁을 반복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범국민적인 대회가 언제 다시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이번기회를 국민정부를 만들기 위한 초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 이득재

    좋은 리플 좋습니다. 제가 '승리' 표현을 쓴 것은, 정부의 고시 연기, 한나라당의 재협상 요구를 이끌어낸 것까지를, 지적한 것입니다. 물론 시민들이 원하는 수준의 재협상이 이루어지면 시민들은 제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물론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지만) 말하신대로 시민들은 혁명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좌파들이 이러한 국면에 개입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민주권 이야기하셨는데, 시민이 인민이 된다는 것 간단치 않습니다. 청계광장에서 '다함께'처럼 하는 활동이 아니라, 청계광장/시청앞광장이 정치토론의 광장이 되도록 개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 동안 한 두 달 간의 집회에서 성숙한 시민들의 의식이 자연스럽게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대구에서 어제 보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지 않고 민노총 및 사회단체가 촛불집회를 주도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모이지 않습니다. 연설 내용도 고리타분합니다. 구체적으로 시민들을 설득하지 못합니다. 구호성이죠. 앞으로 시민들이 정치화하는데 무수한 변수들이 존재합니다. 유전자조작옥수수, 물, 전기, 의료보험 문제, 0교시 자율화 문제 등 이러한 문제들이 광장에서 더 논의될 수 있는 방안, 만민공동회같은 것 만들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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