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께 드리는 편지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조금 취했었어요" 무작정 내린 버스 그리고 하룻밤

안녕하세요.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또 다시 인사를 드리자니 쑥스럽네요.

어젯밤엔 사실 취재를 위해 강남성모병원 천막 농성장에 찾아간 것은 아니었어요. 제가 몸담고 있는 글쓰기 모임, 아, 말 나온 김에 이름쯤은 밝혀 두어도 상관은 없겠지요, '삶이 보이는 창' 르포문학모임에 갔다가 술을 섞어 마시고, 모임이 끝난 후에 고속터미널역에 덜컥 내린 거였어요.

저녁에 집을 나오면서부터 오늘밤은 성모병원에서 지새야겠다고 막연히 생각을 했지만 저도 모르게 술자리에서, 마치 조난당한 사람이 바닷물 마시듯 술을 한없이 들이키느라 조금은 취한 기분에 무작정 성모병원으로 와 버린 거였지요.

그런데 바람이 어찌나 차가운지! 역 바깥으로 나오니 매서운 바람이 제 양 뺨을 사정없이 갈기는데 그만 술이 확 깨버렸어요. 그제만 해도 짧은 소매 웃옷에 반바지 입고 다녔는데 하루만에 날씨가 여름에서 겨울로 훌쩍 건너뛴 것만 같았어요. 단풍잎이 얼굴을 붉히기도 전에, 은행잎이 환하게 밝아지기도 전에 추운 바람에 오소소 떨어져 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됐지만 사람에겐 역시 사람의 일을 걱정하는 것이 더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천막에 또 용역 깡패들이 쳐들어오진 않았을까, 성모병원으로 걸어가면서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다행히도 천막은 늠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요.

다행히도 천막은 늠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요. 다들 어디 가셨나 둘러보니 너무 추운 날씨에 천막 안에 꼭꼭 들어가 계신 듯해서 조심스럽게 천막을 들추고 고개를 들이밀었지요. 안에서는 조합원 분들과 다른 몇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요. 저는 인사를 하고 안으로 쑥 들어갔지요. 천막이라고 하기보다는 텐트라 불러야 할 것 같이 자그마한 안쪽은 생각보다도 훨씬 아늑하고 따듯했어요. 한가운데 펼쳐진 간식거리들, 소담스럽게 불 밝힌 촛불들, 휴지와 물병들, 깔개와 침낭들이 전부였지만 그걸로 충분했어요.

그 안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제 옆에 앉은 진보신당 당원이 자꾸만 심각한 질문을 던져서 저는 늙은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던 것 같아요. 평소에는 숫기가 없어,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 말도 못 거는 저였지만 머릿속에서 찰랑거리는 술기운의 힘을 빌려 분위기를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일부러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았던가요. 일렁이는 촛불의 은은한 주홍빛보다 나을 것이 없었던 우스개에 한껏 웃어주셨던가요.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누가 뭐라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하나 둘 일어나 천막 바깥으로 나갔지요.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추웠어요. 저는 담배를 빼물었어요. 가까이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우울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기에, 서울대에서 온 학생에게 여자 친구는 있느냐 군대는 갔다 왔느냐 괜히 지분거렸어요. 스물네 살에 군 미필. 저도 스물다섯에 군대를 갔으니 스물넷에는 똑같은 군 미필자였지요. 그 시절 잠시 맺어졌다가 헤어진 여자 친구 생각이 났어요.

채찍처럼 온몸에 휘감아드는 찬바람을 맞으며 저는 조합원 분들에게 제 나이가 몇 살 정도 돼 보이냐고 물었지요. 충격이었어요. 서른 안짝이라니! 저는 일부러 조합원 분들 나이를 낮추어 말했는데! 심심풀이 삼아 서로 나이를 밝히고 나서 저는 강남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 분들이 생각보다 젊다는 사실을 알고 좀 고자누룩해졌습니다. ‘88만원 세대’라는 유행어가 말해주듯 이 시대 이십대 젊음이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를 쓰고 헛되이 제자리에서만 맴돌고 있다는 현실이 떠올랐어요.

피곤하셨는지 조합원 분들은 하나 둘 천막 안으로 들어가 침낭을 덮고 잠을 청하셨지요. 저는 잠이 안 와 담배만 뻑뻑 피워 대고 있었어요. 조금 이따가 택시를 타고 광명 집으로 가신다는 조합원 분과 둘이 서서 멋쩍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 조직부장님이 나타나셔서 우리 둘은 깜짝 놀랐어요.

조직부장님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녹음기가 있었다면! 기억에 남은 건 지난 2002년에 있었다는 강남 성모병원 노동자 217일 파업 얘기였지요.

“그때 노조의 요구사항이 뭐였어요?”

“‘성실 교섭’이었어요. 신부가 교섭하다가 중간에 나가 버린 적이 있었거든요. 그 이후로 병원 측이 교섭을 안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파업했죠.”

“......”

“그래서 사람들이 그때 바티칸까지 갔었어요. 교황청에 서신도 보내고.”

“예? 로마 바티칸이요?”

“정말 갔다니까요. 우리 사태 좀 해결해달라고 했더니만 그쪽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죠.”


이랜드일반노조 조합원 분들이 홍콩까지 가서 투쟁했던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바티칸이라니, 저는 추위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어요. 병원장실이 있는 행정동이 코앞에 있는데, 오죽 답답했으면 노동자들이 비행기를 타고 머나먼 바티칸까지 갔을까요. 더구나 요구사항이 다른 것도 아닌 ‘성실 교섭’이었다니. 놀이동산에나 있는 ‘귀신의 집’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어요. 몸에 병든 사람들은 침상에 누워있는데 마음에 병든 사람들은 어디에 누워 있으면 될까요.

조직부장님은 어디론가 가시고, 조합원 분도 택시를 타러 가시고, 저 혼자 남아 침낭을 뒤집어쓰고 천막 옆 라면박스 쌓아놓은 곳으로 기어 들어가 앉아 있는데 한 분이 천막 바깥으로 나오시더니 제게 안으로 들어가서 자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멋도 모르고 날름 안으로 들어가 비집고 누워 푹 곯아떨어졌어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어느덧 아침이었어요. 조합원 분들이 바쁜 손놀림으로 천막 안을 정리하고 계셨고 저는 정신을 차리느라 일어나 앉아 두 눈만 비비고 있었지요. 잠깐 사이에 조합원 분들은 다른 곳으로 가 버리셨어요. 세 시간 정도 잤나? 시간을 확인하니 여섯 시가 조금 넘어 있었어요. 옷을 추스르고 신발을 꿰어 신고서 천막 바깥으로 나오니 어젯밤보다 훨씬 더 맹렬한 바람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더군요. 에어컨에서나 나오는, 찬물을 끼얹는 듯 한 바람이 온몸을 파고들었어요. 아래턱이 덜덜 떨렸지요.

다들 어디 가셨을까. 십여 분을 떨면서 기다렸는데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너무 추웠지요. 저쪽으로 보이는 병원 복도에 사람들이 아까부터 모여 있는 게 아무래도 수상쩍었는데 몸도 녹일 겸 그쪽으로 가 보기로 했어요.

  승강기 주변에서 조합원 분들 셋과 간밤에 봤던 서울대 학생이 피켓 하나씩을 들고 서 있었어요.

승강기 주변에서 조합원 분들 셋과 간밤에 봤던 서울대 학생이 피켓 하나씩을 들고 서 있었어요. 목에는 패찰을 걸고 양복을 간드러지게 빼 입은 사람들이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지요. 보안 직원이구나! 그중 한 명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있었어요.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다 아시는 분들이 병원 내에서 왜 이러세요!”

“저희들은 지금 합법적인 노조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병원 직원이 병원 안에도 못 들어오나요?”


보안 직원들이 강파른 목소리로 나오면 조합원 분들은 야무지게 쏘아붙였어요. 피켓을 들고 있던 서울대 학생이 갑자기 배가 아팠는지 피켓을 제게 불쑥 건네주고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지요. 저는 엉겁결에 피켓을 들고 서 있게 되었어요.

“사진 찍지 마세요! 불법 채증하지 마세요! 위에서 멋대로 불법 행위 하라고 시키던가요?”

“이게 저희들 임무입니다. 불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구요. 어차피 저희도 위에 보고하려면 자료가 있어야 하니까 찍는 거예요. 얼굴 안 나오게 할 테니 가리지 마세요!”


디지털 카메라를 든 직원을 앞세우고 자꾸만 사진을 찍어가려 하자 조합원 분들은 거세게 성을 냈어요.

“왜 그래요? 왜 합법적인 활동을 불법으로 막는 건데요?”

“불법이든 아니든 그건 모르겠구요. 이게 저희 임무입니다. 나중에 소장님한테 찾아가서 따지세요.”

“우리가 왜 가야하는데요? 사진 채증은 명백한 불법이라는 거 모르시나요?"

“얼굴 안 나오게 찍는다니까요. 이게 저희들 임무예요.”

“같은 비정규직끼리 이렇게 싸우지 말죠? 저희들 피켓만 들고 조용히 서 있었는데 계속 이러시니까 더 시끄러워지잖아요!”


자꾸만 똑같은 문답이 오고 갔어요. 얼굴이 안 나오게 찍겠다니 말이 되나요? 불법인지 아닌지 모르는 게 아니라 불법을 불법으로 인정할 수가 없는 거겠죠. 어차피 직원들도 외부 업체에서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일 테고, 잘리지 않으려면 위에서 내밀어 대는 잣대를 눈 딱 감고 받아 쥐고는 자기 것처럼 붕붕 휘둘러야 할 테니까요.

거칠게 항의하는 조합원 분들에게 밀려 가장 늙수그레하게 생긴 직원이 복도 저쪽까지 밀려갔지요. 저는 가방 속에 들어있는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서 그쪽을 향해 한 장 찍었어요.

찍자마자 그 직원이 득달같이 달려오더군요.

“거기 누구세요! 사진 찍지 마세요!”

“사진 안 찍었는데요?”

“어디서 오셨어요? 여기 직원 아니죠?”


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카메라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선하품을 했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죠. 직원은 계속 시퍼런 서슬로 눈을 부릅뜨며 카메라를 보자고 했어요. 저는 카메라를 꺼내 겉만 대강 한 번 보여주고는 쓰윽 다시 집어넣었어요. 그러고는 수첩과 볼펜을 꺼냈지요.

“누군데 함부로 사진을 찍어요? 이름과 소속을 밝히세요!”

그러자 조합원 분들이,
“그분 기자인데요.”

그러자 보안 직원들이,

“기자면 왜 피켓을 들고 서 있습니까? 기자면 마음대로 사진 찍어도 되는 거예요?”

다시 조합원 분들이,

“우리 싸움에 동의를 하고 지지해 주시는 분이라서 그런 거예요. 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리려고 사진 찍는 건데 뭐 잘못됐나요?”

화장실 갔던 학생이 그때쯤 밖으로 나왔어요. 달라진 분위기에 잠시 무르춤하게 서 있던 학생은 곧 제 옆에 서서 피켓을 받아 들고 보안 직원들과 맞섰지요. 저는 일부러 히물히물 웃으며 시선을 다른 곳에다 돌리고 말했어요.

“저 기자 아닌데요?”

그러자 사진이 찍힌 직원이 어이없어하며,

“기자 아니신 분이 왜 여기 있어요? 사진은 왜 찍고?”

제가 다시,
“사진 안 찍었는데요?”

그 직원이 열을 내며 다시,

“아까 찍었잖아요!”

제가 웃으며 다시,

“안 찍었어요.”

저는 끝까지 안 찍었다고 우겼어요. 직원들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구요. 강제로 카메라를 빼앗으려 하면 한몫 단단히 힘을 써야 할 것 같아서 두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서 있었지요. 뭔가를 수첩에 자꾸 적는 체 했어요. 그러자 저쪽에 있던 직원 하나가 종이와 볼펜을 들고 와서 제게 이름이랑 소속을 대라고 하더군요. 수첩에만 코를 박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데 조합원 분들이 다시 들고 일어나셨어요.

“왜 남의 개인 정보를 가르쳐 달라고 해요?”

“이름이 무슨 개인 정봅니까? 이름과 소속 정도는 밝힐 수 있잖아요?”

“이름이 개인 정보가 아니면 뭐죠? 그런 거 함부로 캐묻는 것도 불법인 거 모르세요?”


제가 조가비처럼 입을 꼭 다물고 있으니 직원들은 식식거리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자 아까 사진 찍힌 직원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제 얼굴을 찍으려 했어요. 조합원 분들이 피켓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려 주셨지요. 저는 솔직히 얼굴이 찍혀도 상관은 없었지만 이런 것도 분명 기 싸움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서로가 닳아 가는 피곤한 다툼이었지만 여기서 밀리면 앞으로 조합원 분들이 병원 안에서 싸워 나가는 데에 더 힘이 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저는 꼿꼿이 고개를 들고 서 있었지요.

제 얼굴을 찍었는지 못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동안 제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직원들은 결국 지쳐 버렸는지 복도 저쪽으로 가 버렸어요. 저는 요 잠깐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수첩에 간단히 정리를 했지요. 그러고는 피켓을 들고 있는 조합원 분들 사진을 몇 장 찍었어요. 그러자 눈에 핏발이 선 직원 하나가 또 이쪽으로 오더니 왜 병원 내부를 허락도 안 받고 함부로 찍느냐고 뭐라고 하더군요. 조합원 한 분이 맞대꾸를 했어요.

“제가 포즈 취해 준 건데요?”

결국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직원이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병원 내에서는 허락 없이 사진 못 찍게 돼 있다. 아시는 분들이 왜 이러시느냐. 아까 언성 높였던 건 죄송하다. 서로 큰소리 안 나게 했으면 좋겠다...... 조합원 분들도 일곱 시가 넘었으니 이쯤에서 그만 피켓 시위를 마무리하기로 하고, 직원에게 아까보다는 조금 살갑게 이야기를 했어요. 힘드신 거 다 안다. 저희도 어쩔 수 없어서 이러고 있는 거다. 어차피 다 비슷한 처지끼리 싸울 필요 없지 않느냐......

그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함께 병원 건물을 나오면서 조합원 분들에게 아침 선전전에 대해 물어 보았지요.

“원래 아침에 바깥에서 계속 진행해 오던 건데,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어제부터는 건물에 들어가서 했어요. 어제 우리가 건물 안에서 피켓 시위했다고 병원이 발칵 뒤집혔대나 봐요. 어제는 카메라 같은 거 안 들고 왔는데 오늘은 불법 채증까지 하려고 그러네. 내일은 또 어떻게 될까?”

학생이 말을 보탰어요.

“그래도 여기 보안 직원은 순한 거예요. 다른 데는 말도 못해요. 진짜 짜증나요.”

우리는 피켓을 제자리에 놔두고 다시 천막으로 들어갔지요. 어떤 고마운 분이 보리차를 끓여 갖다 주신 덕분에 모두가 종이컵을 들고 호호 불며 몸을 녹일 수 있었어요. 적당히 간을 맞춘 맛난 밥도 갖다 주셨어요. 저는 간밤에 마신 술이 속에서 부대껴 뜨거운 보리차만 야금야금 마셨구요.

조합원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천막을 나온 게 아마 일곱 시 반쯤일 거예요. 서늘하면서도 상쾌한 공기를 몸 속 깊이 들이마시니 온몸의 피돌기가 새로워지는 것 같았지요. 취재한 건 별로 없는데 이걸로 글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길을 걸으며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현장 글쓰기’라는 딱딱한 형식으로는 못 쓸 것 같았어요. 그럼 어떻게 한다? 편지? 그래, 편지로 하자!

국립 중앙 도서관을 지나 서초 경찰서 쪽으로 발밤발밤 걷는데 하늘빛이 어찌나 고운지! 아무리 바람이 춥고 매워도 저 하늘빛 하나면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저 하늘에다 대고 입김을 호오 분 다음, 겨울 유리창처럼 뿌옇게 서리면 거기다가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써서 조합원 분들에게 편지를 쓰는 상상을 했지요. 하늘에다 쓰면 조합원 분들이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천막을 나오기 전에 이영미 대표님이 웃으며 말씀하셨지요. “아침부터 이렇게 한 따까리 하는 걸로 시작하면 하루가 참 즐거워요.” 우울하게 축 처지지 않고 밝고 건강하게 싸움을 해 나가시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어요. 물론 제가 병원 직원도 조합원도 아닌 바깥사람에 지나지 않는 탓도 있는지 몰라요. 곧 있으면 계약 만료가 되는 조합원 분들은 겉으론 웃지만 속은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간장게장으로 입맛을 되찾듯, 조합원 분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드리려면 저 같은 뜨내기(?)들이 성모병원을 자기 집 드나들 듯 들락거려야 한다는 거, 알아요. 알면서도 제대로 못 하고 있으니 많이 민망하기도 하구요.


사실 원청과 외주업체와 비정규직이라는 한심스런 삼각관계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참 많잖아요? 강남 성모병원 조합원 분들이 써 붙인 대자보 글에서 주어인 ‘성모병원 비정규직’을 살짝 바꾸고 원청인 ‘CMC’도 다른 이름으로 바꿔 버리면 그대로 기륭전자가 되고 이랜드가 되며 KTX가 돼요. 노동자들마다 하는 일도 다르고 사업장도 다르지만 결국 사용자가 좀 더 싼값에 노동력을 최대한 쥐어 짜내기 위해 비정규직을 고용한다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지 않나요? 너무나 똑같은 방식으로 너무나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고 많지만, 저는 어쩌다 보니 강남 성모병원을 들락거리며 글을 쓰고 있고, 지금은 편지를 쓴답시고 집에 와 잠도 못 자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요. 저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있을까요? 모르겠군요. 아침에 본 하늘빛이 아찔하도록 고와서라고 해 둘까요?

몸에 병든 이들을 보듬기 위해 먼저 마음에 병든 이들과 싸워야 하는 강남 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 여러분! 힘내세요. 곧 또 찾아뵐게요.

그런데 이 편지는 재미있었나요?

2008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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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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