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좀) 들어라, 80년 전의 외침을!

[배고프다! 영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체인질링>(Changeling, 2008)


<<글쓴이 고프 (Ghope)는 2006년 경향신문, 부산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했다. 최근 2년간 관악 공동체 라디오에 영화평을 연재했다. 앞으로 본지를 통해 영화에 대한 글을 써 나갈 예정이다. - 편집자 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새 영화 <체인질링 Changeling, 2008>을 이야기하면서 현 정부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유비추리 때문이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유비추리’는 비유를 이용한 추리의 방법이다. 그 형식은 이렇다.

X와 Y는 다르지만, a, b, c라는 속성을 가진 점에서 같다.
X는 s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Y도 s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적용해보면 이렇다.
<체인질링>의 경찰과 현 mb정부는 ‘다르지만’, 권력을 독점하고, 그러면서도 책임을 회피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공권력을 이용한 통제로 묵살하고, 근본적인 원인들은 무시한 채 사태를 서둘러 봉합하려 하고, 도덕 불감증에 빠졌다는 측면에서 같다.
<체인질링>에서는 억울한 죽음이 발생했다.
그러므로 현 mb정부에서도 억울한 죽음이 발생할 수 있다.

유비추리가 높게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첫째, 서로 다른 대상인 X와 Y가 공유하는 속성들 a, b, c가 X, Y의 본질적으로 중요하고 유관한 속성이어야 하며 둘째, s가 Y의 우연한 속성이 아니어야 한다. 이에 입각해서 위의 <체인질링>과 mb정부의 유사성에 대한 논증을 검토해볼 수 있다.

첫째. 권력 독점, 책임 회피, 책임 전가, 공권력, 통제, 묵살, 봉합, 불감증은 <체인질링>의 경찰에게서 본질적으로 중요하고 유관하다. 왜냐하면 이 경찰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 이외의 다른 목적을 가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의 항목들이 mb정권에 대해서도 본질적으로 중요하고 유관한 속성일까?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생각엔 이런 속성들이 mb정권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경제 위기는 이전 정권의 탓이고 용산 참사에서의 희생은 전철연 때문이다. 비판세력은 미네르바 사건이나 최근의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대응을 보면 알 수 있듯 공권력을 통해 통제하고, 정권의 경제예측에 반하는 예측을 했던 연구 결과들을 묵살했다. 급랭해버린 남북관계는 애써 외면하면서 봉합하고 놀라울 정도로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 실(失)용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둘째. 현 mb정부에서 발생한 억울한 죽음은 현실 속에서 우연한 속성이 아님이 검증되었다. 속도전을 앞세운 정치/경제 논리는 일종의 사회통제에도 적용되고 있다. 용산 철거민 농성의 진압에 앞서 얼마나 많은 준비와 내부 논의를 거쳤는지는 알 수 없는데, 25시간 만에 들이닥친 작전은 결국 대형 참사를 낳았다. 현 정부에서의 이러한 억울한 죽음은 우연한 사건이라기보다는 그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예측된 참사였다. 무리한 속도전과 개발 논리가 낳은 무서운 결과인 것이다.


그러함에도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그래도 <체인질링>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재의 한국과는 다르지 않겠는가? 그러나 정답은 오늘의 한국은 ‘과거의’ 한국을 닮아가고 있으며 점점 퇴행하고 있다가 아닐까 한다. 즉 <체인질링>의 경찰과 mb정부를 시공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교할 수 있는 것은, mb정부가 한국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영화적으로 표현하자면 mb정부는 페이드아웃으로 끝나려 하고 있는 과거의 장면을 굳이 재편집해 현재의 장면들과 오버랩시키고 있다. 그래서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과거의 사람들이 했던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오늘의 한국인은 경제위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현재적 고통과 군부독재 시절과 다를 바가 없는 독재정권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이 고통을 달리 표현하자면 결핍과 과잉이 안겨주는 이중적 고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부가 보여주는 능력의 결핍과 고집의 과잉이 주는 이중적 고통.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생각해야 한다. <체인질링>의 경찰과 mb정부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도 존재하는 것이다.


<체인질링>의 경찰들은 전적으로 악이며 동의 받지 않은 권력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권력은 어떤 ‘대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 복제 시스템에 불과하다. 그러니 관객들은 마음 놓고 <체인질링>의 경찰들을 욕할 수 있다. 그러나 mb정부는 약간 다르다. mb정부가 국민들을 통치의 대상으로 여기고 억압하고 압박을 가하면 언젠가 국민들이 지쳐 쓰러질 것이라는 전망을 공유하는 것은 <체인질링>의 경찰과 유사한 측면이다. 그러나 mb정부는 대의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것.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는 것. 그들은 정부로서의 대의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엄연하게 동의 받은 권력이다.


mb정부와 <체인질링>의 경찰을 ‘대의’라는 기준점으로 차별화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차별화의 과정에서 관객과 국민의 역할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지만 <체인질링>의 경찰을 보고 분개하는 것은 이 영화를 본 누구나이다.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경찰이 보더라도 <체인질링>의 경찰은 마땅히 제거되어야 할 악이다. 관객은 그저 분노하면 된다. 관객들이 동일화할 대의가 없는 경찰들이니 그저 욕하다 영화관에서 나오면 된다. 그러나 현실의 mb정부는 ‘대의’를 가지고 현재의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승인 받았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의 mb정부를 현재의 자리에 앉힌 것은 믿어서건 속아서건 mb정부의 대의와 스스로를 동일화한 국민들이다. 그리고 지금도 적지 않은 국민들이 ‘경제 살리기’ (혹은 이를 넘어 부자 되기)라는 대의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 그러니 현재의 mb정부를 보는 국민들은 자신을 관객의 위치에 놓으면 안 된다. 영화는 관객의 타자이지만, 국가와 정부는 국민의 구성물이다. 영화에 관객은 개입할 수 없지만, 국가와 정부에 국민은 개입할 수 있다. 그것이 국가가 역사적 흐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다. <체인질링>은 단순히 현재의 정부가 보여주는 흐름이 가진 균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은 관객인가, 시민인가. 2008년의 촛불집회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던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의미는 무엇인가.


영화는 어찌 보면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한 엄마의 엄마-되기. 이 여인이 진정 이 아이의 엄마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해 크리스틴은 그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천부적으로 아이의 엄마였던 크리스틴은 이제 세상과 사회를 향해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을 승인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녀는 성공한다.


다시, 시민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민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시민의 시민-되기. 형성된 시민이 아니라 형성되는 중에 있는 시민. 국가가 형성된 시기에 천부적으로 주어졌던 시민의 지위를 세계로부터 인정받아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는 성공할까? 우회적인 답을 내려보자.

다시 유비추리를 하자면 이렇다.

<체인질링>의 경찰과 현 mb정부는 ‘다르지만’, 권력을 독점하고, 그러면서도 책임을 회피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공권력을 이용한 통제로 묵살하고, 근본적인 원인들은 무시한 채 사태를 서둘러 봉합하려 하고, 도덕 불감증에 빠졌으며 그것을 시정하려는 의지조차 가지고 있지 않아 결국 억울한 죽음을 발생시켰다.
<체인질링>에서는 경찰이 파면당했다.
그러므로 현 mb정부는 (         )다.

(     ) 부분은 논리적으로만 유추가능하다. 이것이 현실화되는 것은 시민이 시민으로 승인받는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그것은 우연에 의해 가능하지 않다. 다만 (     )가 매우 높은 가능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 유비추리의 교훈이며, 또한 역사의 교훈이다.



by(e) G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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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 용산 , 권력 , 이명박 , 체인질링 , 클린트 이스트우드 , 안젤리나 졸리 , 존 말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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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재밌는 글이네요. 단어 하나 하나에 모두 동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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