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마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편집자주]
멍했다.
마더의 허벅지 침 한 방, 묻지 마 관광버스 안의 춤, 그리고 음악.
기억에서 추방하고 싶은 고통이 마더를 춤추게 했던, 춤추는 실루엣 속에 담긴 비극, 비극을 한껏 고조시키던 음악이 어우러져 영화는 음악이 끝나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게 했다.
370도의 영화.
갈대 숲에서 마더의 넋 나간 춤으로 시작한 영화에서 다시 마더가 갈대 숲을 빠져 나오는 장면이 나왔을 때, 비극이 360도를 돌아, 누가 누구를 범인으로, 죄인으로 지목할 수 없는 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져,
난 거기서 영화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그 후 약 10도 더 지속된 영화가
이 영화의 압권이자
김 혜자의 허벅지를 관통한 침 한 방처럼
영화의 모든 씬들이
그 침 한 방 안으로 몰려들었다.
마치, 온 몸의 기가 침 한 방 안으로 흘러 모여들어 피를 순환시키듯이
영화의 씬마다 흐르던 기운들이
김 혜자의 허벅지를 관통하는 침 한 방 속으로 흘러 들었다.
화룡점정이라 했던가.
도준이 허벅지에 놔 주려고 했던 기억 소멸의 혈 자리에 침을 놓자마자
마더의 고통의 기억은 실루엣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고통은 춤으로, 음악으로 변한다.
영화가 끝난 후 멍한 머리로 길거리를 걷다가
정류소 가는 길에 자동차에 치일 뻔했다.
영화를 좋아했지만 영화감독 봉 준화가 부럽다는 걸 처음 깨닫게 해준 영화였다.
머더murder를 머더murder시킨 마더mother의 그 철저한 증거인멸의 사투.
도준이의 그 무심결에 저지른 살인 현장을 본 고물상을 죽이고
집을 불태운 엄마.
이 쯤에서 끝났으면 '마더'는 영화가 될 수 없었을 터이다.
타버린 집 터를 들른 도준이가 주워 온 침 통
거기서 침을 꺼내 마더는 기억을 머더하고자 한다.
기억의 죽음에 이르는 혈 자리를 관통하는 침.
영화의 모든 장면들은 이 씬 한 장면으로 몰려 들었다.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우고서라도 도준을 살려 내는 엄마.
지긋지긋한 살림에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으로
저지른 일이었건만
농약 박카스로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도준이 앞에서
경악하던 엄마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자기를 죽이고 도준이를 살려 내는 일이었다.
'아무도 믿지마 엄마가 구해 줄께', 무서운 이 말 한 마디.
농약이 담긴 박카스 병이 면도날이 되어
도준이의 영혼 속살까지 후벼 판 줄 엄마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자식이 오줌 누는 담벼락까지 쫓아가 보약을 입에까지 갖다 바치면
도준이의 망가진 영혼에서 새 살이 돋을 줄 알았던 것일까.
아정이가 던진 큼직한 돌이 아정이의 뒤통수로 되돌아가 아정이는 어이없게도 죽었지만
엄마의 박카스 병은 기억하고 그 돌을 기억하지 못하는 도준이에게
더덕을 먹이고 밤을 먹이면 도준이의 트라우마가 벗겨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영화는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처절하게 죽이는 영화다.
때 마침, 자식과 마누라를 살리고자 노 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자살했고
30미터 부엉이 산은 끝 모를 높이의 하늘이 되었다.
살인의 결정적 증거가 될 침 통을 태연히 들고 온 도준이를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증거를 없애고자 고물상 집을 태웠건만 거기서 침 통을 찾아 들고 와 엄마를 훈계하는 도준이를 보며
마더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환장할 일 아닌가. 그 때 기억 좀 하라고 했더니 농약 먹인 거나 기억하고
증거를 없애려 방화한 집 터에서 침 통을 찾아오다니, 환장할 일이었을 것이다.
마더는 도준이를 살리고자 서서히 기억을 살해할 혈 자리를 찾아 나선다.
철저한 증거 인멸, 지독한 자기 부정.
기진맥진할 정도로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마더에게 진태도 제문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도준이를 구할 사람은 오로지 마더 혼자 뿐이다.
본드 냄새를 마시던 애들 앞에서 담배를 물고 마더는 형사 제문이처럼 애들을 취조한다.
영화에서는 엄마가, 현실에서는 아빠가
피붙이들 앞에서 몸을 던지고 침을 찔러 대고 했던 것 아닌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엄마, 아빠는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도준이를, 마누라를, 자식을, 측근을, 노란 풍선들을 살려 내고 말았다.
기도원 종팔이를 면회 간 엄마의 눈에는 죄의식이 만연했다.
종팔이를 꼭 만나야겠냐는 제문이의 말에 묵묵부답하던 마더는
종팔이를 면회한 곳에서 종팔이가 엄마가 없다고 하자
오열하고 만다, '엄마가 없어?'. 일그러지는 마더의 얼굴.
엄마가 없다니, 아니, 아빠가 없다니,
마더의 오열, 국민들의 오열.
그 마더의 오열은 마더를 광기로 몰아가고 있었다.
고물상 집을 태우고 나오는 엄마의 눈은 무의식 속으로 떠나가고 있었지만
이제 그 무의식 안으로 광기마저 침범하는 것처럼 보였다.
갈대 밭 속에서 춤추던 엄마의 몸짓에는 출렁이는 갈대들의 춤처럼 이미 고통의 기억을 축출하려는 광기가 넘실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마더에게서 공감하는 것은 그 오열 속에 광기 이외에 다른 것이 흘러넘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준이를 살리기 위해, 피붙이 하나 없는, 마더가 없는 종팔이를 팔아 넘긴 마더.
종팔이를 대체시켜 줄, 종팔이의 희생양이 없는 종팔이의
'엄마 없다'는 말 한 마디에
엄마가 공구로 짓이겨대던 고물상의 머리통에서 터져 나오는 피처럼
목구멍의 살을 찢으며 솟구치던 그 오열 속에는
사랑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생명애라는 단어도 그저 허접하게 느껴질 뿐인
뭔가가 액체처럼 스크린 위로 부유하고 있었다.
태생이 몹쓸 종자인 진태에게서는 딱딱한 채로 고여 있던 것이
종팔이 앞에서는 죽어버린 고물상 주인 머리 주변으로 흐르던 끈적한 피마냥 액체로 변했다.
마더의 가슴 속을 붉고 뜨겁게 데우는 액체,
그것을 모성이라 해도 좋다, 모성성도, 모성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모성애에는 광기가 뒤범벅되어 있었다.
진태 집을 빠져 나올 때, 고물상 주인집을 맥 놓고 나올 때 물과 피가, 땀과 피가, 비와 피가 뒤범벅되어 있듯이
마더의 마더후드motherhood에는 비극적인 광기, 어쩔 수 없는 광기가
뒤범벅되어 있었다, 마치, 고물상 주인을 타살한 후 마더의 얼굴을 뒤덮은 핏자국처럼, 아니 마더가 얼굴을 훔쳐 뒤범벅되어 버린 얼굴의 핏자국처럼.
저걸, 모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저것이 모성의 실체 아닐까.
저것을 굳이 모성애라고 불러야 할까.
도준이를 정신병원에 보내자고
룸살롱에서 제안하던 변호사,
아정이의 혈흔에서 종팔이의 디엔에이가 발견되었다고 떠드는 경찰,
남자들의 변태 짓에 치를 떨던 아정,
아정이의 핸드폰을 쌀독에 숨겨 놓은 노파가
어지럽게 흩날리는 갈대밭처럼 마더의 영혼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모성과 광기를 마더의 영혼 속에 뒤범벅 칠해 놓았다.
모성성이라는 이름이 과연 여기에 적합한 단어일까.
정말로 그것이 모성성일까?
이미 광기 어린 채 자식들에게서 꿈을 강탈하고 자식들을 스카이대학에 보내
상위 1%의 성적으로 상위 1%의 지배계급, 타워 팰리스에 편입시키려고 광분하는
우리 시대의 마더들의 영혼은 이미 광기로 한껏 버무려져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무섭다.
종팔이 앞에서 오열하는 마더의 오열하는 목소리가 두렵고 무섭다.
모든 것을 빨아들여 기억을 죽이는 침 한 방처럼
손가락이 작두에 다쳐도 자식 걱정하는 씬에서 보듯이
모든 것을 빨아올리는 모성성이 무섭다.
전제군주보다도 더 높은 곳에 앉아
도준이를 종팔이로 바꿔치기하는 모성성이 두렵다.
어렸을 적, 엄마의 젖을 만지며 자랐던 기억이
저 모성성으로 승화될까봐 두렵다.
블랙홀로서의 모성.
노 무현 전 대통령이 전제군주보다도 높은 바보가 되었다는 사실이 두렵다.
바보의 성화聖化를 부추기는, 바보에 대한 추모. 대통령이 바보의 자리로 내려왔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은 국민들은 바보를 성화하고 전제군주로 등극시켰다.
도준이는 마더의 도움을 받았지만 바보로 남았다.
노 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의 도움으로 성화되었다. 대통령의 세속화와 바보의 성화의 변증법.
국민이 노 무현 전 대통령을 마음의 대통령으로 부활시킨 순간,
용산도 삼성도 화물연대 박종태도 일순간 잠재워버린 국가주의의 망령이, 부성주의의 망령이,
전제군주의 권력이, 아니 모성주의의 광기가,
살 떨리도록 무서워진다.
그 대극에서 조 갑제가 이 명박 대통령에게 국가를 업고 헌법을 입고
노 무현의 자살의 강도 수준에서 난동세력에게 대들라고 사주하는 조 갑제도
턱이 흔들릴 정도로 무섭다,
블랙홀로서의 국가를 넘어 아예 그 국가주의로 민중을 진압하라는,
국가보안법마저 몸을 떨 정도의 조 갑제의 망발 앞에
민주주의라는 말이 허접할 정도로
광기들로 뒤범벅된 세월이다.
진실이 마더의 침 한 방 안에 유폐된 것처럼
부엉이 바위 안에 진실은 유폐되고
현실의 마더는 통한의 세월을 보낼 터이다.
도준이를 살리고자 한 마더나 자식을 위해 집을 산 마더나
애비는 죽고 그 죽음의 실루엣 안에서 통한의 세월을 보낼 터이다.
기억을 잊고자 광기어린 춤을 출 수도 없는 현실의 마더.
도준은 이미 비정상인임으로 해서
바보임으로 해서
설령,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도준이를 살인자로 몰아 붙일 수는 없을 터이다.
도준이의 돌이 아정이의 뒤통수를 처박은 후
도준이의 그 어찌할 줄 몰라 하던 장면을 기억하자.
아정이가 죽은 건지 자는 건지, 죽음에 대한 감각조차 없던 도준이를
살인자로 몰아 세울 수 있을까.
도준이가 유영철은 아닐 터이다.
노 무현 전 대통령이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가 전제군주가 되어
온 국민을 오열의 바다 속에 빠트린 것이
민주당에게는 고통스러운 기쁨이겠지만
마더는 굳이 저렇게 스스로를 머더시켜야 했을까.
파더는 굳이 그렇게 스스로를 머더시켜야 했을까.
민중들이야 피 똥 싸야 만져볼 수 있는 돈이지만,
마누라가 벽장 속에 꼭 꼭 숨겨둔 돈 때문에
굳이 스스로를 죽여야 했을까.
집 나간 자식 때문에 아정이 할머니처럼 미치지 않으려고
막걸리 통 안고 살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일까.
참혹하다, 마더후드. 살인의 비난을, 자살의 책임을 온 몸으로 떠안아야 하는 마더.
고통스럽다, 파더후드. 짜놓은 정치검찰 수사에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파닥거리다가
맥없이 생을 놓고만 파더후드.
막장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세상이다.
손 담비의 ‘미쳤어’가 인기를 끄는 세상이다.
화물연대 박 종태가 아카시아 동산에서 목 매달아 죽어도
용산 사람들이 살고자 망루에 올라가도
스펙타클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펙타클은 자본과 권력의 것이던가.
스펙타클한 죽음은 권력만의 것이던가.
이 광기어린 시대의 마더들의 광기어린 마더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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